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화] 어반자의 이름으로
탐사 출조를 마치고 돌아와 일주일이 휙 지나갔다.
나는 아지트에서 고동우와 단둘이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캡틴 님 소식 들었지?”
“직접 통화했어요.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으시던데요.”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아까 홈페이지 들어가 보니까 평일에도 예약이 많더라고.”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널찍한 자리에, 즉석에서 해 주는 맛있는 식사에, 심지어 조황도 타 선사에 비해 나쁘지 않은 배를 낚시꾼들이 외면할 이유는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반자TV에서 탐사 출조 영상을 확인한 수도권 애청자들이 다수 예약 행렬에 동참했으니, 장재준 영감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고동우가 고개를 비스듬히 세우고 입을 삐죽거렸다.
“그런데 말이야…….”
별로 안 좋은 소식을 전할 때마다 나타나는 그의 버릇이었다.
“한편으로 캡틴 님 속이 마냥 좋아 보이지는 않더라고. 오히려 전보다 다른 선장들 눈치가 더 보이신다나 봐.”
“……예상은 했던 일이죠.”
“그렇게 가볍게 여길 문제는 아닌 것 같더라. 뭐 하긴 그 선장들 입장에서 보면 인지상정 아니겠어. 밖에서 굴러온 돌이 혼자만 잘나가고 있으니…….”
“…….”
솔직히 나는 충분히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 예상했다.
다른 항구에 비해 낚싯배도 많지 않고, 딱히 이름난 선사도 없는 전곡항.
그런 곳에 돌연 나타난 신출내기가 혼자서 연일 손님들을 꽉 채우고 출항하고 있으니, 그 모습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 입에서 딱히 속 시원한 대꾸가 없자, 고동우는 속이 더 타는지 나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내 말 듣고 있어?”
“듣고 있어요.”
“허어, 우린 피싱 어벤저스잖아. 동료가 곤경에 처해 있다는데 가만히 보고 있을 거야?”
나는 이번에도 씩 웃고 말았다.
그리고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게 뭐?”
내가 가리킨 것은 선반 위에 놓인 ‘골드 버튼’이었다.
“그래도 모르시겠어요? 저게 답이라는 말씀입니다.”
“구독자분들을 동원하겠다는 거야? 이미…….”
“아니죠. 지금부터는 우리 구독자님들에게 보답을 할 시간입니다.”
“거, 참.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골드 버튼을 받았던 감격의 순간, 내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구독자들의 응원에 조금이라도 보답해야겠다는 깨달음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이후로 내 뒤에는 항상 그들의 든든한 응원이 따라다녔다.
방송은 물론이거니와 출시 초기에 멀티싱커의 인지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던 것도, 낚시점이 개장과 동시에 안정을 찾게 된 것도, 모두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낚시라는 공통의 연결 고리로 이어진 소중한 인연들.
그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품게 된 계기였다.
그러던 와중에 장재준 영감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되었고, 막연했던 아이디어는 급격히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확히 어떤 해결책이 있다는 거야?”
아직 내 말뜻을 이해 못 한 고동우가 대답을 재촉하자,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곡항에서 낚시 대회를 개최할 생각입니다. 우리 어반자의 이름으로.”
“……낚시 대회?”
“구독자들에게는 축제의 자리가 될 것이고, 동시에 캡틴 님 고민을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는 대강 알겠는데, 다른 선장들이 선뜻 동참을 해 줄까?”
“그렇게 만들어야죠.”
“복안이 있는 거야?”
“물론입니다. 그분들에게도 상생의 기회가 될 거니까요.”
“음…….”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고동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런데 너 혼자 그렇게 큰 행사를 준비할 수 있겠어?”
“당연히 못 해요. 우리 피싱 어벤저스가 뭉쳐야죠.”
“그래서 물은 거야.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당장 멤버들을 소집하마. 각자 역할 분담은 모여서 얘기하는 거야.”
급한 성격의 고동우는 그 자리에서 곧장 휴대폰을 들었다.
보람이와 사심희가 아지트의 문을 연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뒤의 일이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득달같이 달려온 그들에게, 나는 차근히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첫 번째 결정 사항으로 대회의 명칭은 ‘제1회 어반자 춘계 낚시 대회’로 정해졌다.
