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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90화 (90/130)

[제90화] 블루마린

낚시의 시작과 동시에 찾아온 지상철의 기회.

문제는 한 손으로만 낚싯대를 쥐고 있는 그가, 전혀 방어 태세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저러다가는 낚싯대를 손에서 떨구는 대형 사건이 불을 보듯 빤한 상황.

긴박한 순간, 나는 엉뚱한 말로 그의 주의를 끄는 수밖에 없었다.

“히트다! 히트!”

깜짝 놀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지상철이 미간을 좁혔다.

“뭐야? 동생! 조용하잖아.”

“뭔가 미끼를 건드리고 갔어요. 그쪽으로 갈 수도 있으니까 바짝 긴장하세요!”

“정말이야?”

깜짝 놀란 지상철이 낚싯대를 고쳐 잡으며, 크게 액션을 취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후두두둑!

그의 낚싯대가 푹 아래로 고꾸라지면서 부르르 진동했다.

“어어, 정말이네. 그놈이 나한테 왔나 봐!”

“후킹 됐어요. 전동릴 작동시켜요.”

“응! 알았어!”

못 보던 사이에 지상철은 몰라보게 노련해졌다.

그는 물고기의 저항을 낚싯줄로 느끼면서 전동릴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뭔데 호들갑이야? 상철이가 정말 히트 친 거야?”

호기심 많은 이몽규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반대쪽에 있던 그가 튀어 와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었다.

“요즘엔 내 어복이 완전히 저놈한테 넘겨갔다니까. 상철이! 사이즈는 어때?”

“장난 아닙니다. 형님.”

“내가 보기엔 고만고만한 사이즈 같은데?”

“……올라오면 알게 되겠죠.”

한참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마침내 지상철의 발 앞에 반짝이는 물고기가 두둥실 떠올랐다.

예상보다 큰 물고기가 튀어나오자, 이번에는 이태권이 달려와 탄성을 질렀다.

“오우! 좋아요! 준수한 빅아이를 올리셨네요.”

빅아이.

눈다랑어라고 불리는 참치의 일종으로 역시 고급 횟감에 속하는 물고기.

초반에 찾아온 대형 어종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덕호는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지상철에게 엄지를 치켜들었고, 이몽규도 부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기념 촬영을 마친 지상철이 어깨를 으쓱하며 이몽규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 어복킹은 접니다. 앞으로 내 낚시에 이래라저래라 핑거질 하지 마세요.”

“내가 언제 그랬어. 어쨌든 어복킹이고 뭐고 다 가져가시든가. 어차피 이번이…….”

이몽규는 말을 꺼내려다 아차 싶었는지 도로 삼키고 말았다.

선장이 계측한 첫수의 무게는 41킬로그램.

국내에서는 흔히 만날 수 없는 빅원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일까?

어딘지 모르게 미적지근한 장 피디의 표정이 영 신경 쓰였다.

한차례의 소요가 지나가고, 뱃전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들었다.

나름 열심히 레이더망을 돌리며 물속 상황을 지켜보았지만, 눈에 띄는 대어는 찾을 수 없었다.

선장이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포인트를 옮긴다는 말로 들렸다.

채비를 거두고 배가 이동하는 사이,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모두들 큰 기대도 감흥도 없는 표정들 속에서 유독 이태권의 눈빛에서 강한 집념이 읽혔다.

배가 다시 멈추고 서서히 정지하자,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채비를 입수시켰다.

나 또한 채비를 던지면서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고만고만한 사이즈의 물고기들이 눈에 띄어, 그나마 개시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마침 중층에 떠 있던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하강 중인 내 미끼를 발견한 것 같았다.

녀석의 큰 눈동자가 순간 반짝이는가 싶더니, 동료들에게 뒤질세라 놈이 쏜살같이 내 미끼로 달려들었다.

묵직한 낚싯대에 힘을 주고 대기하던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후킹을 시도했다.

“어이쿠!”

내 입에서 탄식이 튀어나왔다.

챔질 타이밍을 너무 서둘렀다. 바늘이 놈의 주둥이가 아니라 꼬리 부분에 박혀 버린 것이다. 놓치진 않았지만 고생깨나 하게 생겼다.

