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123화 (123/130)

[제123화] 피리 부는 사나이

“삐비비♪ 삐비비비~~~~♬”

‘섬집 아기’

은은한 4분의 3박자의 곡조가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벌써 20분째였다. 나는 참다랑어를 불러들인다고 추정하는 노래를 쉬지 않고 뿜어내는 중이었다.

너무 멀리 간 것일까?

아직까지 물속에 이렇다 할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다.

“삐비♪ 삐비비비~~~♬”

‘여기까지 왔는데 내 자식들에게 밥은 주고 가야지요. 허허허.’

참치를 바라보던 황 사장의 애정 어린 시선과 텅 빈 가두리를 향하던 황 사장의 허탈한 눈길이 자꾸만 떠올랐다.

시간은 흘러갔고, 마음은 무거워져만 갔다.

도대체 어디까지 도망친 걸까?

목적지도 없이 바다를 떠돌고 있을 참치들 또한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멀리 수평선 근처에 일기 시작한 작은 물보라를 발견한 것은 말라붙은 입술에 침을 바르고 있던 찰나였다.

아……. 온다!

가두리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반신반의하고 있었던 나 자신마저도 소름 끼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물보라가 일어나는 곳은 한 군데가 아니었다.

참치 떼들은 여러 방향에서 물살을 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어엇?”

뭔가 툭툭 건드리는 느낌에 발치 근처를 내려다본 나는 흠칫 뒤로 물러섰다.

어느샌가 먼저 도착해 있는 시커먼 생명체들이 하나둘씩 불어나고 있었다.

“삐비비♪ 삐비비비~~~~♬”

솔직히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두리 주변에 몰려든 참치들이 언제고 뛰어올라 나를 덮칠 것만 같았다.

푸드덕! 푸드드득!

가두리 가장자리에 돌진하여 그물에 툭툭 부딪치는 참치들이 눈에 띄었다. 자칫 그들이 몸이 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휘파람의 볼륨을 약간 낮췄다.

녀석들의 거친 움직임이 다소 가라앉았다.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한 참치들을 나는 눈대중으로 헤아리기 시작했고, 아침에 봤던 마릿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에 보이는 곳에는 사람의 형체가 전혀 없었다.

나는 입 안 가득 바람을 불어 넣고, 최대 볼륨으로 자장가를 발산했다.

“삐비비♪ 삐비비비~~~~ 삐비♪ 삐비비비~~~♬”

투두두두, 투두둑! 휘리릭!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실로 경이로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바다를 반으로 가르던 모세의 기적을 목격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참치들이 몸을 부르르 떠는가 싶더니, 가두리를 에워싼 1미터 높이의 펜스를 훌쩍 뛰어넘기 시작했다.

몇몇 펜스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진 참치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더욱 힘찬 재도약 끝에 기어코 난간을 넘어왔다.

심지어 엉뚱한 가두리 안으로 점프하는 녀석들도 간혹 눈에 띄었으나, 내가 손을 쓸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삐비~ 삐비비비~~~♪”

끊임없이 긴 시간 동안 휘파람을 내뿜었더니, 입 안에 침이 마르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지금의 내 모습을 누가 본다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미친 듯이 휘파람을 불러 대는 사내를 봤다면 틀림없이 정신이 나간 놈이라 여겼을 것이다.

잠시 후 잠깐 쉬었다가 다시 크게 부풀린 내 가슴에서 비시식 바람이 빠져나갔다.

다 끝났다. 드디어 해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이제 남은 참치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흐뭇한 시선으로 돌아온 녀석들을 내려다볼 여유는 없었다.

꾸물거리다가는 사람들 눈에 띌 위험이 있었다.

멀리서 나타난 낚싯대 한 척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나는 슬그머니 몸을 낮추면서 보트에 올라탔다.

부아앙~~

보트의 엔진 소리와 함께 보트는 물살을 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이 내 얼굴에 닿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조만간 악몽에서 깨어나게 될 황 사장의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부아아앙~~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보트는 15분 만에 선착장에 도착했다. 보트에서 내려 계류줄을 단단히 묶은 뒤, 나는 바다를 돌아보았다.

