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볼락 꽃
볼락은 어초뿐 아니라 여밭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물론 어초에 도사리고 있는 볼락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씨알인 경우는 많다.
나는 어초 공략이 어려운 사릿물때에 굳이 인공 어초만 고집한 선장의 의도가 불순하다고 판단했다.
낚시에 능한 작대기들만을 위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사이즈라도 볼락의 탈탈거리는 손맛이 그리워 찾아온 보통의 낚시꾼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나는 이제부터라도 그들의 시간이 되어 주기를 바랐다.
배가 이동하는 동안, 사심희는 손님들에게 멀티싱커를 나눠 주고 있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걸로 열 마리만 잡아도 원이 없겠네요.”
“감사합니다.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멀티싱커군요. 저도 잘 쓰고 있습니다. 하하.”
일찌감치 낚시를 접고 선실로 들어갔던 두 명의 손님들도 기지개를 켜면서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 사심희와 장재준 영감의 몫을 마지막으로 10개의 봉돌은 모두 동이 났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때, 내 근처를 서성이는 두 명의 작대기가 눈에 띄었다.
“우리도 하나 빌릴 수 있습니까?”
“죄송합니다만, 보시다시피…….”
생계를 위한 목적으로 왔을 수도 있다. 굳이 그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은 이미 충분히 잡았고, 봉돌은 남아 있지 않았다.
작대기들이 건들거리면서 선실로 들어가고 있을 때, 때마침 배는 여밭 포인트에 도착했다.
나는 배가 정지하기도 전에 휘파람을 불어 물속 상황을 체크해 보았다.
바닥에 깔린 자잘한 돌 틈 사이로 다수의 자잘한 볼락들이 왕성하게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저 정도면 편안한 낚시로 남은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배 안에는 다시 활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주르륵!
채비를 내려 보니 수심은 대략 40미터.
볼락들이 갯지렁이를 발견하고 꼬리를 흔들었다. 정조 시간이 되어 물의 흐름도 느려지고, 활성도도 높아 보였다.
“오오! 담그자마자 입질이 오네요.”
“이제야 낚시하는 거 같군요. 허허.”
사심희와 장재준 영감의 얼굴에서 졸음기가 싹 사라졌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입질이다!”
“그래도 볼락 맛은 보게 생겼네.”
그렇게 30분 정도의 즐거운 낚시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때 나는 집어등을 향해 상층부까지 올라온 볼락들을 발견했다.
“드디어 줄을 타기 시작했어!”
“볼락들이 떴어! 정말로 줄줄이 올라오는구나.”
어초로 진입할 때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기분 좋은 긴장감은 없었다. 씨알 또한 그리 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아름다운 볼락 꽃이 활짝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낚시를 마치고 돌아온 아지트.
주방 안에는 프라이팬에서 피어오른 고소한 냄새로 가득했다.
고동우는 벌써 몇 마리를 해치웠는지도 모른 채, 연신 볼락을 뜯고 있었다.
“정말 기가 막히는 맛이다.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게 우리 가족들 생각나는구나.”
벌써 두 번째 접시를 들고 돌아온 사심희가 키득거렸다.
“집에 가져가시라고 몇 마리씩 챙겨 놓았으니까 걱정 마세요.”
“정말이야? 도대체 얼마나 잡은 거야?”
“한 이백 마리쯤?”
“이야. 세 명이서 그 정도면 대박이었겠구나? 그런데 씨알이 좀 작은 게 아쉽네.”
“…….”
사심희는 말을 뚝 멈추고, 딴청을 피웠다.
초반에 어초에서 잡았던 굵은 놈들은 전부 나눔 배송으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장재준 영감이 껄껄 웃으며 고동우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원래 구이용으로는 작은 사이즈가 좋습니다. 남도 사람들은 작은 볼락들만 골라 숯불에 굽곤 한답니다. 비늘도 치지 않고 머리째 먹기 좋은 사이즈라고 말입니다. 허허.”