계절마다 1년에 4회를 개최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첫 대회 일정 또한 열흘 후로 조속히 개최하기로 했다.
아직 전곡항에 그리 많은 낚싯배가 없어 대회 규모는 소박하게 출발할 예정이었다.
각자의 역할을 숙지한 멤버들은 밤늦게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우선 어반자TV에 낚시 대회의 개요와 취지를 설명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분주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열흘이 바람처럼 지나가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 * *
일단 대회 흥행은 성공적이었다.
애청자들에게서 참가 신청이 쇄도하는 바람에, 선착순으로 참가자를 결정하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다소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전곡항에 터를 잡고 있는 13척의 낚싯배들도 빠짐없이 대회에 참여했다.
전곡항에 운집한 200여 명의 낚시꾼들.
낚싯배가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렇게 많은 낚시꾼이 한꺼번에 몰려온 것은 아마도 개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리라.
그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들을 감격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나는 개회사의 마지막 부분을 읊고 있었다.
“……오래도록 기억될 좋은 추억을 안고 가시길 바라면서 이만 인사를 마치겠습니다.”
간략한 인사말이었다.
원체 긴 인사말을 할 생각도 없었지만, 지난번 남해 낚시 대회에서 사람들을 지치게 했던 일장 연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개회사가 끝나자마자 고동우가 수선을 떨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움직입시다! 도라에몽 님은 기념품 나눠 드리고. 우럭 님과 사시미 님은 도시락을 맡아.”
“구피 님은 뭐 하시게요?”
“나는 손님들 장비 수리하는 데 있어야지.”
미리 단단히 계획을 세웠다고 판단했지만, 막상 닥쳐 보니 손이 세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보람이가 서 있는 곳에는 기념품이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고, 벌써 손님들의 긴 줄이 눈에 띄었다.
멀티싱커, 어반자 로고가 새겨진 모자와 스포츠 타월.
낚시 대회에서 손님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기념품은 모두 세 가지였고, 비용은 전액 보람이가 부담했다.
대회에 참가한 낚싯배들의 절반은 광어를, 나머지는 우럭을 대상어로 하는 대회였다.
그래서 멀티싱커는 일반형과 점보를 각각 준비해 두었다.
“내가 도시락을 하나씩 챙겨 줄 테니까, 사시미 님이 나눠 드려.”
바닥에 쌓여 있는 200여 개의 도시락들은 새벽에 트럭으로 공수한, 대회 참가자들의 점심 식사였다.
사심희가 직접 메뉴를 선정하고 항구 근처의 식당에서 주문 제작한 도시락에는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되었다.
“아이고, 우럭 님 얼굴을 드디어 뵙네요. 도시락이 너무 고급진 거 아닌가요?”
“반갑습니다. 부족하면 하나 더 가져가셔도 됩니다.”
손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고동우를 힐끔거렸다.
그도 몰려든 손님들 틈에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눈치였다. 그의 옆에 놓인 플라스틱 야외 탁자에는 낯익은 두 명의 사내가 낚시용품들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고동우가 맡은 임무는 무상 A/S였다.
그는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모시고 와, 릴과 낚싯대 등 손님들이 들고 온 물품들을 접수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낚싯배를 점검하고 뭍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장재준 영감이 눈에 띄었다.
모든 인원들이 각자의 임무에 투입되는 바람에 개회식 촬영은 그가 맡고 있었다.
“촬영은 그럭저럭 마쳤는데 지금부터는 뭘 하면 되겠습니까?”
“보람이가 좀 버거워하네요.”
내 말을 들은 장재준 영감은 냉큼 달려가 기념품을 나눠 주는 일에 동참했다.
손님들의 승선이 임박한 시각, 그가 아직 배에 있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어반자 1호는 이번 대회의 참가 선박에서 제외했다.
대회의 취지를 살리고, 운영상의 편의를 위한 조치였다.
손님들이 어반자 1호를 굳이 고집하는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지만, 낚시 대회가 열리는 시간 동안 멤버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대회가 끝날 때까지 멀뚱히 앉아 손님들을 기다리기보다는, 우리끼리 조촐한 짬낚시를 즐기기로 한 것이다.
잠시 후 기념품과 도시락을 받으려는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항구를 떠나는 배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었다.
