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화] 결전의 날
준서와 사심희가 떠나고,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베타와 근처의 바닷가를 산책하고 밥을 사 먹은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외출도 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알고 싶은 정보도, 준비할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굳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컨디션 조절에 힘쓰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전의 날이 밝았다.
베타가 귀를 쫑긋하며 깨는가 싶더니, 다시 평온하게 잠들었다.
나는 슬그머니 낚싯짐을 챙겨 들고, 민박집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이해구는 양화금 방파제에 먼저 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를 향해 우두커니 서 있는 그에게 다가갔을 때, 이해구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끼고,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어쩐지 수척해진 얼굴이 그 또한 숙면을 취한 모습은 아니었다.
“왔는가?”
“예. 어르신.”
극히 짧은 인사말이 오고 갔다.
이해구는 곧장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어서 오…….”
전에 봤던 선장이 내게 인사를 건네려다 흠칫했다.
내 얼굴을 알아본 모양이었지만, 나는 말없이 그에게 까딱 고개를 숙였다.
선장은 손을 내밀어 내 낚싯짐을 배 안으로 옮겨 주었고, 나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배의 난간을 훌쩍 넘었다.
그리고 선수 쪽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이해구의 짐꾸러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계단 바위로 가면 되겠지요? 어르신.”
“그러시게.”
이해구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선장은 배를 출발시켰고, 이해구는 난간을 짚고 바다를 향해 등을 돌렸다.
낚시 가방, 보조 가방, 그리고 밑밥통.
추위에 언 손을 입김을 불어 녹이면서도, 내 눈동자는 이해구의 낚싯짐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어딘가에 물고기가 감춰져 있을지 모른다.
그중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밑밥통이었다. 일반적인 크기에 비해 20센티미터 정도 높은 형태였다.
준서의 어설픈 마술 시범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었다.
동전이 되었든, 비둘기가 되었든, 마술사의 손에서 튀어나오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마술사의 가까운 곳에 감춰져 있어야 한다. 무에서 유를 탄생시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이 살아 있는 물고기라면 감추는 일은 용이치 않을 것이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의 밑밥통보다 큰 사이즈의 밑밥통.
아래쪽에 별도의 격실이 있고, 그 안에 커다란 감성돔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 안에 고성능 기포기까지 장착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의심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배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언제쯤 모시러 오면 되겠습니까?”
“세 시간이면 낚시는 끝날 거야. 정확한 시간은 따로 전화하겠네.”
“알겠습니다. 어르신.”
갯바위에 뱃머리를 붙이느라, 선장은 조타실 창문을 통해 이해구와 인사를 나눴다.
나는 이때다 싶어, 이해구의 밑밥통에 손을 가져갔다.
“내가 옮기지. 그러지 않아도 되네.”
이해구가 괜찮다며 나를 제지하려 했지만, 나는 태연하게 그를 올려다보며 둘러댔다.
“배가 출렁거리지 않습니까? 조심해서 먼저 내리시고 짐을 받아 주세요.”
때마침 작은 너울이 밀려와 배가 기우뚱하자, 이해구는 몸의 균형을 잡으며 배에서 먼저 내렸다.
“하나씩 주시게.”
“알겠습니다.”
나는 제일 먼저 그의 비닐 재질의 낚시 가방을 들었다. 한 손으로도 번쩍 들리는 바람에 툭 던지듯 내려놓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이해구의 보조 가방 또한 의심스러운 구석은 전혀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밑밥통.
바짝 긴장한 얼굴로 그것을 들어 올린 순간, 허탈한 느낌이 내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묵직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슬그머니 앞뒤로 흔들어 보았지만, 찰랑거리는 소리나 느낌은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헛다리를 짚었다.
얼굴에 번지는 실망감을 감추며 나는 터벅터벅 이해구의 뒤를 따라갔다.
잠시 후 이해구가 바닥에 짐을 내려놓으며, 갯바위 끄트머리를 가리켰다.
“보다시피 두 자리가 있네.”
“알고 있습니다.”
“와 봤다는 얘기군.”
