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장어구이
후두둑! 휘청휘청!
입질을 감지한 준서가 낚싯대를 낚아채는가 싶더니, 곧바로 챔질을 시도했다.
잠시 후 낚싯대의 진동을 확인한 아이의 앙칼진 목소리가 방파제를 울렸다.
“왔어요!”
고마운 녀석.
준서는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휘리릭 릴을 감아 방파제 위로 거침없는 들어뽕.
어둑한 밤하늘을 이무기처럼 솟아오른 붕장어의 출현에, 누구보다 감격한 사람은 나였다.
“보셨죠? 오늘 촬영은 여기서 끝입니다. 우럭 삼촌이 너무 배고파해서 얼른 먹어야 할 것 같아서요. 다음에 또 만나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준서의 클로징 멘트에 사심희가 키득거렸다.
나는 비장한 얼굴로 일어나 낚싯대를 들었다. 그리고 준서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준서야. 자연인 체험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한 사람당 두 마리씩은 먹여야 한다. 알겠지?”
“그럼요. 삼촌.”
쉬이익! 쐐애액!
준서와 나의 채비가 동시에 낚싯대를 떠났다.
멋진 콤비였다.
내 채비는 원거리를, 준서는 가까운 곳을 공략하면서 자급자족을 위한 본격 낚시에 돌입했다.
“왔어요!”
“나도 히트다!”
듣던 대로 넣으면 나오는 곳이 틀림없었다.
낚싯대를 내려놓으면 여지없이 들어오는 입질 때문에 배고픔도 싹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사심희도 이제는 정말로 이게 내 큰 그림이었는지 헷갈려하는 모양이었다.
“오오! 좋아요. 오랜만에 단백질 보충하게 생겼네요. 준서야 이번엔 더 큰 걸로 잡아 봐.”
“네. 이모. 안 그래도 묵직한 게 올라오고 있어요.”
그렇게 두 사람이 한 시간 동안 잡은 붕장어가 일곱 마리.
해가 떨어져 어둑해지자, 주변의 가로등에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준서야. 이제 그만하자.”
“네에? 이렇게 잘 나오는데……. 알았어요. 삼촌이 배고프다는 걸 깜빡했네요.”
미련이 남은 준서를 달래면서 우리는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30분 뒤.
민박집 앞마당 잔디밭에서는 붕장어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부랴부랴 내가 숯불을 피우는 동안, 사심희는 빠른 손놀림으로 붕장어 손질을 마쳤다.
준서는 휴대용 버너에 올려진 프라이팬에 농게를 튀기느라 신이 났다.
“삼촌! 이거 먹어 보세요.”
준서가 잘 익은 농게 한 마리를 내 입에 넣어 주었다.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았는데, 바삭하고 짭짤한 것이 별미가 따로 없었다.
멀리서 사심희가 벌써 한 마리를 오물거리며 준서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었다.
“최고의 에피타이저구나. 베타에게도 하나 줘 봐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준서가 바닥에 한 마리를 내려놓자, 베타가 구석까지 물고 가서 와드득 씹어 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돌아와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 베타에게 준서가 머뭇거렸다.
“거의 안 남았는데. 옜다. 그럼 하나만 더 먹어.”
“왜~~~~ 용!”
베타가 준서의 말을 들을 리 없다.
냉큼 한 마리를 삼키고 또 애교를 부리는 베타 덕분에 농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준서야. 이게 네가 잡은 붕장어야. 제일 큰 걸 네가 잡았더라.”
치이익~~
잘 달궈진 석쇠에 한 마리를 올리자마자 지글지글 기름이 흘러나와, 군침이 절로 돌았다.
참을 수 없는 식욕에 나는 나머지 붕장어들을 한꺼번에 숯불 위에 올려놓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런데 좀 이상하네. 분명히 일곱 마리였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한 마리가 비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설마 베타 이 녀석이……. 그 뜨거운 걸 벌써 먹었을 리는 없겠고.
농게들을 해치우고 입맛을 다시고 있는 베타가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허기부터 채우기로 했다.
“자아, 오늘의 메인 메뉴가 나왔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장어들을 가위로 적당히 잘라 내고 야외 테이블에 올려놓았더니 준서와 사심희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야! 맛있겠다.”
