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흑기사
비밀 포인트의 정체를 알아챈 사심희가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저기 봐요! 요상하게 생긴 바위. 저 아래 바다에 솟아 있는 바위들. 그림 속에 있던 그곳이잖아요!”
사방으로 토끼 같은 눈동자를 굴리는 그녀를 보며, 나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우럭 님은 알고 있었군요. 도대체 어떻게…….”
“여행 왔다가 우연히 발견했어. 사시미 님이 얼마나 예리한지 보려고 말하지 않았고.”
“하아. 내가 당했네요. 그런데 다른 멤버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아니. 사시미 님이 처음이야.”
“잘됐다. 카메라에 담아서 깜짝 놀라게 해 줘야지. 이번 출조는 놀라운 게 많아 참 재미있네요.”
그렇다면 다행이다.
남아 있는 나날 동안 그녀에게 좋은 기억들만 안겨 주고 싶었다.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쑥섬을 다시 찾은 이유는 단지 그 때문이었다.
“자아, 호들갑은 그만하고, 이제 낚시를 해야지. 일몰까지 세 시간밖에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야 해.”
“그렇군요. 동두천 그분 생각해서 많이 잡아 봐요.”
“나만 믿어.”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낚싯대를 폈다.
채비를 준비하고 내려다본 바다에는 여러 물고기들이 들끓고 있었다.
천혜의 낚시터.
나는 가져온 밑밥을 한 주걱 퍼서 바로 발아래로 흩뿌렸다. 뱅에돔이 선호하는 성분을 절반 이상 섞은 밑밥이었다.
물속으로 잠기는 밑밥을 따라 검푸른 물고기들이 달려드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는 곧장 첫 번째 캐스팅을 시도했다.
수면에 안착한 구멍찌가 천천히 왼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갑자기 사심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잠깐만 나 좀 도와줄래?”
“뭐죠?”
“화장실에 다녀와야겠어. 이 낚싯대 좀 들고 있어 줘.”
“근처에 화장실이 있나요?”
“사방에 천연 화장실이잖아. 어서, 급해!”
사심희는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며 내 낚싯대를 받았다. 그녀가 쥐고 있던 카메라를 낚아채면서 내가 말했다.
“찌가 사라지면 낚싯대를 번쩍 들어. 알았지?”
“걱정 마세요. 나도 그동안 어깨너머로 본 게 많다구요.”
나는 슬그머니 뒤쪽에 있는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빽빽한 나무들 근처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사심희가 허둥거리고 있었다.
물속에 드리운 채비와 근처의 물고기들의 반응을 살펴 미리 계산한 타이밍이었다.
“어어? 이거…… 우럭 님? 에라! 모르겠다.”
엉성한 폼이지만 사심희가 낚싯대를 치켜들었다.
휘어진 초릿대의 모양새로 보아 헛챔질은 아니었다. 좌우로 뒤뚱거리면서 그녀가 어쩔 줄을 몰라 하자, 나는 카메라의 앵글을 그녀에게 고정시킨 채로 천천히 다가갔다.
“좋아! 이제 릴을 감아 봐.”
“그러지 말고 이거 받아요!”
“아차 하는 사이에 도망가는 거야. 놓치지 않으려면 내 말대로 해.”
사심희는 낑낑거리며 릴을 감기 시작했고, 그 틈에 나는 다른 손으로 바닥에 놓인 뜰채를 더듬었다.
릴의 손잡이를 돌리면서 사심희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우스꽝스러워, 카메라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마침내 물고기의 검푸른 몸통이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내던 순간,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야아! 큰 놈이다! 이제 초릿대를 이쪽으로 쭉 밀어 봐!”
잠시 후 뜰채에 담겨 올라온 물고기를 쳐다보며,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치켜떴다.
“눈동자가 어쩜 이렇게 예쁠 수가……. 마치 보석 같아요.”
“나도 살아 있는 뱅에돔은 처음이야. 바다의 흑기사라고 하더니 정말로 멋지게 생겼네.”
“흑기사요…….”
흑기사의 녹색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사심희는 한동안 할 말을 잊은 듯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카메라를 넘겨 주었다.
“오늘 낚시가 잘 풀리겠어. 첫수를 사시미 님이 해냈으니까.”
“신기해요. 제가 뱅에돔을 잡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네요.”
낚싯대를 돌려받은 나는 미끼를 갈아 끼우고 곧장 다음 캐스팅을 시도했다.
쉬이익! 퐁!
채비가 서서히 가라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 주는 또 한 마리의 뱅에돔.
“히트!”
“좋아요!”
“또 왔어!”
“흑기사 한 명 추가요!”
크고 작은 뱅에돔을 올릴 때마다 사심희는 어린아이처럼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살림망에 목표했던 열 마리를 채웠을 무렵이었다.
해는 점점 서산으로 기울고, 일몰이 가까워져 있었다.
“이제 철수할까?”
