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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103화 (103/130)

[제103화] 인공 어초

한창 잘 나오고 있었는데, 대체 어디로 옮긴다는 건가…….

아무래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한 작대기들이 선장에게 옮기자는 신호를 보낸 것이 틀림없었다.

이동 중에 선실에서 쉬는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사심희는 해맑은 목소리로 자신이 잡은 볼락을 자랑하기 바빴다.

“구워 먹기에 딱 좋은 사이즈였어요. 잘만 하면 저도 오십 마리는 잡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볼락 꽃만 피면 충분히 가능하지. 캡틴 님 오늘 정조 시간이 언제였죠?”

“밤 12시면 물이 많이 죽을 겁니다. 지금이 9시니까 세 시간만 버티면 되겠군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들 중 누구 하나도 기가 꺾인 사람은 없었다. 작대기들 위주로 움직이는 선장이 탐탁지 않았지만, 어디로 가든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20여 분을 달리던 배가 또다시 거칠게 정지하면서, 새로운 포인트로의 도착을 알렸다.

“이번에는 인공 어초입니다. 바닥에서 8미터 높이니까 알아서 판단하세요.”

인공 어초는 물고기의 아파트라 불리는 곳.

어족 자원 증가를 위해 바다에 설치하여 물고기들의 서식과 산란을 돕기 위한 피라미드 모양의 철골 구조물이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인공 어초는 자연 어초보다 굵은 씨알을 만날 수 있으나, 웬만한 고수들이 아니면 밑걸림을 피하기 어려운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공 어초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작대기들을 위한 이동이라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채비를 담그고 스윽 훑어보니, 인공 어초의 중간 부분에 군집한 물고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배는 예외 없이 선수부터 포인트로 진입했다.

줄줄이 늘어선 봉돌들이 빠르게 구조물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선두에 있는 봉돌의 위치에 주목했다.

과감한 시도였다. 팔뚝 사내의 봉돌은 정확하게 물고기들이 군집된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대단한 강심장이군.

철골 재질의 인공 어초는 한번 걸렸다 하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봉돌의 무덤이다. 선두의 봉돌은 구조물에 닿을락 말락 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구조물의 형태를 훤히 보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투두두두둑!

앞자리의 초릿대에서 콩을 볶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몇 마리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볼락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와 일제히 미끼를 물고 늘어졌다.

잠시 후 작대기 사내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여유 있게 릴을 조정하며 자신의 봉돌을 철탑 위로 넘겨 버렸다.

위잉~ 위잉~

선두 자리의 사내에게서 들려오는 묵직한 전동릴 소리를 들으며, 나 또한 레버를 젖혔다.

“아싸! 드디어 만땅으로 올라왔네. 하하핫!”

작대기 사내는 어금니를 드러내며, 조타실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올라온 내 채비에는 달랑 두 마리의 볼락이 파닥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전세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뒤이어 들려오는 탄식 소리가 배 전체를 덮었다.

“아아! 또 바닥에 걸렸어요.”

“아이쿠. 저도 당했네요.”

사심희와 장재준 영감이 허겁지겁 낚싯대를 세우고 줄을 끊느라 분주했다.

그 뒤에도, 그다음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작대기들과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손님들이 채비를 다시 매느라 한바탕 난리 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선장은 배를 한 바퀴 돌리더니 다시 똑같은 포인트에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배의 앞쪽이 포인트를 향하고 있었음은 물론이었다.

“뭐야? 죄다 채비를 매고 있는데 벌써 들어가는 건가?

“앞에 놈들만 잡으라는 얘기구먼.”

사람들의 입에서 불평이 쏟아질 법했다.

급기야 성깔깨나 있어 보이는 어떤 손님이 조타실 창문을 거칠게 두들겼다.

“지금 장난하쇼? 뒤에 있는 손님은 손님으로 안 보이는 거요? 선미 쪽으로도 번갈아 들어가야 우리도 잡을 거 아뇨?”

“하하. 죄송합니다. 바람과 조류가 방향이 달라서 이렇게밖에 못 합니다. 뒤에서도 잘하시는 분들은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데…….”

정말인지 거짓 핑계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은근히 손님의 낚시 실력을 탓하는 무례한 태도가 엿보이는 대답이었다.

그들을 지켜보던 장재준 영감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이 안 통하는 선장이네요.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습니다.”

