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돗돔 사냥
낚시 대회가 끝난 뒤 작심하고 빈둥거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사심희와 분당에서 만나 오랜만에 오붓한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저어…….”
그녀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지만 계속 머뭇거렸다.
늘 거침없던 그녀의 성격에 미루어, 매우 드문 일이었다.
“뭔데 그래?”
“낼모레 부산에 갈 계획인데요…….”
“부산? 여행 가려고?”
“아뇨. 외삼촌 댁에 가려고요.”
“아! 그렇지…….”
그녀에게도 외삼촌이 있다.
한동안 그녀에게서 언급이 없었던 터라,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편하게 잘 다녀와. 당분간 출조도 없을 테니.”
“네. 그런데…….”
사심희가 또다시 말을 얼버무렸다. 그때 그녀가 왜 꾸물거리는지 알 것 같았다.
“설마…… 나도 가자는 거야?”
“사실은 외삼촌이 같이 왔으면 하세요. 바빠서 안 된다고 했는데도 막무가내시고요.”
“음……. 바쁜 건 아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리한 요구는 아니다.
혈혈단신으로 한국을 방문 중인 귀한 조카가 아닌가.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어떤 놈팡이인가 궁금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가자! 가면 되지 뭐.”
“정말 괜찮겠어요?”
“진즉에 한번 인사를 드려야 했을지도 몰라. 초대까지 해 주셨으면 나야 감사한 일이지.”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고맙고요.”
“낼모레라고? 내 차로 편하게 모셔다주지.”
갑작스러운 부산행.
흔쾌한 내 결정에 사심희의 얼굴이 환해졌다.
“좋은 분들이니까 미리 겁먹을 필요 없어요. 외숙모한테 맛있는 거 잔뜩 준비해 놓으시라고 해야겠다.”
“그나저나 두 분은 뭘 좋아하시지? 빈손으로 갈 수는 없잖아.”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몸만 가면 돼요.”
그녀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니, 베타가 앞발을 들고 나를 반겼다.
“베타야. 나 부산에 다녀와야 하니까 집 잘 지키고 있어야 돼. 알겠지?”
“야~~~~~ 홍!”
언제부터인지 베타는 도통 집 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몸집도 클 만큼 성장해서 이젠 어깨에 올려놓기에도 버거워졌다.
침대에 누웠더니, 천장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다녔다.
외삼촌이 뭐 하는 분이라고 하셨더라?
무슨 식당을 하고 계신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 사시미 님이 나를 만나기 전에 거기서 일을 도와줬다고 했었지.
뭐라도 사긴 사 가야 할 텐데…….
점수를 딸 만한 게 뭔가 있을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비몽사몽간에 한 가지 또렷한 것은, 이왕 인사드리는 자리에서 제대로 눈도장을 받겠다는 야무진 바람이었다.
* * *
“안녕하십니까? 강유록이라고 합니다.”
“어서 오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네.”
“반가워요. 저는 심희 외숙모입니다.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부산 서면의 어느 식당 골목에 들어선 시각은 점심 무렵이었다.
따뜻한 환대였다.
사심희의 외삼촌 부부를 마주하는 순간, 며칠간 가슴 한구석에 도사렸던 작은 불안들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간판에는 한정식 식당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입구에 놓인 큰 수족관으로 미루어 수산물을 전문으로 다루는 곳으로 보였다.
“여기 작은 선물입니다.”
“아이고, 웬 꽃다발을……. 고마워요.”
외숙모는 내가 건넨 꽃다발을 받아 들고 활짝 웃으셨다.
“따로 룸을 준비해 뒀어요. 식사하시면서 천천히 놀다 가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주방 쪽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사심희와 나는 외삼촌을 따라 식당 복도를 걸어갔다.
꽤 규모가 큰 식당이었다.
입구 근처의 홀에는 손님이 거의 꽉 차 있었고, 안쪽으로 양쪽에 죽 늘어선 방마다 입구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신발들이 눈에 띄었다.
