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몰랐던 이야기들
쿠궁!
불쑥 솟아올랐던 배가 급격히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너울을 지켜보던 나는 배의 리듬에 맞춰 굽혔던 무릎을 세웠다.
한 눈으로는 너울을, 다른 눈으로는 낚싯대를, 그리고 제3의 시야로는 바닷속을 살피는 기묘한 상황이었다.
후두둑!
손끝의 느낌으로 한 마리가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내밀어 보니 목표 지점에 거의 근접한 내 채비가 물살에 흔들리고 있었다.
투두두두두!
개우럭이 군집한 블랙홀의 일부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쏟아져 나오는 우럭의 입질로 낚싯대는 심하게 요동쳤다.
나는 가까스로 몸의 균형을 잡으며, 전동릴의 레버를 최대치로 올렸다.
뒤이어 따라온 백정철의 채비에도 두 마리가 달려드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몸을 뒤로 돌려 조타실을 향해 크게 외쳤다.
“후진해 주세요! 후진!”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던 선장은 창문 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뭐라고요?”
“천천히 후진해서 배를 멈춰 달라고요!”
“아, 알았어요.”
낚시를 하던 손님이 배의 위치를 조정해 달라고 외치는 경우는 선장에게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나는 최후의 방법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꾸르릉! 꾸르릉!
바람을 타고 빠르게 흘러가던 배가 일단 정지했다. 만일 그러지 않았다면 나와 백정철의 채비는 침선을 넘지 못하고 그대로 작살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위잉~ 끼익!
전동릴이 괴기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며 버걱거리자, 나는 수동 핸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끄으응.”
꼼짝도 하지 않는 릴의 반응에, 나는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강아지만 한 우럭들이 한 줄로 서서 꿈틀거리는 모습이 피를 끓게 만들었다.
봉돌이 침선의 모서리에 탁 부딪히며 아슬아슬하게 넘어서자, 아찔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한시름 놓았다.
이제부터는 아무런 장애물 없는 빈 공간에서 놈들을 끌어내면 된다.
키륵! 키르륵!
한차례 배가 출렁이는가 싶더니 때마침 전동릴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세 마리의 개우럭을 한꺼번에 올린 것이 지난봄이었던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묵직한 손맛에 전율을 넘어 황홀함마저 밀려왔다.
백정철의 채비가 수면까지 올라온 것을 확인하고 선장이 냉큼 달려 나왔다.
“와아아! 완전 개우럭이닷!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러나 잠시 후.
내 발치에서 한 마리씩 수면 위로 줄줄이 솟아오르는 대물 우럭을 발견하고, 선장의 입이 쩍 벌어졌다.
“여기도?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엥? 또 올라오네?”
무려 다섯 마리의 개우럭들이 갑판 바닥에서 뒹굴자, 어이를 상실한 선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여기가 무슨 가거초도 아니고, 개우럭으로 오걸이라니…….”
드디어 해냈다.
김혁준에게 보내 줄 목표량을 채우고도 남는 마릿수에 나는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선장이 다가와 은근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딱 한 번만 더 훑고 갑시다.”
* * *
그로부터 세 시간 뒤.
거친 파도를 넘으며 배가 나아가는 동안, 긴 잠에서 깨어난 황선태가 몸을 일으켰다.
“지금 몇 시입니까? 여기가 어디죠?”
“오후 네 시쯤 되었을 거야. 한 시간은 더 가야 할 것 같네.”
“우럭은요……?”
잠꼬대 같은 그의 물음에 나머지 사람들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사심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남겨 놓은 도시락과 우럭회를 그의 앞에 밀어놓았다.
“빈속이라 뭐라도 드시는 게 좋겠어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백정철이 핀잔을 주듯 그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고마울 거 없네. 자네가 달랑 잡은 한 마리로 회를 떴으니까.”
“이렇게 조금 남긴 걸 보니…….”
조황을 궁금해하던 황선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물어봐야 빤하다고 여긴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굶은 사람답게 순식간에 회 접시를 비운 그가 사심희에게 물었다.
“회 맛이 꿀맛이네요. 사심희 님이 썰어 주셔서 그런가.”
“생선회가 다 똑같죠. 뭐.”
“그게 아니더라고요. 유명한 셰프의 손길이 닿으면 맛도 달라지는 법이죠.”