가두리가 있는 먼바다 위에 아직도 갈매기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현대판 ‘피리 부는 사나이’를 직접 본 유일한 목격자가 되리라.

* * *

“조심해서 올라가게. 조만간 또 만나세.”

“신세만 지다 갑니다.”

“아무 말 말고 훈련에만 집중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고.”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나는 백상효와 악수를 나누고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배가 출발하고, 좌석에 앉아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였다.

부둣가에서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조그만 작업선에 오르는 노인이 눈에 띄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황 사장이었다.

후후. 빨리도 소식이 닿은 모양이군.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나는 의자의 등받이에 길게 누웠다.

“큭큭큭!”

잠시 후에 엄청난 반전을 목격하게 될 그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수상한 눈길로 힐끔거렸지만 쉽게 웃음이 멈춰지지 않았다.

여객선이 뭍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한낮에 욕지도의 어느 곳에서 벌어진 희귀한 사건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할 미스터리로 남게 될 거라고.

* * *

다음 날 아지트 안에는 나와 사심희 둘뿐이었다.

“농담 아니죠? 가을에 멕시코 여행을 가자고요? 그것도 심지어 로스카보스라고요?”

“여행이 아니라 낚시 대회라니까.”

“그게 그거죠. 너무 좋아요. 대학 때 한번 놀러 갈 기회를 놓쳐 무척 아쉬웠는데.”

비즈비 대회에 참가하겠다는 말을 들은 사심희의 반응은 내 예상과 약간 달랐다.

낚시 대회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듯 그녀는 마냥 해맑고 천진난만했다.

자유로운 영혼이 세상은 대하는 그녀의 단면이었고,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진지하게 부탁을 하려던 참에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난 영어가 짧으니까 사시미 님이 도와줘야 돼. 대회 내내 동영상을 찍어 줘야 하고.”

“아유. 그거야 당연하죠. 나중에 딴소리나 하지 말아요.”

비즈비 블랙 앤 블루에 참가하려면 팀을 꾸려야 하고, 인원의 제한은 크게 없다.

현지 사정에 익숙한 선장은 백상효가 물색해 준다고 했으니, 나와 사심희까지 세 명이면 기본적인 팀 구성은 완성이다.

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심을 굳힌 순간, 나는 이미 그녀를 필수 승선원으로 낙점했다.

그녀는 낚시에 대한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현지 소통을 위한 최상의 통역사가 되어 줄 것이며, 심지어 동영상 촬영에도 능숙하기 때문이다.

나는 3일간의 모든 기록을 어반자TV의 팬들과 공유할 계획이었다.

“한창 좋은 때다. 좋을 때야. 밖에까지 시끌벅적하더니만 역시 두 사람이었군.”

입을 삐죽거리며 아지트 문을 박차고 들어온 사람은 고동우였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손에 쥐고 있던 조간신문을 테이블 위에 툭 내려놓았다.

“7면 중간에 재미있는 기사가 있더라. 한번 읽어 봐라.”

“무슨 기사인데요?”

“어떤 낚시꾼 기사야. 욕지도 어디라던가? 어제 일어난 훈훈한 미담이라나.”

이상하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는데…….

흠칫 놀라며 신문을 펼치고 있을 때 사심희가 불쑥 물었다.

“우럭 님도 어제 욕지도에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랬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7면을 펴고 서둘러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 보았다.

‘욕지도 양식장에서 일어난 참치 탈주극, 낚시객이 잡아 주인에게 돌려줘.’

짤막한 기사의 제목이었다.

부릅뜬 내 눈동자가 관련 사진을 훑던 순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중년의 사내가 황 사장과 참치 한 마리를 함께 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와! 누가 참치를 잡았나 보다. 같이 봐요.”

호기심이 발동한 사심희가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 함께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제 아침 욕지도의 참다랑어 양식장에서 참치가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때마침 근처에서 루어 낚시를 즐기던 낚시객 정 모 씨가 참치 한 마리를 포획했고, 근처 양식장에서 벌어진 사고 소식을 접한 정 모 씨는 주저없이 주인에게 자신의 참치를 돌려주었다.

