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작대기
오후 5시 10분.
배는 출발했고, 우리는 찬 바람을 피해 선실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닥에 전기장판을 틀었다지만, 실내는 허연 입김이 보일 정도로 한기가 서려 있었다.
두툼한 패딩 점퍼를 입고 온 사심희가 이를 딱딱거리며 떨고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핫팩을 꺼내 장재준 영감과 사심희에게 건네주었다.
“두 분, 이거라도 쓰세요.”
배가 달리는 동안, 선실 안은 고요했다.
아랫목이라면 오순도순 이야기꽃이라도 피울 테지만, 추워서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걸까…….
배는 두 시간째 달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속도를 늦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꾸르릉!
전속력으로 달리던 배가 거칠게 엔진을 정지한 탓에, 사람들의 몸이 일제히 앞으로 쏠렸다.
“선장님 운전이 좀 와일드한 것 같네요. 허허.”
장재준 영감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르르 선실 밖으로 나와 보니, 멀리 커다란 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자리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조타실 창문을 통해 선장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저기 보이는 섬이 갈도예요.”
갈도.
근처의 욕지도와 더불어 황금어장으로 알려진 섬이다.
도착과 동시에 집어등에 불이 들어오자 그야말로 장관이 펼쳐졌다.
정면으로는 우뚝 솟아오른 기암절벽.
아래로는 검은 나비처럼 우글거리는 바다.
그런데 물끄러미 아래를 내려다보던 장재준 영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상보다 물 흐름이 세군요. 오늘 고생 좀 하게 생겼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물살에 맞춰 포인트를 유연하게 정한다던 선장의 말이 다소 의아해지는 순간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사심희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내게 이것저것 물어 왔다.
“카메라는 어떻게 해요?”
“내가 알아서 고정해 놓을게.”
“이렇게 지렁이를 통으로 끼우라는 거죠?”
“오오, 아주 잘했어.”
선상 볼락 낚시 또한 어구가자미 낚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낚싯대를 거치대에 고정하고 가만히 있으면 자동 후킹되는 방식이다.
다만 고운 모래밭이 아니라 거친 어초밭에서 하는 낚시인지라, 볼락이 바늘에 걸리면 한두 바퀴 릴을 감아 채비를 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닥의 어초로 도망치려는 볼락 때문에 밑걸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연 어초로 진입하겠습니다. 바닥 확인하시고 두 바퀴 감으세요.”
채비 준비를 시작도 하기 전에 선장의 멘트가 들려왔다.
보아하니 선두의 작대기 두 명은 벌써 봉돌을 들고 언제라도 던질 태세였다.
처음의 믿음직하던 모습과 달리, 선장의 행동이 탐탁지 않았다.
장재준 영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선장이 작심하고 작대기들 편의를 봐줄 심산인가 봅니다.”
“왜 그런 겁니까?”
“작대기들이 조황을 책임져 주니까요.”
“아…….”
문득 내가 확인했던 최근의 조황 사진들이 떠올랐다.
장재준 영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들은 작대기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조과였던 것이다.
“제가 오늘도 배를 잘못 택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 실력이 어디 가겠습니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한번 해 봅시다. 허허.”
나는 가방에서 채비를 꺼내 원줄에 연결시켰다.
빠른 조류에 대비하여 집에서 자작해 온 튼튼한 7단 카드 채비였다.
내가 하는 모습을 따라 하던 사심희가 불쑥 물었다.
“봉돌은 어디 있나요?”
“음. 내가 찾아 줄게.”
나는 가방 안에서 ‘멀티싱커 점보’ 한 통을 꺼냈다.
나야 한두 개면 충분하겠지만, 초보인 사심희를 생각해서 넉넉하게 세 통이나 챙겨 왔다.
나는 카드 채비에 80호 봉돌을 연결하고, 바늘마다 굵은 갯지렁이를 통으로 꿰기 시작했다.
마지막 미끼를 꿰고 봉돌을 들어 입수를 시키려던 그때였다.
