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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122화 (122/130)

[제122화] 가두리

푸드득! 푸드덕!

플라스틱 삽으로 하나 가득 사료용 고등어를 던졌더니, 어느 틈에 참치 떼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대략 2백 마리는 넘는 마릿수였다.

눈앞에 펼쳐진 멋진 광경에 나는 잠시 넋을 잃었다.

“젊은 사람이 밥을 주니까 녀석들도 좋아하는 눈치네요. 허허.”

“정말 쉽게 하기 어려운 경험이네요. 덕분에 고마웠습니다.”

일꾼에게 삽을 넘겨주고, 나는 황 사장과 인사를 나눴다.

“또 놀러 오세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가두리를 나와 보트에 올라탔을 때, 백상효가 황 사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단하신 분이지. 참치에 있어서만은 국내 최고의 전문가야. 낚시도 곧잘 하시고.”

“게다가 엄청난 부자이신 것 같던데요.”

“하하. 그래 보이던가?”

“값비싼 참치를 저렇게 많이 가지셨는데 당연히 부자시겠죠.”

“저곳도 법인이야. 영어조합법인이라고 하지. 잘은 모르겠지만 부채가 적지 않을걸. 그만큼 고생하셨으니 이제부터라도 부자가 되셔야겠지.”

낚시 포인트로 향하는 동안 나는 백상효에게 황 사장이라는 분에 대해 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황 사장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원양 어선에서 고생하다 돌아와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참치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양식에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그가 내 관심을 끈 이유는 참치를 대하는 애정 어린 태도였다. 말끝마다 ‘내 자식’이라는 그의 표현이 상투적인 말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보트가 물살을 가르며 달리자, 뒤쪽에 보이던 가두리는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잠시 뒤 포인트에 도착한 백상효가 어탐기를 살피면서 배의 위치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도 슬슬 시작해 볼까?”

마침내 그가 배를 멈추고, 내게 낚싯대와 작은 태클박스를 건네주었다.

로드는 라이트지깅 L대.

박스 안에는 각양각색의 ‘타이라바’가 종류별로 담겨 있었다.

박스에 담긴 타이라바를 내려다보며 머뭇거리는 나를 향해 백상효가 다가왔다.

“타이라바는 자주 쓰지 않았나 보군. 찌낚시도 좋지만 나는 루어를 선호하는 편이지. 천성적으로 미끼를 갈아 끼우는 게 귀찮아서 말이야.”

“사실은 처음입니다. 뭘 골라야 될지 모르겠어요.”

“이걸 써 보게.”

봉돌, 바늘, 미끼가 모두 일체형인 타이라바.

백상효는 파란색 유동형 헤드에 빨간색 스커트가 달린 타이라바를 건네주었다.

“조류가 만만치 않은 시간이라 100g이면 적당할 거야.”

“감사합니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청새치 트롤링 낚시에 쓰는 루어도 이것과 비슷하게 생겼어. 하다 보면 찌낚시보다 훨씬 편하다는 걸 알게 될 걸세.”

백상효는 타이라바를 먼저 입수시키며 또다시 설명을 이어 갔다.

“요즘에는 타이라바 바늘에 갯지렁이까지 주렁주렁 매다는 사람들이 많더군. ‘타이렁이’라고 불리는 것 같던데, 효과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진정한 루어가 아니야.”

뒤이어 채비를 퐁당 빠뜨렸더니, 빨간 스커트가 나풀거리며 바닥에 도사리고 있던 물고기의 머리통을 툭 건드렸다.

“히트!”

담그자마자 나오는 걸 보니, 욕지도는 가히 황금 어장이라 불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낚싯줄을 회수해 보니, 눈알이 툭 튀어나온 쏨뱅이가 탈탈거리고 있었다.

“벌써? 쏨뱅이는 매운탕거리로 최고지. 고맙네.”

“하하. 그야말로 얻어걸렸습니다.”

시작이 좋다.

나는 가급적 많은 물고기를 잡아, 떠나기 전에 백상효의 냉장고를 채워 주고 싶었다.

