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선물
그 모든 진실의 베일이 벗겨졌다.
그리고 이해구의 얘기는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얘기였어. 자네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면, 정신병자 취급이나 받았겠지. 늦었지만 이렇게 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군.”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선장에게 전화를 걸어 배를 불렀다.
낚싯짐을 챙기려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이해구 노인의 나직한 음성이 다리를 붙잡았다.
“자네에게 줘야 할 물건이 있어.”
돌아보니 그의 손에 작은 메달이 들려 있었다.
금빛으로 도금된 그것은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다.
“동현이가 받았어야 할 우승 메달일세.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지. 지금에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자네가 간직해 주길 바라네.”
외삼촌이 남긴 유일한 유품.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러는 사이, 이해구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듯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자네의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가겠어. 그리고 내 잘못된 행동에 대한 형벌은 스스로 내릴 생각이네. 내 삶의 전부인 낚시. 앞으로 내가 낚싯대를 잡는 일을 결코 없을 걸세.”
나는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뒤돌아서 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해구가 늦게나마 진실을 털어놓은 것으로 미루어, 그 또한 적잖은 후회와 자책의 세월을 살아왔으리라.
그러나 낚시의 진정한 의미를 훼손하고, 친구의 신의를 배신한 노인에게 응분의 대가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배가 왔고, 우리는 말없이 배에 올랐다.
한참을 침묵하던 이해구가 입을 연 것은 뭍에 내려 각자의 차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배를 타고 오는 동안 오래된 기억이 하나 떠올랐는데, 들어 보겠는가?”
“……말씀하세요.”
“보아하니 자네도 동현이처럼 휘파람을 종종 불더군. 아마 그렇게 해야 물속을 볼 수 있는 것이겠지.”
그렇게 운을 뗀 이해구의 눈빛이 먼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했다.
“오면서 곰곰이 되짚어 봤어. 동현이와 함께했던 수많았던 낚시들을 말일세. 다른 날과 달리 특이했던 그날이 떠오르더군. 오늘처럼 감성돔을 잡으러 떠났던 출조였고, 날씨가 영 받쳐 주지 않아 두 사람 모두 고전하던 날이었어. 동현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로 했다며 평소보다 초조해하고 있었지.”
이해구 노인은 거기까지 말하고, 내 얼굴 표정을 살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오전 내내 내 마음을 뒤엎은 혼란과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탓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그의 다음 말에 나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고 말았다.
“그날도 동현이는 습관처럼 휘파람을 불더군.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어떤 노랫가락이었네. 그런데 잠시 후 바다에서 의외의 변화가 일어났지. 그야말로 물 반 감성돔 반이라고 할 만큼 담그는 족족 올라왔다네.”
“그, 그게 사실입니까?”
“그렇다네. 내 기억과 추측이 맞다면, 동현이는 물고기를 부르는 재능까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네.”
쿵!
머릿속에 강한 충격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산산이 부서져 날아다니는 기억의 파편들 중에서 두 개의 장면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날 내가 무슨 노래를 불렀더라…….
하나는 작년에 있었던 백상효와의 낚시였다.
지진의 여파로 물고기들이 죄다 도망갔던 날이었고, 갑자기 나타난 대물 참치를 포획했던 기념비적인 날이기도 했다.
뒤이어 내 잠재의식 속에 침잠해 있던 또 하나의 기억이 고개를 들었다.
‘조어도’를 처음 보았던 그날 밤 꿈속의 장면.
그림 속의 노인과 내가 나눴던 대화였다.
‘아마 나 때문에 죄다 도망간 모양이군. 그럼 내가 도와줄까?’
‘어, 어떻게요?’
‘감성돔을 떼로 불러들일 비법을 알려 주지.’
아아. 그냥 꿈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그 꿈은 돌고래의 유전자에 내재된 또 하나의 능력을 암시하는 예지몽이었던 걸까.
정신을 차린 나는 이해구 노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날 외삼촌이 부르셨던 노래가 뭐였는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글쎄……. 너무 오래되어서 나도 잘은 기억나지 않는군. 트로트였던 것 같은데. 당시에 꽤 유행하던 노래였지 아마…….”
이해구는 고개를 비스듬히 세우고 머리를 쥐어짜는 듯했지만, 끝내 기억해 내지는 못했다.
“심란한 사람에게 괜한 말을 또 꺼낸 것 같구만. 그럼 잘 가시게.”
이해구는 그렇게 말하고 먼저 차에 올랐고, 나는 얼빠진 사람처럼 그 자리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긴 여정이었다.
그리고 외삼촌의 마지막 행적을 찾아 나선 여정의 끝자락에, 그가 남긴 뜻밖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 *
“삐삐 삐 삐비 삐비 삐삐~~~~~~♬”
푸른 바다 위에 구슬픈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민박집에서 짐을 챙기고 나와,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외삼촌의 마지막 숨결이 남아 있는 옆 동네의 방파제였다.
벌써 20분째 내 입술에서는 똑같은 곡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니중기 노인과의 통화로 알아낸 그 노래의 제목은 나훈아의 ‘무시로’였다.
‘동현이가 즐겨 부르던 노래라 캤나? 글쎄다. 가끔씩 흥이 나면 무슨 노래를 부르긴 했다. 제목이……. 그러니까…….’