위잉! 위이잉!
먼저 낚시를 시작한 작대기들의 전동릴이 돌아가고 있었다.
잠시 지켜보니 중간 크기의 볼락들이 줄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배의 첫수인지라 짧은 인사말을 건네주었다. 그랬더니 그가 내 손에 쥔 물건에 관심을 보였다.
“그건 뭔 봉돌입니까? 위아래로 나사가 있네요? 몇 호짜립니까?”
“80호인데 멀티싱커라는 제품입니다. 하나 써 보시겠습니까?”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품 홍보 차원에서 나는 바닥에 놓은 멀티싱커 박스를 가리켰다.
“괜찮습니다. 80호가 맞는지 물어본 겁니다. 어제 누가 60호짜리를 가져와 주변 사람들 고생 좀 했수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웬 봉돌을 그리 많이 가져왔나요? 나는 늘 달랑 두 개씩만 가지고 다니는데. 고수라면 한두 개만 있어도 충분한 거 아닌가요? 하하핫.”
은근히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는 듯한 말투였다.
괜히 말을 섞었다 싶은 생각에, 나는 슬그머니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퐁당!
봉돌을 따라 갯지렁이들이 주렁주렁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낮은 휘파람을 발산하며 봉돌을 주시했다.
어어…….
장재준 영감의 말처럼 물살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래로 하강해야 할 봉돌이 정면 쪽으로 사선을 그리며 뻗어 가고 있었다.
혼자였다면 봉돌의 무게를 조정하겠지만, 배에서 홀로 다른 규격의 봉돌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
다들 같은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
봉돌이 뻗어 가는 더 아래쪽으로 시야를 넓혀 보니 울퉁불퉁 자연 어초로 덮인 바닥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곳에 거센 조류를 피해 어초를 엄폐물 삼은 물고기들이 커다란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어차피 편한 낚시를 즐기기는 글렀다.
강한 조류를 의식하고, 나는 거치대에 놓인 낚싯대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바닥에 바짝 웅크린 볼락들의 머리 위에서 하늘하늘 갯지렁이를 흔들어 보았다.
코앞에서 춤추는 갯지렁이를 무심히 지켜보는 놈들…….
강한 조류 때문에 활성도가 낮은 상황이었다.
읏!
방심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달려든 볼락을 발견하고 나는 몸을 움찔했다.
투두둑!
포악한 볼락의 입질. 씨알도 20센티미터쯤으로 괜찮아 보였다.
바늘을 물고 늘어진 놈을 확인하고, 나는 신속하게 릴을 한 바퀴 감아올렸다. 볼락의 무게만큼 늘어진 낚싯대를 계산하여 봉돌이 바닥에 닿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렇지!
동료가 위에서 발버둥 치자 호기심이 발동한 다른 녀석들이 비상하며 바늘을 물고 늘어졌다.
다시 한 바퀴.
나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전동릴의 레버로 손을 가져갔다. 배가 빠르게 흐르고 있어 욕심을 내다가는 밑걸림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신속하게 채비를 거두고 있을 때였다.
내 뒤쪽에서 날아든 봉돌 하나가 어초 속에 푹 박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멋! 낚싯대가 꼼짝도 안 해요.”
뒤를 돌아보니 사심희가 사색이 되어 낑낑거리고 있었다. 다시 보니 장재준 영감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위이잉~
나는 더욱 빠른 속도로 전동릴을 감았다.
푸드덕!
수면에 닿자마자 몸부림을 치며 올라오는 두 마리의 볼락.
재빠르게 두 마리를 떼어 내서 아이스박스에 던져 놓고, 나는 사심희에게로 다가갔다.
빠르게 줄을 끊지 않으면 뒤이어 진입하는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가 갈 상황이었다.
“낚싯대를 수직으로 세워! 그리고 짧고 세게 줄을 당겨야 해!”
투두둑!
내 말대로 낚싯줄이 끊어지자, 사심희는 허탈한 표정으로 축 처진 줄을 감아올렸다.
