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머드맥스
11월의 두 번째 주말.
준서와 사심희를 태운 차는 서해안의 어느 민박집 앞에 멈췄다. 하늘은 맑았지만, 제법 쌀쌀한 날씨에 모두들 두툼한 점퍼 차림이었다.
“외딴집이라 그런지 약간 으스스하네요.”
차에서 내려 민박집의 전경을 바라본 사심희의 첫마디였다. 대산읍에서 바다 쪽으로 달리다가 좁은 산길로 들어서 어렵게 찾은 민박집이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져 캠핑하기에 적절한 계절이 아닌지라, 일주일 전에 예약을 해 두었다.
지난 며칠 동안은 내게 혼돈과 충격의 연속이었다.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머물다 온 뒤라 그런지, 친숙한 사람들과 떠난 주말여행에 마음은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잔디밭이 참 넓고 좋네. 사진으로 보니까 실내가 더 멋지더라고.”
나는 짐을 번쩍 들고 앞장서서 2층 계단을 올랐다.
집주인이 알려 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준서의 탄성이 튀어나왔다.
“와아, 너무 아늑해 보여요. 오늘 여기서 자는 거죠?”
“그럼. 방도 두 개나 되니까 편하게 잡으면 임자란다.”
“저 위에 다락방도 있어요!”
준서가 좋아하니 참 다행이다.
이 민박집을 선택한 이유는 사진으로 확인했던 다락방을 아이가 좋아할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베타야. 가자!”
준서는 베타를 데리고 곧장 다락방 계단을 뛰어올랐고, 사심희는 방을 구경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흐뭇한 시선을 거두면서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빽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바다.
미리 확인한 물때에 맞춰, 바닥을 드러낸 갯벌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어느새 내 뒤로 다가온 준서가 밖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늘 저기에서 노는 거예요?”
“물이 들어오기 전에 얼른 나가자. 낚시는 밤에 하고, 낮에는 갯벌 체험이야.”
야심차게 준비한 준서의 두 번째 촬영 날이었다.
나는 가급적 낚시 이외에도 준서에게 여느 아이들처럼 다양한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낮에는 펄에서 신나게 놀고, 밤에 방파제에서 붕장어를 잡으려는 계획을 세워 두었다.
준서가 신이 나서 밖으로 나가려는데, 사심희가 영 미심쩍어하는 투로 내게 물었다.
“오늘 저녁거리는 뭐죠? 하도 큰소리를 치니까 무슨 대단한 걸 준비해 왔는지 궁금하네요.”
“궁금하지? 내 계획을 알면 깜짝 놀랄걸?”
늘 식사를 챙기느라 고생하는 사심희를 위해, 이번에는 내가 준비부터 요리까지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을 해 두었다.
전날 남해에서 올라오는 길에 값비싼 토마호크를 세 덩이나 구입한 것은, 최고의 바비큐 파티를 열어 주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이걸 보면 놀라 자빠지겠지.
나는 의기양양하게 아이스박스의 뚜껑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작 그 안에 들어 있어야 할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박스 안에는 참숯 세 봉지만이 달랑 들어 있었다.
사심희가 미간을 좁히며 아이스박스 안을 들여다보았다.
“설마 숯을 먹으려는 건 아니겠죠?”
아아. 아침에 냉장고에서 꺼내는 걸 깜빡했구나.
남해에서 겪은 복잡한 일로 머리에서 나사가 하나 빠져나간 모양이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실직고하고 근처 마트로 삼겹살이나 사러 갈까, 잠깐 망설였지만 이내 시치미를 떼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큰소리를 쳐 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갯벌에 나가면 싱싱한 해물이 지천으로 깔려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이게 오늘의 큰 그림이야. 준서에게 자급자족을 몸소 경험하게 해 주려는 거지. 갯벌에서 잡은 걸로 저녁에 해산물 바비큐 파티를 열 테니까 기대하라고.”
“…….”
“삼촌! 정말이에요? 너무 재미있겠다!”
사심희는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고, 준서는 신이 나서 만세를 불렀다.
나는 사심희의 시선을 피해 딴청을 피우며 현관 근처의 신발장을 열었다.
“장화로 다들 갈아 신읍시다. 준서는 호미를 하나 챙기고, 나는 삽을 가져가고. 사시미 님은 해산물을 담을 망태기 하나만 들면 되겠고…….”
그렇게 큰소리를 치고 나선 한낮의 갯벌 체험.
전날 남해에서 찬 바람을 쐬고 온 베타는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 집 안에 두고 나왔다.
민박집에 딸린 텃밭을 지나 갯벌로 곧장 이어지는 오솔길을 내려가니, 널찍한 펄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최근에 유튜브에 나온 곳이야. 머드맥스라고 경운기들이 마구 달리는 홍보 영상으로 유명해진 곳이지.”
“그런데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가 않네요.”
충남 대산 오지리.
내 말처럼 최근에 유명해진 곳은 틀림없는데, 주말을 맞아 사람들이 북적거릴 거라는 예상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사람들 없으면 더 좋지. 낙지며, 소라며, 전부 우리 거 아니겠어?”
