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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105화 (105/130)

[제105화] 담판

외삼촌의 일로 찾아왔다는 말에, 이해구는 미간을 좁혔다.

“……외삼촌이라고 했나?”

그가 아직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습니다.”

“자네 외삼촌이 누군가? 심부름이라도 왔나?”

“아닙니다. 제 외삼촌의 성함은 김. 동. 현이라고 합니다.”

이해구는 좁쌀만 한 눈알을 굴렸다. 선뜻 누군지 기억해 내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가만히 그를 살폈다.

그리고 잠시 후 커피 잔을 들고 있던 그의 손가락이 움찔하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이해구의 얼굴 근육도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는 곧 태연한 얼굴로 돌아와 내게 물었다.

“김동현이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 그럼 자네가 동현이의 조카라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일에 몹시 단련된 사람 같았다.

좀처럼 알 수 없는 감정이 이해구의 얼굴을 스쳤다. 확실치 않았지만, 반가움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내가 동현이의 조카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그래. 돌아가신 분의 일로 왔다니, 뭔가 묻고 싶은 게 있는 게로군. 내 말이 맞는가?”

갑자기 훅 들어오는 바람에 나 또한 움찔했다.

빙빙 돌려 말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나는 찾아온 목적을 상기하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곳에서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외삼촌이 떠나시게 된 당시 상황이 알고 싶어서 이렇게 불쑥 찾아왔습니다.”

이해구가 갑자기 커피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사뭇 의뭉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응시했다. 그의 동공이 작은 점처럼 단단하게 뭉쳐 보였다.

“외삼촌이 그리 허망하게 돌아가셨으니,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지사겠지. 하지만 좀 의아스럽구만. 많은 사람 중에 왜 나를 찾아왔는지 말일세.”

“그, 그건…….”

‘속임수’, ‘방파제’, ‘해무’…….

여러 개의 키워드들이 내 머릿속을 떠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얘기부터 꺼내야 할지 궁리하던 그때, 이해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네. 이미 동네 사람들 누군가에게서 헛소문을 듣고 온 모양이군. 내가 속임수를 썼다고 하던가?”

상대방의 입에서 먼저 상서롭지 않은 그 단어가 튀어나오자,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아직은 확인되지 않은 소문. 나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며 그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사실은 저도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 어르신을 불쾌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가족의 입장에서 그날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헤아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해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몸을 뒤로 젖혔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태연한 모습이었다.

“동현이와 내가 함께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네. 하지만 나와도 둘도 없는 친구였지. 충분히 이해하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늘 이인자였던 내가 처음으로 그날 동현이를 이겼으니 그럴 만도 했겠지. 그런 소문이 잠시 떠돌았던 것은 사실이네. 결론부터 말해 주겠네. 속임수.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네.”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하지만 어르신이 그날 잡으신 최대어에 대해 의혹의 시선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눈자위가 붉게 변색되었고, 빛깔이 몹시 어두웠고, 또한…….”

동생이라는 사람이 갯바위에 동행하지 않았느냐는 말은 꺼내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이해구가 내 말을 자르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자네도 낚시꾼이 아닌가? 낚시는 어떤 스포츠보다 의외성이 많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겠지. 몇몇 남의 일에 끼어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네.”

“…….”

“운이 좋았던 것은 부인하지 않겠네. 경기의 룰도 내게 유리했고 말일세. 자네의 외삼촌이 나보다 두 배나 더 많은 조과를 올리고도 졌으니 그런 얘기가 나올 법도 했지. 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최대어를 잡은 건 분명한 사실이니 말일세.”

“…….”

이해구의 눈동자는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연기의 달인이 아닌 한, 천장을 올려본다든가 하는 전형적인 거짓말쟁이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이제 충분히 설명이 된 건가?”

“…….”

나는 침묵했다.

아직 꺼내야 할 더 중요한 화두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작심하고 입술을 떼려던 그때, 이해구의 인자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직 묻고 싶은 게 남은 게로군. 어려운 걸음을 했다는 거 알고 있네. 주저하지 말고 물어보게. 보아하니 다른 흉측한 소문도 들은 모양이네만.”

“……사실은 그렇습니다. 차마 입 밖에 꺼내기도 송구스럽습니다.”

“괜찮네. 나라도 그런 말을 들었으면 그냥 넘어가지는 못했을 걸세. 원한다면 그것도 내가 해명해 줄 수 있네.”

들어올 때와 달리 내 마음은 빠르게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외삼촌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을 처음 접하던 순간부터 내 가슴을 옥죄던 사슬들. 그것들이 조금씩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이해구의 너그러운 태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잠재의식 속의 내가 모든 것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이해구는 손을 뻗어 다시 커피 잔을 쥐었다. 그의 조금은 긴 얘기가 시작되었다.

“그날 밤 동네잔치가 벌어졌네. 대회에서 우승한 나를 위해 마련된 자리였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었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자네도 짐작할 수 있을 걸세.”

“……저의 외삼촌 때문이었군요.”

“맞았네. 동현이는 몹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네. 누구보다도 나를 축하해 줄 거라 생각했던 친구였기에, 나로서는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었지.”

“…….”

“솔직히 나도 당황스러웠네. 낚시 그 자체를 즐기는 친구였기 때문이지. 승부에 집착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일세.”

왜 그랬을까?

