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비밀 프로젝트
“돗돔이 용을 쓰네요. 힘이 아주 장사입니다!”
“대단하십니다. 영감님.”
이번에도 노인은 릴링을 시작하며 선장과 대화를 나눌 만큼 여유가 넘쳤다.
하루에 연거푸 두 마리째를 포획한 그의 주변에서 선장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꽉 다물었던 내 입술에서 기합 소리가 튀어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하압!”
놈이 내 미끼를 덥석 삼킨 순간, 나는 한껏 힘을 주고 챔질을 시도했다.
담뱃갑만 한 바늘이 정확히 위턱을 꿰뚫자, 놈은 고개를 쳐들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사심희가 바닥에 내려놓았던 카메라를 들고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죠?”
“뭔가 걸린 것 같아.”
낚싯대로 전혀 새로운 차원의 묵직함이 전해졌다. 황급히 드랙을 약간 풀자마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놈이 질주를 시작했다.
“저쪽에도 뭐가 있나?”
선미 쪽에서 벌어진 어수선한 분위기에, 선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밑걸림인가요?”
“아닙니다. 저도 한 마리…….”
“에에?”
경험이 많은 선장은 금세 사태 파악에 나섰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내 낚싯대의 움직임을 살피던 그가 활짝 얼굴을 폈다.
“완전 경사 났네요. 쌍으로 올라오는 장면은 저도 오랜만에 보겠어요.”
평생에 한 번 구경하기도 힘든 돗돔이 더블 히트로 올라오고 있었다.
뭐지. 이 미친 육중함은…….
참치처럼 빠르고 강렬한 저항은 아니다. 청새치처럼 세차게 고개를 처박는 느낌도 아니다.
투박하고 묵직한 진동이랄까, 어쨌든 처음 경험하는 돗돔의 손맛은 사뭇 달랐다.
물속을 살펴보니 예전에 내가 잡았던 참치와는 비교할 수 없고, 거의 오키나와의 청새치에 해당하는 무게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노인이 먼저 릴링을 시작했지만, 두 마리의 돗돔이 수면에 떠오른 시각은 거의 동시였다.
“저쪽 먼저 도와주세요!”
어디부터 도울까 우왕좌왕하는 선장에게 나는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낚싯줄을 팽팽히 유지하여 놈의 바늘털이에 대비했다.
선수 쪽에는 노인의 아들까지 합세하여 돗돔에 걸어 놓은 밧줄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앞쪽부터 해결하고 뛰어온 선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외쳤다.
“이쪽으로 조금만 당겨 주세요!”
솔직히 나는 더 이상 낚싯대를 들고 있을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가까스로 그가 말한 위치로 낚싯대를 끌었더니, 선장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낚싯줄을 잡아챘다.
“히익! 이게 뭐야?”
두둥실 떠오른 돗돔의 육중한 몸뚱어리를 처음 본 선장이 눈을 휘둥그레 치켜떴다.
“선장 노릇 20년에 이런 고기는…….”
난생처음 보는 대물이라는 듯 혀를 내두르며 선장이 나를 올려다보는 순간, 그제야 나는 대형 사고를 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기 두 분, 나 좀 도와줘야겠어요.”
“내 그럴 줄 알았다. 금방 갑니다.”
곧바로 선상에서는 네 남자가 달라붙어 줄을 당기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셋에 동시에 힘을 쓰는 겁니다! 하나, 둘, 셋!”
“영차! 여엉차!”
쿠궁!
마침내 배의 난간을 타고 바닥을 울리듯 나동그라진 엄청난 생명체. 그것은 거의 2미터에 육박하는 초대형 돗돔이었다.
기진맥진한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바닥에는 송아지만 한 돗돔이 펄떡거렸고, 그 옆으로 사심희가 물고기처럼 폴짝거리며 흥분한 모습도 보였다.
* * *
체장 194cm, 무게 135kg.
내가 잡은 돗돔의 기록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것은 비공식이나마 국내 최고에 해당하는 신기록이었다.
“오늘 대박입니다. 두 분 덕분에 저도 횡재했습니다. 하하하.”
