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쑥섬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나는 말을 더듬었다.
“저, 저기에 가 볼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하지만 오늘은 좀 어렵습니다. 예약 손님들이 오실 예정이어서 좀 바빠서요.”
“그럼…….”
“접안 시설이 없는 곳이라, 보트로 잠깐 내려놓을 수 있는 섬입니다. 원하신다면 내일 아침 일찍 모셔다 드리지요.”
그렇게 예정에 없던 하룻밤을 호도에서 묵게 되었다.
“혹시 빈방이 있나요?”
“그럼요. 방은 넉넉합니다. 멀리까지 오셨는데 편하게 쉬다 가세요.”
나는 베타를 안고, 그를 따라 펜션 안으로 들어갔다.
베타를 쉬게 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펜션 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외삼촌에 대해 묻고 싶었던 나는 일단 펜션 주변으로 산책길에 나섰다.
펜션에서 보니 멀리 솔숲이 눈에 띄었다.
솔숲까지 걸어가니 막다른 길이 나타났고, 멀리 무인도의 모습이 드러나 보였다.
근처의 널찍한 바위를 발견하고 나는 섬을 향해 걸터앉았다.
바스락!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여기 계셨군요.”
“아, 안녕하세요.”
“선착장에서 손님들 픽업하고 오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펜션 주인이었다.
그는 성큼 다가와 내 옆에 나란히 앉았다.
“여기 계실 줄 알았습니다. 저 섬을 보고 계셨군요. 참 멋진 곳입니다. 내일 가 보면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저 섬 이름이 뭔가요?”
“작은 무인도라 딱히 다른 이름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기 사람들은 쑥섬이라 부릅니다. 쑥이 많이 나서 그런가 봅니다.”
“아, 쑥섬…….”
가만히 섬의 이름을 읊조리고 있을 때 펜션 주인이 불쑥 내게 물었다.
“혹시 저 섬에 대한 전설을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아니요.”
“그럼 잘됐군요. 어렸을 때 제 아버지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지금은 무인도가 되었지만, 아주 오래 전에는 저 섬에 사람이 살았다고 하더군요.”
쑥섬에 얽힌 전설…….
지극히 평범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내가 귀를 기울이게 될 줄은 몰랐다.
시작부터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섬에 아리따운 섬 처녀가 살았고, 물속에는 처녀를 사랑한 돌고래가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돌고래가 사람으로 변하여 뭍으로 올라왔고, 두 남녀가 사랑에 빠져 아기를 낳았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돌고래가 바다로 돌아가야 했다는 대목은 ‘인어공주’에서 남녀 역할만 바뀐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에 남다른 반응을 보이자, 펜션 주인은 더욱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여자에게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커서 어느 날 놀라운 능력을 보여 준 겁니다. 무슨 능력인지 아시겠습니까?”
“돌고래의 아들이라면…… 바닷속을 훤히 들여다보지 않았을까요?”
“앗! 어떻게 아셨습니까? 맞습니다. 그 아이는 신비하게도…….”
신경이 무뎌졌는지,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언젠가 장재준 영감이 들었다는 전설을 떠올리며 대답했더니, 깜짝 놀란 사람은 오히려 펜션 주인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었고, 또 아이를 낳았고, 그 이후로 저 섬에는 돌고래의 후손들이 살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남자에게만 그 신비한 능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 듣지만, 알고 있었던 이야기.
그림 속의 낚시꾼에서 나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이야기를 마친 펜션 주인은 겸연쩍게 웃었다.
“재미가 없었나 봅니다.”
“아닙니다.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외삼촌에 대해 화제를 돌리기 위한 의도된 질문이었다.
펜션 주인의 입에서 자연스레 그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정철이가 얘기 안 하던가요? 돌아가셨다는 외삼촌.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분이 돌고래의 후손이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었습니다.”
“백정철 프로님에게서 듣긴 했습니다만, 솔직히 믿기지는 않더군요.”
내가 짐짓 시치미를 떼자, 펜션 주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면 누가 그런 얘기를 믿겠습니까? 저도 지금은 반신반의하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좀 들려주실 수 있습니까?”