외삼촌은 구석에 위치한 방의 미닫이문을 열고 나에게 먼저 들어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들어가 편하게 앉게.”
“네. 감사합니다.”
어색할 틈도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외삼촌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래, 자네 부모님도 식당을 하신다고?”
“그렇습니다. 충주에서 조그마한 백반집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그렇군. 그동안 사심희에게서 얘기 많이 들었네. 낚시를 좋아한다고?”
“좋아하기도 하지만, 제 직업이기도 합니다.”
“알고 있어. 유튜브인가 뭔가로 돈도 벌 만큼 번다고 하더만. 그래서 그런가? 얼굴이 많이 탔구만.”
“하하. 원래 어렸을 때부터 검은 편이었습니다.”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분이었다.
불안한 얼굴로 대화를 지켜보던 사심희도 한시름 놓은 눈치였다.
“우리 심희가 낚시를 좋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바늘 공포증도 자네 덕분에 극복했다고 들었어.”
“저 때문이라기보다는 베타 때문이었습니다.”
“베타? 외국 분이신가?”
“저의 집에 있는 고양이 이름입니다.”
“하하하. 그렇구만. 그건 그렇고, 점심시간이네만 술 한잔할 수 있겠는가?”
“그럼요. 숙소가 근처라서 걸어가면 됩니다.”
부산에 온 김에 하룻밤 묵고 갈 계획이었다.
사심희는 외삼촌 댁에서 사나흘 정도 묵고 갈 예정이었고, 나는 바로 다음 날 집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잠시 후, 종업원이 문을 노크하고 들어와 상차림을 시작했다. 대형 식탁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채워지는 접시들을 내려다보며 나는 조용히 허리띠의 끈을 풀었다.
“자, 한 잔 받게.”
“제가 먼저 올리겠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한낮의 술자리가 벌어졌다.
사심희의 외삼촌은 술을 무척 좋아하는 눈치였고, 나는 혹여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주량을 조절하고 있었다.
얼큰하게 술이 오른 외삼촌이 슬슬 나를 부른 이유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은 심희 엄마 되는 사람, 그러니까 내 누이가 부탁을 하지 뭔가. 자네를 한번 만나 보고, 사람 됨됨이를 봐 줬으면 한다고 말이야.”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말없이 젓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사심희의 표정으로 보아, 그녀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편하게 묻고 싶은 것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나야 외삼촌인데 무슨 질문이 많겠는가. 얼굴만 봤으면 됐지.”
“한 잔 올리겠습니다. 하하.”
“술을 마실 줄 아니 다행이군. 요즘 젊은이들은 술을 너무 빼서 탈이지.”
죽이 척척 맞아 들어가는 두 남자를 보고, 사심희는 고개를 돌려 키득거리고 있었다.
반쯤 비우고 잔을 내려놓자, 외삼촌이 구석에 놓인 접시를 가리켰다.
“이것 좀 들어 보게. 아주 귀한 생선이라네.”
“이게 뭔가요?”
“돗돔이라고 들어 봤나? 자네 오면 대접하려고 다른 식당에 부탁해서 구해 놓았다네.”
“……말로만 듣던 돗돔이군요.”
돗돔.
2미터까지 성장한다는 토종 물고기 중의 최대어.
멀고 깊은 바다에 살다가 산란철인 5~6월경 수심이 낮은 근해에 출몰한다. 물론 다른 시기에도 잡히는 경우가 없지는 않으나 지금이 낚시의 적기다.
두툼하고 불그스름한 회 한 점을 입에 넣었더니, 살덩이에서 은은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군침이 돌아 잘근잘근 씹었더니 단단한 육질에서 달짝지근한 육즙이 배어 나왔다.
지금까지 먹어 본 맛과는 사뭇 다른 생선이다.
그러고 보니 실물을 봤던 적도 없다. 예전에 TV에서 전설의 물고기를 잡네, 어쩌네 하며 멧돼지만 한 물고기를 배 위에 끌어 올리는 화면만 봤을 뿐이다.
“맛이 어떤가?”
