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짬낚시
갑작스러운 세 남자의 출현에 반가우면서도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아니, 이 사람아! 우리가 남이가? 이런 일이 있으면 나에게도 알려 줬어야지. 상철이가 어젯밤 어반자TV에서 알아냈다고 해서 부랴부랴 달려온 거야.”
이몽규가 자신을 언급하자, 지상철의 눈이 반달처럼 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와야지. 그런데 낚시꾼들은 다 어디 있어?”
“전부 출항했어요.”
“이거 어쩌나? 일찍 와서 뭐라도 도와주려고 했던 건데.”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으니, 그들은 다음 주부터 재개되는 용감한 어부 촬영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낚시 대회를 연다는 말을 듣고, 득달같이 뭐라도 돕겠다며 달려온 것이었다.
나는 이몽규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고맙다니. 자네가 아니었으면, 용감한 어부는 없었어. 그나저나 여기까지 와서 뭐라도 해야 하는데…….”
“일단 오셨으니 우리 멤버들과 인사라도 나누시죠.”
“전부 다 어반자TV에서 뵌 분들이구만. 안녕들 하십니까? 코미디 황제 이몽규입니다.”
이몽규의 익살맞은 목소리를 시작으로 멤버들은 새로운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회 뜨는 일을 도와주시면…….
부탁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멀뚱히 바라보고 있던 그때였다.
인사를 마친 이몽규가 내게 불쑥 물었다.
“대회는 언제 끝나나?”
“저녁 3시에 끝나고, 돌아오면 4시쯤 될 것 같습니다.”
“음. 적당히 근처에서 시간이나 때워야 되겠군.”
“설마 그때까지 계시려고요?”
“당연하지. 이 사람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 없잖아.”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원래 대회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저녁이나 먹고 갈 생각이었어. 상철이랑 태권이 뒀다 뭐 하겠나. 청소라도 시키려고 데려온 거야.”
“귀한 분들이 청소라니요. 정 그러시다면…….”
“말만 해. 나중에 우리가 뭘 하면 되는지.”
“나중에 손님들이 돌아오면…… 생선 손질을 좀…….”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아 우물거리자, 이몽규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생선 손질? 대회에서 그런 것도 해 주다니 역시 다르구만. 우린 연예인이기 이전에 낚시꾼들이야. 그런 일이라면 우리가 전문 아닌가? 아! 우리 태권이가 비늘 치고 회 뜨는 일이라면 사심희 님 못지않지. 태권이, 안 그래?”
“그럼요. 그렇게라도 은혜에 보답해야죠. 하하.”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내심 안도하고 있는 사이, 이몽규는 한술 더 뜨고 나섰다.
“이따가 스케줄 마치고 덕호 형님하고 진성이도 오기로 했어. 덕호 형님은 생선을 먹을 줄만 아는 사람이니 틀렸고, 진성이는 꽤 쓸 만할 거야. 그 정도면 됐지?”
“하아…… 너무 고맙습니다.”
무려 5명씩이나…….
예기치 않았던 용감한 어부 팀의 합류로 고민거리는 단박에 해결되었다.
마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는 내 표정을 살피면서 이몽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 없다니까. 그건 그렇고, 그럼 저녁때까지 뭘 하지? 근처에서 낮술이라도?”
그가 손으로 입에 술잔을 쏟아붓는 시늉을 하자, 고동우가 킥킥거리면서 배를 가리켰다.
“잘됐네요. 마침 우리끼리 짬낚시를 가려던 참이었는데. 괜찮으시면 함께 가시죠.”
“정말입니까? 공짜 배를 타게 줄은 생각도 못 했군요. 그런데 뭘 잡나요? 우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왔는데.”
그러자 장재준 영감이 너털웃음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대여대가 많으니 걱정 마세요. 멀리 가지는 못하니까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근처에서 광어를 잡을 계획이었습니다. 허허.”
“광어? 그거 좋지요. 광어 회에 소주나 한잔 걸치면…… 크윽!”
선상 음주는 금지되어 있어, 우리는 광어를 잡고 돌아와 방파제에서 즉석 회와 함께 반주를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지상철이 갑자기 좋은 제안을 들고나왔다.
“횟감은 한 마리면 충분하잖아요. 나머지 고기들은 오늘 손님들 중에서 꽝치신 분들께 나눠 주는 게 어떨까요?”
