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밤 볼락
1월도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어느 날.
아지트에 모인 멤버들 사이에서 뜬금없는 설전이 벌어졌다.
토론은 ‘구이로 제일 맛있는 생선’이 무엇이냐는, 내가 보기엔 정답이 없는 주제였다.
고동우의 주장은 ‘전어’였다.
“집 나간 며느리가 괜히 돌아오겠어요? 생선구이의 최고봉은 단연코 전어죠.”
먹을 것에는 일가견이 있는 보람이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아니에요. 사시사철 흔히 먹을 수 있다고 고등어를 무시하면 안 되죠. 고등어구이야말로 없으면 못 배기는 음식 아닐까요?”
장재준 영감도 대화가 재미있는지 너털웃음을 지었다.
“꼰대처럼 보이기는 싫지만, 역시 경험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메로구이 못 먹어 봤습니까? 우리나라 생선은 아니지만, 수입까지 해서 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허허.”
어찌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논쟁이었다. 하지만 남해에서의 충격으로 다소의 내상을 입은 나로서는, 이러한 일상에서 평온함을 느끼고 있었다.
내 의견을 듣고 싶은지 멤버들의 시선이 쏠렸다. 솔직히 내게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음식들이었다.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는 사심희에게 눈짓을 보냈다.
“어차피 개인 취향 차이 아닙니까? 그래도 우열을 가리시겠다면 우리에겐 특급 요리사가 있잖아요.”
모두들 아차 하면서 사심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갑작스레 주목을 받게 된 그녀는, 미리 생각해 둔 대답이 있는 듯했다.
“속초에 생선구이 식당이 모인 곳 아시죠? 우리 외삼촌 가족과 거기에 놀러 간 적이 있었어요. 지금 말이 나온 생선을 포함해서 모두 여섯 가지 정도의 대표 생선구이가 나오더군요. 그때 함께 있던 우리 일행들의 원픽은 전부 한 생선을 가리켰어요. 귀한 생선이지만 그날 많이 들어와 특별히 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뭐였는데?”
“볼락 다들 아시잖아요? 저는 아까부터 당연히 볼락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요.”
볼락.
남도에서는 가을 전어와 쌍벽을 이루는 겨울철의 진객.
수도권에서는 거의 구경할 수 없는 생선이다. 회유성이 아닌 붙박이 어종이며, 본격적으로 많이 잡히는 시기는 12월 말경부터 대략 봄까지이다.
사심희의 얘기를 들은 멤버들이 동시에 무릎을 탁 내리쳤다. 모두들 볼락의 가공할 맛을 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장재준 영감이 생각이 달라졌음을 먼저 인정하고 나섰다.
“수도권에서는 거의 구경할 수도 없으니,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게 당연하지요. 인정합니다. 볼락이야말로 최고의 구이감입니다!”
보람이는 볼락이 뭔지 영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서해에서 우럭 잡을 때 가끔씩 볼락도 나오지 않나요? 매운탕거리로 쓰는 거 같던데요.”
고동우가 한심하다는 듯이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작고 붉은 생선 말하는 거지? 그건 황해볼락이라고 우리나라에만 나오는 물고기야. 낚시꾼이 그 정도는 알아야지.”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요? 우럭도 크게 보면 볼락이라던데.”
“그래도 주워들은 건 있네. 우럭의 정확한 명칭은 조피볼락이야. 열기라고 알지? 그건 불볼락이라 하고. 하지만 아무것도 붙지 않은 그냥 볼락이 제일 비싸지. 가을에는 전어지만, 지금처럼 겨울에는 나도 볼락에 한 표를 던지겠어.”
사심희의 명쾌한 사례가 담긴 의견이 모든 멤버들의 생각을 하나로 엮어 주었다. 그들의 화두는 자연스레 볼락 낚시로 옮겨졌다.
우리들 중에서 선상 볼락 낚시 경험이 가장 많은 사람은 장재준 영감이었다.
“요즘에는 좀 뜸하지만, 예전만 해도 겨울에 최소 두 번씩은 볼락을 잡으러 갔습니다. 야간 선상낚시로 대략 백 마리는 잡고 오곤 했지요.”
볼락 낚시 경험이 전무한 보람이는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렇게나 많이요?”
“얼마 전 어구가자미 낚시와 아주 유사하거든요. 바늘이 일곱 개 달린 카드 채비라는 것만 빼고요. 볼락 꽃이 피면 담그는 족족 여섯 마리씩 건질 수 있죠.”
“볼락 꽃은 또 뭔가요?”
