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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119화 (119/130)

[제119화] 달인

낚싯배 안에는 먼저 와 있는 두 명의 손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배의 난간에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선장이 다가와 물었다.

“혼자 오겠다고 하신 손님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런데 한 명이 추가되었습니다.”

“잘됐네요. 달랑 세 분이라 좀 그랬는데.”

“제가 독배 요금을 내겠다고…….”

“됐습니다. 그냥 두 분 요금만 내세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저기 저 영감님한테나 하시든가요. 솔직히 저분 아니었으면 새벽에 출조 취소 문자 보내려고 했으니까.”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귀한 단골손님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낚시도 못 하고 발길을 돌릴 뻔했다니 다행은 다행이었다.

“바로 출발합니다. 물이 튈 테니까 선실로 들어가시는 게 좋습니다.”

사심희와 선실 벽에 기대어 한참을 앉았더니, 졸음이 쏟아졌다.

“나 잠깐 눈 좀 붙일게.”

“밤에 뭘 해서 몰골이 그 모양이에요?”

“공부 좀 하느라…….”

얼마나 깊은 잠에 빠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배가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눈을 떠 보니, 어느새 포인트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조심하세요! 아버지.”

“잔소리 말고 네가 앞장서라.”

앞서서 선실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의 대화로 보아, 서로 부자지간인 것 같았다.

그들은 선수 쪽에 자리를 잡고 채비를 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채비를 매만지는 노인의 손놀림에서 어딘지 모르게 고수의 풍모가 확 풍겼다.

“어르신! 오늘은 돗돔 얼굴 꼭 보여 주셔야 합니다. 저는 어르신만 믿고 나온 거라구요.”

“이 사람아! 잡으려고 한다고 잡히는 고긴가? 와야 잡는 거지.”

선장이 노인에게 너스레를 떠는 모습 또한 심상치 않아 보였다. 혹시나 하여 나는 지나가는 말로 선장에게 물어보았다.

“저기 계신 노인은 어떤 분인가요?”

“돗돔 낚시가 처음이신가 보네요. 부산에서 돗돔 하면 저분 아닙니까? 하루에 세 마리나 낚으신 경력이 있는 달인 중의 달인이시죠.”

“……그래요?”

역시 내 느낌이 맞았다.

어디로 자리를 잡을까 우왕좌왕하던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잠깐 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돗돔의 달인과 동승한 지금의 상황이 내게 유리할까?

머릿속에서 떠오른 해답은 ‘일장일단’이었다.

근처에 돗돔이 출현한다는 전제를 한다면, 녀석을 가까이로 유인할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돗돔 낚시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인터넷에 비할 수 없는 현장 학습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반면에 돗돔이 내 미끼를 물어 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희박해진다. 어렵게 발견한 돗돔이 달인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광경을 멍하니 구경만 하게 될 수도 있다.

생각을 가다듬은 나는 노인이 있는 좌현 쪽에 자리를 잡았다. 깊은 수심을 공략하는 낚시의 특성상, 그와는 멀리 떨어진 선미 부근의 자리였다.

장비는 어제 구입한 최신 헤비 트롤링대에 대형 장구통릴.

채비는 200호 봉돌과 버림채비.

다금바리 40호 바늘은 어찌나 큰지 담뱃갑 크기였다.

채비를 준비하면서 나는 가끔씩 오른쪽으로 노인을 힐끔거렸다.

“미끼는 원하시는 걸로 물칸에서 마음껏 꺼내 쓰세요.”

선장의 말에 물칸 내부를 들여다보니, 살아 있는 오징어와 고등어가 잔뜩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고등어를 쓸 생각이었다.

전날 밤 고등어 미끼가 탁월하다는 어느 블로거의 글을 읽은 뒤였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뜰채에 담긴 고등어를 돌려놓고 오징어를 선택했다. 노인이 오징어를 집었기 때문이었다.

이론은 결코 경험치를 능가할 수 없다.

나는 현지의 방식을 철저히 따르는 안전한 방법을 선택했다.

“시작하세요!”

채비를 주르륵 바닥까지 내려 보니 수심은 55미터.

나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높은 휘파람으로 주변의 바다를 투명하게 만들었다.

떼를 지어 어디론가 달려가는 전갱이들이 보였다.