“아니. 딱 한 마리만 더 잡으면 좋겠어요. 내일 아침 먹방에 쓸 식재료도 마련해야지요.”
“아침부터 회를 먹으려고?”
“아뇨. 뜨끈한 뱅에돔 곰탕 어때요?”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인터넷에 레시피가 있었어요. 그대로 해 보면 되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채비를 발아래로 떨궜다.
그리고 곧장 낚싯대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또 화장실 가려고요?”
“난 좀 쉬고 싶어. 첫수를 사시미 님이 잡았으니까 마무리도 책임져야지.”
“좋아요. 안 그래도 손이 근질거렸는데.”
그녀는 신이 난 표정으로 낚싯대를 받았다. 그리고 아래로 고개를 숙여 찌의 위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찌가 안 보이는데요?”
“자세히 봐. 금방 발밑에 던져 놓았는데…….”
무슨 소린가 싶어 나도 아래를 굽어보았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다. 있어야 할 빨간색 구멍찌가 보이지 않았다.
쉬이익!
사심희가 낚싯대를 거머쥔 손을 만세를 부르듯 들어 올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찌이잉!
드랙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소리. 엉겁결에 물속을 들여다보니 바늘에 걸린 뱅에돔 한 마리가 쏜살같이 질주하고 있었다.
“내가 또 잡은 것 같아요!”
사심희는 이번에도 허둥지둥 혼비백산 몸을 가누지 못했다.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
그날 밤.
호도의 펜션 앞마당에서는 향긋한 숯불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해 왔어요? 너무 호강하는 기분이다.”
“좋아하니 다행이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멋진 여행에, 신나는 낚시에, 심지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라니.”
숯불 위에서는 두툼한 두 대의 토마호크가 익어 가고 있었다.
예전에 빼먹고 왔던 실수를 상기하며, 이번에는 전날 밤 아이스박스 위에 ‘토마호크 가져갈 것’이라는 메모지를 붙여 놓고 잤다.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게 정성스럽게 구운 고깃덩이를 먹으면서 사심희는 싱글벙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맥주를 홀짝거리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때, 펜션 주인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두 분, 참 보기 좋네요. 회사 동료가 정말 맞나요? 허허.”
“마침 잘 오셨습니다. 같이 좀 드시죠.”
“저도 눈치라는 게 있습니다. 부족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 주세요.”
한사코 마다하는 펜션 주인을, 사심희가 일어나 소매를 붙잡았다.
“맛이라도 보고 가셔야죠.”
“아하, 이것 참……. 그럼 딱 한 점만 먹고 가겠습니다.”
얼른 고기를 먹고 일어서려는 그에게 내가 맥주캔을 따서 권했다.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펜션 주인은 싫지 않은 눈치였다.
“오늘 낚시는 좀 어땠습니까? 아까 보니 아이스박스가 꽤 묵직하던데.”
“목표량을 채우고도 남았습니다.”
“역시 쑥섬 포인트가 실망시키지 않았군요. 허허.”
펜션 주인의 말에 사심희가 눈을 깜빡이며 끼어들었다.
“저기가 쑥섬인가 봐요? 무인도 같던데.”
“무인도죠.”
“그럼 주인이 없는 섬인가요?”
“웬걸요. 원래는 나라 땅이었는데, 수년 전에 어떤 외지인이 사들였다고 들었어요.”
“무인도를 사서 뭐 하려고 했을까요?”
“소문으로 들으니, 거기에 무슨 별장을 지으려고 했나 봅니다. 아직까지 그대로인 걸 보면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아니면 무슨 속사정이 있는가 보죠.”
사심희가 골똘히 뭔가 생각하더니, 내게 얼굴을 돌렸다.
“우럭 님이 저 섬을 사면 어때요? 너무 탐나는 곳이던데.”
“내, 내가?”
“나중에 늙으면 바닷가에 살고 싶다면서요? 저런 멋진 섬을 통째로 앞마당으로 삼아서 사는 거, 멋지지 않아요?”
“듣고 보니, 나쁘지 않네. 하지만 돈이 있어야 사지.”
“나중에 말이에요. 돈을 아주 많이 벌면.”
듣다 보니, 귀가 솔깃해졌다.
바닷가 외딴집에서 낚시로 소일하며 여생을 보내려는 나의 로망.
이미 그 꿈을 이룰 장소로 남해를 점찍어 두지 않았던가.
단숨에 맥주를 비운 펜션 주인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례가 많았네요. 외딴섬에 살다 보니 사람들만 오면 이렇게 주책이랍니다.”
“아이고, 별말씀을요. 우리도 슬슬 일어서려던 참이었습니다.”
펜션 주인이 총총히 떠나자, 사심희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제가 치울게요. 맛있는 것도 해 주셨는데.”
“같이해야지.”
즐거운 만찬이 끝나고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빈 맥주캔과 쓰레기를 분리수거함에 정리하는 동안, 내 귓가에 사심희의 엉뚱한 얘기가 맴돌았다.