그 말을 들은 이몽규와 이태권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나섰다.
“상철이가 요즘 미담 에피소드가 필요한가 보네. 어쨌든 간만에 아주 좋은 생각이야.”
“요즘 산란철이라 대광어가 한창 나올 때죠. 우리 용감한 어부가 못해도 다섯 마리는 보태겠습니다.”
용감한 어부 출연진들이 그렇게 나오니, 고동우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아예 한술 더 떴다.
“용감한 어부가 다섯 마리면, 우리 피싱 어벤저스는 열 마리는 거뜬히 잡을 수 있죠. 우럭 님! 안 그러냐?”
“…….”
은근한 자존심을 내비친 고동우의 말투에 분위기가 재미있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몽규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그럼 재미 삼아 우리끼리 저녁 내기 어때요? 우리가 세 명이고, 그쪽은…….”
우리는 네 명이었다.
눈치를 보던 사심희가 은근슬쩍 빠지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럼 저는 그냥 구경이나 할게요. 어차피 카메라를…….”
그러자 듣고 있던 보람이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사시미 님이 나보다 더 잘하잖아요. 촬영은 내가 맡을게요.”
보람이의 양보로 선수 구성이 마무리되자, 이몽규가 잘됐다는 듯이 말을 이어 갔다.
“그럼 지는 쪽이 오늘 저녁을 사는 겁니다. 다들 동의하는 거죠?”
“까짓거 그렇게 하시죠!”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시원하게 내질렀다.
가벼운 내기인지라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더군다나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나눠 줄 정도로 잡으려면, 내기 낚시가 의욕을 고취시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 여겼다.
“아이고, 큰일이네요. 잠깐 나가서 시간이나 때울 생각이었는데 말입니다. 허허.”
갑작스러운 상황에 장재준 영감은 부담을 느낀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느 포인트 못지않은 ‘캡 포인트’가 있음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후 세 시까지 돌아오면 되는 거죠? 빨리빨리 시작합시다. 각 팀에서 잡은 광어의 총 무게로 승부를 가르는 겁니다.”
이몽규의 재촉으로 우리는 서둘러 배에 올랐다.
나는 나눠 주고 남은 기념품들을 세 명의 손님들에게 하나씩 건네주었고, 사심희는 남은 도시락을 챙겨 승선했다.
“아이고, 사무장님이신가 보네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배 안에는 장재준 영감을 도와주는 사무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멤버들은 이미 아침에 인사를 나눴지만, 갑작스레 들이닥친 연예인들을 발견하고 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선상 호텔이 따로 없네. 캬아! 커피도 오성급 호텔 커피숍 맛이고. 장 피디에게 여기서 촬영하자고 한번 졸라 봐야겠어.”
지상철의 덕담을 시작으로 한바탕 왁자지껄 떠드는 동안, 배는 어느새 첫 번째 포인트에 도착했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쥑이네. 급히 오느라 전화는 못 드렸지만, 용왕님이 광어 좀 넣어 주셨겠지?”
기대감에 들뜬 이몽규의 해묵은 농담에, 지상철이 눈살을 찌푸리며 응수했다.
“용왕님하고 계좌 트셨어요? 요즘엔 물고기도 입금 처리로 해 주시나요?”
“저 녀석이…….”
주거니 받거니 그들이 농담을 뒤로하고, 나는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지난번 출조에서 발굴했던 첫 번째 광어 캡 포인트였다.
모래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다수의 물고기들이 눈에 띄었다. 등짝에 아로새겨진 아름다운 꽃무늬로 보아 광어가 틀림없었다.
서두르지는 않기로 했다.
친선 경기나 다름없는 낚시에서 기를 쓰면서까지 이기고 싶은 마음도 아니었다. 나는 단지 손님들이 마음껏 즐기기는 모습을 지켜보며 여유롭게 짬낚시를 즐기기로 했다.
텅! 후두두둑!
제일 먼저 입질을 받은 사람은 이태권이었다. 한 손으로 낚싯대를 치켜들고 대물이 걸렸음을 확인한 그가 잇몸을 만개하며 크게 외쳤다.
“히트!”
이태권은 발군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며, 순식간에 대물을 수면으로 끌어당겼다.
지나치게 폼을 잡는다는 주위의 평이 있지만, 그는 튼튼한 기본기는 물론 집요한 승부 근성을 갖춘 낚시꾼이 틀림없었다.