“허허. 볼락은 야행성이고 밤에 불빛을 향해 모이는 습성이 있습니다. 바닥의 어초에 숨어있던 볼락들이 집어등 주변으로 수면까지 떼를 지어 올라오는 모습을, 볼락 꽃이 피었다고 하지요.”
가만히 듣고 있던 보람이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가 싶었다.
“우럭! 넌 볼락 낚시 해 봤어?”
“예전에 낮 볼락 갔다가 개박살 난 적은 있었어. 갯바위에서 손님 고기로 가끔 잡아도 봤고. 근데 그건 왜?”
“왜긴 왜겠어? 그렇게 맛있다는 데 네가 좀 잡아 오면 좋겠다는 거지.”
안 그래도 밤 볼락 낚시를 다녀올 계획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추운 겨울밤을 꼴딱 새워야 하는 낚시이기에, 사심희의 눈치 아닌 눈치를 보고 있던 참이었다.
최근에 가거초에서 생고생을 시키는 바람에, 시간을 두고 나중에 다녀오려는 생각이었다.
“어라? 낚시라면 열 일 제치고 떠나던 우럭 님이 어디 갔지? 나도 오랜만에 가족들과 볼락구이나 해 먹고 싶었는데 말이야.”
내 속도 모르고 고동우까지 볼락 타령에 가세했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사심희가 오히려 발을 벗고 나서는 게 아닌가.
“우럭 님, 뭐 해요? 당장 날짜 잡지 않고. 잘됐어요. 이번에는 왕창 잡아서, 멤버들도 드시고 볼락을 모르는 우리 구독자들에게 대규모 이벤트를 열어 주는 거예요.”
하아, 사심희는 나를 너무 과신하는 것 같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잡으라고, 대규모 이벤트까지 운운하는 것일까.
약간의 부담감이 밀려오던 그때, 한 명의 든든한 지원군이 손을 들었다.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허허.”
장재준 영감이 동행한다니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내친김에 다른 멤버들도 함께 할 생각이 없는지 쳐다보았더니, 모두들 내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일주일 안에 수출 주문량 맞추려면 3교대도 모자랄 판이야.”
“나도 2호점 오픈 대상지 검토하느라 좀…….”
실제로 보람이와 고동우는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바쁘다는 사람들을 억지로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나와 장재준 영감이라면 최소한 100마리 정도는 가능하리라 판단하고, 날짜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캡틴 님은 언제가 편하세요? 저는 아무 때나 괜찮습니다만.”
“글쎄요. 저는 이번 주가 편합니다. 볼락은 잔잔한 조금 물때가 적합하죠. 물때를 보면서 얘기해 볼까요?”
장재준 영감이 휴대폰으로 뭔가 검색해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이 5물이니까 당분간은 조류가 강한 기간이군요. 어떻게 할까요? 아예 열흘 정도 미루는 게.”
“그냥 가시죠. 사릿물때라고 전혀 안 잡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기야 하지만 아무래도 조과에 차이는 있을 겁니다.”
말이 나온 김에 당장 떠나고 싶었다.
때마침 심경이 복잡하던 차에 밤바다를 보고 싶기도 했다. 결국 나는 사심희에게 결정권을 주기로 했다.
“사시미 님은 언제가 좋겠어?”
“그럼 내일 당장 떠나는 게 어때요? 6물이면 그래도 해 볼 만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출조 일은 바로 다음 날로 정해졌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출조였다.
그날 밤 부랴부랴 올린 예고편에서 나눔은 ‘볼락구이를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구독자를 대상으로 선착순 신청을 받기로 했다.
* * *
다음 날 점심 무렵.
오랜만에 야간 낚시를 한다는 기대감으로 사심희는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오늘은 저도 낚시를 하는 거라 이거죠?”
“그럼. 액션이 많은 낚시가 아니니까 카메라는 고정해도 괜찮거든. 사시미 님의 아까운 실력을 묵히면 되겠어?”
“이야! 안 그래도 나눔 신청이 많아 걱정이었는데, 저도 보태게 되어서 기뻐요.”
사심희가 귀띔해 준 나눔 대상자는 현재까지 모두 30명이 넘는다. 한 사람당 다섯 마리씩만 보내 준다 쳐도 150마리를 잡아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물론 선착순이라는 단서를 달아 놓았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시행하면 그만이겠지만, 사심희는 한 사람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일찍 출발하기를 잘했다.
고속도로가 군데군데 막혔지만, 그럭저럭 통영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였다.
나는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재래시장 근처에 주차를 마치고 장재준 영감에게 물었다.
