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계단 바위
낚시를 마치고 돌아온 민박집 안에서, 나는 베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오늘 덕분에 잔치하게 생겼다. 정말로 고맙데이.’
미니중기 노인은 흡족한 얼굴로 돌아갔다.
한사코 내게 물고기의 절반을 가져가라 고집했지만, 나는 저녁거리로 먹을 전갱이 세 마리만 챙겨 돌아왔다.
실로 무시무시한 얘기를 들은 터라, 벌렁거리며 뛰는 가슴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해구가 낚시 대회를 왜 세 번만 나간 줄 아나? 네 번째부터 규정이 바뀐 기라. 최대어가 아니라 마릿수로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우승까지 자신이 없으니 꽁무니를 뺀 기라.’
미니중기 노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어두운 그림이 예상되고 있었다.
‘나와 대결을 하세. 자네의 외삼촌과 대결을 했던 그 자리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말일세.’
이해구가 내게 제안한 방식 또한 외삼촌과 대결하던 그날의 상황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뚜렷해졌다.
이해구는 자신만의 술수를 활용하여, 절대로 질 수 없는 무대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뜬금없는 제안은 결국 위기를 모면하려는 꼼수였다는 말인가…….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려든 기분이었다.
과연 내가 마술사의 눈보다 빠른 손놀림을 간파할 수 있을까?
답답해진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잠시 후 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백정철이었다.
“강 프로?”
“백 프로님,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어어, 이동 중이긴 한데 잠깐은 괜찮아.”
“느닷없이 여쭤보게 되어서 좀 그런데요……. 예전에 남해에 사시는 이해구라는 분과 대결을 하셨다고 했죠?”
“그랬지. 근데 뜬금없이 그건 왜 묻나?”
“갑자기 생각나서요. 그때 어떤 방식으로 승부를 가렸는지 기억나세요?”
“아이고, 그건 또 왜 들춰내려고 하시나.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얘긴데. 왜? 자네도 그분에게 한 수 배우려고?”
궁금증을 해결하려다, 도리어 질문을 받는 형국이 되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부탁드려 보려고요.”
“하하. 좋은 자세군. 알았네. 그러니까 그때…… 마릿수였어. 그분이 나보다 세 마리를 더 잡으셨지 아마.”
“아아…….”
“아이고, 벌써 도착한 모양이군. 이만 끊어야 되겠네.”
“……감사합니다.”
머리가 더욱 뒤죽박죽이 된 기분이었다.
백정철과 상대하여 마릿수로 이겼다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
프로 조사급 실력의 보유자임과 동시에 물고기를 귀신같이 바꿔치기할 수 있는 마술사.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종합한다면, 이해구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수식어였다.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상대방은 지금까지 상대해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유형의 낚시꾼이었던 것이다.
그날 밤.
가까스로 잠에 빠져들고 있을 무렵, 한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이제 나흘 남았군. 양화금 앞바다에 계단 바위라 불리는 곳이 우리가 대결할 장소일세. 그날 아침 9시에 만나세.’
계단 바위.
처음 들어 보는 포인트의 이름이었다.
외삼촌이 마지막으로 낚시를 했을 그곳.
그곳의 이름을 혼잣말로 되뇌면서, 나는 부옇게 밝아 오는 새벽을 맞이했다.
* * *
이른 아침 베타를 안고 나는 차를 몰았다.
양화금은 민박집이 위치한 지족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자 생각보다 제법 커다란 방파제가 있었고, 귀퉁이에 허름한 컨테이너 사무실이 눈에 띄었다.
노크를 해도 응답이 없어, 슬쩍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컨테이너 안에는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사내가 라면을 먹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낚시 가시게요?”
“……계단 바위라는 포인트에 가 보고 싶습니다.”
사내는 낚싯가방 대신 고양이를 안고 있는 나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낚시 손님이 아니신가 보네요.”
“아……. 바람이나 쐬려고 왔습니다.”
갯바위로 소풍을 간다는 사람은 처음 본다는 눈빛이었다.
라면 냄비를 얼른 비운 사내가 입을 쩝쩝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삼만 원입니다. 돌아오실 때는 30분 정도 미리 전화 주시고요.”
“여기 있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나와, 나는 곧장 배에 올랐다.
목적지까지는 고작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 한 시간 뒤에 데리러 오실 수 있습니까?”
“네에?”
