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연날리기
내기 낚시라는 말에 고동우는 의외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뭔 내기를 하자는 거냐?”
“제일 많이 잡은 사람이 새해 소원을 밝히는 거죠. 그리고 그 일을 도울 적임자 한 분을 지정하는 겁니다.”
“새해 소원을? 보나 마나 네가 이길 것 같은데,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냐?”
상황이 내 예상을 빗나가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대뜸 찬성할 줄 알았던 그가 반기를 들자, 장재준 영감 또한 다른 제안으로 응수하고 나섰다.
“마릿수로 하면 아무래도 우럭 님에게 승산이 높겠죠. 그것 말고, 연날리기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허허.”
“연날리기요?”
“모든 바늘을 가자미로 꽉 채우는 횟수로 승부를 가리는 겁니다. 아무래도 운까지 따라야 하니까 다른 사람에게도 승산이 있지 않을까요?”
그 말에 고동우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볼 만은 하겠네요. 나도 소싯적에 가자미로 연 좀 날려 본 사람이니까요.”
“그럼 다들 동의하시는 거죠?”
물속을 보는 내 능력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며, 나는 서둘러 쐐기를 박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람이가 꽁무니를 빼는 게 아닌가.
“난 빠질란다. 질 것 같아서가 아니라, 오랜만에 사시미 님 대신에 카메라를 맡을게.”
마음씨 착한 보람이의 결정은 듣고 보니 사심희에게 낚시를 양보하려는 배려였다.
그녀가 쌍수를 들어 보람이의 양보를 반겼다. 이때만 해도, 이 결정이 어떤 변수가 될지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요? 그래도 돼요?”
“그럼요. 사시미 님도 오랜만에 즐겨 보세요.”
“오오, 고마워요.”
대세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변화라고만 여겼다. 그렇게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낚싯배는 20분 정도를 달려 첫 포인트에 도착했다.
모두들 자신의 승리를 기대하며, 미끼로 가져온 갯지렁이를 잘게 손질하고 있었다.
고동우는 갯지렁이를 영 만지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이놈의 지렁이를 또 만져야 하다니.”
“낚시꾼이 지렁이를 꺼려 하면 쓰나요.”
오히려 사심희는 아무렇지 않게 미끼를 만지더니, 재빨리 채비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어구가자미 낚시는 지렁이를 손가락 한 마디 길이로 잘라 바늘을 살짝 덮을 정도로만 꿰어야 한다.
10개의 바늘에 제일 먼저 끼운 사람은 사심희였다.
그녀가 100호 봉돌을 풍덩 빠뜨리자, 원줄을 따라 10개의 바늘이 달린 카드 채비가 주르륵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라? 제법이네.
나는 그녀를 곁눈질하며 채비 정돈을 서둘렀다.
아직까지 크게 긴장감은 없었다. 압도적인 나의 승리를 예감하며, 나는 두 번째로 봉돌을 입수시켰다.
육지에서 그리 멀리 나오지 않았는데도 수심은 약 50미터. 역시 동해는 동해였다.
토도록! 토도록!
봉돌이 바닥에 닿자마자 콩을 볶는 듯한 가자미의 입질이 감지되었다.
어구가자미 낚시처럼 쉬운 낚시는 드물다.
낚싯대를 거치대에 걸쳐 놓은 채 채비를 담그고, 바늘에 많이 매달렸다 싶으면 전동릴로 끌어 올리면 그만이다.
간혹 활성도가 높지 않을 때 낚싯대를 직접 들고 약간의 고패질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그냥 눈으로 하는 편한 낚시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내 바늘에 몇 마리나 붙었는지 확인하려 입술을 오므리던 그때였다.
위이잉~ 위잉~
사심희가 전동릴의 레버를 젖히고 채비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어라? 벌써?
가자미 낚시는 처음이다 보니, 고작 몇 마리에 흥분한 모양이라 짐작했다. 진득하게 최대한 많은 마릿수가 바늘에 걸릴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것이리라.