다시 채비를 던지기 전에 물속을 들여다보니, 중층 부근에 머물러 있던 백상효의 타이라바 근처에 참돔 한 마리가 맴돌고 있었다.

어떻게 하시나 한번 볼까?

가만히 숨을 죽이고 참돔을 노려본 결과, 몹시 조심성이 많은 녀석이었다.

토독! 토도독!

백상효의 초릿대에 약한 입질이 들어왔다. 녀석은 물속에서 타이라바 스커트의 끄트머리를 살짝 물었다가 뱉어 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자 백상효는 아주 천천히 릴을 감으면서 놈을 유혹하는 액션을 취했다.

“왔어!”

첫수를 알리는 백상효의 굵직한 목소리.

역시 그는 루어 낚시에 일가견이 있는 프로 조사였다. 그가 힘들이지 않고 끌어 올린 참돔은 30센티 중반급으로 중치급에 해당하는 사이즈였다.

“요건 구워 먹기 좋은 사이즈로군.”

“대단하십니다.”

축하의 멘트를 날리면서 나는 곧바로 채비를 입수시켰다. 오랜만에 대물을 걸어 보고 싶은 기대감에 이리저리 둘러보았더니, 근처에 낱마리의 참돔들이 눈에 띄었다.

잠깐 놀러 나온 마당에 조바심을 내지는 않았다. 천천히 릴을 감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는 사이, 백상효의 호탕한 목소리가 또 한 번 울려 퍼졌다.

“좋아! 이번엔 제대로 걸렸어!”

기역자로 꺾여 탈탈거리는 백상효의 라이트지깅대.

대물 참돔이 걸렸다는 사실은, 굳이 휘파람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빅게임도 재미있지만, 참돔 낚시는 바로 이 맛이지.”

참돔의 세찬 저항의 몸부림을 단숨에 제압하며, 백상효는 강제 집행을 하듯 빠르게 릴을 감아 들였다.

“오! 제법 큽니다.”

수면으로 끌려온 아름다운 주황빛의 참돔.

이번에는 50센티미터 안팎의 준수한 녀석이었다.

“자네가 와서 그런지 오늘 참돔들이 잘 나와 주는구만.”

잇몸까지 만개한 얼굴로, 백상효는 건져 올린 대물 참돔을 내게 흔들어 보였다. 슬슬 나도 발동을 걸어야지, 하며 그에게서 흐뭇한 시선을 떼어 내던 바로 그때였다.

휘리릭~~~

물속에서 시커먼 뭔가가 쏜살같이 지나쳐 간 것 같았다. 휘파람을 불어 넣어 보니, 벌써 사라진 뒤였다. 다만 내 타이라바에 달린 스커트가 물결에 휩쓸려 펄럭거리고 있었다.

뭐였을까?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확인하지 못했다. 배 밑으로 고개를 숙여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러나? 물에 뭐라도 빠뜨렸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헛것을 본 거라 생각했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금 타이라바에 집중하려던 순간, 검푸른 덩어리가 또다시 휙 지나쳐 갔다.

엄청난 속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다. 유선형의 거대한 물체가 어뢰처럼 스치는 순간, 나는 그것의 꽁무니에서 펄럭이고 있는 꼬리를 똑똑히 보았다.

혹시……. 참치……?!

분명히 언젠가 본 듯한 뒷모습이었다. 왕돌초에서 잡았던 대어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또 한 번의 강한 파동이 물속에서 감지되었다.

이번에는 한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였다.

미터급 크기의 참치 세 마리가 쏜살같이 중층을 가로지르는 광경에, 내 얼굴은 새파랗게 변해 버렸다.

서, 설마…….

반사적으로 내 시선은 물속을 벗어나 주변의 수평선 쪽으로 옮겨졌다.

“백 프로님! 저, 저기 좀 보세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십 마리의 참치들이 떼를 지어 수면을 질주하고 있었다. 그중에 어떤 녀석들은 물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모습이었다.

“큰일이 난 것 같군…….”

