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탐사 출조
어반자팩토리 신공장에서 차를 타고 나와, 근처의 얼큰한 곱창전골로 점심 식사를 마쳤다.
왁자지껄 떠들면서 멤버들과 헤어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장재준 영감이 먼저 차에 오르고, 사심희는 따로 볼일이 있다면서 자신의 차로 떠났다. 회사로 돌아간다는 보람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고동우가 갑자기 내게 잠깐 보자는 투로 눈을 찡긋거렸다.
오늘따라 무슨 일이지?
그도 내게 따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눈치였다. 보람이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고동우는 사뭇 심각한 얼굴로 변했다.
“무슨 일이세요?”
“다른 게 아니라 캡틴 님 때문에 할 얘기가 있어서.”
“캡틴 님께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라고 할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고동우가 말꼬리를 길게 흐렸다.
걱정거리가 있는 표정이었다. 한동안 머뭇거리던 그가 이번에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오늘 캡틴 님 얼굴 자세히 봤어?”
“글쎄요. 그러고 보니 약간 피곤해 보이신 것 같긴 하던데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평소에 장재준 영감의 얼굴에 늘 따라다니던 인자한 웃음을 본 기억이 없었다.
“요즘 걱정이 태산이시더라고.”
“정확히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세요.”
“처음에는 본격적으로 낚싯배 일을 시작할 때가 임박하니 그냥 불안하신가 보다고만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더구만.”
고동우는 한껏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전곡항 인근 낚싯배 선장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 같아.”
“요즘에도 텃세가 심하나요?”
“텃세라면 텃세겠지. 외지에서 온 경쟁자가 하나 늘었으니, 얼싸 좋다 반겨 줄 리 있겠어?”
생각지도 않았던 문제였다,
나는 조금 더 자초지종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선장들이 시위라도 한다던가요?”
“하아, 참.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말하자면 제대로 왕따 짓을 하고 있나 봐. 봐도 못 본 척하는 건 예사고, 선장 모임에도 부르지 않는다나 봐. 선장들은 바다에 나가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게 필수적인데 말이야.”
인품이 너무 좋아, 사람들과의 관계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권이 얽힌 이슈인지라 장재준 영감도 속수무책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는 일이겠지. 너만 알고 있어. 나도 그냥 답답해서 꺼낸 얘기니까.”
“……알겠습니다.”
고동우와 헤어지고, 나는 차에 올랐다.
오래전 심어 놓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이 거친 풍랑을 맞아 시작부터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하나씩 해결하는 수밖에…….
처음부터 모든 것이 순조로울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급한 일부터 하나씩 풀어 갈 궁리를 하면서 나는 차의 시동을 켰다.
* * *
일주일 후.
나는 새벽이슬이 내려온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전곡항에 발을 디뎠다. 4월인데도 바닷바람은 제법 서늘했다.
수많은 낚시를 다녔고 수도권에서 아주 가까운 곳인데도, 나로서도 전곡항은 처음이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나와, 나는 항구의 전경을 둘러보았다.
국내 최초로 레저 어항 시범 지역으로 선정되어, 다기능 테마항으로 조성되었다는 전곡항은 다른 항구들과 눈에 띄게 다른 점이 있었다.
레저 보트나 요트가 선착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불과 열 척 남짓한 낚싯배들이 한쪽 귀퉁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낚싯배가 빽빽하게 선착장을 메운, 내가 알고 있는 다른 항구들과는 상당히 낯선 모습이었다.
장재준 영감의 배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낚싯배들이 정박된 곳의 맨 끝자락에 옆면에 ‘어반자 1호’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박힌 신조선이 물결에 출렁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장재준 영감은 홀로 이리저리 분주하게 배 안을 누비고 있었다.
“캡틴 님! 배가 너무 훌륭해 보입니다!”
“어어! 왔군요. 금방 올라가겠습니다.”
“아뇨. 제가 내려갈게요.”
멤버들이 오기 전에 제일 먼저 배를 구경하고 싶었다.
“전에 보여 주신 그림 그대로네요.”
갑판에 올라 보니, 널찍하게 낚시를 할 수 있는 16개의 자리가 눈에 띄었다.
자리마다 하단에는 개인 용품을 올려놓을 수 있는 선반과 그 아래로 커다란 개인 물칸이 설치되어 있었다.
선실 내부는 아늑한 휴식과 식사 공간으로 손색이 없었고, 붉은색 싸구려 구명조끼 대신 고급 팽창형 조끼들이 가지런히 벽에 걸려 있었다.
