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마술사
배가 ‘옆 동네’를 지나치고 있을 무렵, 미니중기 노인이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그넘 집을 쳐다보고 있었구나.”
“……네.”
“다 내 탓이다. 상처에 소금을 뿌려 댔으니…….”
“아닙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억지로 그럴 필요 없다. 그냥 재수 없다고 침이나 탁 뱉으면 된다.”
내가 억지웃음을 보이자. 미니중기 노인은 정말로 침을 모아 이해구의 집 쪽을 향해 탁 내뱉었다.
조심스레 조타석에 서 있는 공 선장을 살펴보니, 그는 엔진 소리 때문에 우리의 대화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미니중기 노인에게 넌지시 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이해구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형님은 이해구 어르신을 왜 그리 미워하십니까?”
“돈푼깨나 있다고 사람들 우습게 보는 건 둘째 치고, 사람이 영 인정머리가 없다 아이가.”
“아…….”
“어제 저녁만 해도 그랬다. 어디서 잡았는지 감성돔을 한 망태기나 들고 오더라. 내가 ‘어디서 그 많은 고기를 잡았노?’ 그리 물었다.”
“그랬더니요?”
“내 아래위를 스윽 훑어보더니, 대꾸도 없이 지네 집으로 쏙 내뺐다 안 하나. 내가 언제 고기를 달라고 했나? 인정머리 없는 놈!”
어찌 들으면 그리 대수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의미 있는 두 가지 정보를 발견했다.
하나는 이해구가 나와의 대결에 대비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실력을 짐작게 하는 정보였다.
“이런 추운 겨울에 감성돔이 망태기로 나오기도 하나요?”
“겨울에는 마릿수보다 씨알 아이가? 보통 사람은 한두 마리만 잡아도 대성공이다. 성품은 고약해도 해구 그넘이니까 가능했을 기라.”
그의 실력을 과소평가했다가는 큰코다치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내친김에 나는 이해구의 조력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했다.
“정말로 갯바위의 일인자라 할 만한 분인가 봅니다. 혹시 그분과 함께 낚시를 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젊었을 때 몇 번 따라나선 적은 있지만, 그 뒤로 나 같은 하수들은 쳐주지도 않더라.”
“형님이 보시기에는 그 당시에 어느 정도였던가요?”
“솔직히 말하면, 웬만한 프로 낚시쟁이 셋을 합친 것보다 훌륭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동현이가 오기 전까지 그넘이 남도에서 최고였던 것은 사실이다.”
미니중기 노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언젠가 백정철 프로에게서 들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말도 말게. 낚시 귀신이라고 소문이 자자해서 찾아갔다가 뼈도 못 추리고 돌아왔다네.’
한번 터지기 시작한 미니중기 노인의 입에서 이번에는 외삼촌에 관한 얘기가 튀어나왔다.
“동현이가 오고 나서 이해구는 내심 뜨끔했을 기라. 지만 잘난 줄로 알고 있다가 진짜 고수를 만난 것도 놀라웠겠지만, 동현이는 심성도 남달랐다 아이가.”
“어떻게 달랐습니까?”
“고기를 잡으면 반찬거리만 챙기고, 죄다 사람들 나눠 줬다 아이가. 나도 동현이한테 신세가 좀 많았다. 계절마다 감성돔이고, 문어고, 볼락은 또 얼매나 많이 가져다주던지 냉장고가 빌 틈이 없었다.”
“……그랬군요.”
이해구에게서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나눔 낚시를, 외삼촌은 이미 오래전에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다시 아련한 감상에 빠지려 할 때, 스르륵 배가 속도를 늦췄다. 조타석에서 머리를 내민 공 선장이 미니중기 노인에게 뭐라고 소리쳤다.
“형님! 제가 신호하면 뒷닻 좀 던져 주세요!”
“알았다!”
지족항을 출발하여 2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곳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언덕 위로 골프장이 눈에 띄었고, 뭍으로 움푹 들어간 둥근 형태의 해안가였다.
“던지세요!”
공 선장의 신호에 맞춰 미니중기 노인은 배의 선미에 걸쳐 있던 닻을 바다에 풍덩 빠뜨리고 돌아왔다.
선장은 능숙한 운전으로 닻을 앞으로 끌어당기는가 싶더니, 앞쪽의 밧줄을 단번에 던져 해안가 바위에 걸쳐 놓았다.
나는 앉은 채로 공 선장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시네요.”
“낚시는 못 해도 배질은 자신 있습니다. 하하.”
“배를 정박한 상태로 낚시하는 겁니까?”