배에서 내려 선장에게 말하자, 그는 이번에도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해 드리죠. 지금 9시니까, 정확히 10시에 오면 되겠습니까?”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 휙 뱃머리를 돌렸다.
사전 답사에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았다.
내게는 포인트 물속 지형을 체크할 아무런 도구도 없었고, 가지고 올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나는 야트막한 돌무더기들을 올라타기 시작했다.
바닥이 미끄러워 조심조심 올라 보니, 널찍한 갯바위가 펼쳐져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 낚시를 할 만한 자리는 두 개뿐이었다.
왼쪽으로 불룩 솟은 쪽에 낚시하기에 적당한 평평한 너럭바위가 보였고, 오른쪽에 약간 비좁은 다른 한 자리가 있었다.
특이한 사실은 오른쪽 자리가 높이 2미터 정도로 낮은 위치에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살피던 나는, 이곳을 계단 바위 포인트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계단 모양의 바위들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안고 있던 베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위험하니까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야~~~ 웅!”
나는 울퉁불퉁한 돌계단을 따라 그곳으로 내려갔다.
막상 내려와 보니, 혼자만의 낚시를 즐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휘이익~~~~~♪”
길게 휘파람을 불었더니, 바닷물이 투명하게 변하면서 잠겨 있던 수중여가 육중한 형체를 드러냈다.
낚시꾼이 버리고 간 깡통들과 자잘한 잡어 떼들이 눈에 띄었을 뿐, 바닥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나는 더욱 높은 음계의 휘파람으로 시야를 넓혀 보았다.
정면으로 1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좌우로 길게 어초가 형성되어 있었고, 그곳에는 꽤 준수한 씨알의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었다.
대상어를 공략하기에는 안성맞춤이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 녀석이 위험하다니까…….
내가 뭘 하나 보려는지, 절벽 위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나를 살피는 베타의 눈동자가 보였다.
나는 재빠르게 돌계단을 올라탔다.
그리고 꼬리를 흔드는 베타부터 번쩍 안아 들었다.
잠시 후 나는 조심조심 절벽 근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른 키 정도만큼 높을 뿐인데도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정면에 띠처럼 펼쳐져 있는 어초 밭은 15미터 떨어져 있어, 왼쪽 자리와 동일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올 경우를 감안한다면, 상대적으로 낚시에 용이한 위치는 아니었다.
그날 외삼촌은 어떤 위치에서 낚시를 하셨을까?
아래쪽 포인트에서 힘차게 캐스팅을 날리는 외삼촌의 환영이 나타났다.
저 아래 있었다면, 위에서 이해구가 어떤 짓을 하는지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할 수 있는 이곳이었다면…….
외삼촌은 혹시 그날 이해구가 속임수를 쓰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었을까?
찌릿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이런저런 상념과 의혹에 잠겨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멀리 물살을 가르며 배가 달려오고 있었다.
* * *
양화금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남해 터미널로 차를 몰았다.
준서와 사심희를 마중하러 가는 길이었다.
주말을 맞아 두 사람이 남해로 촬영을 오기로 한 날이었다.
사심희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농담을 던졌다.
“얼굴이 더 까매졌어요. 남해 사람 다 되셨네요.”
“그, 그래?”
준서는 한 달 새에 부쩍 키가 커 보였다.
“우럭 삼촌! 오랜만이에요.”
“잘 왔다. 오느라 힘들지 않았어?”
“아뇨. 멀미도 안 하고 너무 잘 왔어요.”
준서에게는 태어나서 가장 멀리 떠나 온 여행일 것이다.
머리는 복잡했지만, 나도 이참에 두 사람과 모든 것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참이었다.
차에 오르자마자 사심희가 물었다.
“민박집으로 곧장 가실 거죠?”
“아니. 먼저 바람이나 쐬자고. 준서는 남해가 처음이니까.”
터미널로 오는 동안 나는 준서가 좋아할 만한 장소들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
“베타야. 형아 보고 싶지 않았어?”
“왜~~~~ 용!”
준서가 베타를 끔찍이 반가워하자, 베타는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베타는 아침부터 이어지고 있는 강행군에 약간 피곤한 눈치였다.
첫 번째로 찾은 장소는 독일 마을이었다.
“우와! 여기가 어디예요? 외국 같아요.”
아담하고 예쁜 서양식 펜션들이 좌우로 늘어선 곳에서 우리는 두툼한 소시지도 사 먹고, 기념품도 구경하며 한두 시간을 보냈다.
