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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110화 (110/130)

[제110화] 판타지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최대어가 맞는지 확인해 주겠나?”

“…….”

나는 엉겁결에 이해구가 건네준 대물을 양손으로 들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방심하던 찰나에 당한 의문의 일격.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는 동안, 상대방이 마술사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다.

심지어 그가 정면 승부로 나섰을 거라 판단하여 긴장의 끈을 놓고 있었다.

“뭐 이상한 거라도 있는가?”

“아, 아닙니다.”

이해구 노인의 재촉에, 나는 바짝 긴장하여 계측 자에 물고기를 내려놓았다.

지옥과 천당을 동시에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꼬리 부분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지만, 정확히 내 기록보다 1센티미터 뒤처지는 사이즈였다.

“……71센티입니다.”

“그런가? 아쉽게 되었군.”

이해구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도 잊은 채 나는 고개를 숙였다.

이해구의 마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 30여 분. 상대방이 이대로 게임을 끝내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했다.

잠시 후 나는 자리로 돌아와, 바닥에 놓인 낚싯대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바늘에 있던 미끼를 떼어 바닥에 던져 버렸다.

여전히 물속에는 이렇다 할 대어가 보이지 않는 상황.

두 번의 실수는 없다. 지금부터 나는 이해구 노인의 일거수일투족에만 집중할 각오였다.

그렇게 10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빈 바늘을 품은 내 채비는 어디에 있는지도 살피지 않았다. 내 시선은 집요하리만치 이해구의 반경 3미터 이내에 고정되어 있었다.

“왔어!”

마침내 이해구의 앙칼진 음성이 겨울 바다를 갈랐다.

과장스러운 외침과는 대조적으로, 이번에도 중치급 감성돔이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온몸의 세포가 꿈틀거렸지만, 나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푸드덕!

수면 근처까지 떠오른 물고기가 은색 빛깔을 슬쩍 보이며 내는 소리였다.

이때부터 이해구에게서 약간 미심쩍은 행동이 느껴졌다. 그는 가만히 지켜보는 나를 힐끔거리더니, 좌우로 거칠게 낚싯대를 흔들어 물고기로 물수제비를 뜨듯 물보라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언뜻 비치는 물고기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알 정도였다.

작은 변화라도 놓치지 않으려, 부릅뜬 두 눈을 물고기에서 떼지 않고 있던 그때였다.

이틀 전 민박집 앞에서 준서가 머쓱해하던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고, 그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선생님이 그랬거든요. 상대방 시선을 다른 쪽으로 쏠리도록 계속 손가락을 움직이라고.’

이런…….

또 간과하고 있었다. 모든 마술은 결국 마술사의 손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는 물고기에 쏠려 있던 시선을 황급히 거두고 이해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물가에 가까이 다가온 이해구가 허리를 숙여 한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그는 능숙하게 뜰채를 집었고, 물고기를 향해 그것을 내밀고 있었다.

물고기와 뜰채의 거리가 점점 좁아지면서, 나는 있는 힘껏 휘파람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술은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났다. 모두가 물속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화면이었다.

나는 똑똑히 목격했다.

물고기와 뜰채가 도킹하려던 순간, 이해구의 다리 한쪽이 움찔하는가 싶더니 수중여 아래쪽에서 갑자기 엄청난 감성돔 한 마리가 솟아올랐다.

무서울 정도로 차분하고 자연스러운 몸놀림이었다.

이해구가 솟아오른 대어를 뜰채로 사뿐히 낚아채는 것과 동시에, 끌려오던 잔챙이는 꼬리를 흔들면서 도망치고 있었다.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본 것 같았다.

겉으로만 본다면 너무나 자연스럽고 화려한 손놀림이었다. 검은 장막에 가려진 마술의 이면을 나는 보았다. 하지만 어떤 트릭을 썼는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해구가 나를 향해 뜰채를 번쩍 들어 보였고, 그 안에는 초대형 감성돔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계측을 해 볼 텐가? 내가 보기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네만.”

뜰채도 비좁아 보이는 엄청난 대어.

지금까지 나도 낚시로 잡아 보지 못한, 거의 8짜에 육박하는 감성돔이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이해구의 의기양양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찰나의 순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처음으로 맞닥뜨린 최악의 딜레마였다.

상대방의 속임수를 말하려면, 나의 비밀스러운 능력을 밝혀야 하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한 것인가.

잠시 후 나는 무거운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이해구를 지나쳐 수중여 근처의 물가로 다가갔다. 가벼운 휘파람으로 수중여 바닥을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뭔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해구를 노려보았다.

“……바닥에 박혀 있는 낚싯줄은 뭡니까?”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가? 여기는 수많은 낚시꾼들이 다녀가는 곳일세.”