“캡틴 님!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저는 아무거나 다 좋습니다. 허허.”
두루뭉술한 장재준 영감과 달리, 사심희는 요구 사항이 명확했다.
“그럼 멍게비빔밥 어때요?”
“……그럼 그럴까?”
시장 안쪽으로 길게 이어진 골목은 맛집의 천국이었다.
두 사람을 이끌고 맛있는 한 끼를 해결하고 나니, 출항 시각인 5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부랴부랴 미끼로 사용할 청갯지렁이를 사러 낚시점에 들렀다. 담뱃갑만 한 사이즈가 아니라 스티로폼 박스째로 미끼를 사고 있을 때 사심희가 물었다.
“무슨 미끼를 그렇게 많이 사요? 지렁이탕이라도 끓이려는 건가요?”
“볼락 낚시는 바늘 하나에 통으로 한 마리씩 끼워야 하거든. 가자미 낚시처럼 잘게 자르면 안 돼.”
본격적인 낚시를 시작하게 되면서 사심희는 궁금한 게 많아진 눈치였다.
세 사람이 사용할 갯지렁이를 들고 밖으로 나서려는데 그녀가 또 물었다.
“봉돌은 안 사요?”
“충분해. 우리의 멀티싱커 점보를 세 박스나 가져왔거든.”
‘멀티싱커 점보’ 한 박스에는 80호 봉돌이 7개, 20호 봉돌이 14개가 들어 있어 그만하면 충분할 거라 판단했다.
다시 부랴부랴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약속 장소인 통영 척포항.
정각 오후 5시에 차에서 내리니 벌써 어스름한 기운이 부둣가를 메우고 있었다.
K호는 벌써부터 불을 밝히고 선착장에 대기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예약이었지만, 평일인지라 자리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척포항에서는 밤 볼락으로 유명하다는 배였다.
최근 조황 사진을 보니, 날마다 아이스박스 가득 담긴 볼락 사진들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일행이 승선하자, 선장이 다가와 내게 인사를 건넸다. 키가 호리호리하고 비쩍 마른 남자였다.
“예약자 명단을 보고 긴가민가했는데 정말로 TV에 나온 그분이군요. 우리 배에 아주 잘 오셨습니다.”
나를 알아본 선장은 어금니까지 보이며 수선을 떨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나는 모자를 깊이 눌러썼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요즘 물때도 안 좋은데, 조황이 대단하시더군요.”
“당연하지요. 우리 배는 물때에 맞춰 최적의 포인트로만 모셔다드리니까요. 하하하.”
어쩐지 믿음직한 선장 같아 보였다.
배를 둘러보니 7톤급치고는 꽤 널찍해 보였다. 평일이지만 한 자리만 제외하고는 모두 자리가 차 있어, 승선한 손님은 모두 13명이었다.
자리 추첨을 통해 우리는 우현 2, 3, 4번을 배정받았다. 내가 2번 자리를 맡기로 했고, 사심희가 3번, 장재준 영감은 4번을 차지했다.
그런데 추첨 도중에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좌현과 우현 맨 앞쪽 자리가 추첨 대상에서 빠져 있었던 것이다.
2번 자리에 낚싯대를 꽂아 놓고 있을 때, 장재준 영감이 내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배에 작대기가 승선한 모양입니다.”
“작대기라뇨?”
“돈을 벌 목적으로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르죠. 갈치 배에도 그런 사람들 있잖습니까?”
그의 설명을 빌자면, 물고기를 잡아서 팔 목적으로 낚시를 하는 전문 꾼들을 작대기라 부른다고 했다.
그들은 갈치나 볼락과 같은 고급 어종의 경우에 매일같이 배를 타서 제일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붙박이 손님이었다.
“어이고, 여기서 실물을 뵐 줄은 몰랐네요. 용감한 어부에서 청새치 잡으신 분 아닙니까?”
배가 출발하기 전, 채비를 정돈하고 있을 때 1번 자리의 사내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팔뚝이 굵기로 유명한 어느 영화배우보다 두툼한 어깨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강유록이라고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 고기들을 싹 쓸어 가려고 오셨나? 암튼 잘해 봅시다.”
활짝 웃고는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를 경계하는 듯한 눈초리였다.
나는 반대쪽 맨 앞자리의 사내에게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곳에는 뱁새같이 생긴 사내가 뻑뻑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볼락 낚시는 배가 어초에 진입하는 방향의 선두 자리가 제일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아무래도 제일 먼저 입질을 받을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예상치 않았던 작대기들과의 조우가, 영 유쾌한 느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