“그래요? 하긴 이렇게 맛을 볼 수 있다는 게 어딥니까? 도라에몽 님도 왔으면 환장을 하고 먹었을 텐데, 없어서 다행이네요. 하하.”
보람이는 일이 바빠 오늘은 참석하지 못했다.
멤버들과 오랜만에 즐거운 저녁 시간이었다. 사심희가 만들어 준 볼락구이 정식으로 배를 채우고 다들 평화롭게 수다를 떨고 있을 때였다.
지이익~
테이블 위에 올려 둔 내 휴대폰이 진동했다. 무심코 그것을 들어 올린 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지고 말았다.
흔들리는 액정에 떠오른 발신인의 이름.
미니중기 노인의 전화였다.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가는 내 등 뒤로 고동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데 그렇게 혼비백산해서 뛰쳐 나가냐? 빨리 오지 않으면 볼락은 다 내 거다!”
아지트의 계단을 반쯤 내려와, 나는 전화를 받았다.
“내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놈이 왔다. 알려 달라고 하지 않았나?”
“아…….”
남해를 떠나면서, 나는 그에게 이해구가 서울에서 돌아오면 알려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미니중기 노인은 약간 걱정이 앞서는 듯했다.
“알려 달라고 해서 전화는 해 줬다만,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아이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영감님 얘기는 절대로 꺼내지 않겠습니다.”
“와? 내가 겁나는 줄 아나? 말해도 상관없다. 내는 자네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섣불리 해구 그넘에게 덤볐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 안 하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와 통화를 마치고 나는 한동안 멍하니 계단참에 서 있었다. 미니중기 노인의 충고는 나도 고민하고 있던 문제였다.
이해구가 대회에서 속임수를 썼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문에 불과하다. 짙은 안개 속에 이해구가 어디에 있었는지, 그와 외삼촌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아직 의혹의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막상 이해구를 찾아갈 생각을 하니, 언제 가야 할지, 가면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불길처럼 번져 가던 복수심은, 지금 돌이켜 보면 미약한 근거에서 비롯된 감정이었다는 회의감도 없지 않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불현듯 엄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엄마?”
“오, 유록아. 저녁은 먹었니?”
“그럼요. 엄마는요?”
“이제 먹어야지. 오늘은 식당에 손님들이 좀 많았다. 아들 덕분인지 요즘 손님들이 늘었거든. 그런데 너 술 먹은 거 아니냐?”
술은 전혀 먹지 않았지만, 밤샘 낚시를 하고 돌아와 목이 잠긴 탓이었다.
“아니에요. 엄마. 늘 조심하고 있어요.”
“그래야지. 그래야…….”
하시려던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녀가 말을 삼킨 이유도 알 것 같아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엄마! 나중에 또 전화드릴게요.”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통화를 마친 내 얼굴에 다시금 딱딱하게 굳어졌다.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결국은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다. 부딪쳐 봐야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겠다는 결론이었다.
오랜 기간 엄마의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
나는 풀어 주고 싶었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그저 술주정뱅이는 아니었으며, 남들이 손가락질하듯 고주망태가 되어 허망한 최후를 맞은 것은 아니라고 그녀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여기서 뭐 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심희가 아지트 문가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어, 통화를 좀 길게 했어.”
“하도 안 오길래 나와 봤어요. 괜찮은 거죠?”
“그럼.”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요?”
그녀는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 묻지 않았고, 굳어 있는 내 안색을 먼저 걱정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
“내일 어디 좀 가 봐야 할 곳이 생겼어. 미안하지만 베타를 좀 맡아 주면 좋겠어.”
“알았어요. 빨리 들어가요.”
계단을 오르면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디에 가는지 궁금하지 않아? 언제 오냐고도 묻지 않네?”
사심희가 갑자기 몇 걸음 내려와 내 팔꿈치를 파고들었다.
“얼굴에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쓰여 있잖아요.”
“…….”
“식사 잘 챙기고 잘 다녀와요. 그렇다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알았어.”
고마웠다.
지금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 줄 말이 없었다. 이해구와의 담판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나도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지트 현관 앞에서 팔짱을 풀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고동우가 정말로 볼락을 다 해치우고 입가에 이쑤시개를 꽂고 있었다.