필시 이해구는 미리 준비한 두 마리의 대어를 바늘에 걸어, 바위틈에 감춰 놓았으리라. 근처에 잡어들이 자취를 감춘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바닥에 놓인 이해구의 낚싯대를 내려다보았다. 예상대로 낚싯줄의 끄트러미가 끊어져 있었다.

“……낚싯줄이 끊어져 있군요.”

“왜 바늘을 빼지 않았냐는 질문인가? 마지막이니까 줄을 잘랐을 뿐이네.”

이해구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감성돔의 입술에 걸려 있는 낚싯줄을 유심히 살폈다.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해구가 낚시에서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낚싯줄이었을 뿐 아니라, 잘린 위치도 너무나 완벽했다.

“지금 뭐 하는 건가? 계측을 하지 않겠다면 패배를 인정한 걸로 받아들이겠네.”

이해구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뜰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몸을 굽혀 뜰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뜰채의 면면을 살피던 내 눈동자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금속성 테두리에 칼날처럼 돋아난 작은 부분이 눈에 띄었다.

귀신같은 솜씨였다.

이 손톱만 한 칼날로 물속에서 정확하게 두 개의 낚싯줄을 정확한 타이밍에 끊어 냈다는 말인가.

“뜰채에 있는 이 날카로운 부분은 뭐죠?”

“보다시피 너무 낡아서 그렇다네. 조심하게. 손을 베일 수도 있으니 말일세.”

모두가 소용없는 질문과 대답.

손만 뻗으면 진실의 문에 닿을 듯했다. 하지만 삐그덕 소리를 내며 움직이던 문이 쿵 닫히면서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잠시 후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감았던 눈을 부릅떴다.

“속임수였습니다!”

“결국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군. 이만 배를 불러야 할 것 같네.”

휴대폰을 꺼내 든 이해구에게 나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분명히 작은 물고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가 어쨌다는 말인가?”

“……바꿔치기를 하셨잖습니까.”

“무례하기 짝이 없군. 어떤 근거로 그런 해괴한 말을 지껄이는 건가? 증명할 수 있나?”

뜨거운 열기가 내 심장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나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노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봤습니다. 물속에서 벌어진 일을 똑똑히 말입니다!”

마지막 카드였다.

분을 참지 못한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마저도 헛소리로 치부한다면 나로서는 더 이상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였다.

이해구에게서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는 힘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어깨가 잠깐 부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그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으허허허…….”

이건 무슨…….

기괴한 웃음소리였다. 하지만 물속을 보았다는 말에 황당해하는 그런 유형의 웃음은 아니었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의 민망한 웃음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웃음소리였다.

이해구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꺽꺽대며 한참을 그렇게 웃었고, 나중에는 그가 흐느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잠시 후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얼굴에 웃음기는 사라지고,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내 추측이 맞았어. 자네가 수수께끼를 풀어 준 것 같구먼. 30년 동안 나를 괴롭히던 수수께끼를 말일세.”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영문을 몰라 멍하니 서 있을 때, 그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이리 와 앉으시게.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엉거주춤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고개를 숙이면서 굳게 다물었던 이해구의 입술이 열린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 그날 나는 속임수를 썼네. 그리고 자네의 외삼촌은 그걸 정확히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지.”

내 팔뚝에 소름이 돋은 것은 갑자기 불어온 찬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외삼촌은 그날 이해구의 속임수를 직접 눈치챘던 게 틀림없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찾아온 남해에서 동현이는 몹시 외로워하고 있었어. 낚시를 하다가 우연히 만난 우리는 곧 친구가 되었고, 나중에는 늘상 붙어 다니는 단짝이 되었다네.”

문득 언젠가 호도의 펜션 주인이 기억하는 외삼촌의 모습이 환영처럼 눈가에 아른거렸다.

홀로 선술집에 쓸쓸히 앉아, 소주를 홀짝거리는 모습이었다.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짝에게 속임수를 쓰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까? 어르신께도 저의 외삼촌은 친구였습니까?”

“믿을지 모르겠지만, 동현이는 내게도 소중한 친구였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낚시에 대한 열정을 공유할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난 기분이었지. 하지만 모든 불행이 내 헛된 승부욕에서 비롯되었음은 인정하겠네. 단 한 번이라도 그를 이겨 보고 싶었지. 이왕이면 남들이 모두 지켜보는 대회에서 말일세.”

이해구는 거기까지 말하고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바다를 향해 긴 연기를 내뿜으며 그가 말을 이었다.

“그날 밤 나는 동현이의 뒤를 따라갔던 게 사실이네. 어두운 방파제 끝에 우두커니 서 있었더군.”

순간 온몸이 털이 곤두섰다.

