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괴물
바다를 향해 멍때리는 내게, 백상효의 굵직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뭘 그렇게 보고 있나? 물색은 그리 나쁘지 않네. 피딩 타임을 노려보면 몇 마리는 건질 수 있을 거야.”
“아……, 알겠습니다. 시작해 보겠습니다.”
투시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시작도 하기 전에 맥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속의 상황을 혼자만 아는 것이, 꼭 좋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수심이 대략 60미터 되겠군.”
백상효는 계속 중얼거리며, 바닥까지 내린 메탈지그를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상하좌우로 텅 빈 바닷속을 누비는 그의 크롬빛 메탈이 허망하게 보였다.
현기증 때문에 좋은 컨디션은 아니지만, 나는 액션 연습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백상효를 똑같이 따라 하고 있었다.
최악의 바다 상황에 내심 실망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짧고 강하게, 또다시 길고 부드럽게 여러 가지 액션을 시도하던 백상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물고기가 안 들어왔나? 선장! 어탐기 확인해 봤어?”
“아직 잡히는 게 없어요. 다른 배들도 마찬가지 상황인 것 같고요. 포인트를 옮기는 것보다는 일단 상황을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힘없는 선장의 말에 백상효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번지고 있던 그때였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사심희가 나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오키나와 근처에서 진도 5.8 지진이 났대요!”
“정말이야? 언제?”
“20분 정도 전인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을 들은 백상효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낚싯대의 동작을 멈췄다.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날을 잘못 잡은 것 같네. 예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어. 지진이 있는 날에는 특히 회유성 어종들이 어디론가 숨어 버리더라고.”
“그럼 어떻게 하죠?”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뭐라도 잡아가야지. 잠깐 쉬면서 상황을 좀 지켜보세.”
갑판에 옹기종기 아이스박스에 걸터앉은 우리 일행은 끝을 모를 기다림을 시작했다.
다행히 현기증은 많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쉬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씩 나와 백상효가 채비를 드리우고 상황을 체크했지만, 번번이 허탈한 표정으로 자리에 돌아왔다.
솔직히 물속을 보면 볼수록 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해는 중천에 떠올랐다.
승부는 일찌감치 의미 없는 단어가 되어 바람에 날아갔고, 뱃전에는 깊은 한숨 소리만 들려왔다.
백상효가 헛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자네의 파이팅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네.”
“아닙니다. 그래도 대선배님과 이렇게 바다에 나온 것만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그런데 왠지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는군.”
“약간 몸이 좋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별일 아닙니다.”
“그런가? AON이 그러더군. 자네에게 단순히 즐기는 낚시 이상의 뭔가가 있다고. 사람들을 위하는 절실함이 자네의 숨겨진 무기인 것 같다고 말이야.”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그의 말을 가벼운 농담으로 되받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눔 요청이 전혀 없었습니다. 물속 상황이 좋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입니다. 하하.”
“나눔이 없다니 그건 또 어떻게 된 건가?”
“대결 상대가 선배님이라는 걸 알았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아아. 역시 내가 어리석은 제안을 한 것만은 틀림없군. 나중에 따로 날을 잡게 된다면, 내 그런 제안은 하지 않겠네.”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는 그가 말했던 부친의 팔순 잔치를 떠올렸다.
“그런데 당장 고기가 필요한 상황 아니십니까?”
“그렇긴 하지.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나도 대방어 서너 마리만 챙기고 전부 자네의 좋은 일에 보탤 생각이었어. 하지만 바다가 허락하지 않는데 어쩌겠나.”
백상효는 그렇게 말하고, 벌떡 일어나 내게 물었다.
“자네 몸은 좀 괜찮은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근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놀면 뭐 하겠나? 아까 지켜보니 자네에게 좀 지적해 주고 싶은 부분이 있더군. 이왕 온 김에 연습이나 하고 가세.”
“정말입니까?”
나는 후닥닥 일어나 낚싯대를 들었다.
“무조건 큰 액션을 한다고 물고기를 유인하는 건 아니야. 상황에 따라 변화를 줘야 하지. 가령…….”
그의 오랜 경험에서 터득한 그만의 비법이었다.
백상효는 내가 준서를 대하듯 다정한 목소리로 몇 가지 팁을 직접 선보였다.
백상효는 열성적인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가르쳐준 대로 내가 잘 따라 할 때마다 그는 선글라스 아래로 잇몸을 드러냈다.
“지금 방어가 온다면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렇지! 바로 알아들었군.”
물론 간혹 내가 엉성한 모습을 보일 때면 곧바로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릴을 감으면서 좌우로 흔들어야지! 몇 번이나 말해야 하나?”
“아, 예.”
겸연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리는 내 모습을 사심희는 키득거리며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대물 방어로 멋진 승부를 꿈꿨던 출조였다.
그러나 두 사내의 머릿속에는 어느덧 애초의 목적은 까맣게 잊혀지고 있었다.
“아아,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직 멀었어. 다음에 기회를 봐서 또 나와 보세. 그땐 오늘처럼 시뮬레이션이 아니고, 실전 훈련이네.”
“넵. 알겠습니다.”
“맨땅에 헤딩만 했더니 더 숨이 차네. 잠깐만 쉬지.”
행복한 시간이었다.
평생을 바다에서 얻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달하는 일에, 백상효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후배를 키우려는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고 나니, 이제는 바다와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었다.
“선장! 철수하세!”