“정 안 나오면 한두 번 옮길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난여름에 보람이와 감성돔을 잡으러 왔을 때도 같은 방식이었던 것 같았다.
어떤 물고기가 있나 한번 살펴볼까?
이제는 포인트에 도착하자마자 휘파람을 부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입술을 오므리고 나직하게 휘파람을 후욱 불어 보던 내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수심은 대략 15미터 정도.
미니중기 노인이 자신의 냉장고라고 표현한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추운 겨울임에도 물속은 그야말로 수족관이나 다름없었다.
배는 어초 바로 위에 정확히 고정되어 있었다.
우현 쪽을 살펴보니 볼락과 쏨뱅이들이 어초 틈에 박혀 낮잠을 자고 있었고, 좌현 쪽에는 열기는 물론 자잘한 감성돔들도 눈에 띄었다.
“웬 휘파람이고?”
넋을 잃고 수족관을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럽게 누군가가 내 등을 치는 바람에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미니중기 노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그만…….”
“휘파람 분다고 누가 뭐라 카드나? 하도 신기해서 그런다. 동현이도 예전에 낚시할 때면 입술을 닭똥집처럼 오므리고 휘파람을 불곤 했다 아이가.”
“…….”
“휘파람도 집안 내력이가? 참 신기하데이. 허허허.”
뭐라고 할 말이 없어, 그냥 그를 따라 웃고 말았다.
잠시 후 선장이 우리에게 채비와 미끼를 나눠 주었다.
“카드 채비군요.”
“그렇다. 자세히 보면 바늘이 그리 많지 않다. 3단 채비다.”
“오늘 제가 잡는 물고기는 전부 형님에게 드리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가?”
“형님이 모든 비용을 지불하셨지 않습니까?”
“남해에 왔으면 남해의 법도를 따라야 한다. 오늘 내가 배를 전세 냈으니까, 절반은 내 몫이 맞다. 하지만 나머지는 전부 네 거니까 무조건 가져가야 한데이.”
“하하.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미끼는 갯지렁이뿐이었고, 처음 써 보는 단순한 형태의 채비였다.
나는 길게 갯지렁이를 통으로 달고 우현 쪽의 볼락들부터 공략해 보기로 했다.
“오늘 내가 한 백 마리 잡을 테니까, 자네는 고양이나 돌보고 있어도 된다.”
“공짜로 와서 놀 수야 있겠습니까?”
미니중기 노인은 의기양양하게 낚싯대를 들고 마치 단거리 출발대에 선 사람처럼 바다를 노려보았다.
“시작하세요!”
공 선장의 구령에 맞추어 나는 신속하게 채비를 내렸고, 곧바로 세 마리의 볼락을 건져 올렸다.
푸드덕거리는 잔챙이 볼락들을 바라보던 미니중기 노인의 얼굴에서 주름이 싹 사라졌다.
“역시 데리고 오길 잘했다. 선수 중의 선수구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볼락이다.”
“그럼 손주가 좋아하는 건 어떤 물고기입니까?”
“금마들은 열기 매운탕이라면 환장을 한다. 그런데 그건 와 묻노?”
그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좌현으로 자리를 옮겼다. 잠시 후 내가 튼실한 놈으로 열기 세 마리를 걸어 올리자, 미니중기 노인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참말로 대단하다. 그럼 이번에는 우리 사위가 좋아하는 물고기도 잡을 수 있겠나?”
“그게 뭡니까?”
“저번에 와서 감시회가 먹고 싶다고 하던데, 비싸서 못 들은 척했다. 한 마리 잡으면 엄청 좋아할 기라.”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김시는 감성돔을 가리키는 방언.
그동안 찌낚시로만 잡았던 터라 솔직히 자신은 없었지만, 지렁이 미끼로도 잡힌다는 상식은 알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아까 봐 두었던 감성돔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감성돔은 아니지만 날렵하게 생긴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뭘까?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통에, 좀처럼 형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물고기였다.
카드 채비를 내려 살랑살랑 미끼를 흔들고 있었더니, 놈들이 어느새 다가와 바늘을 물고 늘어졌다.
드르르륵!
얄팍한 찔찔이대가 부르르 진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재빠르게 릴의 손잡이를 돌렸다.
“이번엔 뭐꼬?”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잠시 후, 세 마리의 물고기들이 바르르 떨면서 올라오자 미니중기 노인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메가리 아이가? 잘됐다! 우리 딸이 메가리 구이를 엄청 좋아한다. 안 되겠다. 나도 구경만 할 게 아니라 제대로 실력을 보여 줘야겠다.”