입을 크게 벌리고 참치 떼를 바라보던 백상효가 다급하게 채비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물고기 떼를 발견한 낚시꾼에게서 볼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가두리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야.”

“…….”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참치가 출몰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렇게 떼를 지어 나타나는 경우는 들어 보지 못했다.

멍하니 서 있는 내게 백상효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뭐 하나? 빨리 가 보세.”

“……알겠습니다.”

백상효는 아무렇게나 보트 바닥에 낚싯대를 던져두고, 보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려가는 보트 안에서 나는 설마설마 마음을 졸이며 물속을 지켜보았다.

참치들이 사방에 퍼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모두가 자로 잰 듯한 똑같은 크기였다. 불길한 예감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가두리로 향하는 동안 백상효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힘없이 휴대폰을 내려놓는 모습으로 보아,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전속력으로 달린 보트가 가두리 양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황 사장이 사색이 된 얼굴로 귀퉁이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형님! 어떻게 된 겁니까?”

“…….”

보트를 정박하고 올라온 백상효가 그에게 물었지만, 황 사장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형님…….”

“……그물이 터졌어.”

“어쩌다가 그랬습니까?”

“모르겠어. 한 번도 없는 일이었거든. 바로 다음 주가 정기 점검이었는데……. 조금 전 그물을 수선하러 잠수부들이 다녀갔어. 중간쯤에 삭아 빠진 부분이 있었다더군. 관리를 소홀히 한 내 탓이지.”

“참치는요?”

“죄다 도망갔어. 거의 다 키운 애들이었는데…….”

곁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쪽으로 휘파람을 불어 보았다.

가두리 안에 남아 있는 두 마리의 참치가 외로이 떠돌고 있었다.

몹시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먹이를 줬던 그곳이었다. 아침에만 해도 수면까지 몰려와 대물 참치들이 바글거리던 가두리 안에는, 슬픈 적막감만이 맴돌고 있었다.

잠시 후 황 사장이 백상효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 이보다 큰 곤경도 견뎌 온 내가 아닌가. 그만 가지. 나도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어.”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

황 사장은 대답 대신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나는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그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각자의 배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황 사장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달려왔나요?”

“……낚시하다가 참치 떼를 봤습니다.”

“허허. 그 녀석들이 사람들 낚싯바늘만 물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온실 속에서만 살아오던 애들이라 얼마나 살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떠나보낸 자식들을 걱정하는 황 사장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렇지만 과연 그 방법이 통할 수 있을까?

보트에 오르기 직전, 나는 몸을 돌려 가두리를 둘러싸고 있는 펜스를 살펴보았다.

대략 1미터 높이의 펜스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하긴 펜스가 그보다 낮았다면 하루에도 몇 마리씩 가출에 성공하는 참치들이 있었으리라.

황 사장의 작업선이 먼저 떠나자, 백상효가 계류줄을 풀며 내게 말했다.

“낚시는 이만 접지. 이런 상황에서 낚시를 즐길 마음은 아니로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배 시간이 네 시 반이라고 했던가? 점심이나 먹고 천천히 쉬다 가게.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겨서…….”

“저도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더군요. 그런데 혹시 보험을 들어 놓으시지는 않았을까요?”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했더라도 개인 과실이라고 하지 않던가. 보상을 받기는 어렵겠지.”

“…….”

결심이 섰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두 사람이 입을 꾹 닫은 채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나는 계류 밧줄을 들고 보트를 정박하려는 백상효에게 다가가 말했다.

“백 프로님! 죄송하지만 보트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인데 그러나?”

“잠깐이면 됩니다.”

“설마 아까 참돔을 못 잡아서 아쉬워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시간도 있고 해서 섬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알겠네. 점심 준비하고 있을 테니 너무 늦지만 마시게.”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자주 해 보니 연기도 느는 것 같다.

뭍에 오른 백상효는 약간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나는 그의 모습을 뒤로하고 곧장 보트를 움직였다.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20여 분을 달려 보트가 도착했을 때는, 아무도 없는 양식장 위에 무심한 갈매기들만 떠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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