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124화 (124/130)

[제124화] 로스카보스

6개월 후.

멕시코 로스카보스의 ‘카보 산 루카스’라 불리는 항구.

나는 막 비즈비 블랙 앤 블루 대회의 관리 사무실을 나서는 길이었다.

대회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대회 참가 확인과 현지 적응을 위해, 나는 일행보다 며칠 일찍 도착하여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참가 선수와 참가비 완납 확인란에 서명을 마치고 나와 보니, 사무실 앞쪽에 비즈비 휘장으로 꾸며진 무대가 눈에 띄었다.

지상 최대의 낚시 대회가 임박했음을 알려 주듯, 벌써부터 축제를 구경하려는 인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사무실 앞에 주차된 밴에 오르자, 운전석에 앉은 사내가 내게 물었다.

“에어포트?”

“예스!”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리부리하고, 배도 불룩 튀어나온 중년 사내는 ‘게코’라는 이름의 현지 어부. 그는 백상효가 추천해 준 인물이었다.

스페인어 외에도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그는, 내 짧은 영어 실력을 이해하고 최대한 간결한 단어로 내 의사를 물었다.

차가 출발하자 나는 바다가 바라보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 도착한 지도 벌써 4일째.

매일 봐도 싫증 나지 않는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광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멀리 태평양의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해안가에는 계류 시설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트들이 내려다보였다.

로스카보스.

멕시코 북서부, 바하 칼리포니아 반도의 최남단에 있는 지역으로 아름다운 백사장과 각종 해양 스포츠로 한 해 수십만의 사람들이 찾고 있는 멕시코의 대표 관광지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해 안면도의 아래 끝에 있는 영목항 정도의 위치에 해당한다.

아무튼 로스카보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를 압도한 이미지는 말 그대로 ‘낚시의 천국’이었다.

“캡틴 게코, 웨이트 히어.”

“노 프라블럼.”

로스카보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호세 카보 공항.

나는 게코에서 눈인사를 건네면서 밴에서 내렸다.

앞으로 대회 기간 내내 나를 도와줄 두 명의 승선원을 마중하러 나온 것이었다.

시간에 맞춰 도착했더니, 오래지 않아 반가운 얼굴들이 출국장 입구에 나타났다.

“여기야!”

나를 알아본 사심희가 만면에 미소를 띠고 단숨에 다가왔다.

“며칠 사이에 얼굴이 더 까매졌네요?”

“사흘 내내 바다에 나가 있었거든. 오느라 힘들었지?”

“나야 괜찮았지만…….”

사심희는 실실 미소 지으며, 옆에 있는 꼬마를 가리켰다

오랜 비행으로 기진맥진한 준서였다.

“준서야! 비행기 어땠어?”

“벌써 돌아갈 일이 걱정이에요.”

“얼른 숙소에 가서 쉬자.”

안타깝게도 여기까지 오는 직항은 없다.

가장 빠른 비행 편은 미국 LA를 경유하는 것으로, 그래도 무려 32시간에 이르는 지루한 항로였다.

내가 결정한 마지막 승선원.

준서를 대회에 동참시키기로 결정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나처럼 이 대회를 꿈꾸는 소년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경험은 없으리라 판단했다.

그저 보트에 동승하여 구경만 하는 것만으로, 그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임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이번 대회에서 준서에게 기대하고 있는 큰 역할이 있기 때문이었다.

“인사해. 이번에 우리를 청새치에게 인도해 주실 게코 선장님이야.”

나는 차량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게코를 가리키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나이스 투 미츄. 블라블라…….”

사심희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한참 떠드는 모습에, 한결 편안해진 기분이 들었다.

벌쭘하게 서 있던 준서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성함이 개코예요?”

“개코가 아니라 게, 코. 그냥 캡틴 게코 그렇게 불러 드리면 돼.”

“아…….”

준서가 미리 준비한 짧은 인사말로 그에게 말을 걸자, 게코는 부리부리한 눈알을 굴리며 몹시 반가워했다.

차의 조수석에 올라앉은 나는 뒷좌석으로 몸을 돌려 두 사람에게 오늘의 일정을 알려 주었다.

