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겨울 바다
이른 시각이지만 미니중기 노인은 벌써 일어나 있었다.
휴대폰 너머로 기운 빠진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주무셨습니까? 어제 뵈었던 강유록이라고 합니다.”
“어어, 연예인 총각 아이가. 간밤에 내 실수한 거 없제?”
내 존재마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과음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실수는요. 괜찮으시면 해장국이나 사 드릴까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해장국? 거 좋지. 면사무소 바로 왼쪽에 잘하는 데가 있다. 거기서 보자.”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침 8시.
진주에서 백정철과 만나기로 한 시각이 점심시간이니, 그럭저럭 시간의 여유는 있었다.
삼동면 사무소는 민박집의 뒤쪽에 위치해 있었다.
찾아가 보니, 어제 저녁을 먹었던 중국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더니, 미니중기 노인은 오래 지나지 않아 식당 문틈으로 주름진 얼굴을 내밀었다.
“참 예의 바른 젊은이구나. 아침부터 해장국을 다 산다카고. 안 그래도 포클레인 가지러 와야 했는데 잘됐다 아이가.”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술을 그래 먹었는데 잠이 안 올 리가 있나?”
잠시 후 따끈한 선지해장국이 나오고, 나는 그가 그릇을 비울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마침내 그가 꺼억 트림을 뱉으며 이쑤시개를 찾을 무렵,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어제 말씀하신 얘기 말입니다. 이해구라는 분과 낚시 대회에 나가셨다는 그분.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그런 얘기도 했었나? 허허. 참. 근데 그 사람은 왜 묻노?”
“그냥 호기심이 생겨서 말입니다.”
식사 내내 헤벌쭉하던 미니중기 노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호기심이라고 둘러댔더니 그의 눈초리에 묘한 경계심이 점점 번져 가고 있었다.
“외지 사람이면 점잖게 놀다 가거라. 술김에 촌동네 속사정까지 실수로 털어놓은 건 내 실수다만, 더 캐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있겠나. 밥 먹었으면 그만 일어나자.”
“잠깐만요. 어르신. 제가 그분에 대해서 꼭 알아야 해서 그렇습니다.”
“와? 자네가 아는 사람이라도 되나?”
“사실은…… 그렇습니다. 김동현이라는 그분이 제 외삼촌입니다.”
노인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졌다.
이마와 입가에 자글자글 퍼진 깊은 주름마저 활짝 펴질 정도로 그는 무척 놀란 표정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뭔가 생각에 잠겼던 그가 한참 만에야 나를 올려다보았다.
“알고 싶은 게 뭐꼬?”
“먼저 그분이 이해구라는 사람과 어떤 관계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노인의 눈동자에 초점이 흐릿해졌다.
마치 먼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눈빛이었다.
노인은 외삼촌을 동현이라고 칭했다.
자신과 두어 번 술을 마신 기억이 있다는 말로 그의 회상이 시작되었다.
“동현이가 처음에 미조항에서 일 년 정도 머물렀다고 들었다. 해구 놈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지족항으로 옮겨 온 것은 해구가 도와준 게 맞을 기다. 그때만 해도 외지인에 대한 텃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데 천하의 해구가 동현이의 바람막이를 자처하고 나섰으니, 동네 사람들도 꼼짝하지 못 했다 아이가.”
사뭇 긴 얘기였다.
그 뒤로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우정을 과시했고, 허구한 날 남해 곳곳을 돌아다니며 낚시를 즐겼다. 외삼촌이 돌아가시던 그날까지도 두 사람의 우정을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 어쩌다가 두 분이 낚시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겁니까?”
“동현이는 내가 본 최고의 낚시꾼이었다. 나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남들 열 배, 스무 배의 고기를 잡아 왔더랬다. 처음에는 술만 퍼마시던 놈이, 나중에는 정신을 차리고 고기를 팔아 착실하게 돈도 모으며 보기에도 참 좋았었지.”
낚시 대회 얘기를 물었는데, 노인의 얘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듯했다.
“그러다가 남해에 낚시 대회가 처음 열린 것이군요?”
“맞다. 그랬다. 늘상 함께 다녔지만 해구는 언제나 동현이에게 가려진 이인자에 불과했더랬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현이의 우승을 장담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완전히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속임수를 썼다는 말은 사실입니까?”
“내, 내가 그런 말도 했드나?”