30년의 세월을 거슬러 그 당시 외삼촌의 심정을 헤아리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조금 더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동현이는 그날 술을 많이 마셨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술잔을 탁 내려놓더니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 나는 곧바로 그를 따라나섰다네. 하지만 나는 끝내 동현이를 발견하지 못했지. 그날 내가 동현이를 붙잡을 수 있었다면……. 내가 조금만 더 침착하게 그를 찾을 수 있었다면……. 나는 그날의 실수를 두고두고 후회하면서 살아왔다네.”

“실수였다니 그게 무슨…….”

이해구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30년 전의 일을 떠올리기 싫은 듯 몹시 괴로워하는 표정이었다.

“식당 밖에는 안개가 자욱했네. 나는 동현이의 이름을 외치며 식당 근처를 배회했지. 아무리 불러도 답이 없었고, 그때 나는 동현이가 집으로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네. 동현이는 언덕배기 중간쯤에서 살고 있었지. 그것이 내 오판이었네. 집 앞에서 서성이다 한참 후에 식당으로 돌아와서야 알게 되었지. 친구는 정반대인 방파제 쪽으로 갔다는 사실을…….”

“아아…….”

“이상하리만큼 해무가 짙게 깔린 밤이었네. 그렇지만 않았어도 자네의 외삼촌을 발견할 수 있었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방파제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면 친구를 잃지는 않았겠지.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운명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마저 든다네.”

술에 취해 방파제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을 외삼촌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결국 외삼촌을 죽음을 이르게 만든 것은 좌절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승을 놓쳤다는 좌절이 술기운과 겹쳐 벌어진 불상사였던 것이다.

허탈감과 더불어 한편으로 안도감을 느끼며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해구 영감은 여전히 허망한 눈동자로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기운이 내 뒷목을 타고 오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해구의 긴 설명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작은 퍼즐 조각을 발견한 것 같았다.

뭘까?

머릿속에 깔린 안개 속에서 어떤 사내의 얼굴이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상상 속의 사내였다.

이해구의 동생.

그 일이 있고 나서 3년 후에 세상을 떴다는 그 사내.

나는 그의 존재를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싹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줄달음쳤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해구에게 물었다.

“어르신…….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아까 우리 외삼촌이 식당에서 나가신 뒤에 곧바로 따라나섰다고 하셨습니다. 외삼촌의 이름을 여러 번 외치셨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누군가를 발견했어야 합니다.”

“동현이를 보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나?”

“외삼촌이 아니고 그분을 말입니다. 밖에서 소변을 보고 계셨다는……. 바로 어르신의 동생분 말입니다.”

“그, 그건…….”

이해구는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그와 대면한 이후로 처음 보게 되는 표정의 변화였다.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황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태연하게 이어졌던 이해구의 말들. 그럴듯하게 들렸던 그의 얘기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말씀해 주십시오. 정말로 그날 외삼촌의 집으로 달려가신 게 사실입니까?”

“…….”

“30년 전의 일입니다. 제발 말해 주십시오. 제가 원하는 건 그날의 진실, 그것뿐입니다.”

잔잔했던 내 가슴에 다시 거친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미 공소 시효도 끝나 버린 그날의 일. 나는 간절함을 담아 그를 올려다보았다.

긴 침묵이 흘렀다.

흔들리던 이해구의 눈동자가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잠시 후 이해구는 평온한 얼굴로 변하여 긴 침묵을 깼다.

내가 기다리던 답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엉뚱한 질문이었다.

“자네는 왜 낚시를 하는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질문의 의도도 모르겠지만, 대꾸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낚시를 하지. 그건 즐거움이 될 수도 있고, 물고기가 될 수도 있네.”

“말씀해 주십시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계속되는 재촉에도 이해구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내가 왜 자네 외삼촌을 좋아했는지 아나? 그는 남들과 달랐어. 무엇을 얻기 위해 낚시를 하지 않았다네. 그에게 낚시는 사람들을 향한 애정과 배려였어. 낚시로 크게 이름을 날릴 수도 있었고, 비싼 고기를 팔아 적지 않은 돈을 벌 수도 있었지. 하지만 그 친구는 월세방을 전전하면서도 그런 욕심이 없었네.”

“…….”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나도 돈 욕심은 없었지. 하지만 나는 낚시로 유명해지고 싶었다네. 바닷가에서 태어나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낚싯대를 쥐었지. 나에게 낚시는 삶 그 자체였다네.”

이해구의 눈빛이 아련하게 흐려졌다.

잠시 호흡을 고르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의 외삼촌과 함께 낚시를 하던 어느 날이었네. 그날도 동현이는 신들린 사람처럼 고기를 잡았었지. 갑자기 바다가 원망스럽게 느껴지더군. 진정한 천재에 가려 이인자의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운명. 내게 헛된 욕망만을 심어 준 바다를 향해 나는 저주의 말을 퍼붓고 말았다네.”

말을 멈춘 이해구가 내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모든 것을 초월한 눈빛이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정말로 진실을 알고 싶나?”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제안을 하나 하지.”

“무, 무슨 제안을 말입니까?”

얘기가 또다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자네에게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네.”

“그, 그게 무엇입니까?”

“나와 대결을 하세. 자네의 외삼촌과 대결을 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말일세. 나를 이긴다면 모든 것을 말해 주겠다고 약속하겠네.”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도대체 어떤 진실을 말하려, 이다지도 황당한 대결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한 마지막 도박일까?

노인의 의도를 달리 해석할 방도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나는 인정해야 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나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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