“사전 답사를 했습니다.”
“좋아. 하지만 미리 말했다시피 자네의 자리는 정해져 있다네.”
“…….”
내 자리는 어디일까?
상대방의 시야가 확보될 수 있는 왼쪽 계단 위 자리를 원하고 있지만, 내게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여기가 자네의 외삼촌이 마지막 낚시를 하던 곳이었네. 나는 저리로 가지.”
내심 다행이었다.
다시 짐을 챙겨 들고 저벅저벅 돌계단을 내려가는 이해구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일단 안도했다.
잠시 후 아래쪽에서 이해구가 나를 향해 외쳤다.
“지금부터 들물이야. 정각 12시에 마치는 것으로 하지. 위에 계측 자를 놓고 왔으니, 자네가 수고해 주시게.”
바닥을 살펴보니, 언제 놓고 갔는지 그가 남긴 계측 자가 놓여 있었다.
“그럼, 시작하세!”
“네.”
드디어 시작된 일생일대의 대결.
나는 낚시 가방을 열고 손때 묻은 낚싯대를 꺼내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보조 가방을 뒤적거려 반짝이는 스피닝릴을 집었다.
김혁준이 내게 선물한 릴.
물끄러미 감성돔의 비늘로 만든 문양을 내려다보며, 나는 행운을 가져다줄 거라는 그의 말을 떠올렸다.
오늘 지니고 오지 않았다면…….
대형 양식장을 소유하고 있는 이해구에게는 크고 작은 세 척의 배가 있다고 들었다.
필시 그가 비밀리에 이곳을 다녀갔으리라 확신한 나는 열심히 그의 주변을 탐색했다.
초대형 감성돔을 어시장에서 구입했는지, 직접 잡았는지는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내 목적은 이해구의 근처 어딘가에 감춰져 있을 그것을 찾아내는 것뿐이었다.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이리저리 굴리던 내 눈동자에 이해구가 바다에 던져 놓은 살림망이 훅 들어왔다.
하지만 바다에 잠긴 살림망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내친김에 나는 이해구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휘파람을 내뿜었다. 그리고 그가 서 있는 위치의 반경 10미터를 훑어보았다.
그의 주변에 보이는 물웅덩이들은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바닷속 또한 특이하다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코앞에 있는 수중여 근처는 지난번에 봤을 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나마 당시에 간혹 눈에 띄던 잡어들마저 자취를 감춘, 그야말로 황량한 수중 공간이었다.
그렇다면 설마…….
혹시 내가 괜한 의심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해구는 내게 진검승부를 시도하는 게 아닐까?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에 빠져들던 바로 그때였다.
쉬이익!
이해구의 낚싯대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활처럼 휘어진 초릿대.
시작부터 한눈을 팔다가 당한 일격이었다.
이해구의 동작은 물이 흐르듯 유연했다.
근처까지 끌고 온 물고기의 빛깔을 확인한 그는, 바닥에 놓인 뜰채로 단번에 놈을 포획했다.
“이것 좀 확인해 주겠나?”
돌계단 아래로 다가온 그가 자신이 잡은 감성돔을 턱 하니 내 쪽으로 내밀었다. 냉혹해 보이리만큼 차분한 그의 표정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한눈에 보아도 준수한 씨알.
계측자에 올려 보니 50센티미터 눈금을 넘기는 사이즈였다.
“……53센티입니다.”
“고맙네.”
물고기를 돌려받은 그는 자신의 살림망에 그것을 던져 놓고는 곧바로 두 번째 캐스팅을 날렸다.
수면에 그려진 동심원 위치를 확인해 보니, 15미터 전방의 어초 숲 바로 위였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나는 심호흡을 길게 하고, 절벽 끝에 우뚝 섰다.
그리고 멀리 밑밥을 흩뿌리는 작업과 동시에 휘파람을 내뿜었다.
좌우로 길게 이어진 어초.
정면에서 불어오는 약간의 바람을 계산하고, 나는 힘차게 채비를 캐스팅했다.
