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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86화 (86/130)

[제86화] 비밀 포인트

선장이 계측한 참다랑어의 무게는 대략 80킬로그램.

결과를 확인한 백상효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내게 박수를 보냈다.

“축하하네. 이만하면 빅게임 프로 조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도 남지.”

“고맙습니다. 그런데 백 프로님도 채비를 내리셨으면 충분히 잡으실 상황이었습니다.”

“내가 그걸 욕심 내서 뭐 하겠는가. 하하하.”

역시 그랬었다.

수백 킬로그램의 괴어들도 잡았던 그가, 겨우 80킬로급의 물고기라서 경시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가 굳이 손맛을 포기한 이유는 오직 후배의 성공적인 랜딩을 도우려는 의도였다.

백상효는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대단했어. 역시 내가 들었던 대로야. 기회를 포착하는 동물적인 감각, 정확한 후킹과 유연한 파이팅. 그런데 한 가지는 나도 좀 의외더군.”

“뭐가 말입니까?”

“도중에 위기가 있었지. 내 말이 맞는가?”

“네. 두어 번쯤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난생처음 그런 대물을 만난 사람이라면 포기할 만도 했어. 그런데 끝내 그러지 않더군. 촬영분 때문에 그랬던 건가?”

왜 그랬을까?

이를 악물고 사투를 벌인 이유를 나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아닙니다. 이런저런 가르침을 받는 장면으로도 방송 분량은 이미 충분했습니다. 그게 아니라 참치를 드리고 싶은 분이 있어서였습니다.”

겸연쩍게 웃는 나를 항해, 백상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자네…… 저 참다랑어를 내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깜짝 놀란 백상효가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역시 자네의 남다른 성품 때문이었군. 하지만 그건 안 될 일이네. 후배가 잡은 생애 첫 참치를 내가 가져갈 수는 없지.”

“저는 가져가도 쓸 데가 없습니다. 백 프로님 아버님의 잔치에 쓰이는 게 제 첫수의 의미를 살려 주시는 길입니다.

“하지만…….”

“받아 주십시오. 제 부탁입니다.”

“아, 이 사람…….”

난처한 표정을 짓던 백상효는 결국 내 간곡한 눈빛을 저버리지 못했다. 마지못해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나는 참치와 기념 촬영을 할 수 있었다.

항구로 돌아가는 동안, 사심희가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오늘은 처음으로 먹방이 없네요.”

“그러게. 아쉬우면 돌려 달라고 할까?”

“절대로 그런 말 마세요. 아까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저런 대형 참치는 사시미 칼로 손질할 수도 없어요.”

사심희는 엄살을 떨면서 내게 잘했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했다.

아무튼 먹방은 처음으로 쉬게 되었고, 대형 참치와의 줄다리기만으로 한 편의 훌륭한 영화가 나올 터라, 나는 과감하게 생략하기로 했다.

귀항이 시작되고, 나와 사심희는 선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선장과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온 백상효가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에도 점점 남방에 서식하는 대형 어종들이 늘어나고 있네. 우리 낚시꾼들에게는 희소식이지만, 온난화로 인해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지.”

“그러니까요. 마냥 좋아할 수는 없겠어요.”

“아무튼 오늘 자네의 진면목을 알게 되어 나로서는 기쁜 날이었어. 그래서 말인데……. 나와 작은 약속 하나만 해 주지 않겠나?”

또 빅게임 프로 조사가 되라는 말씀을?

완곡하게 피해 가는 표현을 머릿속에 준비하고 있을 때, 그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프로가 되라, 빅게임 분야로 와라, 자네에게 강요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내 오랜 꿈을 자네가 대신 이뤄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

“무슨 꿈을 말입니까?”

“비즈비 블랙 앤 블루 우승! 선배가 못 이룬 꿈을 자네 같은 후배가 해내 준다면 내 여한이 없을 것 같네만.”

“아……. 제가 어떻게 그런 대회에서…….”

“아니야. 자네라면 충분히 가능해 보여. 당장 답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천천히 한번 생각해 보게나.”

“……알겠습니다.”

당황스러워 그렇게 우물거렸지만, 그 순간 내 심장은 먼바다를 향해 뛰고 있었다.

준서가 꿈꾸는 세계 대회 우승.

그것은 나의 욕망이자 꿈이기도 했다.

배는 빠르게 달려 아침에 출발했던 항구에 도착했다.