“이야! 가자미가 정말로 줄줄이 올라오네요? 너무 신기해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느러미를 날개처럼 흔들면서 수면을 박차고 나오는 가자미들. 맨 윗바늘부터 물고 늘어진 것을 보고, 조금 의외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래에도, 그다음에도 빠짐없이 열 마리의 가자미들이 올라오는 광경에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가 거치대에 놓인 낚싯대를 들어 올리자 겨울 하늘에 열 마리의 가자미들이 펄럭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가자미 연이었다.
“이게 연날리기라는 건가요? 헤헷!”
배 테두리에 노란색 줄무늬가 있는 참가자미와 달리 옅은 회색 띠가 있는 열 마리의 어구가자미였다.
다른 멤버들도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축하합니다. 언제나 초보가 사고를 치는 법입니다. 허허.”
나도 그렇게만 생각했다.
어쩌다 얻어걸린 그녀의 행운에 그저 박수를 쳐 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위아래로 요동치는 초릿대를 바라보며, 동시에 제3의 시야를 펼쳐보았다.
물속은 그야말로 물 반 가자미 반. 사심희의 초반 활약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두 번째로 채비를 회수한 사람은 고동우였다.
초릿대의 움직임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던 그가 확신에 찬 손놀림으로 전동릴의 레버를 젖혔다.
위잉~~
검푸른 수면 위로 나풀나풀 가자미들이 춤을 추며 올라오고 있었다.
“하나, 두울, 셋, 네엣…….”
올라오는 가자미들을 헤아리던 고동우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어라? 이빨이 하나 빠졌네.”
중간에 빈 바늘이 눈에 띄었다.
아홉 마리의 가자미들을 바늘에서 떼어 내면서 고동우는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장재준 영감의 채비가 올라오고 있었다.
“아이쿠! 나는 올라오다 한 마리를 떨군 것 같네요.”
장재준 영감도 실패였다.
올라오던 한 마리가 중간에 주둥이가 찢어져 대열을 이탈하는 광경을 나는 보았다. 전동릴을 감아올리는 속도가 너무 센 것이 문제였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내려다보니 열 개의 바늘에 빼곡하게 매달린 물고기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는 채비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장재준 영감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중간 속도로 조절하며 계속 물속을 주시하고 있던 그때였다.
어어? 제게 뭐지?
위에서 세 번째에 매달린 물고기의 생김새가 조금 이상해 보였다.
수면을 치고 올라온 세 번째 물고기를 살핀 나는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고동우가 그것을 가리키며 킬킬거렸다.
“고춧가루가 끼어서 올라왔군. 미안하지만 연날리기는 실패야.”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가끔 가자미 낚시에 불청객으로 등장하는 횟대라 불리는 물고기였다. 기를 쓰고 물고 늘어진 횟대를, 제아무리 물속을 보는 나로서도 어쩔 수는 없었다.
그때 설상가상으로 사심희가 또 한 번의 완벽한 연을 만들어 허공에 날리는 게 아닌가.
“이야호! 이번에도 열 마리예요. 가자미 낚시 정말 재밌다.”
“추, 축하해.”
전혀 예상치 않은 그녀의 활약이 이어졌다.
애초에 했던 내 계획이 틀어지는 것 같아, 슬슬 조급증이 도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나는 연거푸 가자미 연을 만들어 보려 애썼지만, 한 번은 아홉 마리에 그쳤고, 다음에는 심지어 올리다 두 마리나 떨구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초반의 리드를 만회하려 잠시 휴식을 취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던 그때였다.
조류에 밀려 배가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천천히 시계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채비 근처로 반대쪽에 있던 봉돌들이 불쑥 튀어나오는 현상이 일어났다.
덜컥!
결국 내 채비가 다른 사람의 채비에 걸리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뒤에 계신 분, 줄을 풀어 주세요! 엉켰습니다!”
뒤쪽으로 크게 소리치고 채비를 회수해 보니, 채비가 엉망으로 엉겨 붙어 회생 불가능의 수준이었다.
낚시를 하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도처에 채비가 엉켜 신경질을 부리는 사람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선장님! 거 시동 끄지 마시고, 배를 좀 잡아 줘야죠.”
“바람이 불어서 그래요. 알아서 조심했어야죠.”