“잘 먹을게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젓가락이 날아다녔다.
“소금만 쳤는데도 이렇게 맛있을 수가. 너무 잘 구웠어요. 삼촌.”
“그거 봐라. 직접 잡아서 먹는 게 훨씬 맛있지. 가끔은 오늘처럼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거들먹거리는 내 말에 사심희가 예리하게 끼어들었다.
“배가 고파서 맛있는 건 아니고요?”
“그런가…….”
한 사람에 두 마리씩이지만 그럭저럭 배를 채울 정도는 되어 다행이었다.
두툼한 붕장어 조각을 우걱거리며 접시를 슬쩍 내려다보니, 안타깝게도 달랑 한 조각만 남아 있었다.
먹음직스럽게 생긴 꼬리였다.
저걸…….
일생 최대의 심리적 갈등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준서가 젓가락으로 그것을 슬쩍 내 앞으로 밀어 넣었다.
“이건 삼촌이 드세요. 오늘 몹시 피곤해 보이시던데. 꼬리가 몸에 좋대요.”
이, 이런…….
조그만 녀석이 뭘 알고 하는 소리는 아닐 테고. 그래도 한 번은 마다하는 모습을 보여야겠지.
“아니야. 한창 커야 할 네가 먹어라.”
“저는 많이 먹었어요. 그럼 사심희 이모가 드세요.”
“준서 너 먹어. 이모는 잠깐 안에 들어갔다 올게.”
사심희가 갑자기 자리를 비웠다.
정 그렇다면 내가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던 그때.
“베타야~ 아무도 안 먹으니까 이건 네가 먹어라.”
아흑.
준서가 마지막 조각을 베타에게 던져 주는 모습을 보며,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자, 마지막 비장의 요리가 나왔습니다.”
그때 집 안으로 들어갔던 사심희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접시를 들고 나타났다.
비장의 요리? 골뱅이는 아닐 테고.
그녀가 내려놓은 접시를 보니, 빨갛게 양념이 배인 장어 구이였다.
“아까 한 마리 따로 챙겨 놓았어요. 이건 우럭님 술안주예요. 붕장어 잡는다고 해서 양념을 조금 가져왔죠. 부산에서는 많이들 이렇게 하더라고요.”
소금구이에 이은 양념구이라니.
구원의 여신은 언제 가져왔는지 캔맥주를 하나 꺼내어 내 앞에 내려놓았다.
붕장어.
아나고라도 불리는 이것은 예전에 너무 흔해서 값싼 횟감의 대명사였지만, 근래에는 귀한 생선이 되어 버렸다.
하나밖에 없는 꼬리를 집어 얼른 입 안에 넣어 보았더니.
아아, 이건 천상의 맛이다. 매콤하면서 새콤한 이 마법의 소스는 무엇인가.
호기심 많은 준서도 냉큼 한 점을 우물거리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맵지만 너무 맛있어요. 이모! 이거 정말 최고예요.”
감동의 양념구이 접시를 비우고 나서야 맥주캔이 눈에 들어왔다.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켜던 나는 반쯤 남은 캔을 탁자에 탁 내려놓았다.
“사시미 님! 이 양념 남은 것 좀 있어?”
“있긴 있는데. 왜요?”
“나 어디 좀 다녀올게. 준서는 이모랑 잘 놀고 있거라.”
나는 쏜살같이 차에 올라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삼촌 어디가요?”
“냉장고에 가서 붕장어 좀 꺼내 오마. 많이 늦진 않을 거야.”
이 맛있는 요리를 두고 잠을 자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방파제로 달려가 곧장 낚싯대를 폈다.
밤이 깊어지면서 주변의 낚시꾼들도 많아지고, 붕장어의 활성도도 높아졌다.
배도 채웠겠다, 진득한 손맛을 즐기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는 양념구이를 더 먹으려던 애초의 계획도 잊은 채 낚시에 빠져들었다.
망태기 가득 붕장어를 들고 돌아왔을 때는, 숯불은 전부 꺼져 있고, 모두들 잠들어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사심희가 눈을 바비면서 방에서 나와 내게 물었다.
“이게 무슨 냄새죠?”