펜션 주인의 눈길이 먼 곳을 응시하더니 아련하게 빛났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한 대목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였다.
펜션 주인이 외삼촌을 만난 것은 전부 세 차례였다.
처음에 그가 외삼촌을 만난 것은 30여 년 전, 미조항이었다. 사진을 찍을 적당한 장소를 찾던 중에 쑥섬에 낚시를 간다는 외삼촌을 우연히 만난 것이다.
외삼촌은 자신을 낚싯배를 운영하는 선장이라 말했고, 낚시 손님이 없는 날에는 고기를 잡아 수입을 챙긴다고 했다. 그리고 적당한 배삯을 받고 펜션 주인을 쑥섬까지 태워 주기로 했다.
섬에 내려 하루 종일 카메라에 담고 돌아온 펜션 주인은 외삼촌이 잡은 어마어마한 감성돔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살림망에는 웬만한 어부들보다 훨씬 많은 감성돔으로 미어 터질 정도였다. 그날 펜션 주인은 고마움의 표시로 외삼촌의 사진을 한 장 찍어 주었는데, 그것이 그를 기록한 유일한 사진이 되었다고 한다.
펜션 주인이 두 번째로 외삼촌과 조우한 것은 역시 미조항의 선착장이었다.
외삼촌이 그를 먼저 알아보고, 함께 낚시를 제안한 것이다. 그날 펜션 주인은 자신이 본 것을 아직도 믿지 못한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한낮에 볼락을 잡는 낚시였다고 한다.
작달막한 낚싯대를 들고, 외삼촌은 신기에 가까운 조력을 선보였다. 한 손으로 배의 위치를 조정하며, 다른 손으로는 돌틈의 볼락들을 조개 캐듯이 주워 담는 광경에 펜션 주인이 혀를 내둘렀음은 말할 것도 없다.
펜션 주인의 의심이 결정적으로 굳어진 계기는 외삼촌이 볼락과 섞여 올라오는 열기(불볼락)의 마릿수를 미리 알고 투덜거리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만남.
그것은 몇 개월이 지난 후에 읍내에 있는 작은 선술집이었다.
외삼촌은 쓸쓸한 모습으로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그를 알아보고 마주앉은 펜션 주인에게 이런저런 신세타령을 했다고 한다.
희미한 오래전의 대화에서 그가 기억하는 것은, 외삼촌이 멀리 충청도에서 왔으며 타지에 와서 친구도 없이 외롭게 지낸다는 넋두리 등의 단편적인 몇 마디가 전부였다.
“그럼 그 후에는 외삼촌을…….”
나는 마지막으로 외삼촌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물으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시계를 확인한 펜션 주인이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손님들 숯불 피워 주기로 해 놓고 깜빡하고 있었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멍하니 펜션 쪽으로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길게 뒤로 묶은 그의 머리가 말꼬리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선착장 부근의 작은 식당에서 베타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펜션 주인과 마을길을 내려갔다.
보트가 정박된 곳은 호도섬의 반대편에 위치한 또 하나의 작은 방파제였다.
“단단히 난간을 붙들고 계세요. 고양이도 조심시키시고.”
승선하자마자 보트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쑥섬까지는 10분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
섬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내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있었다.
보트가 멈춘 곳은 갯바위 아래쪽에 움푹 들어간 홈통 근처였다. 나를 내려 주고 펜션 주인은 곧바로 보트를 후진시켰다.
“나오실 때 미리 전화 주세요. 점심 전까지는 연락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낚싯대는 안 가져오셨네요? 갯바위에 올라가 보시면 물 반 고기 반일 겁니다. 하하하.”
펜션 주인이 떠나고, 위를 올려다보니 거대한 원숭이 석상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위 오른쪽으로 가파른 경사면에 갯바위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거기까지 곧바로 걸어 올라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우회해서 가는 길이 있을 거야.
나는 베타를 번쩍 안아 어깨 위에 올렸다. 그리고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왼쪽으로 돌아 수풀을 헤치기 시작했다.
헉! 헉!