조타실 내부 또한 신형 전자 장비들이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장착되어 있었다.
조타실 아래로 보이는 계단을 내려가 보니, 6명이 동시에 수면을 취할 수 있는 깨끗한 침상이 놓여 있었다.
“기대 이상인데요. 선상 호텔이 따로 없네요. 그런데 사무장은 아직인가요?”
“구해는 놓았습니다. 낼모레 정식 출항에 맞춰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분인가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군대 동기입니다. 낚시도 잘하고 취사병을 오래 했던 친군데 도와 달라고 조르느라 애를 좀 먹었습니다. 허허.”
낯선 곳에서 홀로 인생의 제2막을 열어 가려는 그에게서 외삼촌을 떠올리곤 했었다.
친분이 있는 분과 함께하게 되었다는 말에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캡틴 님! 포인트 좌표는 구하신 거죠?”
“그럼요. 삼백만 원이나 주고 구입했습니다. 그동안 나 혼자 돌아다니면서 대강 확인 작업을 하고 있었고 말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장재준 영감은 신조선이 도착하자마자 인근의 바다를 헤쳐 가며 포인트 발굴에 매진하고 있었으리라.
“쓸 만한 포인트가 있던가요?”
“웬걸요. 그것도 영업 기밀인데 비밀 포인트까지야 공개했을라고요. 그나마 기본적인 돌무더기나 똥침선은 몇 개 보이더만…….”
똥침선은 작은 규모의 침선을 일컫는 낚시꾼의 용어.
말끝을 흐리는 장재준 영감의 표정으로 미루어, 그 정도로는 기본적인 조과마저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캡틴 님! 우리 왔어요. 우럭 님은 벌써 왔네?”
누군가 올려다봤더니, 고동우였다.
그 뒤에 사심희와 보람이도 함께 웃고 있었다.
“어반자 1호라! 드디어 우리 어반자에도 배가 생겼네요. 우린 공짜 맞죠?”
“탐사 출조니까 오늘만 공짜입니다. 앞으로는 손님들과 똑같이 예약하셔야 합니다. 허허.”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멤버들이 하나둘씩 배의 난간을 넘어왔다.
“천천히 둘러보세요. 저는 슬슬 출항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이 급한지 장재준 영감은 조타실로 들어가 배의 시동을 켰다.
“꺄악! 주방이 우리 집보다 더 훌륭하잖아요!”
“구명조끼도 내 것보다 비싼 거야. 오늘은 이걸 써야겠다.”
멤버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동안, 배는 전곡항의 기다란 방파제를 빠져나갔다.
오른쪽으로 자그마한 누에섬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제부도가 아침햇살을 받고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제부도를 끼고 왼쪽으로 뱃머리를 돌린 어반자 1호가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가려는지 궁금해져, 나는 조타석에 앉은 장재준 영감에게 물었다.
“제부도 근처는 별론가요?”
“엊그제 몇 군데 찔러 봤는데, 잔챙이 우럭 몇 마리밖에 나오지 않습디다.”
“그럼 지금은 어디로 가시는데요?”
“입파도나 국화도 근처에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조타실 밖으로 나와 보니, 어느새 배 구경을 마친 멤버들이 낚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사심희는 늘 그랬듯이 카메라를 꺼내 들고 주변의 경치를 담기 시작했다. 어반자 1호의 처녀 출항을 기념하는 동영상으로 남기려는 목적이었다.
가방에서 라이트 지깅대를 꺼낸 고동우를 보고, 장재준 영감이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오늘은 우럭을 먼저 칠 겁니다. 우럭대를 준비하세요.”
“아, 그래요? 그럼 광어는 언제 잡나요?”
“지금 물이 죽었으니까 우럭 포인트를 노려보고, 나중에 물이 살아나면 그때 알려 드릴게요.”
낚시 경험이 많은 장재준 영감은 나름의 계획을 세워 둔 눈치였다.
어반자 1호는 봄에 광어와 우럭을, 여름에는 농어를, 가을부터는 주꾸미와 갑오징어를, 다시 초겨울에는 광어와 우럭을 대상으로 운영한다는 큰 그림이 이미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봄 출조에 대비하여, 광어와 우럭을 동시에 탐사하기로 한 날이었다.
사내들 셋이 우럭대를 들고, 좌현과 우현으로 나뉘어 자리를 잡았다. 나는 고동우와 보람이가 위치한 좌현을 피해 우현의 선두에 낚싯대를 폈다.