베이트 피쉬가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징조였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대물의 그림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 오른쪽에 있는 부자가 정겹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이제 낚시는 그만 다니시고 저랑 여행이나 하세요.”

“이 녀석아! 아비한테 차라리 담배를 끊으라고 해라. 술 담배는 끊을 수 있어도, 낚시는 죽을 때까지 끊기 어려운 게야.”

“아버지도 참 어지간하십니다.”

“돗돔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법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고패질이나 열심히 해라.”

나는 슬그머니 노인의 채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 진폭이 심한 고패질은 아니었다. 살랑살랑 초릿대 끝을 흔드는 것만으로, 오징어 미끼가 마치 먹이 활동을 하듯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낚싯대를 꽉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을 뺐다.

노인을 흉내 내어 살랑살랑 손끝을 까딱거리자, 그럭저럭 비슷한 움직임이 연출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한참 동안 고패질에 열중하던 노인이 낚싯대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흔들면 오던 놈도 도망가겠다. 이리 줘 봐라.”

노인은 아들의 낚싯대를 거머쥐고는 몸소 시범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낚싯대를 다시 돌려받은 아들은 기계적으로 낚싯대를 흔들 뿐, 딱히 낚시에 열성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게 지루한 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나는 물속에 담가 놓은 오징어 미끼를 두 번이나 갈아 끼웠고, 노인은 단 한 번도 미끼를 갈지 않았다.

미심쩍은 눈길로 살펴보니 그의 채비 끝에 달린 오징어는 죽었지만 살아 있었다. 다시 말해서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아버지, 팔이 아파 더 이상 못 하겠어요.”

“이런……. 인내심이라고는 반푼어치도 없는 녀석. 돗돔이 그리 쉽게 나온다냐? 몇 날을 기다려도 얼굴 구경하기 힘든 게 돗돔이야.”

알고는 있었지만, 몹시 맥 빠지게 만드는 대화였다.

괜한 호기를 부려 생고생을 하는 건 아닌지 자괴감에 빠지려던 바로 그때였다.

이상한 낌새가 감지되었다.

물속이 아니라 노인의 태도 변화였다. 그가 사뭇 심각한 얼굴로 변하여 목장갑을 단단히 끼우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반사적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50여 미터 밖에서 거대한 형체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머리통이 영락없이 화면에서만 봐 왔던 돗돔이었다.

어찌 보면 우럭과 대구를 합성해 놓은 듯한 생김새였다. 녀석이 입을 쩍 벌리고 전갱이들을 마구 삼키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마른침이 빨려 들어갔다.

다행히 놈의 진행 방향은 내가 위치한 선미 쪽에서 가까웠다. 나의 미끼를 먼저 발견하게 될 것이 자명한 상황…….

생생한 오징어 미끼와 점점 가까워지는 돗돔을 번갈아 쳐다보며 나는 숨을 멈췄다.

드디어 10여 미터 앞으로 다가온 돗돔.

몹시 굶주렸던 모양이다. 포악하게 베이트 피쉬들을 흡입하던 녀석이 드디어 내 미끼를 발견한 모양이다.

눈동자를 번뜩이며 코앞까지 근접한 괴어를 노려보며, 나는 낚싯대를 꽉 움켜쥐었다.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면서 챔질 타이밍을 계산하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휘리릭~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자기 돗돔이 고개를 돌리는가 싶더니, 선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

무심하게 지나쳐 가는 돗돔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노인의 죽은 오징어 미끼가 춤을 추고 있었다.

그냥 춤이 아니었다. 수백 개의 가닥으로 연결된 꼭두각시 인형처럼,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오징어보다 더 생생한 모습이었다.

“왔구나! 왔어!”

곧바로 선수에서 튀어나온 노인의 함성.

깜짝 놀란 선장이 허겁지겁 그에게 뛰어가는 모습이 아련히 시야에 들어왔다.

“아버지! 더 빨리 감으세요!”

“가만있어라. 이 녀석아. 그건 돗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대물을 걸고도 변함없이 여유로운 모습.

가볍게 릴의 손잡이를 쥐고 돗돔과 밀당을 벌이는 그의 움직임은 마치 물이 흐르듯 유연했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어쩌다가 근처에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돗돔은 결국 달인의 미끼를 선택하고 말았다.