“장어탕을 끓여 봤어. 맛이 어떨지 모르겠네.”
사심희가 비몽사몽 걸어가, 끓고 있는 냄비 뚜껑을 열어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냄새는 그럴듯한데…….”
“통영에서 먹던 걸 흉내 내 본 거야. 준서 좀 깨워 줄래?”
준서를 깨워 함께 마주한 식탁에서 사심희가 먼저 국물을 한 숟가락 음미했다.
“음…….”
“어때?”
“솔직히 기대 이상이에요. 합격!”
서당개의 요리는 합격점을 받았다.
그동안 사심희의 요리를 어깨너머로 배운 덕분이다. 꾸밈없는 어린이의 입에서도 칭찬이 튀어나왔다.
“우와! 맛있어요.”
“아침 든든하게 먹고 떠나자.”
부랴부랴 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기던 사심희가 깜짝 놀라며 내게 물었다.
“아이스박스에 이건 뭐죠?”
“준서네 식구들 먹으라고 싸 둔 거야. 골뱅이랑 장어랑.”
“어쩜 손질까지. 밤 꼴딱 샌 거 아녜요?”
“아냐…….”
“지난번에는 준서가 그러더니, 그 조카에 그 삼촌이 따로 없네.”
결국 나는 장어 양념구이를 먹지 못했다.
그러나 천상의 그 맛은 그 후로도 오랜 동안 내 혀끝을 맴돌곤 했다.
* * *
준서의 두 번째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 이틀 후.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준서의 원장 할아버지에게서 온 전화였다.
“우럭 선생님 되십니까?”
“아, 원장님. 잘 지내셨어요?”
“저야 덕분에 잘 지내고 있지요. 그것보다 너무 신세를 지는 것 같아 전화드렸습니다.”
“아, 장어요? 부족하진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그것도 그렇지만, 너무 큰돈을 보내셨지 뭡니까.”
“아, 그거야.”
전날 밤 송금한 돈 얘기였다.
11월의 정산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나는 준서의 몫을 계산하여 송금했다.
나름의 산식으로 산출된 금액은 월간 정산금의 10% 수준이었다. 나는 절반은 준서의 통장으로, 나머지는 보육원의 후원 계좌로 나눠 보냈다.
“제게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준서가 번 돈이니까요.”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저는 알지요. 뭐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준서에게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준서의 통장은 적당한 때가 오면 잊지 않고 전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가슴이 따스해지는 걸 느꼈다.
낚시로 맺게 된 소중한 인연.
나는 준서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 * *
그날 오후 나는 오랜만에 아지트를 찾았다.
인테리어 공사가 끝났다는 전갈을 받고 구경이나 하려는 생각이었다.
“아지트 쪽으로 따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어. 네 말대로 사무실 사이에 두꺼운 벽을 세웠고.”
건물 앞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고동우는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직원들은 구하고 계신 거죠?”
“그럼. 전용 온라인 몰은 외주 견적을 받는 중이야. 온라인 판매 전담 인력은 구인 사이트에 올려놓았고. 택배 포장하실 분들은 우리 마나님이 모으고 있어. 알바로 할지 정직원으로 고용할지 아직은 고민 중이다만.”
고동우는 나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단순한 하나의 점포 운영에서 전국 규모의 온라인 판매를 맡게 되었으니, 그로서도 남다른 각오가 있었으리라.
“한번 올라가 볼까요?”
“미안하지만 먼저 구경하고 있어라. 난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거든.”
고동우가 바쁜 척하는 바람에, 나는 홀로 새로 만든 철제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갔다.
아지트의 문을 열자 가슴에서 휑한 바람이 불었다.
주방만 그대로였고, 소파와 테이블이 꽉 차서 발을 딛고 서 있을 틈도 없었다.
그나마 벽에 걸린 조어도만이 이곳이 아지트였다는 것을 알려 주는 듯했다.
나는 비좁은 틈을 비집고 걸어가 소파에 걸터앉았다.
창문을 등지고 주방을 향해 앉아 있다 보니, 오래 전 사심희가 무시무시한 회칼로 천상의 초밥을 만들던 장면이 되살아났다.
지난봄이었던가. 일 년이라고 했었지.
지그시 눈을 감았더니, 애써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걱정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