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오래된 사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우럭 지리탕.
몇 시간 전만 해도 바다에서 뛰놀던 우럭으로 만든 그것은 가히 천상의 맛이었다.
김혁준에게 5마리를 보내고, 나머지는 이벤트 나눔을 하고, 그 와중에 5짜 우럭을 한 마리 챙겨 온 이유는 멤버들과 오랜만에 최고의 밥상을 함께하기 위함이었다.
“여러 번 말하지만, 사시미 님은 미국에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식당 차려야 한다니까.”
고동우가 농담처럼 던진 말이 오늘따라 어색하게 들리는 이유는 아마도 선실 안에서 들은 얘기 때문이리라.
아무것도 모르는 장재준 영감도 맞장구를 쳤다.
“암요. 이런 걸 파는 식당이 있다면 나도 하루에 두 번씩은 찾아갈 겁니다. 허허.”
말수가 적은 보람이도 오늘은 한술 더 뜨고 나섰다.
“맞아요. 아마 한국에서 식당 열면 엄청 부자가 되고도 남을 거예요.”
맞은편에 있는 사심희가 내게 눈을 부라린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였다.
나는 얼른 화제를 바꿔 장재준 영감에게 물었다.
“캡틴 님, 조만간 이 아지트가 확 줄어드는 거 아시죠?”
“들었습니다. 여기서 온라인 포장 배송 업무를 하게 되어 구석으로 밀려난다고. 아쉽지만 너무 잘된 일이죠. 허허.”
아지트 내부 공사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소파와 테이블을 포함한 기물들이 죄다 주방이 있는 가장자리 구석으로 옮겨 갈 예정이었다.
원형 그대로의 친숙한 공간에서의 마지막 만찬.
그나마 멤버들이 마지막으로 모두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오늘 너무 잘 먹었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오늘 고생했어요.”
식사가 끝나고 하나둘씩 멤버들이 떠나가고 있었다.
멀뚱히 앉아 있는 나를 보고 고동우가 물었다.
“너는 안 가냐?”
“조금만 쉬다가 가려고요.”
“오오. 그렇게 감상적인 면이 있는 줄 몰랐네. 좀 좁겠지만 아지트가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닌데. 난 먼저 내려간다.”
고동우의 오해였다.
나는 휴대폰 메지시를 확인하려던 참이었다. 멤버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간에 백정철의 문자가 도착했다. 몹시 궁금했지만 혼자 남을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휴대폰을 여는 내 손가락에서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꾹 눌렀더니, 짧은 문장과 함께 사진 한 장이 펼쳐졌다.
‘보시게. 내가 말했던 그 낚시꾼 사진이라네. 실존 인물 맞지? ㅎㅎ.’
문자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눈동자는 즉각적으로 사진 속의 인물에게 쏠렸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처음으로 마주하는 외삼촌의 얼굴.
사진 속의 그는 수줍게 웃고 있었다. 오래되어 빛이 바랜 컬러 사진이었다. 원본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전송했는지, 아래 테두리가 살짝 말려 올라가 있었다.
훤칠한 키에 넓은 어깨. 그리고 까무잡잡한 피부색…….
어딘지 모르게 나와 닮은 구석이 있어 보였다.
그는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왼손에는 기다란 낚싯대를 들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사진 하단에 찍힌 일자를 확인해 보니, 역시나 내가 태어나기 한 해 전의 사진이었다.
역시 외삼촌이었어…….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힘없이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던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묘하게도 신경을 건드리는 게 있었다. 잠깐 동안 머리를 굴리다보니 사진 속에서 뭔가 친숙한 분위기를 느낀 것 같았다.
다시 휴대폰을 눈앞에 가까이 가져가던 순간.
내 심장이 아래로 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
“헉!”
내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왔을 때는 휴대폰이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강한 전류가 목덜미까지 치밀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휴대폰을 주워 두 눈을 부릅떠 보았지만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인물에 집중하느라 자세히 보지 못했다.
나를 경악케 한 것은 사진 속의 인물이 아니라 배경이었다.
외삼촌의 등 뒤로 동그랗게 떠오른 태양.
오른쪽 편으로 돌출된 기괴한 형태의 바위.
그리고 그가 서 있는 갯바위 아래로 돌출된 몇 개의 간출여.