봉돌과 연결되는 도래 부근에서 끊어진 그녀의 채비에는 갯지렁이들만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가까스로 줄을 끊은 장재준 영감 또한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오늘은 고달픈 하루가 될 것 같군요. 허허.”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도 작대기들은 잇몸을 드러내며 서너 마리의 볼락들을 채비에서 떼어 내고 있었다.
다시 채비를 내리고, 배는 계속 기다랗게 형성된 어초 위를 흘러갔다.
채비를 내리면서 멀리 깜빡이는 등대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아주 잠깐 동안만 시선을 떼었을 뿐이었다.
드르륵!
초릿대에 전해진 강한 충격에 나는 화들짝 놀라 낚싯대를 치켜들었다.
휴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가까스로 밑걸림을 피했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보니, 빵빵한 볼락 한 마리가 맨 아랫바늘에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왕사미다!
눈알이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볼락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다른 놈들을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귀한 물고기를 놓치겠다 싶어, 나는 일단 놈을 끌어 올리기로 했다.
위이잉~
강렬한 전율을 만끽하며 올린 물고기는 3짜 중반.
거의 최대치까지 자란 볼락이었다. 6짜 전후까지 성장하는 우럭과 달리, 볼락으로서는 쉽게 보기 힘든 사이즈였다.
“왕사미를 잡으셨군요. 허허.”
장재준 영감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내 오른쪽의 팔뚝 굵은 사내가 실실거리며 이죽거렸다.
“기분 좋겠수다. 단박에 삼만 원짜리를 올렸네요.”
“아. 네.”
“다 좋은 데 채비를 너무 자주 올리고 내리면 볼락들 다 도망가요.”
“…….”
될 수 있으면 그들과 말을 섞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조과물을 굳이 돈으로 평가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두 번 올리는 동안, 벌써 네 번이나 요란스럽게 채비를 올린 그들에게서 들어야 할 충고는 아니었다.
입을 꾹 닫은 채로 나는 세 번째 채비를 입수시켰다.
낚싯줄이 길게 뻗으면서 내 봉돌은 어군이 형성된 위치로 곧장 달려가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앞에 있는 팔뚝 사내의 채비는 너무 위쪽에 있어 입질을 받기 어려워 보였다.
휘청! 휘청!
낚싯대에 또다시 강한 어신이 찾아왔다. 나는 천천히 한 바퀴를 감아올리고 두 번째 습격을 기다렸다.
옳거니!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녀석이 점프를 하듯 비상했다.
후두둑! 후두둑!
두 마리가 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올리지 않기로 했다. 어느 정도 적응을 마쳤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예상대로 세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와 한입에 갯지렁이를 흡입해 버렸다.
꾸우욱! 꾸욱!
들고 있던 낚싯대가 요동을 치는 바람에 몸을 지탱하기 힘들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힘차게 채비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우럭 님! 대단해요!”
사심희가 뒤에서 신이 나서 외쳤다.
쓰윽 돌아보니, 언제 잡았는지 그녀도 한 마리의 볼락을 흔들면서 내게 눈을 찡긋하고 있었다.
20센티미터가 넘는 왕볼락들이 밤바다 위에 줄줄이 올라왔다. 세어 볼 필요도 없이 모두 다섯 마리였다.
“좀 하시네요. 프로 조사라서 그런가…….”
팔뚝 사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가 싶더니, 선장 쪽으로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그럭저럭 좋은 분위기를 탔다고 생각했다.
일곱 바늘 빼곡하게 올리지는 못했지만, 다섯 마리면 나름 줄을 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심희도 서서히 적응하고 있었고, 장재준 영감도 낱마리의 볼락들을 아이스박스에 던져 놓으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이고, 손님들이 힘들어해서 여긴 안 되겠네요. 채비 걷으세요. 20분 정도 이동하겠습니다.”
마이크에서 튀어나온 선장의 멘트를 듣고, 나는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