노인의 줄다리기에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마침내 수면 위로 육중한 몸체가 떠오르자, 주변의 모든 사람의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와아…….”

푸드덕! 푸드덕!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장관이었다. 마지막 바늘털이를 시도하는 괴어의 아가미에 선장은 잽싸게 갈고리를 걸었고, 마침내 갑판 위에 내려놓는 데 성공했다.

나는 좋은 구경거리를 만난 사람처럼 노인에게 다가가 박수를 쳤다.

“축하합니다! 어르신 덕분에 돗돔 얼굴이라도 보네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아까 그쪽에는 입질이 없었나요?”

“……아뇨.”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산란기의 돗돔은 암수 한 쌍으로 몰려다니는 경우가 많지요. 아마 내가 잡은 것은 짝 잃은 외기러기였나 봅니다.”

돗돔은 수백 미터 수심에 사는 심해어.

산란을 위해 봄에만 근해에 출몰한다는 건 나도 들은 바 있다.

솔직히 너무도 황망한 일을 당한 상황이라 다른 놈이 있었는지 유심히 살피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산란기라 해도, 돗돔이 항상 붙어 다니기야 하겠는가.

“너무 부러워하지 말아요. 아직 시간은 충분해요.”

“당연하지. 그래도 돗돔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게 어디야?”

사심희가 건넨 위로의 말에, 나는 입술에 힘을 주어 큰소리를 쳤다.

노인이 잡은 돗돔의 크기는 135센티미터.

돗돔 중에서는 중치급에 속하는 사이즈였다.

“영감님, 오늘 횡재하셨네요. 덕분에 저도 간만에 조황 사진 올리게 생겼습니다. 하하하.”

“횡재는 무슨. 우리 아들놈한테 죄다 빼앗기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선장과 노인 사이에 오가는 흥겨운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싱싱한 미끼로 갈아 끼우고 살랑살랑 고패질을 계속하면서, 시간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갔다.

이쯤 되니, 사심희도 마음을 비운 표정으로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마음 비우세요. 외삼촌도 큰 기대는 안 하실 거예요.”

“기억은 하고 계신다는 말이야?”

“……네.”

사심희의 대답에 헛웃음만 나왔다.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이라도 되었을 텐데, 공연한 취중 약속으로 실없는 사람으로 기억되게 생겼다.

“지금 몇 시지?”

“오후 두 시요. 한 시간 정도 남은 것 같아요.”

휴우~ 외삼촌에게 인사는 드리고 올라가야겠지.

자조의 한숨을 내쉬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낚싯대에 전해진 둔탁한 충격에 나는 화들짝 놀라 아래쪽을 살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커다란 돗돔 한 마리가 꼬리로 낚싯줄을 툭 치며 지나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가, 가만히 있어 봐.”

등골에 소름이 돋고, 오금이 저려 왔다.

기적처럼 나를 찾아온 두 번째 기회였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슬며시 낚싯대를 흔들면서 놈의 반응을 주시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 안 돼!”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이 아주 잠시 내 미끼를 힐끔거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몸뚱어리를 선수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아뿔싸!

오전의 악몽이 똑같이 재연되는 상황에, 낚싯대를 흔들던 내 손이 스르르 멈췄다.

“어어? 왔다! 왔어!”

앞쪽에서 터져 나온 노인의 탄성.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이렇게 끝이란 말인가.

한 번은 그렇다 쳐도, 반복해서 같은 일을 당하고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산란기의 돗돔은 암수 한 쌍으로 몰려다니는 경우가 많지요.’

환청처럼 그 말이 귓가를 스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가, 가만있어 보자.

나는 다시 눈에 불을 켜고 길게 휘파람을 뿜기 시작했다.

아, 이럴 수가…….

노인의 말이 옳았다. 20여 미터 전방에 또 다른 돗돔 한 마리가 떼굴떼굴한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낚싯대를 거머쥔 손이 부르르 떨려 왔다.

나는 휘파람의 강도를 높이면서 낚싯대를 천천히 흔들었다.

내 미끼를 발견한 돗돔의 눈동자에서 번쩍 섬광이 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녀석이 꼬리를 흔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 지나쳐 간 다른 것들에 비할 수 없는, 실로 엄청난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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