낮과 밤이 바뀌었을 뿐이지, 사진은 조어도와 똑같은 구도와 배경이었다.
아니, 그것은 그림을 그대로 옮겨 놓은 실사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내 얼굴이 창문 쪽으로 향했다.
벽에 걸린 그림이 내 눈빛을 따라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 * *
“베타야. 집 잘 지키고 있었냐?”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돌아온 나의 자취방.
하루 사이에 발생한 너무나 많은 충격에, 나는 휴지 조각처럼 침대에 쓰러졌다.
“야~~~ 웅!”
베타가 지친 내 표정을 읽었는지, 웃으며 다가와 까칠한 수염을 내 볼에 부벼 댔다.
“그래도 너밖에 없구나.”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베타의 저녁을 챙겨 주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동영상 편집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아 이대로 잠들고만 싶었다.
아아, 조어도가 상상 속의 배경이 아니라 실제 갯바위를 그린 진경 산수화였다니.
눈을 감았더니, 불과 12시간 동안의 크고 작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우연한 기회에 내게 전송된 사진.
그것은 모든 수수께끼를 관통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다.
처음부터 기시감을 느끼게 해 준 여행지.
외삼촌이 떠나갔던 머나먼 섬.
그리고 전설의 낚시꾼이 서 있던 갯바위.
모든 것들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해…….
그곳을 찾아가야 한다는 충동을 느낀 순간,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우선 동영상을 편집해서 업로드를 서둘렀다.
그러고 나서 나는 포털 사이트에 ‘호도 펜션’을 입력했다.
‘친구가 남해에 딸린 호도라는 섬이 고향인데 최근에 그곳에 작은 펜션을 짓고 정착했지.’
백정철의 말을 떠올리며 검색한 호도라는 섬은 남해 미조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그 섬에 운영 중인 펜션은 대략 세 곳 정도가 검색되었다.
최근에 새로 지은 펜션.
세 곳 중에서 신축 건물을 찾으면 된다는 얘기다.
다음 날 아침.
베타와 나는 남해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내가 남해로 가려하는 정확한 목적은 나로서도 명확하지는 않았다.
내 기이한 능력의 근원지로 추정되는 그곳.
어쩌면 남해에 있을 전설의 갯바위를 찾아가 보고 싶었다.
또 하나의 이유를 찾아보자면, 외삼촌이 생전에 걸었던 흔적 또한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그가 어떤 낚시꾼이었는지, 정말로 나와 같은 능력을 지녔다면 왜 그런 허망한 최후를 맞은 것인지……. 그냥 묻어 두기에는 알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11월의 첫주.
밖에서 제법 찬바람이 흘러 들어와 나는 살짝 열어 두었던 창문을 꽉 닫아 버렸다,
“야~~~~ 옹!”
베타도 함께 왔다.
녀석도 나처럼 궁금했는지 아침부터 내 발목을 붙잡는 통에 바닷바람이나 쐬어 줄 생각이었다.
* * *
호도행 여객선 선착장은 미조항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불과 한 달 전 낚시 대회에서 처음 만난 김혁준이 손을 흔들던 낚시점 근처였다.
“오늘은 배가 안전 점검이 있어예. 대체 수송선이 오니까 걱정 말아예.”
“시간은 변동 없는 거죠?”
“당연하지예.”
나는 당일 왕복 배편을 확인하고, 선착장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크고 작은 어선들 너머로 섬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인터넷 지도로 보았을 때는 뭍에서 꽤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육안으로 확인한 호도는, 미조항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듯이 가까워 보였다.
조도와 호도.
남해의 오른쪽 남단에 위치한 미조항 인근의 커다란 두 개의 부속섬.
미리 알아보고 온 바로는, 조도에 적지 않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작은 호도에는 인적이 드문 곳이라고 들었다.
“조도 가시는 분들 승선하세요.”
대체 수송선은 다름 아닌 10톤 규모의 낚싯배였다.
배를 기다리던 주민들이 짐을 싸 들고 우르르 선실로 들어가는 동안, 나는 베타를 어깨에 올린 채 난간에 몸을 기댔다.
10분이나 달렸을까.
중간 경유지인 조도에 도착하자 대부분의 손님들이 하선했다. 나는 은근슬쩍 조타실로 다가가 창문 너머로 물었다.
“선장님! 호도에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사나요?”