계속 큰소리는 치고 있지만, 은근히 불안했다.
잠시 후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어보니, 사람들이 뜸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실례지만 여기 사세요?”
“그런디유?”
“요즘 갯벌에서 뭘 잡을 수 있나요?”
“곧 겨울인디 뭐가 나오겄슈? 내년 봄이나 되어야 뭐라도 나오겄지. 땅 파면 지랭이는 좀 볼 수 있을 거유. 바지락은 어촌계 허락 없으면 절대 캐지 못하는 거 알쥬?”
바지락은 애초에 캘 생각도 없었다. 그 정도 상식은 나도 있다. 마을 주민이 떠나자, 나는 사심희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길게 한숨을 쉬더니, 곧 준서를 따라 털레털레 걸어갔다.
큰일이다.
까닥하면 저녁을 굶게 생겼다. 하지만 아무리 춥다고 이 드넓은 곳에 우리가 먹을 생명체가 하나도 없겠는가.
나는 걸어가면서도 고개를 숙여 바닥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간혹 구멍이 있어 낙지가 있나 기대하며 삽으로 열심히 파 보았지만, 정말로 갯지렁이만 나오기 일쑤였다.
물속이 아니라, 땅속을 보는 재주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없는 생각까지 하면서 애꿎은 갯벌만 헤집고 다니기를 한 시간.
호미를 들고 뛰어다니던 준서가 멀리서 외쳤다.
“삼촌! 이것 좀 보세요. 물고기가 있어요.”
냉큼 달려가 보니 작은 웅덩이였다.
그 안에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망둥어 치어 한 마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물이 빠지기 전에 채 도망치지 못하고 갇힌 모양이었다.
“그냥 놔둬라. 어차피 먹지도 못하고. 나중에 물이 들어오면 살아날 거다.”
실망감을 감추고 그렇게 말하자, 준서는 쪼르르 또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갔다.
잠시 후 준서가 또 크게 소리쳤다.
“삼촌! 여기 바위 아래 뭔가 있는 거 같아요.”
이 녀석이 또 뭘 보고…….
별 기대 없이 다가가 보니, 준서가 머리통만 한 돌덩이 아래를 호미로 파헤치고 있었다.
“저리 비켜 봐라.”
큰 기대감 없이 삽으로 돌덩이를 휙 뒤집어 보았다.
“오오! 있어요! 삼촌. 내가 잡을게요.”
이게 웬 떡인가.
돌덩이 아래 숨어 있던 작은 농게 몇 마리가 화들짝 놀라 도망치자, 준서가 얼른 달려들어 한 마리를 주워 들었다.
“좋았어! 이게 진정한 자연인의 삶이란다. 핫핫.”
심하게 호들갑을 떠는 내 모습에, 사심희는 고개를 돌려 키득거렸다.
“왜 웃어? 저걸 튀겨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라면에 넣어도 되고.”
“이게 다 계획의 일부란 거죠?”
“그렇다니까. 사시미 님도 얼른 주워 담아. 세 명이서 먹으려면 백 마리는 잡아야 되겠지?”
나는 의기양양하게 삽을 흔들며 근처의 바위들을 둘러보았다. 계속 큰소리를 쳤지만, 속은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엄지 손톱만 한 게를 어느 세월에 잡아서 배를 채운다는 말인가. 심지어 추위를 피해 땅속 깊숙이 숨었는지, 농게도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여기 또 있다!”
준서만 신이 났다.
바위나 다름없는 큰 돌덩이를 낑낑거리며 뒤집어 놓자, 겨우 두 마리가 기어 나왔다.
헉헉!
한 시간 동안 겨우 스무 마리 남짓한 농게를 잡고서야 더 이상은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찌나 힘이 드는지 찬 바람에도 내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게는 이제 그만 잡자. 해산물 파티니까 다른 것도 있어야겠지.”
작전상 후퇴다.
나는 욱씬거리는 허리를 펴고 무작정 야트막한 물길을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바닥만 쳐다보고 걸었더니 눈이 침침해졌다.
슬슬 뭔가 나오겠지 하는 기대감이 사라지고 있던 그때였다.
이건 뭐지?
얕은 물골 속에서 이상한 물체를 발견한 것 같아, 나는 허리를 숙여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백 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눈동자처럼 생긴 것이 바닥에 푹 박혀 있었다.
요상하게 생긴 그것을 주워 보니, 꽤 무게가 나가는 골뱅이였다.
“있다!”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크게 외치자, 사심희가 심드렁한 얼굴로 다가왔다.
“골뱅이네요. 산삼이라도 발견한 줄 알았네요. 호홋.”
“조금만 기다려 봐. 망탱이 가득 주워 담아 볼 테니.”
희망의 빛이 보였다.
준서와 사심희도 가세하여, 우리는 골뱅이를 찾느라 혈안이 되었다.
“삼촌! 저도 하나 잡았어요.”
