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미니중기
가거초에서 뭍으로 귀항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오전 중에 출발해서 진도로 돌아와 사심희를 목포역에 데려다주었을 때는, 벌써 늦은 오후였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속전속결로 낚시를 마쳤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밤 기차를 예약해 두었는데, 그보다 이르게 그녀를 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승강장 입구에서 해어질 때는 사심희의 혈색이 많이 돌아와 있었다.
“조심해서 올라가. 내일도 푹 쉬고.”
“그럼 내일 올라오는 거죠?”
“그럼. 진주에서 점심만 먹고 올라갈 거니까, 저녁에는 안양으로 갈게.”
“세상에, 정말로 한 시간도 못 되어 그 많은 우럭을 잡았다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나중에 유튜브로 보면 알겠지.”
“일 잘 보고 오세요.”
그녀와 헤어지고 나는 다시 차에 올랐다.
나눔 배송을 마치고, 김혁준 몫으로 남긴 우럭들은 아이스박스에 고이 간직한 상태였다.
계획보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나는 남해로 차를 몰았다.
애초에 진주와 멀지 않은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에 출발하려던 계획이었다.
남도의 해안선을 따라 느릿느릿 운전을 해서 남해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아이고, 벌써 오셨네요. 밤늦게 온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게 됐습니다.”
얼굴이 새카만 선장 겸, 낚시점 주인 겸, 민박집 관리를 맡은 사내가 깜짝 놀라면서 나를 맞아 주었다.
오늘도 출조를 다녀왔는지, 그는 낚시점 앞의 수돗가에서 밑밥통을 닦고 있었다.
“알고 보니 유명한 분이시더군요. 남해 낚시 대회에서 우승을 한 것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저번에 보니 TV에도 나오대요.”
“하하. 유명하긴요. 잠깐 나온 건데요.”
“아무튼 그런 분이 우리 민박집을 찾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방은 우리 마누라가 싹 치워 놓았을 겁니다. 편히 쉬다가 가세요.”
용감한 어부에 출연한 이후로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었다.
사심희가 간혹 연예인 병을 조심하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유명세를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민박집으로 간단한 짐을 옮기고 TV를 켰더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뒷골목으로 올라가 예전에 사심희와 들렀던 중국집에서 짬뽕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 바다를 감상할 기분은 아니었다.
잔뜩 목을 움츠리고 민박집 앞으로 돌아와 보니, 멀리서 선장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손님! 괜찮으시면 같이 소주나 한잔합시다.”
낚시점 입구에 놓인 나무 의자에 앉아 선장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맞은편에 다른 사내가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술 생각은 없었지만, 인사나 드리고 가자는 생각으로 나는 터벅터벅 낚시점 앞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 보니, 선장 앞에 있는 사내는 얼굴이 쭈글쭈글한 70세 안팎으로 보이는 노인이었다.
“옆 동네 사시는 어른입니다. TV에 나온 젊은이가 왔다고 하니, 얼굴이나 보고 싶다고 하시네요.”
“아, 예예. 어르신. 강유록이라고 합니다.”
연배는 우리 아버지쯤 되셨을까?
순박한 시골 노인의 모습에 왠지 정감이 갔다.
군밤 장수가 애용하는 털모자를 쓴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살피는가 싶더니, 수줍게 술잔을 내밀었다.
“연예인은 내 평생 처음 본다 아이가. 한 잔 받그라.”
“아, 그럼……. 한 잔만 받겠습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의 자리에 합석하게 되었다.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니, 노인은 다른 데서 전작이 있었는지 얼큰하게 취한 상태였다.
“아까 이름이 뭐라 캤지?”
“강유록입니다. 어르신 함자는 어떻게 되십니까?”
“아차! 그랬었지. 어르신은 무신 어르신이고? 그냥 미니중기 형님이라 불러라.”
“미니중기라고요?”
“저 짝에 보면 미니중기라고 쓰여 있지 않나?”