다음으로 찾아간 남면 다랭이 마을에서도 준서는 이국적인 풍경에 한껏 취한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남해읍에 들러 저녁 식사를 마치고 민박집에 돌아왔을 때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
사심희는 전에도 묵었던 2층을 쓰고, 나와 준서는 아래층에서 묵기로 했다.
짐을 정리하고 나자, 준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삼촌 낚시는 언제 해요? 볼락 루어 낚시 한다고 해서 잔뜩 벼르고 왔는데.”
“지금부터 해야지.”
“그럼 또 차 타고 가는 거죠?”
준서는 아마도 야간 갯바위를 상상하고 있었나 보다.
나는 씩 웃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아니. 걸어서 10초도 안 걸린단다.”
두 사람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자,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정박된 어선들 틈으로 잔파도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환하게 켜진 가로등 불빛 아래로 고요한 수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기에 볼락이 있어요?”
“크진 않지만 구워 먹기 딱 좋은 볼락들이 있을 거야. 가로등까지 갖췄으니 집어등도 필요 없고, 얼마나 완벽한 곳이냐?”
사심희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적지 않은 볼락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한 뒤였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촬영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왕초보편의 대상어인 볼락을 찾기 위해 저는 멀리 남해에 와 있습니다.”
준서의 오프닝 멘트가 시작되자,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낚시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공 선장에게서 빌린 이동식 화로와 불판들 들고 온 나를 보고, 사심희는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힘들게 숯불까지 준비할 필요가 있나요? 준서가 많이 잡아 봐야…….”
“나오는 족족 숯불에 구울 테니 맛이나 보라고.”
따르르릉~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준서의 릴에서 드랙이 풀리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왔어요! 셋까지 센 다음 천천히 채비를 끌었더니, 정말로…….”
손바닥만 한 볼락이었다.
“잘했다. 계속 해 봐라.”
나는 비늘도 치지 않고, 내장도 손질하지 않은 볼락을 곧바로 불 위에 던졌다. 사심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버리고 있자,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캡틴 님이 그랬잖아. 현지 사람들은 이렇게 먹는다고.”
“그래도 그렇지…….”
한밤의 민박집 앞에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바짝 구워진 볼락을 머리째로 뜯어 먹는 나를 보고, 사심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나 맛이나 봐.”
내가 작은 볼락을 슬며시 건네자, 그녀는 마지못해 받아 들었다. 잠시 후 앞니로 그것을 잘근잘근 씹어 보던 사심희가 눈을 번쩍 치켜떴다.
“준서야! 너도 그만 잡고 이것 좀 먹어 봐.”
세 사람 모두 몸통보다 생선 대가리에 눈독을 들이는 웃지 못할 장면이 펼쳐졌다.
준서가 던져 준 식은 볼락구이를 쩝쩝거리던 베타까지 가세하니, 볼락 스무 마리가 금세 동이 났다.
모처럼 모든 걱정을 잊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참 동안 이어지던 겨울밤의 이야기꽃이 시들어 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준서가 헤죽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제가 재미있는 거 하나 보여 드릴까요?”
“뭔데?”
준서는 천연덕스럽게 두 손을 내게 펴 보이더니, 집게손으로 먼지를 모아 손바닥에 모으는 시늉을 했다.
“자, 짜잔~~~”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잠시 후 맞닿은 손끝에서 튀어나온 동전 하나를 흔들면서 준서는 의기양양하게 내 눈치를 살폈다.
“놀랐죠?”
“…….”
어설프기 짝이 없는 준서의 마술…….
우연일 뿐이었다. 다만 그 기막힌 우연이 나를 놀라게 한 것만은 분명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나를 향해 사심희가 장난스럽게 눈을 찡그렸다.
“장단 맞추려는 건 알겠지만, 발 연기가 좀 심하네요. 너무 놀라는 척하니까 어색하잖아요. 준서야! 이모는 봤단다. 처음부터 동전이 네 손가락 틈에 끼어 있는 걸 말이야.”
“하아, 보셨구나. 선생님이 그랬거든요. 상대방 시선을 다른 쪽으로 쏠리도록 계속 손가락을 움직이라고.”
“연습을 더 해 봐. 그럼 감쪽같이 속일 수 있을 거야.”
“헤헤헷!”
너무나 단순한 진리였다.
동전은 처음부터 준서의 손안에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곰곰이 곱씹던 나는 갑자기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밤하늘에 내 웃음소리가 퍼져 나가자, 두 사람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힐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