‘우럭 님이 저 섬을 사면 어때요? 너무 탐나는 곳이던데.’
나도 모르게 쑥섬을 향해 고개를 돌려 보았다.
은은한 달빛에 무인도의 아름다운 형체만이 우뚝 솟아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사심희의 전화를 받고 펜션 앞마당에 가 보았더니, 그녀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릇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이게 뱅에돔 곰탕이라는 거야?”
“레시피랑 똑같이 해 봤는데, 정말로 국물이 끝내주네요.”
“맑은 국물이네?”
“머리와 뼈로만 우려냈으니까요.”
“살은?”
“포를 떠서 주인아저씨께 드렸죠.”
겨울 아침에 따뜻한 국물이 몹시 당겼다.
공깃밥을 반쯤 국에 말아 한 숟갈 떠먹으니 비린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담백한 국물에서 은은한 감칠맛이 올라왔다.
“괜찮죠?”
“괜찮은 정도가 아냐.”
“근데 눈가에 그건 뭐예요?”
“갑자기 뜨거운 걸 먹으니까 온몸의 피가 돌아서 그래.”
빨갛게 달아오른 내 눈시울을 보고 사심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찔끔 난 것 같았다.
또한 언제까지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그 끝을 알고 있기에 서글퍼서 그랬던 것도 같다.
* * *
펜션 주인은 우리를 미조항까지 바래다주었다.
곧장 올라갈까 하다가, 여기까지 온 김에 죽방 멸치나 살까 해서 지족마을로 차를 몰았다.
“어서 오시다.”
“죽방멸치 두 박스만 주세요.”
“아이고, 아침부터 개시를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죽방 멸치 가게 주인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멸칫값을 계산하면서 옆 건물의 낚시점을 보니, 문이 닫혀 있었다.
“저기 사시는 선장님은 오늘 쉬시나요?”
“웬걸요. 벌써 새벽에 손님들 모시고 낚시 갔겠죠.”
인사나 드리고 갈까 했는데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멸치 박스를 트렁크에 넣으면서, 나는 사심희에게 하나를 가리켰다.
“하나는 사시미 님이 가져가. 선물이야.”
“정말요? 요즘 무슨 일 있어요? 내게 너무 잘해 주신다.”
“하나밖에 없는 직원이니까. 복리후생도 없는데 이렇게라도 해 줘야지.”
“또 마음씨 좋은 사장님 코스프레인가요. 어쨌든 고마워요. 오늘은 멸치국수나 해 먹어야겠다. 헤헷.”
남해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우리는 지족마을에 있는 택배업체에 들러 뱅에돔 박스를 동두천으로 보냈다.
고속도로에 올라 한참을 달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한참 동안 재잘거리던 사심희가 갑자기 조용해져,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지만,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거의 말이 없었다.
그녀를 안양의 집 앞에 내려 주면서,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즐거운 출조였어. 잘 쉬고 다음에 봐.”
“다음 출조는…… 혹시 정했나요?”
“아직. 추워져서 당분간은 좀 관망하려고. 근데 그건 왜?”
“……사실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늘 거침없는 그녀가 웬일인지 머뭇거리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그때, 그녀가 어렵게 입술을 떼었다.
“미국에 좀 다녀오려고요.”
“……미국?”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녀 온다’는 그녀의 말뜻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럼…… 가, 갔다가 다시 온다는 거지?”
“그럼요.”
“언제 가는데?”
“다음 주 월요일요. 12월 1일.”
“아, 그렇구나…….”
“보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가급적 일찍 해결하고 돌아올게요. 출조 일정에 무리가 없게끔.”
뭘 해결한다는 말이지?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부모님 때문이죠. 외동딸 하나가 장기 가출을 하고 있으니 걱정이 너무 많으세요.”
“아아…….”
“연말이기도 하고, 뵌 지도 너무 오래돼서 겸사겸사 다녀오려는 거예요.”
“알았어. 출조는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서 잘 다녀와.”
한껏 밝은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잠시 후 차를 향해 걸어오는 내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보름 후면 돌아온다고 하는데…….
왜 벌써부터 마음이 허전해지는 걸까?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온 집에는 베타가 깡충깡충 뛰며 나를 반겼다.
“야~~~ 옹! 야옹!”
“집 지키느라 고생했다. 오늘은 너도 맛있는 거 해 주마.”
죽방 멸치 냄새에 흥분한 베타가 밥그릇에 얼굴을 박고 있는 동안, 나는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나는 모니터 속에서 벵에돔을 잡고 활짝 웃는 사심희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다면…….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바늘 공포증을 극복한 그녀에게 가끔씩은 낚시의 즐거움을 알려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화면을 정지시키고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보았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보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가급적 일찍 해결하고 돌아올게요.’
허전함은 이미 내 가슴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곳을 대신 메운 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