백상효가 선장에게 손짓을 보내는 동안, 나는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마지막으로 아쉬움을 잔뜩 담은 휘파람을 불어 봤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게다가 백상효로부터 값진 수업을 받은 뒤라, 물고기에 대한 아쉬움은 거의 느껴지지도 않았다.
“삐 삐빠 삐비비비~~~~♪”
한동안 땀을 흘리고 시원한 바람에 식히다 보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래서였는지 나도 모르게 내 입술 사이에서 오랜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백상효가 내 휘파람 소리를 듣고, 껄껄 웃었다.
“어릴 때 듣던 자장가구만. 꽝을 치고도 여유로운 모습이 참 보기 좋네.”
“오늘만 날이겠습니까?”
엄마가 섬 그늘에…….
제목이 뭐였더라? ‘섬집 아기’였던가?
희미한 노래 제목을 더듬으며 완창을 하고 나서야,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백상효는 낚싯대를 거두고, 생수로 세척하는 중이었다.
나는 다시 휘파람을 불며 거치대에 있는 낚싯대로 손을 가져갔다. 아무런 기대 없이 무심코 물속을 들여다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저, 저게 뭐지?
내가 발견한 것은 바다 깊숙한 곳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괴생명체였다.
상어? 돌고래? 아니면 상괭이?
수많은 물고기의 이름들이 뇌리를 스쳐 갔다. 그러면서도 내 손은 본능적으로 거치대에 놓인 지깅대를 뽑아 들고 있었다.
풍덩!
내 손을 떠난 은빛 갈치 모양의 지그가 기포를 뿜어 내며 하강했다.
심호흡을 길게 하며 내려다보니, 괴생명체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바닥권에 도사리던 서너 마리의 무리가 빠르고 느린 움직임으로 사방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타원형의 몸체가 거의 사람 크기에 육박해 보였다.
“뭐 하나? 이제 철수해야 하는데…….”
어떡해야 할까?
백상효의 의아한 눈길이 나와 마주치자 일순간 할 말을 잊었다.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다행스럽게도 선장이 뛰어나와 크게 외쳤다.
“바닥에 엄청난 놈들이 들어왔어요. 아무래도 참치 같습니다!”
참치?!
도무지 믿기지 않는 물고기의 이름이었다. 선장의 외침에 백상효는 해체했던 낚싯대를 부랴부랴 조립하기 시작했다.
“으으윽!”
그때 내 어깨가 크게 출렁거렸다. 하마터면 몸이 앞으로 쏠려 꼬꾸라질 뻔했다. 아니, 나를 일시에 바다로 빨아들이는 것 같은 마력의 힘이었다.
정확히 걸렸다!
바늘에 걸린 턱을 치켜드는 바람에 처음으로 놈이 얼굴을 드러냈다.
화면이나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것은 틀림없는 참다랑어였다.
“걸렸어요!”
비명이나 다름없는 내 외침에 백상효는 낚싯대를 던져 놓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내 낚싯대의 휨새와 진폭을 유심히 관찰하던 그가 크게 소리쳤다.
“드랙을 더 풀어! 50킬로는 넘는 사이즈야.”
“……네.”
그의 말대로 드랙을 풀자 주르륵 줄이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줄이 다 풀려 나갈 것 같아요.”
“상관없어. 이 낚싯대로 저놈을 올리려면 일단 힘을 빼야 해.”
내가 가져온 지깅대는 최대 50킬로그램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제품이었다.
나는 그의 말뜻을 이해하고, 긴 싸움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드랙을 조이고, 놈이 고개를 돌리도록 해 봐. 전동릴을 쓰지 말고, 수동으로. 놈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힘 조절을 하면서!”
“네네.”
엄청난 놈이었다.
살짝 드랙을 조이자마자 내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듯 쏠리고 말았다.
나는 파이팅벨트를 더듬어 손잡이를 고정시키고, 온 힘을 다해 릴을 감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내 머리를 엄습한 감정은 즐거움이 아니라 공포에 가까웠다.
처음으로 마주한 괴력에 압도된 나머지, 과연 내가 이 싸움에서 이겨 낼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아아악!”
또다시 크게 요동치는 놈의 저항에 하마터면 낚싯대를 놓칠 뻔했다.
위험천만한 순간에 낚싯대를 놓고 싶은 충동마저 일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참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오오!
거칠게 먼 바다로 질주하던 참치가 드디어 고개를 돌리고 숨을 몰아쉬는 것 같았다.
나는 때를 놓칠세라, 다시금 힘차게 릴의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왼쪽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심희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내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백상효의 거친 숨소리만이 간간이 느껴졌다.
긴 싸움이었다.
드랙을 치고 나가는 놈을 허망하게 바라보다, 기운이 빠졌을 때를 틈타 다시 끌어 올리면서, 나와 참치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 시간, 아니 두 시간이 흘렀을까?
모두들 숨을 죽인 가운데 갑자기 주변에서 거친 탄성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와와! 대단한 놈입니다!”
“자네가 해냈어. 내가 뭐라고 했는가. 자네는 빅게임을 위해 태어났다고 하지 않았나. 하하하.”
선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갈고리로 참치의 아가미를 걷어 올리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나는 낚싯대를 손에 쥔 채로 털썩 주저앉았다.
사람들의 다리 사이로 내 몸통만 한 참치가 바닥에서 퍼덕이고 있었다.
나는 문득 들고 있던 낚싯대를 내려다보았다
길게 늘어진 국방색 낚싯줄이 참치의 주둥이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나와 저 엄청난 괴물 사이에, 고작 이 가느다란 줄만이 존재했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