선장이 크게 만족한 웃음으로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지진이 났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멋진 놈을 구경시켜 주셨으니 선장으로서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또 놀러 오겠습니다.”

뭍에 올라 백상효와 나란히 주차장을 향해 걸어가던 도중, 작은 의혹 하나가 머리를 떠돌기 시작했다.

“백 프로님! 아까 좀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뭐가 말인가?”

“갑자기 나타난 참치 떼 말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물속에 뜬금없이 왜 나타났을까요? 심지어 베이트 피쉬도 없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하하하. 물속의 오묘한 뜻을 내가 알겠는가? 결과적으로 우리 아버님 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나타났다고 생각하게.”

“하하. 그런가요?”

백상효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와 헤어지고 차에 오르던 순간에도, 나는 바다에서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지진을 감지한 현기증 증상은, 확실치는 않지만 돌고래의 유전자 때문이라 여겨졌다. 그것이 나름 합리적인 추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갑자기 내 주변을 맴돌던 참치 떼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혹시 휘파람의 주파수대가 참치와 어떤 교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왜 오늘이었을까?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나는, 오늘 단순한 휘파람이 아니라 특정한 곡조를 바다에 불어 넣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릴 때 엄마가 불러 주던 자장가…….

노래에 담긴 리듬과 멜로디가 참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모르게 입술에서 휘파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삐 삐삐 삐비비비~~~♪”

그때였다.

차의 트렁크를 닫고 조수석으로 돌아온 사심희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내게 핀잔을 주었다.

“생뚱맞게 웬 자장가예요? 얼른 가요. 길 막히겠어요.”

“아, 미안.”

그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내가 미쳤지.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다니.

돌고래의 후예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 좀 오버한 모양이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차에 올라, 곧장 차를 출발시켰다.

그 순간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아주 먼 바다의 깊은 곳에서 부글부글 물이 들끓다가 다시 잔잔해졌다는 사실을.

* * *

그로부터 약 일주일 후, 이른 아침.

“저라면 이분에게 보내 드리고 싶어요. 열 마리쯤 잡아서 보내면 몇 달 동안은 드실 수 있겠죠?”

조수석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사심희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11월의 마지막 출조는 뱅에돔 낚시였다.

나는 목적지로 향하면서 사심희에게 내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직접 나눔 대상을 선택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였다.

그녀의 생각도 나와 같았다.

동두천에서 살고 있다는 중년의 사내는, 제주도를 고향으로 두신 아버지를 모시고 있다며 장문의 편지를 시작했다.

평생을 자식들 뒷바라지에만 힘쓰시던 아버지가 치매를 앓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 끼니때마다 어릴 적에 즐겨 먹던 뱅에돔 곰탕을 찾으신다는 사연이었다.

“패앵!”

사심희는 결국 크게 코를 풀고 나서야 마음을 진정시킨 듯했다.

잠시 후 옹알이를 하듯 중얼거리던 그녀가 곤히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나는 천천히 차의 속도를 높였다.

사심희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네 시간 뒤.

차량이 사천을 지나고 오른쪽으로 삼천포 대교가 보였을 무렵이었다.

“음……. 벌써 해가 높이 떴네요? 여기가 어디죠?”

“자세히 봐 봐.”

“어? 이거 남해로 들어가는 다리 아녜요?”

“맞아.”

“또 남해라니. 올해만 벌써 네 번째 아닌가? 이 동네에 너무 꽂히신 거 아닌가요?”

잠꼬대처럼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나는 별로 부인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남해가 좋아. 그리고 오늘 가는 곳은 사시미 님도 모르는 곳일 거라 장담하지.”

“오호! 벵에돔이 득실거리는 비밀 포인트라도 알아 뒀나 보죠?”

“글쎄. 틀린 말은 아니네.”

나는 삼천포 대교를 건너기 전에, 오른쪽 상가 쪽으로 차를 붙였다.

“점심은 여기서 먹지.”

“오오! 여긴 어디죠?”

“나도 몰라. 지나가다가 보니 눈에 뜨여서.”

내가 앞장서서 문을 연 곳은 대게를 파는 식당이었다.

예전부터 삼천포 대교를 건너면서 눈여겨봐 둔 곳이었다.

“대게 한 마리씩 어때?”

“비싸지 않나요?”

“요즘 한창 대게 철인데 우리도 맛은 봐야지.”

나는 종업원을 불러 씩씩하게 대게 두 마리를 주문했다.