한참 동안 뜸을 들이던 그는 마침내 당시에 외삼촌의 애창곡을 기억해 냈고, 그것은 대략 30년 전에 대유행하던 트로트 곡이었다.
이럴 수가…….
물속에서 벌어지는 실로 무시무시한 광경에 나는 휘파람을 멈추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잠시 후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는, 방파제의 테트라포드 하단에 물이 끓어오르듯 허연 거품이 일었다.
그것은 파도가 부서지면서 생긴 포말이 아니라, 감성돔 떼가 몰려와 만들어 낸 기괴한 거품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차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가는 발걸음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물고기를 불러올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이라…….
차를 몰고 달려가는 동안 내 얼굴은 흥분과 두려움으로 가득 덮여 있었다.
엄청난 조과를 안겨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능력이기에,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또한 이것이 나의 낚시 인생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게 될지 두려움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물고기를 불러들여서 하는 낚시가 과연 내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물속을 보는 능력만으로 나는 ‘상상력’이라는 즐거움의 일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그때 문득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외삼촌은 어떻게 했을까?
그가 만일 어부의 길을 선택했다면 그토록 가난한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해구 노인의 말로 미루어, 외삼촌은 낚시를 할 때도 물고기를 불러들이는 재주를 남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나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절대로 이 능력을 남용하지 않을 것, 그리고 불가피하게 사용하게 되더라도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경우에만 국한하겠다는 결심이었다.
마음을 정리하고 나자, 차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그리고 차분해진 머릿속에서 아직 남아 있던 작은 퍼즐 조각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언젠가 참치를 잡았던 날, 내가 읊조렸던 엄마의 자장가.
필시 그 곡조가 참다랑어가 감지할 수 있는 주파수와 우연히 맞아떨어진 결과였으리라.
참다랑어와 감성돔.
서로 다른 두 어종을 불러들이는 각각의 노래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장르는 물론 리듬과 멜로디가 너무나 상이하다.
그렇다면 수많은 어종들의 주파수에 해당하는 각각의 노랫가락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에 미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
바닷가에 서서 세상의 모든 노래들을 목 놓아 부르는 어느 미친놈의 환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한대에 가까운 노래를 익히는 일에만 평생을 허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더욱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빠르게 달리던 차는 어느덧 대전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내비게이션을 더듬어 목적지를 변경했다.
새롭게 입력된 행선지는 충주였다.
엄마를 만나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 그녀에게 전해 줘야 할 물건도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모처럼 홀가분한 기분에 일주일간의 모든 피로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전날 저녁, 연락도 없이 찾아온 나를 보고 엄마는 처음에 놀라셨다.
놀라움과 반가움도 잠시, 엄마는 내가 건네준 외삼촌의 유품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우셨다.
‘외삼촌의 생전 모습을 수소문하게 되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외삼촌은 존경받는 낚시꾼이었고, 항상 사람들에게 베푸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외삼촌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는 많은 분들을 만났어요.’
외삼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상황은 말하지 않았다. 다만 흐느끼는 엄마의 등을 토닥이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외삼촌은 아주 먼 바다로 떠나신 것 같아요. 그곳이야말로 아무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외삼촌의 진정한 고향일지도 몰라요.’
후련하게 울고 난 엄마는 말없이 빛이 바랜 메달을 만지작거리셨다.
그리고 아침에 집을 나서고 있을 때, 나는 장식장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는 메달을 발견했다.
차가 거의 경부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전화벨 소리에 스피커폰으로 연결해 보니 사심희의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머님이 해 주시는 집밥은 많이 드셨나요?”
“하하. 당연하지. 잔뜩 먹고 지금 올라가는 길이야.”
나는 전날 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충주에 들러 다음 날 올라가겠다는 말을 전했었다.
“그럼 잘됐네요. 곧장 아지트로 와야 할 것 같아요.”
“아지트? 거긴 왜?”
그러고 보니 스피커폰 너머에서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축하할 일이 있으니까 그렇죠.”
“무슨 축하?”
나는 그녀에게 이해구와의 대결 결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기고 지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와 보면 알아요. 지금 멤버들 전부 모여 있으니까 그리 아세요.”
그녀는 그렇게만 말하고 전화를 뚝 끊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생일도 아닌데…….
나는 하는 수 없이 하남으로 차를 돌려야 했다. 부리나케 달려가 아지트의 문을 활짝 열었을 때였다.
퍽! 퍼벅!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폭죽이 터지고 오색 테이프가 내 머리로 사뿐히 내려앉는 상황에 나는 영문을 몰라 입을 벌렸다.
“축하해요!”
“축하합니다. 허허허.”
멤버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사심희는 카메라를 내게 들이밀었고, 보람이는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테이블 쪽을 가리켰다.
“너도 예상하고 있었잖아. 드디어 저게 왔어!”
못 보던 물건이었다. 하지만 뭔지 알 것 같았다.
구독자 100만 명을 훌쩍 넘긴 지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자,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외삼촌이 알게 해 준 새로운 능력에 이어, 두 번째로 찾아온 또 하나의 선물.
찬란한 금빛으로 반짝이는 그것은, ‘골드 버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