노인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부둣가에 작은 미니 포클레인이 세워져 있었다.
“내 밥줄이다. 저걸로 한번 나갔다 하믄 오십만 원씩 번다. 나 돈 없는 사람 아이다.”
“그럼요. 어르신. 아니, 형님.”
형님이라 부르기에는 많이 어색했다.
그렇지만 묘하게도 정감이 가는 노인이었다. 그는 대화 도중 한 번도 끊임없이 담배를 물고 있었다.
담배 연기가 자꾸만 내 쪽으로 날아오는 것 같아, 내가 넌지시 말했다.
“근데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시는 거 아닙니까? 건강 생각해서 좀 줄이시지요.”
“이 좋은 걸 어께 끊노? 차라리 목숨을 끊으라 캐라. 태운아, 너라면 끊을 수 있겠나?”
미니중기 노인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선장도 웃으면서 담뱃불을 붙였다.
태운이? 그러고 보니 나는 선장의 이름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선장님도 담배깨나 피우시네요. 늦었지만 성함 좀 여쭙겠습니다.”
“공태운이라고 합니다. 그냥 공 선장이라고 부르세요.”
“아, 알겠습니다. 공 선장님.”
“미니중기 형님은 하루에 담배를 네 갑 피웁니다. 그에 비하면 나는 피우는 것도 아니죠.”
자욱한 담배 연기가 더욱 짙어졌다.
그때 갑자기 미니중기 노인이 낚시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내도 낚시 좀 한다. 아무리 푸른섬 대회에서 우승했다 캐도 나한테는 안 될 끼라.”
“그럼요. 하하.”
“작년 말이면 그 대회에서 해구 넘도 봤겠다. 맞나?”
해구?
나는 이해구 노인의 이름을 기억해 내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구 회장님 말씀이십니까?”
“회장은 무슨 회장이가? 돈 푼깨나 있다고 다 회장이가.”
“하하. 어르신도 참. 대회에서 시상을 맡으셨어요. 그분과 잘 아시는 사이인가 봅니다.”
“같은 동네 사는 내 후배 녀석이다.”
노인은 이해구 영감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가만히 듣고 보니, 아까 공 선장이 노인이 사는 곳을 ‘옆 동네’라 불렀다. 이해구라는 사람도 그곳에 산다는 얘기였다.
“아! 그러시군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갯바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수라고 말입니다.”
“누가 그딴 소릴 해쌌드나?”
“제가 잘 아는 분이 그러시던데요.”
“낚시를 제법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고수는 아니다. 그 사람이 뭘 모르고 지껄인 말인 기라.”
“남해 낚시 대회를 3연패 하신 분인데도 말입니까?”
아까 나에게도 자신의 상대가 못 될 거라 스스럼없이 농담을 던진 분이었다. 이번에도 자신이 최고수라 허풍을 떠시려는 것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곧이어 노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이, 내 머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진짜 고수는 따로 있었다.”
“진짜 고수요? 그게 누군데요?”
“아이고, 내 처음 본 사람한테 무슨 헛소리고. 내가 많이 취했나 보다.”
미니중기 노인은 어물쩡 넘어가려는지 담배꽁초를 종이컵에 비벼 껐다. 그러더니 곧 또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술김에 말이 잘못 나온 것이겠지.
그런데 잠시 후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들이마신 노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최고수는 따로 있었지. 암. 동현이 금마가 최고였다.”
동현…… 진짜 최고수…….
한동안 잊고 있었다. 아니 애써 내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예기치 않은 사람의 입에서 또다시 외삼촌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옆에서 듣고 있던 공 선장이 콧방귀를 뀌면서 미니중기 노인을 나무라는 듯이 말했다.
“아무렴 남해에 이해구 어르신보다 고수가 어디 있습니까? 좋은 술 드시고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세요?”
“태운이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다. 하긴 너도 남해로 온 지 5년밖에 안 되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 30년 전에 김동현이라고 엄청난 낚시꾼이 있었다, 안 하나?”
