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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92화 (92/130)

[제92화] 사이로(CYRO)

내 전화를 받은 장재준 영감은 한걸음에 달려 나왔다.

저녁이나 함께하자는 그의 말에, 나는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으시면 근처에서 커피나 한잔하시죠.”

“입맛이 없나 보군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아! 저기 카페가 하나 보이네요.”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홀짝거리고 있을 때, 장재준 영감이 인자한 미소를 머금던 입을 열었다.

“사시미 님 때문에 오신 모양입니다. 허허.”

“……맞습니다. 연락이 되지 않아서요.”

“오기로 한 날이 지났던가요?”

“……네.”

장재준 영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마셨다.

그 또한 나보다 딱히 알고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허탈감에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그가 내게 물었다.

“걱정하는 건 이해합니다만, 조바심을 내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조바심이라고요?”

“조바심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겠지요.”

“휴대폰을 아예 꺼 버렸어요. 연락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항상 마음에 여유가 깃들어 있는 그였지만, 어쩐지 그의 여유만만한 웃음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사시미 님이 그 정도로 되바라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요. 너무 걱정 말고 조금 더 기다려 보세요.”

공자님 같은 그의 말에 다시금 실망하고 있던 차에, 장재준 영감의 은은한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사시미 님을 좋아하고 있죠?”

“그, 그건. 저도 아직…….”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비록 이 나이까지 장가도 못 갔지만, 그 정도 감은 있답니다.”

“…….”

나조차도 최근에야 알게 된 내 마음.

장재준 영감이 진즉부터 눈치채고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어쩐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선뜻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곧 크리스마스 아닙니까? 오랜만에 갔는데 부모님이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요?”

“……정말로 그랬을까요?”

“사시미 님이 연락을 해 오지 않은 것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돌아오지 않기로 했다면 오히려 연락을 했겠지요. 내가 알고 있는 사시미 님은 충분히 그랬을 사람입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 얘기였다.

다소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니, 지나친 수선을 떨었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괜한 일로 찾아온 것 같네요. 기다리고만 있자니 답답해서…….”

“이해합니다.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나였다면 다른 걱정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시미 님이 돌아온다면, 그다음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아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장재준 영감은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내친김에 나는 그에게 사심희의 배경에 대한 얘기를 말해 주었다. 내 말에 말없이 귀를 기울이던 장재준 영감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굳이 어설픈 내 경험담을 늘어놓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니까, 내 인생에서 몹시 아쉬운 부분이 남아 있더군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사시미 님을 잡으세요. 그러지 않으면 나처럼 평생을 후회하면서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허허.”

모든 것을 털어놓고 나니까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장재준 영감에게도 쓰린 상처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장재준 영감의 충고는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되는 얘기였다. 내 마음이야 그렇다 해도, 아직 그녀의 마음을 확인해 본 적은 없었다.

그동안 사심희가 내게 남자로서 관심을 보인 경우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농담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나와 정반대의 이미지로 자신의 이상형을 내비친 적도 있었다.

“제가 그녀를 잡아 둘 명분이 있을까요? 나 혼자 좋아한다고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장재준 영감은 껄껄 웃으면서, 남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허허. 우럭 님은 늙은 나보다 둔한 사람이군요. 사시미 님은 우럭 님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로하려는 덕담인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사람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아지트에 있을 때 간간이 우럭 님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그건 틀림없이 애정이 담긴 눈동자였습니다.”

“…….”

얼떨떨한 기분으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기로 했으니까 연락이 없을 거라는 얘기는 다소나마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장재준 영감의 마지막 얘기는 솔직히 믿기지가 않았다

“야~~~~ 웅!”

“그래. 베타야. 너도 사시미 님이 보고 싶은가 보구나. 네 마음 나도 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쪼르르 달려온 베타를 나는 번쩍 들어 안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애절한 눈빛을 보내던 베타가 밥그릇 쪽으로 달려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알았다. 저녁이나 먹자.”

* * *

12월 18일.

그렇게 이틀이 또 지나갔다.

사심희의 전화기는 여전히 불통 상태였고, 내가 보낸 깨톡 메시지는 미확인 상태였다.

부우욱~~~

애꿎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갑작스러운 진동음에 하마터면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혹시나 했는데, 백정철이었다. 적잖이 실망하며 통화 버튼을 밀어내니, 시끄러운 소리가 튀어나왔다.

“강 프로! 자네 그 소식 들었는가?”

“……소식이라뇨?”

“용감한 어부 말일세. 시청률이 나왔어. 무려 4%가 넘었다네. 하하하.”

“아아, 그래요? 너무 다행이네요.”

“어젯밤 방송을 보고 대박이 날 줄은 알았지만 정말 놀라운 결과야. 역시 자네가 해낼 줄 알았어.”

“……너무 다행입니다.”

간만에 기쁜 소식이었다.

나 또한 전날 밤 용감한 어부 마지막 편을 시청하긴 했었다. 방송국에서 보내 준 개인 편집본을 유튜브에 올려놓는 것도 잊지는 않았다.

어쩐지 시큰둥한 내 반응을 백정철이 놓치지 않은 모양이다.

“이 미적지근한 반응은 뭐지? 아! 내가 끝까지 말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군. 진짜 희소식은 지금부터야. 방금 장 피디에게서 들은 따끈따끈한 소식일세. 내년 봄에 용감한 어부 방영을 재개하기로 결정이 났다네.”