“아는 사람들은 다 아시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이런……. 알았다. 대신에 내가 말했다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그라.”
“김동현 씨가 제 외삼촌이라는 것도 비밀로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되겠습니까?”
노인의 얘기는 무척 충격적이었다.
이해구와 외삼촌은 같은 장소에서 대결에 임했고, 낚시가 끝나고 돌아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외삼촌의 승리를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승부의 기준은 최대어였다.
망탱이 가득 대물 감성돔을 들고 돌아온 외삼촌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계측에 내놓은 이해구의 감성돔이 최대어로 판명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솔직히 나는 보지 못했다. 다만 나중에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릴 들었다. 해구가 내놓은 물고기의 빛깔이 거뭇거뭇한 것이 다른 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카드라. 해구를 돕는답시고 갯바위까지 동행한 인간이 있었는데, 그게 해구의 친동생이었다. 사람들이 바꿔치기를 했다고 의심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기라.”
지금이야 부정 방지를 위해 금지되고 있는 행위들이지만, 30년 전의 일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군요. 믿었던 친구에게서 배신을 당했고, 그래서 외삼촌은 만취가 되어 결국 실족을…….”
“그랬다고 알고 있나?”
“……무슨 말씀입니까?”
“어허, 이것까지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왕에 털어놓기로 한 거…….”
정작 놀라운 얘기는 지금부터였다. 그의 말이 점점 점입가경의 단계로 진행되고 있었다.
미니중기 노인은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날 밤 해구의 우승을 축하한답시고 큰 잔치가 벌어졌고, 동현이도 거시서 술을 잔뜩 마셨드랬다. 그런데 오줌을 누러 간 동현이가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은 기라. 사람들이 놀라 찾아댕기고 난리가 났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당시의 정황을 상세하게 듣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결국 경찰이 오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없었던 목격자가 나타난 기라. 이번에도 해구의 동생놈이었다. 밖에서 오줌을 누고 있는데, 동현이가 비틀거리며 방파제 쪽으로 걸어갔다는 기다.”
“물에 빠져서 실종되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노인은 잠깐 동안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아주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 얘기가 아이다. 문제는 동현이가 나간 뒤로 해구 그넘도 한참 동안 자리를 비웠다는 말이다.”
설마……. 실족사가 아니란 말을 하시는 건가?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그걸 보셨습니까?”
“보지는 못했다. 나도 그날 잔뜩 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걸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더라. 동네에서 해구에게 돈을 빌린 놈이 없을 정도였으니, 누구 하나 경찰에게 제대로 말을 했겠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외삼촌의 죽음에 대한 얘기는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럼 이해구 그 사람이…….”
“솔직히 그건 아무도 모르지. 그날 해무가 짙어 정확히 본 사람은 없었다. 그냥 흘려들어라. 유족이라니까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해 준 기라. 어차피 30년이 넘었고. 이제 해구 그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어 버렸다 아이가.”
“목격자는요? 그분의 동생이라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넘은 디져 버렸다. 지병이 있어 그 후로 3년을 넘기지 못했지 싶다.”
노인의 얘기는 거기서 끝이었다.
내가 더 물어야 할 것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산대에서 식당 주인이 밝게 웃으면서 내게 뭐라고 말을 걸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 * *
철썩! 처얼썩! 척! 쏴아아!
때리고 부수고 방파제를 무너뜨릴 듯이 몰려오는 파도.
이해구가 사는 ‘옆 마을’의 방파제였다.
나는 방파제 앞에 우두커니 서서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외삼촌이 운명을 달리했다는 곳.
결국 나는 이곳까지 오고야 말았다.
미니중기 노인과 헤어질 때, 그가 남긴 말들이 귓가를 떠돌았다.
‘해경이 여러 날을 수색했지만 소용이 없었던 기라. 근처에 있는 죽방렴도 전부 이 잡듯 뒤졌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아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길게 휘파람을 불어 보았다. 몇 번이고 그렇게 해 보았지만, 무심한 겨울 바다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슬픔은 차츰 분노로 바뀌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언덕 위에 불쑥 솟아 있는 파란색 대문집을 올려다보았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제일 큰 집이 해구 그넘 집이다. 경거망동은 하지 말그라. 다시 말하지만 그날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찾아가 봐야 지금은 마누라가 입원하는 바람에 서울 아들놈 집에 가 있을 기다.’