드디어 안개 속에서 벌어진 그날의 진실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숨을 멈추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동현이가 내게 물었지. 왜 그랬냐고, 속임수를 쓰면서까지 신성한 낚시를 더럽혔어야 했냐고 말일세. 하지만 나는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어. 아니, 도저히 털어놓을 용기가 나지 않더군.”

“…….”

“그때 내가 사실대로 말했다면 동현이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다 나의 잘못이었어. 그때의 나는 젊었고, 치졸한 자존심만 내세우던 어리석은 청년이었다네.”

이해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또 한 번 담배 연기를 훅 내뿜었다.

“동현이가 그러더군. 제발 사실대로 말해 달라고. 아무에게 말하지 않을 테니 친구의 신의만은 저버리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계속 버티는 나를 향해 급기야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네. 오늘의 자네처럼 물속에 감춰 둔 물고기를 봤다고 말일세. 나로서는 믿기 어려운 얘기였지.”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 진실의 문이 막 열리려 하고 있었다. 나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 그의 입술을 주목했다.

“결국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네. 한참을 걸어가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지. 짙은 안개 때문에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방파제 위에 서 있던 동현이가 눈에 띄지 않더군. 처음에는 그냥 돌아갈까 했지만, 어쩐지 불길한 생각이 들더군.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혼비백산하여 그쪽으로 다시 달려가 보았지. 하지만 동현이는 그곳에 없었다네.”

안개가 걷히고 그날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나를 엄습한 감정은 안도감과 무기력감이었다.

외삼촌은 단순히 술기운 때문도 아니고, 우승을 놓쳤다는 좌절감에 빠져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를 깊은 좌절의 늪에 빠뜨린 것은 신의를 저버린 친구의 행동 때문이었던 것이다.

외삼촌이 누군가의 외력에 의해 돌아가시지 않았다는 사실도 나는 안도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그동안 내 머릿속에는 외삼촌의 마지막에 관한 불길한 그림이 떠나지 않았고, 나는 그러한 내 추측이 빗나가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동시에 밀려온 무기력 내지는 찜찜함의 이유를 나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잠시 후 그 해답은 묘하게도 이해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길게 한숨을 내쉬는 나를 지켜보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해하네. 내 말을 전부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걸세. 하지만 아직 내 얘기는 끝나지 않았다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얼마 전 우리 집에 찾아왔을 때, 대결을 빌미로 내가 꺼낸 말을 기억하나?”

“저에게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하려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하니 다행이군.”

노인은 또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얘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동현이가 죽고 나서, 수년이 지나 남해 어딘가에서 돌고래와 얽힌 전설을 들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허투루 넘기지 못했지. 어쩌면 동현이의 말이 사실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게 된 계기였네. 그리고 다시 수십 년이 지나…….”

“……제가 나타났다는 말씀이겠군요.”

이해구는 잠깐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얘기를 계속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 이제는 잊었다고 생각한 그날의 일을 들추려는 자네가 원망스러웠어. 완강하게 잡아떼다가 결국 들통이 난 내 모습이 부끄럽기 짝이 없더군.”

“…….”

“그때 문득 자네에게도 동현이와 같은 능력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쳐 가더군. 작년 대회에서 자네가 보여 준 조과는 실로 일반인을 뛰어넘는 놀라운 경지였지.”

“그렇다면 제게 대결을 제안하신 이유가…….”

“……그렇다네. 미친놈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였지.”

모든 것이 명료해졌다.

이해구가 대결 카드를 꺼내 든 이유는 진실을 덮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사실을 말하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그는 30년 전과 똑같은 상황을 재연하여, 내가 그날의 진실을 선입견 없이 들어 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잠시 끊겼던 대화가 이해구가 내뿜은 담배 연기와 동시에 다시 이어졌다.

“사설이 길었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게. 그리고 약속해 주게. 내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믿어 주겠다고.”

“……알겠습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종잡을 수 없었지만, 느낌만으로 그의 눈동자에 진심이 담겨 있음은 알 수 있었다.

“방파제 위에서 동현이를 찾던 도중, 나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를 들었지. 소리가 나는 쪽은 방파제 아래의 바다였어. 짙게 깔린 해무 속에서 나는 두 눈으로 보았다네. 언제 어디에서 왔는지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돌고래 떼를 말이야. 지금 말하면서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지. 그리고 그중에 제일 큰 돌고래의 등 위에 동현이가 앉아 있었네. 잠시 후 돌고래가 물속에 잠기는 순간, 동현이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더군. 그것이 동현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네.”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에서 줄달음쳤다.

이해구의 입에서 튀어나온 외삼촌의 마지막 모습.

진실의 끝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슬프고도 기이한 판타지가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실의 종착점에 허무한 판타지만 존재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이어지게 될 이해구와의 대화에서 외삼촌이 남긴 유품과 엄청난 선물을 동시에 얻게 되리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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