배는 다시 포인트에 가까워지고, 나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봉돌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토도독! 토독!

초릿대가 아래로 살짝 휘청거리다가 다시 멈췄다. 전형적인 볼락의 입질.

나는 경쾌한 손놀림으로 릴을 한 바퀴 감고 잠시 기다렸다.

투두둑! 투두둑!

이번에는 초릿대가 아래로 꾸욱 처박혔다가 덜덜 떨면서 멈췄다. 아까보다 큰 놈이다. 두 마리째!

이제 인공 어초가 일 미터밖에 남지 않았다.

올릴까 말까 망설이던 그 순간.

후두두둑! 후두두둑!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물고기들 때문에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텅!

쇠와 쇠가 부딪칠 때 나는 소리.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아직 살아 있었다.

철 구조물을 드르륵 긁으며 올라타고 있는 내 봉돌이 시야에 들어왔다.

푸드덕! 푸드덕! 푸드덕!

잠시 후 7개의 바늘을 꽉 채운 볼락들이 굴비처럼 줄줄이 올라왔다.

그 뒤로는 똑같은 장면의 반복이었다.

배는 다시 크게 원을 그리며 포인트에 들어갔고, 마릿수의 볼락을 건져 내는 사람은 나와 작대기들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여지없이 밑걸림에 아우성을 쳤고, 간혹 위기를 탈출한 사람은 한 마리를 건지거나, 빈손으로 채비를 올린 경우였다.

“봉돌 더 없어요?”

사심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또 한 박스의 멀티싱커를 가방에서 꺼내야 했다.

“뽑을 만큼 뽑은 것 같습니다. 이동하겠습니다.”

작대기들의 채비에 걸린 볼락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자, 선장은 또다시 포인트 이동을 알렸다.

1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이번에도 인공 어초였다.

낚시하기에 수월한 여밭을 기대하던 사람들은 또다시 바짝 긴장하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삑!

선장의 부저 소리에 사람들은 일제히 채비들을 떨궜다.

텅! 드르륵!

낚시를 시작하자마자 도처에서 들려오는 금속음과 탄식들.

선장이 인공 어초의 바로 위에서 부저를 누른 탓이었다.

화들짝 놀라 줄풀림을 멈추고 내려다보니 아까보다 더 무시무시한 사이즈의 인공 어초가 물속에 잠겨 있었다.

이번에는 작대기들도 채비를 몽땅 잃었는지, 선장을 향해 볼멘소리를 던졌다.

“에이, 쓰벌! 아까운 봉돌만 날렸네. 선장! 거 조심 좀 하쇼.”

“미안합니다. 하하. 다시 진입하겠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빈 채비를 끌어 올리면서 나는 예감했다. 조만간 배 안에서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게 되리라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에서 작살난 채비를 끌어 올린 직후,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져온 봉돌을 모두 소진한 손님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봉돌 하나만 빌립시다.”

“아, 예.”

뒤쪽에 있는 늙수그레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손을 벌렸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에게 멀티싱커 하나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느 젊은 청년이 내 근처에서 머리를 긁적거리는 게 아닌가.

눈치 빠른 사심희가 얼른 봉돌 하나를 꺼내 주었다.

“봉돌 필요하신 거죠?”

“네. 죄송합니다. 열 개나 가져왔는데 벌써 떨어질 줄은 몰랐네요. 그냥 빌릴 수는 없고 돈을 내겠습니다.”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요. 그냥 가져가세요.”

큰일이다.

이제 겨우 밤 11시가 가까운 시각.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배 전체에서 봉돌 기근으로 낚시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기우이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30분 정도가 지나서, 그 일은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다.

대여섯 번의 포인트 진입으로 나는 적지 않은 볼락들을 추가했다. 장재준 영감과 사심희도 가끔씩 밑걸림으로 곤욕을 치렀지만, 그런대로 손맛은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배가 또다시 근처의 인공 어초로 자리를 옮기면서 불상사는 시작되었다.

낯선 인공 어초에 적응하지 못한 다수의 손님들이 동시에 채비 손상을 당하자,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에게 민망한 손을 내미는 웃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봉돌 남은 거 있으시면…….”

“미안해요. 저도 이게 마지막이라서…….”

“죄송하지만 봉돌이랑 카드 채비랑 바꾸시면 안 될까요?”