* * *
다음 날.
나는 또다시 남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루 전날 통영에서 올라온 길을 따라 똑같이 내려가는 길이었다.
머릿속에는 이해구에게 던지려 하는 질문 리스트가 쓰이고, 지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순순히 진실을 말할 거라는, 순진무구한 기대는 품지 않았다.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내가 예상하는 그의 답변은 오직 한 가지였다.
‘난 속임수를 쓰지 않았네. 나는 방파제로 따라간 적이 없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잘못된 행동이 없었다면 이해구는 발끈하며 부인할 것이고, 부정이 있었다면 잡아뗄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말 탐지기라도 있다면…….
열 길 물속은 볼 수 있지만, 한 길 사람 속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현실이 새삼 아이러니했다.
네 시간을 달려 차는 ‘옆 동네’에 도착했다.
나는 바닷가 맞은편의 언덕으로 서서히 차를 몰아 맨 꼭대기에서 멈췄다.
인근의 집들과 대비되는 커다란 이층집이었다.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었다. 나는 긴 심호흡과 동시에 푸른 대문의 초인종을 꾹 눌렀다.
“누구십니까?”
인터폰에서 흘러나온 낮고 음산한 목소리.
예전에 무표정한 얼굴로 읊조리듯 내게 말을 건네던 이해구의 음성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강유록이라고 합니다. 일전에 낚시 대회에서 뵈었던…….”
쩌엉!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대문의 도어록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삐그덕 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디밀어 보니, 누런 잔디가 깔린 마당이 보였다.
1층 현관문이 열리면서 노인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조심하시게. 잔디를 밟지 않도록.”
주춤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작은 석재 발판들이 현관까지 이어져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돌다리를 따라 그에게 다가갔다.
“자네…… 여긴 무슨 일로 왔는가?”
“오랜만입니다. 어르신. 지나는 길에 인사나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런가?”
노인은 작은 눈알을 연신 굴리면서도 선뜻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잔뜩 경계하는 듯한 눈초리였다.
오다가 음료수를 사 오길 잘했다.
나는 들고 있던 비타민 음료 박스를 흔들면서, 그에게 어색한 눈웃음을 보였다.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사 왔습니다.”
“……잠깐 들어오시게.”
실내는 어두컴컴했다.
거실에 깔린 카펫에 올라서니 바닥이 차가웠다.
그의 아내가 서울에서 입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음을 상기하며 적당한 인사말을 건넸다.
“사모님께서 편찮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쾌차하셨습니까?”
말을 꺼내고 나서,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해구의 눈자위가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의혹의 눈길이 날아들었다.
“그건 어떻게 알았나?”
“아, 그, 그게. 그러니까 아까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어르신 집을 물어봤더니 거기 아주머니가…….”
“그 여편네가 별 소릴 다 했구만. 알았네. 거기 앉게. 아내는 지금 근처 딸네 집에 가 있다네.”
임기응변으로 그럭저럭 넘어가 다행이었다.
노인은 내게 소파 자리를 권하고, 직접 주방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그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을 들고 돌아와 테이블 위에 툭 올려놓았다.
“내가 탄 커피라서 맛이 어떨지 모르겠구만.”
따끈한 믹스커피 한 모금을 마셨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토록 속으로 되뇌면서 내려왔지만,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머리가 백지처럼 텅 비었다.
방 안을 둘러보며 뜸을 들이고 있던 그때였다.
조용히 커피를 마시던 이해구가 무표정한 얼굴을 내게 가까이 가져왔다.
“그럼 이제 나를 찾아온 이유를 말해 보시게.”
“하아, 말씀드렸다시피 인사를 드리러…….”
“돌려서 말할 필요 없네. 우리가 그렇게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지 않은가? 편하게 말해 보시게.”
조금의 미동도 없는 이해구 노인의 눈동자가 푸른 섬광처럼 빛을 뿜었다.
잠시 후 나는 커피 잔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저의 외삼촌에 관한 일로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