“정말입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기대했던 반응을 얻었는지, 백정철이 신이 나서 더 크게 떠들었다.

“조만간 장 피디로부터 초대장이 하나 갈 거야. 미리 귀띔하자면, 큰 파티를 열기로 했다네.”

“……파티요?”

“특급 호텔에서 제대로 된 종방연을 열기로 했대. 오지 않으면 무조건 손해지. 자세한 얘기는 그날 만나서 함세. 아……!”

전화를 끊으려는데 백정철이 뭔가 전해 줄 말이 남은 모양이었다.

“사심희 님도 모시고 오게. 크리스마스이브에 커플 동반으로 하는 파티라네.”

“…….”

“왜? 무슨 문제가 있는가?”

“사시미 님은 미국에 있어서 참석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 언제 귀국하는데?”

“그게 확실치가 않습니다.”

“자네 목소리에 기운이 없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 짝 잃은 외기러기 신세로군.”

“어휴, 회사 동료 사이라고 누누이 말씀을 드렸잖습니까?”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귀신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인다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말문이 막혀 가만히 있었더니, 백정철이 코웃음을 치기 시작했다.

“평범한 동료가 아니더구만. 계속 그렇게 둘러댈 텐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둘이 다른 계획이 있어서 그러는 거라면 내가 넘어가 주겠네.”

“정말이라니까요.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전에 함께 우럭 잡으러 간 날 말일세. 너울 때문에 개고생하던 날 기억나지?”

“그런데요?”

“마지막에 그 바이킹을 타는 상황에서도 기를 쓰고 나와 자네를 촬영하지 않았는가?”

“그거야 방송 때문이죠. 책임감이 남다르다 보니…….”

“예끼, 이 사람아! 오걸이를 하는 장면에서 자네 얼굴만 찍어 대더구만. 눈동자에 하트가 몇 개였는지 지금도 생생하다네. 어쨌든 무조건 나오시게. 정 안되면 혼자라도 말이야.”

“……알겠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사람에게서 똑같은 얘기를 들었다. 통화를 마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나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책상으로 다가갔다.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의 입을 벌리고 문서함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찾은 것은 편집 전의 원본을 모아 놓은 폴더였다.

가을 우럭 편이라…….

11월 초에 찍은 동영상을 찾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니터를 응시하는 내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선장님! 마지막으로 한 번만 시도해 보겠습니다.’

창문을 통해 내가 선장에게 외치는 장면에서 끊어졌던 장면이 시작되었다.

내 뒤를 따라오던 카메라가 갑자기 멈추면서 어색한 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험하니까 여기서 이걸 붙잡고 있어. 아니면 들어가 있어도 돼.’

‘내가 알아서 할게요.’

내가 갑판 위로 올라서자, 카메라는 한동안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배가 포인트에 진입하고 있을 무렵, 카메라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흔들림은 거의 없었다.

똑바로 내 얼굴에 앵글을 고정하고 한 걸음씩 다가오던 카메라는, 폭발적인 입질의 순간에도 내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어금니에 힘을 준 상태로 안도와 희열이 교차하던 내 표정 변화를, 카메라는 잠시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고정되어 있었다.

‘이게 몇 마리야? 하나, 두울…….’

선장이 호들갑스럽게 물고기의 마릿수를 세고 있을 때도, 카메라는 수면을 향하지 않고, 헤벌쭉 입을 벌린 나를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모두 다섯 마리의 개우럭이 올라왔음을 알게 해 준 유일한 장면은, 카메라가 내 앞에 주렁주렁 매달린 우럭을 잠깐 비췄을 때뿐이었다.

이럴 수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백정철이 말은 헛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른 동영상들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최근에 다녀왔던, 백상효와의 참치 편.

백상효에게서 고급 기술을 전수받으며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던 내 모습. 생애 첫 참다랑어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탈진 직전 상태에 빠졌던 내 모습…….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내 손은 다른 동영상들을 클릭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무심코 넘겼던, 동영상의 숨어있던 비밀을 감싸고 있던 베일이 하나둘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두 마찬가지였다.

확인한 모든 동영상들에서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모든 장면이 내 얼굴로 도배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카메라의 포커스는 분명 물고기가 아니라 나를 향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아…….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잠깐 동안 천정을 바라보던 나는 다시 마우스를 움켜쥐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확인해야 할 동영상이 하나 남았다.

나는 가장 최근에 그녀와 다녀온 쑥섬 뱅에돔 편을 펼쳤다.

‘이거 잠깐만 들고 있어 줄래? 화장실 좀 다녀오려고.’

의도적으로 그녀에게 낚싯대를 맡기는 부분이었다.

숲속으로 들어가는 척하다가 뒤돌아서면서, 내가 직접 촬영한 부분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그녀의 작은 움직임과 미세한 표정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녀가 떠난 뒤에라도 영원히 간직하고자 했던 것이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짙은 안개가 걷히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이 투명하게 변하고 있었다.

카메라의 움직임이 너무나 똑같았다.

사심희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와 같은 마음으로 카메라에 나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나는 모니터에 뉴욕으로 가는 비행편을 펼쳐 놓았다.

명분이니 그딴 미사여구들은 모두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최종 목적지는 뉴욕 브로드웨이 12번가에 위치한 사이로(CYRO)라는 이름의 식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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