그의 말처럼 아직은 충분한 증거가 없는 의혹일 뿐이었다. 하지만 차가운 바다를 바라보던 나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증거도 증인도 없다.
결국 진실을 밝히는 유일한 길은, 이해구의 입을 스스로 열게 하는 일이리라.
백정철과 약속한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나는 슬픔에 잠긴 겨울 바다를 향해 한 가지를 다짐했다. 조만간 반드시 다시 찾아오겠노라고.
* * *
김혁준의 집은 진주시 도심에 위치한 재래시장 인근의 다세대 주택이었다.
김혁준은 예전보다 뾰족해진 턱을 내밀며 나를 반겨 주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묵직한 아이스박스를 내려놓았다.
뭔가 싶어 뚜껑을 열어 본 백정철이 혀를 내둘렀다.
“아니, 한겨울에 이 많은 우럭을 어디서 구한 건가?”
“오다가 가거초에 들러서 주워 왔죠.”
믿기지 않는 참혹한 얘기에서 빠져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친숙한 두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니 서서히 흥분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김혁준은 몰라보게 핼쓱해진 얼굴이었지만, 눈가에 선한 미소는 그대로였다.
“멀리서 와 주신 것만도 고마운데 또 빚을 지네요.”
“그래도 빈손으로 올 수 있나요? 안 그렇습니까? 어머님!”
“아이고, 말씀 많이 들었어요. 얼른 점심 차려 올 테니 천천히 있다 가세요.”
그의 모친은 내 인사를 받고, 눈물을 글썽이다 주방으로 자리를 피했다.
거실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책장 맨 위 칸에 내 것과 똑같은 트로피가 눈에 띄었다.
마침 생각난 게 있어, 나는 들고 온 가방을 뒤적거렸다.
“이거 돌려줘야지요. 그동안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내민 물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혁준이 껄껄 웃으며 펼쳤던 내 손바닥을 도로 감싸 주었다.
“장난하십니까? 그건 선물이었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만 갖고 있기로 했잖습니까?”
“그럼 지금 다시 드리는 겁니다. 내 인생 최대어를 낚게 해 준 물건이니 우럭 님에게도 행운을 가져다주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나는 가방에 그의 선물 집어넣으며, 다른 신형 릴을 꺼내 들었다.
“이건 퇴원 선물입니다. 앞으로 이걸로 마음껏 낚시를 하시라는 뜻으로 가져왔습니다.”
“아아, 정말로 못 말리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낚시를 시작할까 하고 있었습니다.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잠시 후 김혁준의 모친이 밥상을 들고 와, 우리가 있는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대낮이라 술은 없지만 많이 들어요.”
갈비찜에, 문어 숙회에,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문득 소주 한 잔과 회 한 점이 소원이라던 김혁준의 말이 떠올랐다. 여전히 이룰 수 없는 소원이기에 마음이 짠해졌다.
식사 도중에 백정철이 김혁준에게 불쑥 물었다.
“앞으로 뭐 하면서 지낼 계획인가? 원한다면 다시 나와 낚시를 해 보는 게 어때?”
“그만한 체력이 될지 의문입니다. 감사하지만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누가 무리하라고 하던가? 회복되는 대로 천천히 하자는 거야.”
“다시 살아난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야죠. 솔직히 프로의 꿈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거, 저도 압니다.”
“이 사람이…….”
선의로 꺼낸 말이겠지만, 백정철도 안타까운 눈빛으로 변해 말꼬리를 흐렸다. 그는 후배의 앞길을 여전히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뭔가 말하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막연하나마 언젠가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기를 마음속으로 바랄 뿐이었다.
김혁준의 집에 그리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다.
그는 오랜만에 시내에 나가 바람을 쐬자고 했지만, 그의 모친이 한사코 말리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멀리서 오셨는데 금방 보내게 돼서 어쩌죠?”
“오늘만 날인가요? 또 놀러 오겠습니다.”
“우럭 너무 고맙습니다.”
나는 그와 인사를 나누고 백정철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조만간 서울에서 또 봄세. 백상효 형님이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눈치더라고.”
“좋죠. 이번에는 제가 근사한 데로 모시겠습니다.”
백정철과도 헤어지고 나는 상경길에 올랐다.
사심희와 저녁 약속이 있어 서둘러야 했다.
네 시간이 걸리는 먼 길을 단 세 시간 만에 달려간 것으로 미루어, 지친 영혼을 달래 줄 안식처가 무척이나 그리웠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