“김동현이요?”
“그래. 저 앞에 태운이 네 낚싯배 보이나? 바로 그 자리에 배를 대고 너처럼 선장질을 하던 사람이었다.”
호흡이 가빠졌다.
바로 코앞에 있는 위치에 외삼촌의 배가 머물고 있었다니,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동종업계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말에 공 선장이 한층 관심을 보였다.
“허어, 남해에 그런 실력자가 있었습니까?”
“그랬다니까. 내 말 못 믿겠다는 말이가?”
“아닙니다. 그럼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죽었다.”
“에에? 어쩌다가…….”
“남해에서 처음 낚시 대회가 열리는 날 그렇게 된 기라.”
“이해구 어른이 우승한 날 말입니까?”
“그렇다.”
“그럼 그 김동현이라는 분도 대회에 나가셨습니까?”
“그랬다니까. 아깝게 2등을 했었지.”
“에이, 그럼 최고수는 아니잖습니까?”
“태운이 니는 사람이 죽었다는데 누가 이겼냐가 그리 중요하나. 그만하자.”
미니중기 노인은 귀찮다는 듯 담배 연기를 후욱 내뿜었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의 긴 한숨이었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머릿속에 있는 뭔가를 털어 내려 했다.
‘실족사였다. 술을 마시고 발을 헛디뎠다고 하더라.’
아버지가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미니중기 노인에게서 흘러나온 것들은 모두 알고 있는 얘기였다.
낚시 대회가 열렸고, 그날 좌절에 빠진 외삼촌이 죽었다.
그때 나는 정말로 그것이 진실의 전부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물속을 보는 능력자가 어떻게 패배한 것인지 자세한 내막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후 나는 노인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안타까운 일이 있었군요. 하지만 고수라고 항상 이기라는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노인이 눈을 꿈뻑거렸다.
말을 꺼낼지 말지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과도한 니코틴과 술기운에 굴복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었지. 하지만 짜고 치는 고스톱을 어느 누가 감당할 수 있었겠나?”
심장이 횡격막까지 내려와 출렁거렸다.
“도대체 무, 무슨 말씀이신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바꿔치기를 한 것 같다드라. 남해로 들어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친구에게 당한 기라. 그날 밤 배신감이 얼매나 컸으면 한동안 끊었던 술까지 잔뜩 퍼마셨겠나. 불쌍한 놈…….”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새로운 얘기였다.
이해구가 속임수를 썼다는 애기는 물론이거니와, 그와 외삼촌이 친구 관계였다는 것, 그리고 외삼촌이 늘상 술주정뱅이는 아니었다는 말도…….
모두가 금시초문이었다.
머릿속에 짙게 깔려 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느낌이었다. 알면 알아 갈수록 새롭게 밝혀지는 외삼촌의 행적에, 등골마저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미니중기 노인의 얘기는 거기서 끝이었다.
아내에게서 빨리 들어오라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휴대폰에서 앵앵거리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노인은 찍 소리도 못 하고 몸을 일으켰다.
“내 이만 가 봐야겠다. 오늘 반가웠데이.”
그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허망한 눈길로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저 형님은 술만 마시면 저렇게 안 해도 될 소리를……. 쯧쯧.”
공태운 선장은 그가 먹다 남긴 술잔과 담배꽁초를 치우며 혀를 끌끌 찼다.
“어르신이 말씀하신 게 사실일까요?”
“저도 처음 들었어요. 저도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 모르는 게 많아요. 말이 좀 많으시기는 해요. 허튼소리를 하실 분은 아니겠습니다만…….”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일어난 다음 날, 나는 집 앞에 나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외삼촌에 대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
미니중기 노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외삼촌은 엄마가 알고 있듯이 망나니처럼 살다가 허망하게 돌아가신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의 문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리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 떠나기에는 알고 싶은 것들이 하룻밤 사이에 눈두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열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날 미니중기 노인이 부둣가에 두고 간 포클레인.
옆면에 그의 전화번호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