작지만 앙칼진 진동이 낚싯줄을 타고 올라왔다.

바늘이 등이나 꼬리에 걸리면 끌어 올리는 데 두 배 이상의 에너지가 소요되기 마련이다.

“히트인가요? 괜찮은 놈 같은데요?”

장 피디가 만면에 화색을 띠며 물었지만, 나는 민망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작습니다. 그래도 개시는 하네요.”

나는 이번에도 수동릴을 가져왔다.

요란하게 떨고 있는 낚싯대를 진정시키며 강제 집행을 시도한 결과, 지상철이 잡았던 물고기의 축소판이 몸을 파르르 떨면서 올라왔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왕눈이.

계측을 해 볼 필요도 없는 정도의 사이즈였다.

이번에도 이몽규가 달려와 보더니, 씁쓸한 농담을 던졌다.

“천하의 강 프로도 일본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네. 조금만 작았으면 고등어인 줄 알았겠어.”

그러고 보니 작은 빅아이는 생김새가 고등어와 매우 흡사해 보였다.

첫수를 고이 아이스박스에 던져 놓고 다시 채비를 정돈하려던 찰나였다.

“와와아!”

“히트다! 히트!”

건너편에서 튀어나온 소리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는 그쪽으로 달려가 보았다.

사람들의 환호성 중심에 이태권의 모습이 보였다.

완전히 기역자로 꺾인 낚싯대를 파이팅벨트에 걸쳐 놓고 그가 이를 악물고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그의 발치 아래쪽을 훑어보았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야를 좀 멀리 확장해 보니, 먼바다로 질주하는 뭔가가 포착되었다.

뭘까? 저건.

난생처음 보는 물고기였다. 참치보다는 몸이 가늘고 길쭉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꽁치를 수십 배로 확대시켜 놓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옆면에는 선명하게 호랑이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내 몸뚱어리보다 큰 괴어였다.

놈이 마치 어뢰처럼 빠른 속도로 도망치고 있었다.

이태권은 역시 경험이 많은 낚시꾼이었다.

풀어 줄 만큼 풀어 줬다고 판단한 그는, 어느새 드랙을 조이면서 놈의 몸을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다들 옆으로 비키세요.”

너무 가까이 다가온 사람들에게 소리치면서, 이태권은 힘든 싸움을 이어 갔다.

나까지도 조마조마하면서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응원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30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보인다! 떴다!”

괴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태권은 결국 힘으로 놈을 제압하고 얼굴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장 피디가 수면에 떠오른 거대한 생명체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싸! 와후다. 와후!”

와후.

말로는 들었지만, 나로서도 처음 보는 괴어였다. 어른 키만 한 크기에 놈의 옆면에 새겨진 아름다운 무늬가 인상적이었다.

선장이 갈고리를 가져와 놈의 아가미를 꿰뚫었다.

몇 사람이 달려들어, 밧줄에 연결된 괴어의 몸뚱어리를 내려놓자 일행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태권이 해냈다!”

“용감한 어부, 만세다, 만세!”

뱃전에 길게 누운 녀석은 뾰족한 입을 가위처럼 벌리며 식식거렸다. 주둥이가 마치 악어처럼 생겨 섬뜩했다.

그때 나는 보았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작은 희망의 불꽃이 살아나고 있는 것을.

이태권이 보여 준 멋진 장면에 나 또한 새로운 시즌에 대한 작은 기대감이 일었다.

그러나 와후 한 마리가 모든 우려를 씻어 내릴 만큼 충분한지는 솔직히 의문이 들었다.

이태권의 활약에 시기심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용감한 어부를 계속 끌어가야 할 그들이 아닌가. 나는 누구보다도 나의 일회성 성과보다, 그들의 활약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지상철의 빅아이에 이은, 이태권의 와후.

두 사람이 쏘아 올린 희망의 불꽃에, 이제는 내가 화답해야 한다는 의지가 타올랐다.

마무리 투수가 아닌 진정한 구원 투수로서, 내 마음가짐 또한 바뀌게 된 순간이었다.

이태권이 잡은 와후의 무게는 무려 90킬로그램.

일전에 내가 왕돌초에서 잡았던 황다랑어보다 묵직한 놈이었다.