“너무 맛있습니다. 수많은 회를 먹어 봤지만 단연코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다행이군. 우리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구경도 못 해서 안달이야. 지금이 제철인데도 도통 구할 수가 없어 걱정이라네.”
“그렇게 귀한 생선을 제게 주셨군요.”
“귀한 손님인데 당연한 일 아니겠나. 그나저나 내일이라도 경매장에 나와 줘야 할 텐데…….”
낮술 때문에 취기가 오른 걸까?
아니면, 외삼촌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으려는 무리한 욕심의 발로였는지 모르겠다.
“제가 한 마리 잡아다 드려도 되겠습니까?”
내 입에서 생각지도 않던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깜짝 놀란 사심희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취한 거 아니죠? 어부들도 못 구해서 난리라잖아요.”
“그러니까 낚시꾼이라도 나서 봐야지. 어르신! 걱정 마십시오. 제가 내일이라도 바다에 나가 한 마리 잡아 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호언장담에 외삼촌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도 얼큰하게 술이 오른 모양이었다.
“정말인가? 그렇게만 해 주면 나야 고맙지. 솔직히 말하면 낼모레 우리 식당의 큰 고객이 오시기로 되어 있거든. 돗돔이라면 환장을 하시는 분들이라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라네.”
“알겠습니다. 저만 믿어 보시죠.”
“못 잡아도 좋지만 자네의 호기로운 모습이 참 보기 좋구만. 자, 한 잔씩 더 하세.”
취중의 약속.
식당을 나와 찬 바람을 쐬는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런 약속을 했어요?”
“…….”
“으이그, 외삼촌도 취해서 기억 못 하실 거예요. 그냥 쉬어요.”
“아니야. 이왕 약속드린 거, 혹시 알아? 떡하니 한 마리 잡게 될지.”
“말려 봐야 소용없을 것 같고. 그럼 내일 같이 가요.”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외삼촌 댁에서 쉬고 있어. 아무튼 나중에 전화할게.”
그녀와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와 보니, 술이 깨면서 뒤늦은 현실감이 밀려왔다.
장비와 채비는 고사하고, 어떤 방식으로 돗돔을 잡아야 하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모텔 방에 누워 길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나는 허겁지겁 인터넷을 검색하여, 인근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돗돔 낚싯배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은 선장은 요즘 조황이 형편없어 출항이 불투명하다고 대답했고, 나는 독배로라도 꼭 출조하겠다고 고집을 피워 겨우겨우 허락을 받아 냈다.
숙소를 나와 해장국으로 저녁을 해결한 뒤, 나는 근처의 낚시점을 찾았다.
구입한 장비와 채비를 들고 숙소에 돌아온 시각은 밤 9시경이었다.
그날 밤.
나는 인터넷과 유튜브 동영상으로 돗돔 낚시 방법을 익히느라 여념이 없었다.
눈알이 따끔거려 잠깐 눈을 붙였더니, 눈꺼풀 안에 2미터에 육박하는 돗돔의 환영이 어른거렸다.
한 마리라도 내 레이더망에 나타난다면…….
내게 믿는 구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의 몰황에 가깝다는 최근의 조황 정보들이 마음에 걸렸다.
이런저런 걱정에 뒤척이던 사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깨어났을 때는, 창가에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아직도 자요?”
“……사시미 님? 그냥 쉬라고 했잖아.”
“그럴 수 있나요. 얼른 나와요. 지금 숙소 앞이니까.”
사심희는 기어코 나를 데리러 왔다.
부스스한 몰골로 숙소 현관으로 내려갔더니, 사심희가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
“컨디션은 어때요?”
“그럭저럭.”
“잠도 못 잔 것 같은데……. 근처에 괜찮은 해장국 집이 있어요. 얼른 아침 먹고 항구로 가요.”
먹는 둥 마는 둥 그녀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부산 남항에 도착했을 때는, 선장이 배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돗돔…… 돗돔이라…….
숙면을 취하지는 못했지만 시원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보니,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미지의 물고기.
예전부터 나는 늘 그래 왔다. 내 가슴은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요동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