“저도 봉돌이 떨어져 낚시 접으려던 참이었어요.”

급기야 몇몇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지만, 나는 그들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일행 모두 한 개씩밖에 남지 않아서요.”

허망한 눈빛으로 그들이 돌아가고 나자, 사심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 박스 가져왔으면, 아직 한 박스 남은 거 아녜요?”

“쉿! 조용히 해.”

“우럭 님, 서, 설마…….”

전날 세 박스를 챙겨 왔다는 내 말을 그녀가 기억할 줄은 몰랐다.

그녀의 눈빛이 실망감으로 흔들리려 할 때, 나는 그녀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나중에 설명해 줄게.”

물론 우리 일행이 써야 할 봉돌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가 봉돌을 감춰 둔 진짜 이유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지금 선심 쓰듯 봉돌을 나눠 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10분도 못 가 철골에 박혀 버릴 봉돌.

나는 손님들이 조금 늦더라도 편안한 밤 볼락 낚시를 즐기게끔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곧 그 시간이 임박하고 있었다.

허탈하게 아이스박스를 깔고 앉은 몇몇 손님들이 모습을 뒤로하고 낚시는 계속되었다.

두 번의 인공 어초 공략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내 앞자리의 사내가 움찔하더니 낚싯대를 이리저리 휘젓기 시작했다.

“에구구. 욕심 부리다 걸렸네. 쓰벌. 야! 봉돌 하나만 던져라.”

그런데 반대쪽의 뱁새처럼 생긴 작대기도 봉돌이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나도 이게 마지막이야. 선장님한테 가 보든가.”

선장에게 쪼르르 달려갔던 팔뚝 사내는 잠시 후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돌아왔다.

“쓰벌! 무슨 낚싯배가 예비 봉돌도 안 가지고 다녀! 오늘 낚시는 쫑이야. 이게 말이 돼?”

작대기 한 명 아웃.

내심 쾌재를 부르며 나는 보란 듯이 다섯 마리의 볼락들을 들어 올렸다.

또다시 10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는 사심희와 장재준 영감도 마지막 봉돌을 잃고, 나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배 전체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은 이제 건너편의 뱁새와 나, 단 두 사람뿐이었다.

또다시 10분이 지나고 거의 밤 12시가 가까워진 시각이었다. 뒤에서 튀어나온 거친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뱁새가 낚싯대와 씨름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아이고, 나도 X됐다. 오늘 일진이 안 좋은 거 같더니만.”

이제 됐다! 두 사람 모두 아웃이다.

밤하늘에 나 홀로 주렁주렁 볼락들을 휘두르고 있을 때, 예상했던 대로 선장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저어, 손님. 이제 슬슬 들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직 두 시간 남은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오늘 봉돌을 적게 가져와서 다들 저렇게…….”

그는 손가락으로 멀뚱히 앉아 있는 손님들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이 뭐 어떻다는 거죠?”

“다들 저렇게 돌아가기를 기다리지 않습니까? 날씨도 춥고 손님들 생각해서…….”

나는 코웃음을 치며 담배를 뻑뻑 피워 대고 있는 팔뚝과 뱁새를 가리켰다.

“그렇게 손님들 생각하시는 분이, 지금까지 저 두 사람만 신경 쓰신 겁니까?”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저는 다만…….”

나는 그의 말을 듣는 체 마는 체하며, 몸을 숙여 보조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어라? 여기 봉돌이 한 박스 더 있었네? 가만있어 보자, 이거면 딱 10명에게 나눠 줄 수 있겠다!”

표정이나 대사나 실로 어색하기 짝이 없는 발 연기였다. 일부러 사람들 들으라고 크게 친 소리였다.

내 숨은 의도를 그제야 눈치챘는지, 사심희는 고개를 돌려 키득거렸다.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작대기들과 나를 제외한 손님들은 모두 10명.

80호가 7개, 나머지 20호 14개를 끼워 맞추면 모두 10개의 봉돌이 만들어질 수 있다.

깜짝 놀란 손님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밀었다.

잠시 후 나는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는 선장에게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그에게 속삭였다.

“손님들을 그렇게 끔찍하게 생각하신다면, 근처의 여밭으로 갑시다. 안타깝지만 내 봉돌이 작대기들에게까지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군요.”

“…….”

귀신의 음성을 들은 사람처럼 선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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