이마에 맺힌 땀을 씻으며 선장은 어금니까지 드러내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한 마리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돗돔의 특성상, 낚싯배 선장은 마리당 50만 원의 성공 보수를 챙기는 것이 관례이다.
“요즘 같은 흉어기에 성공 보수는 반만 받겠습니다.”
모두들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귀항하던 중이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나는 오늘의 대형 사고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흉어기나 다름없는 바다에 두 번이나 출현했던 돗돔들.
달인 노인의 현란한 고패질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배가 부산 남항에 도착했을 무렵,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어, 어르신…….”
나는 노인에게 다가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뭘 잠깐 힘 좀 써 준 것 가지고. 암튼 젊은이도 참 대단하십디다.”
“그게 아니라, 제가 돗돔을 잡은 건 모두 어르신 덕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노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알을 굴렸다. 그러더니 곧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너머로 내게 뭐라도 배웠다면 젊은이가 대단한 거지요. 우리 아들놈은 늘 함께 다녀도 허당인데 말이요. 그럼 잘 가세요.”
“네네. 어르신.”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아들과 함께 선착장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들과 다른 사내가 다시 내려와 돗돔을 운반하기 시작했다.
“우린 어떻게 하지? 저걸 차에 실을 수도 없고…….”
“제가 알아서 해결했어요. 아! 저기 오셨네요. 외삼촌!”
사심희가 어느 틈에 연락을 취한 모양이다.
용달차에서 내린 그녀의 외삼촌이 벌겋게 흥분한 얼굴로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 * *
4월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대전의 부동산 사무실을 들렀다가 다시 분당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라디오에서는 한낮에 섭씨 25도에 오르내리는 초여름의 기온이 곧 다가올 기록적인 무더위를 예고한다며 수선을 떨고 있었다.
부산에서 돌아와 집에서 빈둥거리던 와중에 걸려 온 몹시 뜻밖의 전화였다.
부동산 사무실의 전화를 받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전으로 달려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큰 봉우리를 하나 넘어선 기분이었다.
다소의 난관을 예상했던 계약을 마친 뒤라,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보람이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은 차가 경부 고속도로의 마지막 휴게소를 지나치고 있을 무렵이었다.
“도라에몽! 회사냐?”
“일 때문에 아지트에 와 있어. 온 김에 네 얼굴이나 보고 갈까 해서.”
“구피 님하고 둘이 있겠네?”
“아냐. 구피 님은 얘기 끝나고 금방 내려가셨어.”
“알았어. 곧 고속도로 빠지니까, 20분 정도면 도착할 거다.”
아지트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보람이는 소파에 기대 선잠에 빠져 있었다.
“요즘에도 밤낮없이 일만 하냐?”
“으음. 깜빡 잠이 들었나 보네. 다운샷 시즌 때문에 주문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
“몸 생각하면서 하라니까. 옜다!”
오다가 낚시점 건너편 구멍가게에서 사 온 아이스크림을 던져 줬더니, 보람이는 배시시 웃으며 비닐 포장을 뜯었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냐? 아까 고속도로라고 하던데.”
“……으응. 대전에 개인적인 볼일이 있었어. 그건 그렇고 할 얘기 있으면 후딱 해라. 내 얼굴이 보고 싶어서 부른 건 아닌 것 같고.”
“눈치 빠르기는…….”
보람이는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입 베어 물고, 핀잔을 주듯 내게 물었다.
“친구로서 묻는 거야. 집은 왜 아직도 그대로인 거야?”
“…….”
“배당 몇 푼 했다고 네 개인사에 간섭하려는 건 아냐. 내가 전에 말했잖아. 너도 이제 누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아아……. 그거……?”
말꼬리를 흐리면서 나는 몸을 뒤로 길게 젖혔다.
어반자팩토리에서 보낸 배당금이 회사 통장에 꽂혔던 그 날이 아련히 떠올랐다.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충주에 계신 부모님의 식당을 시내의 번듯한 장소로 옮겨 드리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내 말을 들은 엄마는 단골손님 두고 어디를 가냐는 둥 네 앞가림부터 하라는 둥 펄펄 뛰셨다.
그렇지만 그 후로도 나는 반지하 자취방을 옮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굳이 번거롭게 이사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내게는 크고 원대한 계획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와 사심희를 위한 마지막 인생 프로젝트.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나는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도끼눈을 뜨고 있는 보람이에게 나는 대강 둘러대기 시작했다.