수율이 90%가 넘는 살찐 대게를 뚝딱 해치우고, 게 뚜껑에 가득히 담긴 녹색 내장에 밥을 비벼 먹었다.

“오늘 좀 무리하시는 거 같은데…….”

“중식대도 따로 주지 못하는데 이 정도야. 하하.”

호기롭게 밥값을 계산하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삼천포 대교를 넘어서자, 양쪽 길가에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풍경들이 펼쳐졌다.

그렇게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미조항이었다.

선착장에서 꽁지머리를 한 거구의 사내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방을 두 개나 예약하셔서 단체로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이구, 예쁜 여자분도 오셨네요.”

호도의 펜션 주인.

우리를 픽업하기 위해 미조항까지 나와 준 그는 무거운 짐을 번쩍 들어 보트에 실어 주었다.

뿌옇게 긴 궤적을 만들어 내며 달리는 보트 안에서, 사심희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미조항 너머에 이런 멋진 섬이 있을 줄이야.”

“아직 놀라기엔 일러.”

“아직도 말하지 않은 게 있다고요? 이번에는 낚시가 아니라 여행을 온 것처럼 더 기대되네요.”

보트가 호도에 도착하고, 우리는 서둘러 펜션으로 향했다.

각자의 방에 짐을 풀어 놓고 나왔을 때는 오후 2시가 약간 넘은 시각이었다.

“이야! 섬 주변의 바다가 온통 호수처럼 잔잔하네요. 날씨가 맑아서 너무나 투명해 보여요.”

“잠깐 산책이나 할까?”

“바로 낚시하러 가지 않고요?”

“뱅에돔은 일몰 직전에 잘 나온다니까. 타이밍 맞춰서 딱 열 마리만 잡으면 되지 않겠어?”

“오늘따라 자신감이 넘치시네. 정말로 비밀 포인트가 있는 건가?”

나는 말없이 펜션을 나와 솔숲 쪽으로 걸었다.

서늘한 숲에 이르러 우리는 나란히 너럭바위에 걸터앉았다. 예전에 나와 펜션 주인이 앉았던 바로 그 위치였다.

가만히 주변을 감상하던 사심희가 정면에 보이는 섬을 가리켰다.

“저기에도 섬이 있네요? 아담하고 참 예쁜 섬이다.”

“자세히 봐 봐.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아?”

“글쎄요. 위쪽은 평탄해 보이고 사방이 암벽이네요. TV에 나온 곳인가 보죠?”

“…….”

멀리서 봐서 그런가?

나는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슬슬 저 섬으로 가 볼까?”

“네에? 그럼 오늘의 비밀 포인트가 바로 저긴가요?”

“맞아. 어렵게 찾아낸 포인트였지. 아주 어렵게.”

“어쩐지 펜션 아저씨랑 서로 알고 있는 것 같더라니.”

우리는 솔숲을 나와 다시 펜션으로 돌아왔다.

펜션 주인과 함께 보트를 달려 쑥섬의 코앞에 닿을 때까지도 사심희는 여전히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일몰 경에 전화드릴게요.”

“그러세요. 해 떨어지기 전에 꼭 전화 주셔야 합니다.”

보트가 휙 떠나자, 사심희는 두 팔을 벌리고 빙빙 몸을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너무 좋은데요. 그냥 이곳 해변에서 낚시하면 안 되나요?

“모래밭에서 뱅에돔을 잡자는 거야?”

“그냥 해 본 소리예요.”

나는 씩 웃으며 가파른 오솔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끔씩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사심희도 곧잘 내 뒤를 따라왔다.

잠시 후 빽빽한 나무들을 헤치며 마침내 도착한 전설의 갯바위.

나는 바닥에 낚싯짐을 내려놓으며 사심희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는 해변에서와 똑같이 시선을 위로 향하고, 이리저리 몸을 돌리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정말로 와 본 곳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네.”

나는 낚싯대를 들고 갯바위에 가만히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어딘가를 가리켰다.

“조금만 더 뒤로 가 볼래? 옳지! 바로 거기야. 거기서 내 독사진 좀 찍어 줘.”

“갑자기 웬 사진? 아아, 알겠어요.”

안 하던 짓을 했더니 사심희가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카메라의 앵글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천천히 카메라로 얼굴을 가져가던 그녀가 움찔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고개를 불쑥 위로 내밀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녀는 말을 맺지 못했다.

“맙소사! 여기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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