예상치 않은 고된 산행이었다. 낚시꾼들의 발자국이 만들어 낸 오솔길을 지나고, 빽빽하게 나무들이 만들어 낸 터널을 통과하자, 야트막하게 비치는 햇살 속에서 드디어 전설의 갯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
처음 와 보는 곳이라기엔 너무나 익숙하고 아름다운 풍광.
모든 것이 완벽한 조어도의 모습 그대로였다.
완만하게 경사진 갯바위 중턱에 한 사람이 앉을 정도의 작은 평지, 그 아래로 파도가 달려와 포말을 일으키는 아찔한 절벽, 그리고 수면 위로 돌출된 크고 작은 간출여들…….
오래 전 돌고래의 후손들이 고기를 잡았고, 외롭고 쓸쓸한 생을 살았던 외삼촌이 발을 디뎠을 이곳.
나는 깊은 감상에 빠져 한참 동안 바다를 향해 서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언젠가 꿈에서 보았던 그림 속의 노인이 금방이라도 다가와 내 등을 두드릴 것만 같았다.
한 차례의 작은 돌풍이 휘몰아치며, 내 귓가에 여러 목소리들이 울려 오기 시작했다.
‘8대 독자인 네 외삼촌이 죽었으니…….’
‘신기하게도 남자에게만 그 능력이…….’
나는 어렴풋이 확신할 수 있었다.
전설이 시작된 곳, 마침에 이곳을 찾아온 내가 마지막 남은 돌고래의 후예일 거라고.
나는 천천히 눈을 뜨고 갯바위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물속은 펜션 주인의 말대로 은빛 감성돔과 검푸른 뱅에돔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야~~~ 옹!”
어깨 위에서 베타가 울지 않았다면, 언제까지 석고상처럼 그곳에 서 있었을지 모르겠다.
곁눈질로 보니 찬바람을 맞은 베타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어, 미안하다. 이만 돌아가자.”
나는 펜션 주인에게 전화를 갈고 아까 보트를 내렸던 장소로 저벅저벅 걸어 내려갔다.
“구경은 잘 하셨어요?”
“덕분에요. 천혜의 낚시터가 틀림없더군요.”
“가끔씩 낚시꾼들이 찾아오는 명당이죠. 그럼 어서 갑시다.”
보트가 출발하고 점점 속도를 높이고 있을 때, 펜션 주인이 큰 소리로 나에게 외쳤다.
“어디서 많이 뵌 분 같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맞았더라고요.”
“뭐라고요?”
엔진 소음에 잘 들리지 않아, 나는 더 큰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 전에 남해 낚시 대회에서 우승하신 분 맞죠?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확인해 봤더니…….”
“아아. 네 맞습니다.”
“신기하네요. 외삼촌이라는 그분도 오래전 그 낚시 대회에 참가하셨었는데.”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보트가 호도섬의 선착장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까 뭐라고 하셨죠? 외삼촌이 낚시 대회를요?”
“아아, 제가 아주 나중에 남해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에게 들었습니다. 외삼촌이 돌아가신 날, 그날이 남해 낚시 대회가 처음으로 열린 날이었대요.”
언젠가 백정철로부터 푸른섬 낚시 대회의 전신 격인 작은 대회가 예전부터 있었다는 얘기가 기억났다.
“그날 아깝게 우승을 놓쳤다나 봐요. 사람들 말로는 그날 밤 과음을 하시고 그런 일이…….”
“아…….”
“제가 괜한 말을 꺼냈나 봅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술을 드시고 바다로 실족했다는 얘기는 알고 있었지만, 고작 낚시 대회 하나 때문에…….
가만, 첫 대회였다면…….
불현듯 뇌리 속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불쑥 솟아올랐다.
남해에 낚시 대회가 생기자마자 내리 3연패를 했다는 노인의 얼굴이었다.
성함이 이해구라고 했던가?
우승자 시상식에서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던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현재와 과거가 묘한 인연들로 얽혀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펜션으로 돌아온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외삼촌이 실족했다는 장소를 수소문해서 찾아가 볼까 망설였지만 결국 생각을 접었다.
다음 날 준서의 두 번째 촬영이 예정되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가슴이 아려 와 견디기 힘들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남해를 떠나 저녁 늦게야 집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숙제를 풀었다는 홀가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