쉽사리 가라앉지 않던 흥분이 잠잠해지자, 사람들은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었다.

잠시 후 내 오른쪽에서 있던 이덕호의 낚싯대에 처음으로 입질이 감지되었다.

“왔다! 왔어!”

실로 오랜만에 보는 그의 파이팅이었다.

“아이고. 죽겠다.”

엄살을 떨며 한참 만에야 끌어 올린 물고기를 보고, 이덕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뭐야! 만새기 놈이잖아!”

국내 낚시꾼들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만, 나름 진득한 손맛을 선사해 주는 어종.

실망하는 척하면서도 이덕호 입은 귀에 걸려 있었다. 나는 첫수를 해낸 그에게 쌍수를 들어 축하해 주었다.

“축하합니다. 만새기 중에서는 갑입니다.”

“그런가? 나야 힘이 없으니까 이런 거라도 잡아야지.”

잠시 후 뒤쪽에서 또 요란한 소리가 들려 가 보았더니, 김진성이 강아지만 한 그루퍼를 뱃전에 턱 올려놓았다.

이쯤 되니, 속이 타는 사람은 이몽규였다.

유일하게 꽝을 면치 못한 그가 사람들을 향해 투덜거렸다.

“강 프로나 나나 비슷해. 강 프로도 고등어 한 마리밖에 못 잡았잖아.”

“하하하. 고등어라도 잡은 사람이 낫지. 자네는 완전히 꽝이잖아.”

나를 걸고넘어지려던 그의 농담에 이덕호가 입바른 소리로 응수하자, 모두들 한바탕 웃고 말았다.

따스한 남국에서도 12월의 서늘한 바다는 활성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또다시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배는 서슴없이 다른 포인트를 찾아 떠났다.

꾸르릉~~~

바다 위에 작은 부유식 등대 같은 구조물이 떠 있는 위치에서 배가 멈췄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굴곡진 골짜기들이 길게 펼쳐져 있었고, 작달막한 열대 어종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있었다.

시간상으로 보자면 낚시는 이제 반환점을 돌아 후반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으로 무거운 지깅대를 장검처럼 빼 들었다.

나는 채비를 내려 바닥을 찍었다. 그리고 슬슬 릴을 감으면서 액션을 취했다.

최근에 백상효 프로에게서 배운 대로 대물을 노리는 데 유용한 액션이었다.

아직은 제3의 시야에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뭐라도 오겠지, 무심히 휘파람을 불던 바로 그때였다. 잠시 후 레이더망에 뭔가 수상한 녀석이 포착되었다.

요트의 돛처럼 우뚝 솟은 등지느러미.

창검처럼 길게 삐져나온 위턱.

헤밍웨이의 소설에 나오는 노인이 잡았다는 그 물고기.

청새치였다!

어뢰처럼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는 그놈은 틀림없는 블루마린이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오금이 저려 왔다.

말로만 듣던 앵글러들의 로망.

청새치의 엄청난 위용을 마주한 감정은 공포였다. 창검이나 다름없는 부리까지 포함해서 3미터는 될 법한 괴어였다.

놈이 다가오면서 공포는 점점 강렬한 욕망으로 변했고, 나는 낚싯대를 잡은 손아귀에 꽉 힘을 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한 마리가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온 놈의 몸뚱어리가 마치 둘로 분리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약간 작은 놈이 큰 놈의 몸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배에 도착한 것은 작은 녀석이 먼저였다.

그런데 놈이 코앞에서 유혹의 움직임을 보이던 내 메탈지그를 휙 지나치는 게 아닌가.

이럴 수가…….

황망하게 하나는 놓쳤지만, 나는 두 번째 목표물을 향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액션을 지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덜컥!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거대한 청새치가 내 미끼를 덥석 삼키는 순간 내 몸이 앞으로 휘청거렸다.

온몸의 털이 곤두선 느낌.

나는 온 힘을 다해 녀석의 위턱에 바늘을 푹 박았다.

“히트!”

오랫동안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맹수의 포효처럼 내 목소리가 뱃전을 울리고 있을 때, 나는 뒤쪽에서 외치는 누군가의 앙칼진 소리를 들었다.

“히트야! 히트!”

약간 신경질적이면서 코맹맹한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몽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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