“육지로 다 빠져나가고 지금은 여섯 가구 삽니다.”
“그렇게 적어요?”
“제가 그 여섯 가구 중에 하나입니다. 큭큭.”
40대쯤으로 보이는 젊은 선장이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배가 다시 움직이고 호도가 점점 가까워지자, 나는 습관처럼 휘파람을 불었다.
어쩐지 친숙한 바다 밑 풍경.
그러고 보니 지난여름 멤버들과 고생고생하며 마지막으로 발견했던 문어 소굴이 바로 호도의 코앞이었다.
호도의 선착장에 내리고 보니, 방파제에서 낚시를 즐기는 관광객 몇 명이 눈에 띄었다. 바로 뒤에 서 있는 외딴 민박집에 묵는 손님들 같았다.
나는 민박집 뒤편의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10여 분을 걸어가니, 왼쪽 편에 아담하게 지은 신축 펜션이 나타났다.
지도에서 보았던 호도의 민가는 오른쪽으로 펼쳐진 집들이 전부였다. 적당한 언덕 위에서 그쪽을 살펴보니, 오랜 시간 비워진 빈집들과 폐교로 보이는 우중충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최근 5년 내에 새로 지은 건물은 왼편의 펜션 말고는 없어 보였다.
나는 깊이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펜션 앞마당으로 들어섰다.
쿵! 쿵!
신축 펜션에 딸린 작은 단층 주택 앞에서 체구가 단단한 남자가 장작을 패고 있었다. 길게 기른 머리를 뒤로 묶은 중년의 사내였다.
입구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하고, 그가 씩 웃으며 다가왔다.
“예약하신 손님이시죠?”
“아닙니다. 혹시 여기 주인 되십니까?”
“그렇습니다만 여긴 어쩐 일로…….”
나이는 대략 50대 후반 정도.
백정철과 연배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번짓수를 제대로 찾은 모양이다.
“말씀 좀 여쭈려고 왔습니다.”
“아주 예쁜 고양이네요. 잠깐 들어오시죠.”
역도 선수같은 우락부락한 체형에서 사뭇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가 안내해 준 외부 파라솔 의자에 걸터앉았다.
잠시 후 펜션 주인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와서, 내 앞자리에 앉았다.
내 무릎에 앉아 있던 베타가 풀쩍 잔디밭에 내려앉아 연신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풀숲에서 작은 벌레라도 발견한 모양이었다.
“호도는 처음이신가요?”
“네. 처음입니다.”
“뭘 물어보시려는지요? 말씀해 보세요.”
“찾고 있는 장소가 있어서요.”
“그게…… 어딘가요?”
나는 대답 대신 휴대폰을 꺼내, 그의 앞에 불쑥 내밀었다.
“바로 이곳입니다.”
물끄러미 휴대폰을 들여다본 사내의 동공이 점점 확장하고 있었다.
“이, 이 사진은 내가…….”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강유록이라고 합니다. 사진 속에 있는 분이 제 외삼촌입니다.”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해진 펜션 주인에게 나는 예의를 갖춰 인사를 건넸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정신을 차린 펜션 주인이 내게 물었다.
“정철이와 낚시를 갔다는 그분이군요.”
“맞습니다. 백정철 선생님께는 제가 다녀간 사실을 비밀로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원하신다면야……. 그런데 그 갯바위는 왜 찾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살아생전에 외삼촌을 뵙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어서입니다.”
“흠…….”
펜션 주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조어도를 운운하면서 길게 말해 봐야 미친 사람 취급만 받을 것 같았다.
적당한 구실을 둘러서 말해 주자, 그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사내는 펜션 안으로 한걸음에 들어가더니 뭔가를 들고 금세 돌아왔다.
“저쪽으로 한번 살펴보세요.”
사내가 내민 것은 망원경이었다.
나는 그것을 들고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흐릿한 시야에 작은 무인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떨리는 손으로 망원경의 초점을 조정하는 순간, 내 입에서 짧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아아!”
펜션이 위치한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무인도의 전경.
오른쪽 해안으로 움푹 들어간 절벽, 그 위에 형성된 경사진 암반. 그리고 암반의 뒤쪽에 툭 튀어나온 원숭이 형상의 바위…….
늦가을의 햇살을 받아 눈 부시게 빛나는 섬.
내가 찾던 전설의 갯바위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