“오오! 그래. 장하다. 나는 이쪽을 둘러보마.”
눈동자처럼 생긴 모양새를 머릿속에 그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도처에 적지 않은 골뱅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체면치레는 하겠구나…….
내심 안도하며 열심히 골뱅이를 주워 담던 나는 곧 미간을 찌푸렸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장화를 신은 발 아래로 아까보다 높게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안 되겠다. 물이 들어오기 전에 빨리 나가야겠어.”
“아아. 한참 잡고 있었는데.”
이제 겨우 열 마리나 주워 담았을까?
아쉬워하는 준서를 앞세우고 우리는 서둘러 뭍으로 향했다. 골뱅이 잡으려다 사람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초라하기 그지없는 수확물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사심희가 키득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더 늦기 전에 마트에 다녀와요.”
“골뱅이를 보고도 그런 소리야? 냄비에 쪄도 되고, 숯불에 구워도…….”
“해감해야 하는 거 몰라요? 지금 물에 담가 놓아도 내일 아침에나 먹을 수 있다고요.”
해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괜한 고집을 더 피우다가는 모두들 쫄쫄 굶게 생겼다. 이제라도 생각을 바꾸려던 그때, 난데없이 준서가 끼어들었다.
“자연인 체험이라면서요? 이따가 내가 붕장어를 잔뜩 잡으면 되잖아요. 헤헤.”
그래. 우리에겐 마지막 보루가 남아 있다.
숯도 충분히 사 왔겠다, 붕장어를 잔뜩 잡아서 구워 먹는 거다.
“지금 배 안 고프니?”
“오다가 휴게소에서 떡볶이 먹어서 괜찮아요.”
“그럼 해 지기 전에 얼른 시작해 보자.”
예정보다 이른 촬영이었다.
토마호크 스테이크로 배를 채우고 느긋하게 밤낚시를 하려던 계획은 그렇게 초저녁으로 당겨지고 말았다.
낚시 가방을 차의 트렁크에 싣는 동안, 사심희도 군말 없이 카메라를 챙겨 들고 차에 올랐다. 그녀도 은근히 장어구이를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찬 바람이 부는 계절 마릿수의 붕장어나 출몰한다는 오지리 방파제는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였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근처에는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적당한 장소에 간이 거치대를 세워 놓고 나는 두 대의 낚싯대를 펼쳤다.
“준서는 이걸로 해 봐라.”
내가 쓰던 3미터 정도의 적당히 가벼운 낚싯대를 준서에게 건네주었다. 원투대는 너무 무거워 어린 준서에게 적당하지 않아서였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반자 왕초보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이곳 서해의 오지리에서 붕장어를 낚아 보려고 왔어요.”
준서의 오프닝 멘트를 듣는 동안,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려 왔다.
“원투 낚시의 채비는 간단해요. 보시다시피 낚싯줄에 묶음추 하나면 그만이죠. 여기에 붕장어가 좋아하는 청개비를 달고…….”
나는 슬그머니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남해까지 왕복 장거리 운전에 서해까지 달려와 갯벌에서 진을 뺐더니 서 있을 기운도 없었다.
장어라도 먹으면 기운이 좀 나겠는데.
일단 준서가 한 마리만 잡으면 곧장 촬영을 접고, 내가 나서서 생존을 위한 낚시에 돌입할 태세였다.
채비를 완성한 준서가 지체 없이 첫 번째 캐스팅을 시도했다.
슈우욱!
못 보던 사이에 많이 늘었다. 준서의 손끝을 떠난 묶음추가 20여 미터를 날아가 어둑한 수면 위에 동심원을 그렸다.
급한 마음에 채비가 가라앉기도 전에 나직하게 휘파람을 불어 보았다. 묶음추 주변에는 자잘한 우럭 치어들만 노닐고 있을 뿐 장어처럼 보이는 생명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준서의 채비에서 10미터 정도 멀리 떨어진 곳에 낱마리의 장어들이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거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준서는 낚싯대를 내려놓고 뚫어져라 초릿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다가 보니까 바지락 칼국수집이 있던데…….
추위와 공복에 손까지 떨렸지만, 그렇다고 준서의 촬영에 인위적으로 개입해서 억지 장면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한참 동안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준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채비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입질이 없네요. 너무 가까운 곳에 던져 놓은 것 같아요.”
“아직 초저녁이라 그래. 물리적인 거리는 중요한 게 아니란다. 핵심은 고기를 잡겠다는 집념과 창의적인…….”
준서가 더 멀리 던지기를 기도하며 오래전 한석동 프로의 말을 흉내 내고 있을 때였다. 준서가 몸을 활처럼 뒤로 젖히더니 두 번째 캐스팅을 시도했다.
촤르르륵! 퐁!
꽤 멀리 날아간 것 같다. 준서의 묶음추가 바닥에 흙탕물을 일으키며 박히자, 근처를 도사리던 녀석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살았다…….
그 순간, 나는 아까부터 힐끔거리던 칼국수 가게를 머릿속에서 싹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