“일단 숙소에 가서 짐을 풀고, 저녁 식사도 멀리 갈 것 없이 그곳에서 해결하자. 문어 요리를 잘하는 식당이 있어.”

“좋아요.”

“준서도 문어 좋지?”

“저는 아무거나 다 괜찮아요.”

여행 온 사람답게 잔뜩 들뜬 사심희와 대조적으로 준서는 왠지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숙소로 가는 동안 창밖을 시큰둥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 말수도 적어 보였다.

비행기도 처음이고, 해외여행도 처음인 아이라 마냥 즐거워할 줄로 알았던 나로서는 다소 의외였다.

장거리 여행과 낯선 환경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아 보였다.

숙소 앞까지 우리를 바래다준 게코는 씩 웃으며 좋은 꿈을 꾸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눈앞에 펼쳐진 숙소의 전경을 바라보며, 사심희는 감탄을 연발했다.

“와!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근사하다. 수영장도 있고, 멋진 바도 있고.”

며칠 전부터 내가 묵고 있는 숙소는 초특급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구색을 갖춘 오래된 리조트였다.

한국을 출발하기 전 사심희가 열심히 예약 사이트를 뒤져 골라 준 곳이다.

“준서야! 이모랑 밤에 수영이나 할까?”

“대회가 내일 아침 일찍 시작하는 것 같던데…….”

“아! 그렇구나. 오늘은 안 되겠다. 저쪽에 예쁜 옷 가게도 보이네.”

우리가 묵을 곳은 방이 네 개나 달린 패밀리 룸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널찍한 거실과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통유리창에 사심희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우럭 님 따라다니면서 이런 호사는 처음이네요. 맨날 차에서 자거나 민박집만 전전했었는데.”

“괜히 미안해지네. 준서는 여기 어때?”

“……좋아요. 저는 저기 화장실 옆방에 묵을게요.”

“거긴 좀 좁더라. 그러지 말고…….”

준서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짐을 챙겨 작은 방으로 쏙 들어갔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나는 사심희의 빤히 쳐다보았다.

“오다가 무슨 일이 있었어? 어쩐지 시무룩해 보이네.”

“아뇨. 푹 자면서 잘 왔는데요. 피곤해서 그러겠죠.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대충 짐을 정리해 놓고, 우리는 리조트 1층으로 있는 멕시칸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사심희의 도움으로 메뉴를 선택한 뒤, 나는 준서에게 넌지시 말을 붙였다.

“준서야. 무슨 일 있니? 아까부터 표정이 좀 그렇다.”

“……아무것도 아녜요.”

“말해 봐. 혹시 학교 때문에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아녜요. 담임 선생님도 걱정 말고 잘 다녀오라고 하셨어요.”

현장 학습을 이유로 일주일 정도 학교를 빠지게 만든 것은 나도 적잖이 마음에 걸렸었다.

“우린 한 팀이야. 문제가 있으면 대장인 나에게 말해 줘야 하는 거야.”

한참을 머뭇거리던 준서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사실은…….”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가 여기서 무슨 도움이 될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나 뜻밖의 대답이었다.

“뭐어? 학교까지 빠지면서 여기에 온 이유가 있었잖아. 교실에서보다 더 많이 배우고 가겠다고 분명히 말했었고.”

“그렇긴 했지만 막상 와 보니 걱정이 생겼어요. 제가 아니고 다른 어른이 오셨다면 삼촌에게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거잖아요.”

준서의 걱정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

“저도 인터넷에서 찾아봤어요. 대회 참가비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비싼 비행깃값에, 또 이런 멋진 호텔에. 괜히 따라와서 삼촌에게 폐만 끼치는 것 같아요.”

준서가 보통의 아이들보다 속이 깊다는 사실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 녀석은 자신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으로 고민했던 것이다.

“하하하. 참가비는 네가 있거나 없거나 금액이 같단다. 그런 얘기는 됐고,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준서 너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이 있어.”

대회 참가를 위해 내가 지불한 금액은 미화로 7만 불.