어느 손님의 볼멘소리에 선장은 퉁명스럽게 면박을 줬다.
누군가와 엉킨 채비를 올리면서 장재준 영감 또한 헛웃음을 지었다.
“말이 21인승이지, 배가 너무 작은 게 문제입니다. 몇 자리만 빼면 쾌적하게 낚시할 수 있는데 선장의 욕심이 과하군요. 허허.”
내가 보기에도 일반적인 21인승 배보다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옆 사람과 거의 팔꿈치가 닿을 지경이었다.
여러모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
줄 엉킴으로 난리법석을 떠는 동안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가자미 어군마저 옅게 흩어지고 있었다.
“뭐 이래? 입질이 뚝 끊어졌잖아?”
이른 아침의 호조황도 잠시뿐.
오전 9시를 넘긴 시각부터 가자미의 입질이 거짓말처럼 뚝 끊어졌다.
지루한 소강상태였다.
가끔씩 초릿대가 파르르 움직이기라도 하면, 깜짝 놀라 낱마리라도 건지고 마는 눈물겨운 상황이 이어졌다.
손님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선장이 몇 번 포인트를 옮겼지만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럴 수가.
이대로 가다가는 애꿎은 사심희를 원망해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위기였다.
배는 다시 이동하여, 새로운 포인트에 진입했다.
가만히 위기를 타개할 방도를 궁리하던 그때, 바닥에 슬며시 가자미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군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한두 마리 손맛은 볼 수 있는 포인트였다.
토도독!
내 초릿대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고동우가 호들갑을 떨었다.
“하나라도 건져라. 얼굴이나 보게.”
나는 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슬며시 거치대에 놓인 낚싯대를 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좌우로 낚싯대를 휘젓기 시작했다.
장재준 영감도 수상쩍은 내 행동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고패질을 하는 건 아니겠죠?”
“심심해서 이렇게라고 해 보려고요.”
나는 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초릿대를 내렸다가 올리고, 다시 내렸다가 살짝 올리는 행동을 반복했다.
최후의 방법이었다.
고된 작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고패질이 아니라 바닥에 흩어진 가자미들을 하나하나 바늘에 주워 담고 있었다.
하아, 한 마리만 더…….
옆으로 길게 눕힌 카드 채비에 마지막으로 달라붙은 가자미를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낚싯대를 거치대에 얹어 놓았다.
위이잉~
그리고 잠시 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나의 첫 가자미 연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낱마리의 가자미를 올리던 고동우가 내 쪽을 바라보고 입을 쩍 벌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얼른 채비를 내리고 또다시 낚싯대로 노를 젓는 사람처럼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가자미 연입니다. 다들 보셨죠?”
한참 후 내가 또 한 번의 연날리기에 성공하자, 멤버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한 번만 더 성공하면 된다.
시간은 오후로 접어들어 낚시 시간이 끝나는 오후 두 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점심 식사 없이 일찍 마치는 가자미 낚시가 이토록 야속하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이삭줍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개체수는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면서 힙겹게 바닥에 깔린 가자미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삡! 삐이!
낚시의 종료 시간을 울리는 부저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채비를 올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채비를 걷고 있을 때, 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성공이다! 내가 이겼어!”
열 마리의 가지미들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바득바득 기를 쓰면서까지 자신을 이기려는 내 모습에, 사심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고동우와 장재준 영감도 얼떨결에 박수를 쳐 주었지만, 어쩐지 마뜩지 않은 얼굴이었다.
내 새해 소원을 이뤄 줄 적임자를 지정하려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머쓱한 기분을 털어 내며, 마지막 연에서 가자미들을 떼어 내고 있었다.
“잠깐만! 한 마리가 좀 수상한데?”
카메라를 들고 있던 보람이가 다가와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켰다. 중간 부근의 바늘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는 물고기였다.
횟대는 아니었다.
분명히 외형은 가자미인데, 등짝에 옅은 회색의 줄무늬가 다른 것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모습이었다.
“뭔 요상한 게 올라왔나…….”
근처를 지나던 선장이 중얼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물고기를 향해 가늘게 뜬 그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