“이참에 아예 집을 하나 지으려고.”
“뭐? 그게 정말이냐?”
“사실은 오늘 땅 계약하고 돌아오는 길이었거든.”
“오오! 기막힌 반전이네. 가만, 배당금이 서울에 땅을 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럼 어디야?”
“그건 비밀이야.”
“분명히 근처의 바닷가 어디겠지. 네가 늘 입버릇처럼 얘기했던…….”
“글쎄. 일단 그렇게만 알고 있어라. 나중에 집들이 때 깜짝 놀라게 해 줄 테니까.”
“아무튼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최근에 네가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이야.”
“다른 멤버들에게는 입도 뻥끗하지 마. 너만 알고 있으라고.”
“알았어. 걱정 마.”
보람이가 잘 넘어가 주어 다행이었다.
막 녹기 시작한 아이스크림을 입에 털어 넣고, 우리는 함께 아지트를 빠져나왔다.
각자의 차에 오르는 순간, 보람이가 내게 손을 흔들면서 외쳤다.
“이왕 짓는 김에 내 방도 하나 만들어 줘. 자주 놀러 갈 테니까.”
“쉿! 비밀이라니까.”
“아, 그랬지. 쏘리!”
그와 헤어지고 차에 오르자, 조수석에 놓은 누런 서류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상기된 얼굴로 봉투 안에 들어 있는 서류를 꺼내 들었다.
부동산 매매 계약서.
아직은 계약금만 치른 상태지만, 서류의 제목만 봐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태어나서 처음 내 이름으로 소유하게 된 땅.
그 주소는 경남 남해군의 어느 작은 무인도. 바로 쑥섬이었다.
* * *
다음 날.
나는 또다시 고속도로에 올라 남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차가 국도에 진입하여 사천 공항을 지나고 있을 때, 처음으로 사심희를 쑥섬에 데려갔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신비로운 무인도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던 그녀를 본 순간, 내 가슴속에는 행복한 상상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막연했던 상상은 보다 구체화된 모습으로 형체를 드러냈다.
그 뒤로 나는 인터넷 부동산 정보를 통해 쑥섬의 주인이 대전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인근의 부동산 사무실을 찾아 그의 의사를 물어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부동산 사무실에서 걸려온 갑작스러운 전화는 쑥섬의 주인에게서 매도 의사가 있다는 희소식이었다.
부랴부랴 대전에서 만난 섬의 주인은 개인 별장을 지을 목적으로 매입을 했으나, 지금은 자금 부족으로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매입가보다 약간의 웃돈을 원했으나, 충분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계약은 일사천리로 성사되었다.
“유록이 왔나? 참 반갑데이.”
미니중기 영감은 약속 장소인 낚시점 앞 나무 의자에 앉아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어르신. 아니, 형님!”
“그래. 하는 일은 잘 되고?”
“그럼요. 형님은 요즘 어떠십니까?”
“노가다 판도 죄다 애들이 판치고 있다. 나 같은 늙은이를 불러 주는 사람이 많겠나. 맨날 펑펑 놀고 있다.”
낚시점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것으로 보아, 공 선장은 손님들과 출조를 떠난 모양이었다.
성미도 참 급하신 분이다.
미니중기 영감이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던져 놓고, 본론을 재촉했다.
“그래. 나 같은 시골 영감탱이한테 무슨 부탁이 있다는 말이가? 얼른 얘기해 봐라.”
“미조항 근처에 쑥섬이라고 아시죠?”
“알다마다. 무인도 아이가? 와, 거기로 낚시라도 가자는 기가?”
“하하. 그만한 일로 여기까지 단숨에 왔겠습니까.”
담배꽁초의 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는지, 재떨이 안에서 생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손을 휘저어 연기를 쫓아내며, 그에게 정중한 말투로 속삭였다.
“제가 그 섬을 개발할 계획입니다. 형님을 공사 책임자로 모시고 싶습니다.”
나만의 비밀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뜬금없는 내 부탁에 미니중기 영감은 탁자 위에 놓인 담뱃갑을 더듬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