기본 참가비 외에 대회 당일마다 최대어를 낚은 사람에게 큰 상금이 주어지는 ‘데일리 잭팟’의 풀 패키지를 포함한. 말하자면 자유 이용권에 부과되는 금액이었다.

다만 이는 팀원의 숫자에 상관없이 팀별로 부과되는 방식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는 말에, 준서가 눈을 깜빡거렸다.

“제 역할이 있다고요?”

“넌 배에서 파수꾼을 맡게 될 거야. 아주 중요한 역할이지.”

“파수꾼이 뭐죠?”

“음……. 그러니까 망을 보는 사람이라고 보면 돼.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이 뭔지 알아?”

“아뇨.”

“바로 적들이 쳐들어오는지 망을 보는 일이지. 한눈팔고 있다가 기습이라도 당하면 큰일이 날 테니까. 이제 알겠지?”

“…….”

준서는 말없이 작은 눈알을 굴렸다.

어린 녀석이지만 그도 나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눈치였다.

파수꾼은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승선원 구성을 고민하던 와중에 나는 파수꾼 역할의 필요성을 깨달았고, 곧바로 준서를 적임자로 떠올렸다.

한낮의 청새치는 따뜻한 수면 근처에서 먹이 활동을 한다. 또한 많아야 두세 마리 정도가 몰려다니는 경우는 있지만, 참치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는 습성이 아니다.

수면을 스쳐 가거나 가끔씩 하늘로 라이징하는 청새치를 아주 멀리서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포획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캡틴’ 게코는 청새치가 출몰하는 포인트를 찾는 일이 주요 임무다. 때로는 배의 고장이나 안전사고에도 대응해야 한다.

또한 물고기가 걸렸을 경우, 즉시 대회 본부와 무전 통신을 맡아야 하는 책임도 있다.

‘앵글러’인 나는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것이 주요 임무다. 당연히 채비와 장비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청새치가 출현하는지, 어신이 오는지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겠지만, 매일 무려 10시간의 긴 항해 동안 혼자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사심희는 말할 것도 없다.

촬영은 물론이겠거니와, 그녀는 로스카보스의 바다 구경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 파수꾼 역할을 바라는 일은 애초에 무리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준서에게는 보통의 성인들보다 뛰어난 관찰력과 집중력이 있다. 그만의 순수한 열정으로 누구보다 멋지게 파수꾼의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준서가 갑자기 물었다.

“망원경도 있나요?”

“당연히 있지. 수평선 끝까지 잘 보이더라.”

“알았어요. 저 배고파요. 빨리 음식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때마침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준서는 해맑게 웃으며 접시에 코를 박았다.

“와. 멕시코 문어가 너무 맛있네요. 청새치를 찾아내려면 많이 먹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 많이 먹어라. 하하하하.”

흐뭇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산책 삼아 리조트를 나왔다. 해변을 따라 걸어가고 있을 때 사심희가 물었다.

“먼저 와서 그동안 뭐 했어요?”

“매일 바다에 나갔었어.”

“그럼……?”

“잠깐씩 탐색만 하다 돌아왔어. 딱히 눈에 띄지는 않더라고.”

도착한 날 하루만 빼고, 사흘 내내 게코와 바다를 누비고 다녔다. 방으로 머릿속 어탐기를 가동해 보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청새치가 아니라 한 무리의 참치 떼를 발견한 것이 전부였다.

사람은 참 착하고 좋은 것 같은데…….

게코 선장이 안내한 포인트는 매번 허탕이었다. 청새치가 그리 쉽게 발견될 리는 없겠지만, 은근히 걱정이 되는 부분이었다.

펑! 펑! 퓨우욱!

갑작스러운 폭음이 들려와 고개를 돌려 보니, 하늘 위로 여러 개의 불덩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대회가 열리는 선착장 근처였다.

“우와! 멋지다!”

“전야제가 열리나 봐요. 우리도 한번 가 봐요.”

하늘에 그려진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폭죽들이 대회가 임박했음을 실감케 했다.

사심희의 손에 이끌려 우리는 선착장 쪽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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