채비가 서서히 하강하는 동안, 내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감돌았다.
어초에는 모두 적지 않은 감성돔들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큰 씨알들은 내 쪽에 더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상대가 정공법으로 나온다면 승산은 내게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잠깐 기다리던 순간, 한 마리의 감성돔이 밑밥을 덥석덥석 흡입하며 내 미끼로 근접했다.
쐐애애액!
정확히 위턱에 바늘이 걸렸음을 확인하고, 나는 왼손으로 낚싯대를 치켜들었다.
곁눈질로 보니, 이해구가 눈을 치켜뜨고 내 초릿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푸드덕!
뜰채에 담겨 올라온 감성돔을 나는 이해구에게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곧장 계측에 들어갔다.
“57센티미터입니다!”
“…….”
이해구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살림망에 첫 수확물을 보관하고, 내가 허리를 막 폈을 때였다.
쉬이이이익!
전투기가 날아가는 듯한 굉음이 내 귓가를 스쳤다. 반사적으로 이해구 쪽을 바라보니, 그의 몸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내 눈길은 반사적으로 멀리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그의 채비를 향했다.
좌우로 째고 있어 확실치는 않았지만, 금방 내가 잡은 것보다 큰 사이즈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팽팽한 승부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해구가 건네준 그의 두 번째 감성돔은 너무 커서 수건으로 감싸 안아야 했다.
잠시 후 계측 자에 놓여 펄떡거리는 대물 감성돔을 내려다보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무려 63센티미터.
중치급 감성돔들 틈에서 이해구는 용케도 대물을 건져 낸 것이다.
“63센티입니다!”
“고맙네.”
결코 질 수 없는 승부, 지면 안 되는 승부였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백정철처럼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나는 길게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금 긴 낚싯대로 바다를 겨누었다.
이번에는 곧바로 대물을 공략할 작정이었다.
활시위를 떠난 채비가 내가 노린 물고기의 머리 꼭대기에서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다.
이런…….
도중에 잔챙이가 달려드는 광경에 나는 낚싯대를 살짝 흔들어 놈을 쫒아내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낚싯대를 번쩍 치켜드는 순간, 나는 또 한 번의 역전을 예상했다.
무리에서 대장 격으로 보이는 엄청난 녀석이었다.
온몸의 세포들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초반에 띄우지 않았다면, 어초 틈으로 도망쳐 채비가 작살날 위기였다.
나는 있는 힘껏 놈을 제압하고, 결국 뭍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더 이상 큰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렴풋이 승리를 확신하며 이해구를 향해 외쳤다.
“72센티입니다!”
“축하하네!”
의외였다.
묵묵부답일 줄 알았던 그에게서 메아리처럼 축하의 말이 돌아왔다.
나는 채비를 재정비하고 다시 일어섰다.
다시금 물속을 열심히 탐색해 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7짜에 육박하는 감성돔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들물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는 언제라도 다른 개체들이 유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는 채비를 던졌다.
그리고 차분히 물속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쉬익!
아래쪽 이해구의 낚싯대에서 튀어나온 소리였다.
챔질의 강도로 이미 짐작했지만, 직접 물속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잔챙이였다. 이해구가 3짜 정도의 감성돔을 걸고, 빠르게 릴링을 이어 가고 있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을 때, 내 미끼 쪽에도 잔챙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초릿대를 살짝 흔들어 놈을 쫒아낸 뒤, 곧바로 이해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바로 그때였다.
“어이쿠! 제법 큰 놈이군.”
무슨 말인가 싶어, 나는 황급히 그의 발치 쪽으로 시선을 옮겨 보았다.
“헉!”
이해구의 뜰채 중간 부근이 낚싯대처럼 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대물 감성돔 한 마리가 펄떡거리고 있었다.
이럴 수가…….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깐 한눈을 팔던, 불과 1초의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해구의 바늘에 걸려 끌려오던 놈은 틀림없이 작은 감성돔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뜰채에 골인하는 찰나의 순간, 그것은 7짜 안팎의 초대형 감성돔으로 둔갑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