해당 참치 양식장은 30년 전에 개장한 국내…… (중략).

양식장의 주인은 선행을 베푼 낚시꾼에게 해당 참치를 선물로 돌려주어 보는 이의 가슴을 훈훈하게 했다.

한편 기자의 인터뷰에 응한 양식장 주인의 주장에 따르면, 탈출한 참치들이 수백 마리에 달했으나 나중에 확인해 보니 모두 제자리로 돌아와 있더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겨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기사를 읽은 사심희가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미담이면 동시에도 황당한 기사네요. 주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착한 낚시꾼이 수백 명이나 있었다는 건가?”

“그러게……. 간만에 참 재미있는 기사네.”

나는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신문을 내려놓았다.

황 사장이 실없는 사람으로 비치게 된 점은 다소 아쉬웠으나, 욕지도 사건은 그렇게 해피 엔딩으로 일단락되었다.

* * *

그날 밤.

나는 자취방 책상에 앉아 ‘로스카보스 관광청’ 사이트를 검색하고 있었다.

몇 번의 클릭으로 찾아낸 금년도 비즈비 블랙 앤 블루 대회의 개최 일자는 10월 17일.

지금부터 대략 반년의 기간이 남은 셈이다.

백상효의 조언을 통해 그때까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는 대략의 그림을 그려 놓은 상태였다.

오키나와에서 엄청난 청새치를 낚아 올린 경험이 있지만, 그건 행운이 따른 결과였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보여 주듯, 청새치는 수십 일 동안 바다를 누비고 다녀도 발견조차 힘든 어종이다.

대상어인 청새치의 습성에 대한 면밀한 연구는 물론, 바다에서의 실전 시뮬레이션 훈련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장에 착수해야 할 급선무는 빅게임에 특화된 근력을 단련하는 일이다.

아지트에서 빠져나와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던 사심희가 내게 이렇게 물었었다.

‘당분간은 어반자TV를 쉬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건 왜?’

‘낚시 올림픽이라면서요. 대회 준비에만 몰두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해서…….’

‘대회 준비는 틈틈이 하면 돼. 따로 선수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계속 해외에 나가 있을 것도 아니고..’

욕지도에서 나눴던 백상효와의 대화는 내게 안도감과 확신을 심어 주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작은 차이가 있다면, 나는 우승이라는 순간의 짜릿함을 위해 일상의 모든 즐거움을 희생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모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유쾌한 도전.

나는 이번 대회 참가의 의미를 그렇게 규정했다.

물론 준비를 소홀히 하겠다거나,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식의 마음가짐은 아니었다.

나는 최소한 5위까지 주어지는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았다.

첫 출전이라는 것은 감안한 목표였고, 세계 무대의 수준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 이상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실현 가능한 목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가급적 담대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번 대회에 임할 각오였다.

잠시 의자 등받이에 누워 있던 나는 다시금 노트북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대회 개요, 주의 사항, 수상 기준, 참가 신청 방법 등을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던 중, 대회참가 양식이 눈에 띄었다. 아직 신청 기간은 멀었지만, 미리 확인해 보고 싶었다.

양식의 맨 윗칸에 팀명(Team Name), 선장(Captain), 앵글러(Angler), 승선원(Deckhand)을 기입하는 빈칸들이 눈에 띄었다.

팀 어반자(Team Avanza).

팀명은 미리 생각해 두었다.

선장, 앵글러, 승선원 칸도 한 명씩 채워졌다.

더 필요한 사람은 없을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을 때, 불현듯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또 한 명의 승선원을 머릿속에 그리며, 나는 조용히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걸려 있는 달력으로 다가갔다.

한 장 한 장 달력을 넘기던 내 손이 10월에서 멈췄다.

사진으로만 봤던 로스카보스의 푸른 바다.

10월의 그날을 기다리는 내 눈동자에는 사진 속의 눈부신 바다를 박차고 비상한 청새치 한 마리가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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