“작년에 왔던 우럭들이 다시 들어와 있으려나?”
고동우는 콧노래를 부르며 준비해 온 오징어채 미끼를 3단 채비에 주렁주렁 매달았고, 보람이는 어디서 구했는지 얼린 주꾸미 미끼를 해동하고 있었다.
꾸르릉~
빠르게 달리던 배가 멈춘 곳은 멀리 입파도가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였다.
크게 원을 그리면서 배를 몰던 장재준 영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여긴 아닌 것 같네요. 어탐기에 고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이동하겠습니다.”
봉돌을 들고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던 고동우와 보람이는 멋쩍게 웃으면서 낚싯대를 내려놓았다.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나는 거치대에 걸쳐 놓은 낚싯대를 만지작거렸을 뿐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내가 확인한 바로도 물속에는 우럭 치어들 몇 마리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꾸르르릉~
10여 분을 달리던 배가 또다시 미끄러지듯 속도를 늦추더니, 또다시 주변을 빙빙 맴돌았다.
“채비 던져도 됩니까?”
성미 급한 고동우가 재촉하자, 장재준 영감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여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네요. 하지만 그냥 한번 담가 봅시다.”
역사적인 처녀 출항의 첫 입수였다.
고동우는 신이 나서 재빨리 봉돌을 풍덩 빠뜨렸고, 보람이도 채비를 입수시켰다.
나도 그들을 따라 봉돌을 떨궜지만, 딱히 기대하지는 않았다.
물밑에는 자그마한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지형이었고, 딱히 이렇다 할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질 온다!”
채비를 담근 지 1분 만에 고동우가 난리 법석을 떨자, 나는 물끄러미 뒤를 돌아보았다.
요란한 전동릴 소리와 함께 올라온 것은 역시나 태어난 지 한 달쯤 되어 보이는 잔챙이였다.
작은 입으로 어떻게 큰 바늘을 삼켰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애럭이다!. 이게 우리 어반자 1호의 첫수라니. 사시미 님! 그래도 첫수니까 나 좀 찍어 줘.”
기념 촬영을 마친 우럭 치어는 그대로 방생되어 물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장재준 영감은 배 운전 연습을 겸하여, 앞으로 뒤로 좌로 우로 열심히 배질을 했지만, 전동릴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안 되겠습니다. 채비 걷으세요.”
장재준 영감의 목소리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 뒤로도 배는 똥침선이나 여밭에 머물러 보았지만, 이렇다 할 조과는 없었다.
탐사 출조에 왔음을 망각한 고동우가 지렁이 미끼를 사용하여 제법 튼실한 노래미 두 마리를 건진 게 성과라면 성과였다.
좋은 포인트만 확보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종횡무진 능숙하게 포인트 위를 누비는 장재준 영감의 운전 실력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 어디로 가죠?”
“글쎄요…….”
조심스레 내가 묻자, 자신감을 잃은 장재준 영감은 배의 운전대만 만지작거렸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아직 이른 봄이라 고기들이 충분히 들어오지 않을 시기잖아요.”
“그래도 선장으로서 미안하네요. 바쁘신 멤버분들 모시고 이 모양이라니…….”
허망한 눈빛으로 플로터 장비에 찍힌 빨간 점들을 살피던 장재준 영감이 다시 배를 출발시켰다.
“국화도 쪽으로 가 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곳에 있는 여밭에서 손맛이라도 보게 해 드리겠습니다.”
벌써 오전 11시가 가까운 시각.
마음이 급해진 장재준 영감은 배의 속도를 높였다.
모자가 바람에 날아갈까 깊이 눌러쓰면서, 멤버들은 선실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안 들어가요? 그러다 감기 들어요.”
“괜찮아. 좀 있다가 들어갈게.”
고개를 돌린 사심희에게, 나는 씩 웃으며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뱃머리에 서서 정면 쪽을 탐색하던 바로 그때였다.
물속에서 뭔가 발견한 나는 깜짝 놀라 조타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장재준 영감은 열심히 플로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주 훌륭한 어초 포인트였다.
전방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친 곳에 널찍한 어초밭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곳에 다수의 중치급 우럭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어탐기의 시야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의 고성능 머릿속 어탐기에는 사각지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대로 직진하다가는 저 멋진 포인트를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상황…….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에 배를 멈추라고 하면 모두들 내 행동을 의심할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발 연기뿐이다.
나는 슬그머니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지나쳐 가는 어초밭을 향해 원반처럼 그것을 휘익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