마지막 손님에게 도시락을 건네주고 나서, 나는 멤버들과 함께 선착장에 나란히 섰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그러게요. 허리가 펴지지 않네요. 하하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서늘한 바닷바람에 식히며, 우리는 멀리 사라져 가는 낚싯배들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잠시 후 장재준 영감이 사뭇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도와주려는 뜻은 알고 있지만, 너무 큰돈이 들어간 것 아닙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어반자 식구들을 위한 대회입니다. 예산도 멤버들이 분담해서 큰 부담도 아니었고요.”
사실 적지 않은 돈이 소요된 것은 사실이었다.
다른 낚시 대회와는 차별화된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선비 외에 대회 참가비까지 따로 내야 하는 여타의 대회들과 달리, 나는 모든 비용을 주최 측에서 부담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말 그대로 참가자들은 낚싯대와 아이스박스만 챙겨 오면 그만이었고, 그러한 결정은 당초에 대회를 열고자 하는 취지에도 부합했다.
무료 참가 방식에는 또 다른 이유도 담겨 있었다.
낚시 대회를 열겠다고 선장들을 일일이 찾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독배 선비를 전액 선납하겠다는 내 말에 몇몇 선장이 동요했고, 결국 내 끈질긴 설득에 하나둘씩 못 이기는 척 넘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장재준 영감의 과감한 결단이었다.
출조만 나가면 월등한 조과를 안고 돌아오는 신출내기 선장에게, 다른 선장들은 부러움과 동시에 시기의 눈길을 보냈던 것이 사실이다.
장재준 영감은 멤버들과 상의한 결과, 그동안 발굴한 모든 ‘캡 포인트’ 위치들을 그들에게 전격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원활한 정보 교환을 위해서는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게 장재준 영감의 고집이었고, 결국 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오늘 누가 우승 상금의 주인은 누가 되려나?”
“글쎄요. 포스가 있어 보이는 분들이 몇몇 보이던데요.”
축제의 장이라는 취지에 따라 나는 처음부터 큰 상금을 걸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낚시 대회인데 재미적 요소를 위해서라도 상금 규모를 반영하자는 멤버들의 의견이 우세했다.
열띤 논의 끝에 우리는 광어와 우럭 부문으로 각각 대어상(大魚賞)을 5등까지 가리기로 했고, 우승 상금은 5백만 원 상당의 어반자스토어 상품권으로 책정했다.
모든 배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보람이가 사심희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사시미 님 얼굴이 왠지 밝지 않네요?”
“전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에이, 그것 때문에 그러는 거죠?”
“어유, 저는 끄떡없다니까요.”
내가 봐도 사심희의 얼굴에는 걱정이 그득했다.
아침에 항구에 모였던 구름 인파들을 실제로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과잉 의욕이었다.
열흘 전 대책 회의에서 사심희는, 낚시를 마친 손님들이 원할 경우 생선을 손질해 주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혔다.
그때 말렸어야 했다.
그녀가 문제없다고 하도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그냥 넘어갔지만 그때 무모한 생각을 접게 했어야 했다.
오후에 낚시를 마친 사람들이 몰려든다면…….
길게 줄이 늘어서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하고, 기다리다 지쳐 그냥 돌아가는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다.
손님들이 돌아온 이후에도 멤버들의 역할은 꽉 차 있다.
보람이는 계측을 맡기로 했고, 고동우는 A/S로 수리한 물품들을 돌려주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며, 장재준 영감은 또다시 팔자에 없는 촬영 기사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고, 나 또한 시상식을 주관해야 한다.
좋은 일도 앞뒤 봐 가면서 나서야 하는 법인데…….
최소한 서너 명이 붙지 않으면 사심희에게 재앙이 닥칠 위기였다.
“슬슬 우리도 움직여 볼까요?”
보람이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나자, 장재준 영감이 우리에게 넌지시 물었다.
조촐하게 우리끼리 짬낚시를 즐기려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였다.
“강 프로!”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더니, 생각지도 못한 손님들이었다.
“아이고, 헉헉! 상철이 이놈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늦었지 뭐야.”
“아니, 형님이 약속 장소를 잘못 알려 주시고 왜 딴소리를 해요?”
오자마자 티격태격하는 이몽규와 지상철.
그 뒤에는 낚시는 물론 생선 손질 좀 한다고 알려진 이태곤이 실실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