5짜 광어 한 마리가 이태권의 손끝에서 푸드덕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의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도 왔어!”
깜짝 놀라 누군지 쳐다보니, 떠오르는 어복킹 지상철이었다. 그는 이태권이 잡은 것보다 약간 작은 광어를 올리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고기는 우리 어부들이 잡을 테니, 어벤저스 분들은 그냥 구경만 하셔도 되겠네.”
시작부터 차이가 벌어지자, 분위기상 살짝 따라가 줘야 할 것 같았다. 슬슬 입 속에 바람을 모으고 있을 때, 고동우의 초릿대가 사시나무처럼 후두둑거리기 시작했다.
“아싸! 나도 왔습니다요.”
느낌상으로 보아, 대물 광어였다.
아니나 다를까. 고동우가 6짜 후반의 광어를 들어 올리자 낚시의 열기가 한껏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용감한 어부 팀이 한 번도 리드를 내주지 않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몽규가 영 힘을 쓰지 못하는 가운데, 지상철과 이태권이 번갈아 가며 튼실한 광어를 쉬지 않고 잡아 올렸다.
그렇다고 해서 큰 격차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외형상으로는 고동우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었지만, 격차가 너무 크다 싶을 때는 내가 슬쩍 나서 주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오신 손님들에게 저녁값까지 부담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자존심을 지키는 수준에서 지는 쪽을 원했다.
전반적으로 심심치 않게 손맛을 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모두들 왁자지껄 떠들면서 즐거운 분위기였다.
한동안의 즐거운 낚시가 일단락되고 있었다.
입질이 뜸해지는가 싶더니, 장재준 영감이 포인트 이동을 결정한 것이다.
어반자 1호는 서서히 남쪽으로 이동했고, 지나치는 길에 몇 군데의 포인트를 찔러 봤지만 변변한 입질은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느 누구도 실망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다음에 도착한 포인트에서도 감감무소식이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안 되겠습니다. 약간 멀지만 확실한 곳으로 곧장 이동하겠습니다. 허허.”
장재준 영감의 여유로운 웃음에서 느껴지듯 나와 멤버들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의 보루, 또 하나의 ‘캡 포인트’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장재준 영감은 전속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분 정도가 지나고, 목표 지점에 근접한 시점이었다.
“어어? 저, 저런…….”
고동우가 깜짝 놀라며 선실 창밖을 가리켰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린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말았다.
눈에 익은 배들이었다.
다른 네 척의 배들이 캡 포인트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알려 주지 말자고 했던 거야. 상생 어쩌고 하는 바람에 끝까지 말리지 못한 게…….”
고동우는 못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장재준 영감을 힐끔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조타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떻게 하죠? 달리 갈 만한 데가 있나요?”
“몇 군데 새로 알아낸 곳이 있기는 한데, 지금은 너무 멀어서…….”
“그럼 저곳에 그냥 비집고 들어가면 안 될까요?”
“……위험합니다.”
장재준 영감도 딱히 대안이 없는지 난감한 표정이었다.
밖을 내다보니, 다른 배들의 난간에서 누군가 대광어를 올리며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죠. 돌아가면서 아까 머물렀던 포인트들을 다시 찔러 보는 수밖에요.”
“……그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황금 포인트의 코앞에서 진입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우리끼리라면 괜찮지만, 용감한 어부 손님들이 함께하고 있어 나 또한 난감했다.
장재준 영감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린 것은, 뱃머리를 돌린 그가 포인트에서 아쉬운 눈빛을 거두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어반자 1호 장 선장입니다. ……누구십니까? ……네에?”
전화를 받은 장재준 영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누구 전화인데 저러실까.
장재준 영감은 짧게 ‘네네.’라고 답할 뿐, 몹시 상기된 얼굴이었다.
“……고맙습니다. 그리로 가 보겠습니다.”
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런데 휴대폰을 내려놓은 그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누구 전화였습니까?”
“저기 보이는 배의 선장이었습니다. 내가 뱃머리를 돌리는 걸 보고 전화한 모양입니다. 반대 방향으로 5분만 더 가면 괜찮은 포인트가 있다고…….”
장재준 영감은 약간 목이 메는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간 장재준 영감의 마음고생이 멤버들의 걱정 이상으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짧았던 그 통화…….
그것은 장재준 영감의 진심을 알아준 동료 선장의 첫 응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