메가리는 전갱이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맛은 고등어와 유사하지만, 전갱이의 맛에 빠진 사람들은 고등어와 비교하는 걸 꺼린다고 들었다.
초반에 정신없이 걸어 올리던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홀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베타가 영 신경 쓰여 잠시 안아 주려는 생각이었다.
아이스박스 위에 걸터앉아 베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니중기 노인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아이쿠!”
뭔가 묵직한 놈을 걸었는지 잔뜩 힘을 주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가 뒤로 벌렁 넘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괜찮으세요?”
내가 다가가 그를 부축하던 순간, 그의 낚싯대가 초릿대 아래 부근에서 힘없이 부러져 있었다.
조타석에서 공 선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렸다.
“저 형님은 낚시할 때마다 한 대씩 부러뜨리시네. 형님! 그러다 버릇되겠습니다.”
“잔소리 말고 낚싯대 남는 거 하나 있나?”
“여기 하나밖에 없으니까 조심해서 쓰세요.”
“……고맙데이.”
낚시깨나 하시는 분인 줄 알았더니…….
겸연쩍게 웃고 있는 노인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가 그동안 허풍을 떨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뒤로도 미니중기 노인은 몇 번의 헛손질을 연발했을 뿐, 이렇다 할 조과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키득거리면서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와? 좀 더 쉬라니까 왜 일어나노?”
“손이 근질거려서요. 몇 마리 더 잡아 보겠습니다.”
나는 다시금 낚싯대를 쥐고 좌현 쪽을 훑어보았다.
감성돔의 흔적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고, 나는 보이는 대로 잡기로 했다.
잠시 후 나는 후두둑거리는 낚싯대를 미니중기 노인을 향해 흔들면서 물었다.
“쏨뱅이도 괜찮습니까?”
“오오. 쏨뱅이는 우리 마누가가 없어서 못 먹는다. 두 마리나 잡았구나. 장하다.”
그 뒤로도 나는 채비를 담그는 족족 볼락과 쏨뱅이를 연거푸 끌어 올렸고, 그때마다 노인의 입은 귀에 걸쳤다.
그리고 마침내.
약간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돌아온 한 쌍의 감성돔을 발견하고 나는 그쪽으로 채비를 던졌다.
슬금슬금 바닥에서 채비를 끌었더니 한 마리의 씨알 굵은 감성돔이 지체 없이 바늘을 물고 늘어졌고, 나는 이때다 싶어 강한 챔질을 시도했다.
“드디어 잡았습니다! 형님! 사위분이 좋아하신다는 감성돔입니다.”
“어라? 정말로 감시 아이가?”
노인이 기뻐하는 모습에 지나치게 고무된 탓일까? 내가 너무 나갔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실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노인의 눈가에 한 줄기 의혹의 기운이 퍼져 가고 있었다.
“아까부터 좀 이상하다 생각 안 하나?”
“뭐, 뭐가 말씀입니까?”
“어떻게 내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척척 잡아낼 수가 있나? 아무리 낚시를 잘한다지만…….”
“하하. 냉장고 포인트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다행이다.
어색한 웃음을 지었더니, 노인도 함께 따라 웃었다.
“하긴……. 자네가 마술이라도 부린 줄 알았다. 해구 그넘처럼 말이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해구가 마술로 눈속임을 했다 안 하나?”
“마술…… 을요?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리고 잠시 후 노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그넘이 어릴 때 부모 속을 많이 썩였다. 동네에 들어온 서커스단을 따라 집을 나간 기라. 그넘 아부지가 몇 달을 헤매서 부산까지 가서 찾았다더라. 그런데 아 글쎄 그넘이 거기서 마술을 배웠는지, 사람들 앞에서 묘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안 하나.”
“……그런데요?”
“청년이 되어서도 동네 행사 때마다 마술 쇼인가 뭔가 하던 놈이었다. 허접한 수준은 아니더라. 낚시 대회에서 속임수를 썼다는 소문이 있을 때,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틀림없이 그넘이 잔챙이 감성돔을 대물로 둔갑시키는 마술을 부린 거라고 말이다.”
상자에서 비둘기가 튀어나오고, 미녀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며, 심지어 온몸을 결박당한 사람이 버젓이 옷까지 바꿔 입고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 마술이다.
모두가 눈속임일 뿐이다.
하지만 코앞에서 관찰하는 방청객들도 속아 넘어가는 것이 마술의 세계 아니던가.
낚시의 영역이라면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마술은 전혀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갑자기 정수리가 따끔거렸다.
위에서 딱따구리 몇 마리가 동시에 내 머리를 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