듣고 있던 백정철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 말이 그 말이네. 아버님이 미국에서 무슨 식당을 하신다고 들었네만.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
“그래요? 미국 어디요?”
황선태가 호기심을 보이자, 사심희는 잠깐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뉴욕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계세요.”
“뉴욕? 거기 저도 여러 번 가 봤는데. 식당 이름이 뭐예요?”
“……‘사이로’라는 식당이에요.”
“사이로?!”
황선태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지는가 싶더니, 그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미슐랭 원 스타 레스토랑 아닙니까? 정말로 거기가 아버지가 하시는 식당이라고요?”
“네……. 저희 아빠 성함이 ‘사일호’라서 식당 이름을 그렇게 지었대요.”
처음 듣는 얘기였다.
미국에서 작은 퓨전 한정식집을 운영한다고만 알고 있었다.
미슐랭 원 스타 레스토랑이라니…….
황선태는 흥분해서 더욱 큰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나도 비싸서 가 보지 못한 식당이었는데. 웬만한 기업체보다 돈을 더 번다고 들었어요. 그런 유명 셰프님의 따님이 직접 만들어 준 회를 내가 먹고 있었단 말이군요.”
“민망하니까 그만하세요. 부모님의 식당일 뿐인데요.”
놀라운 얘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와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지나치게 쏟아지는 관심에 그녀가 민망해하는 동안, 난데없이 백정철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내게 물었다.
“그런데 강 프로 자네는 아까 어떻게 된 건가?”
“제가 뭘요?”
“배를 정지시켜 달라고 한 것 말일세.”
“아아, 그거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밑에서 입질은 쏟아지고, 침선을 넘길 자신은 없고…….”
의심의 눈초리였다.
질문에 대비하여 준비된 답을 내놓았지만, 백정철의 진득한 눈빛으로 보아 쉽게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처음에 한 번만 그랬으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두 번째에서도 똑같이 다섯 마리를 걸어 올리지 않았는가. 그건 뭐랄까, 마치 물속에 잠긴 침선의 형태를 꿰뚫고 있는 것 같았네.”
“에이, 아무렴 제가…….”
뜨끔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백정철은 경험이 많은 베테랑 조사가 아닌가.
그의 따가운 눈초리를 애써 피하고 있을 때, 도시락을 까먹고 있던 황선태가 끼어들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밥이라도 한 숟가락 넣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잡았다는 거예요? 그것도 오걸이로?”
“그렇다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지. 단 두 번의 진입으로 강 프로가 열 마리를 건져 올렸어. 그것도 죄다 개우럭으로.”
“우와! 그걸 제가 봤어야 하는데. 그런데 백 프로님은요?”
“……나도 몇 마리 건지긴 했네만. 흠흠.”
대화의 흐름이 자연스레 바뀌었다.
그렇게 백정철의 의심을 잘 피해 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오판이었다.
배가 거의 신진도항에 가까워지고 있을 무렵, 백정철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자네 혹시 물속을 들여다보는 낚시꾼이 있었다는 얘기 들어 본 적이 있나?”
또 시작인 건가?
멀뚱히 그를 쳐다보자, 그가 사뭇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잘 아는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네. 오늘 자네의 낚시를 보니 갑자기 그 얘기가 생각나는군.”
황선태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투로 또 끼어들었다.
“에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판타지 소설이라면 모를까.”
“아니야. 괜한 헛소리를 할 친구가 아니거든.”
의혹의 대상이 더 이상 내가 아닌 점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얘기를 캐묻고 나선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어디서 들으신 얘기입니까?”
“내 오랜 친구라네. 남해에 딸린 호도라는 섬이 고향인데 최근에 그곳에 작은 펜션을 짓고 정착했지.”
남해…….
또 그곳이다.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친구가 낚시도 좋아하지만 사진을 너무 좋아해서 전국을 돌아다니곤 했지. 그 친구가 그러더군. 젊었을 때, 그러니까 아주 오래 전에 남해에 기이한 낚시꾼이 있었다고. 외지에서 온 사람인데 작은 낚싯배를 갖고 있었다는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분에게 물속을 보는 능력이 있었다고 하던가요?”
“그렇게 들었어. 내 친구가 몇 번 그 사람 배에 탔었나 봐. 물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물고기가 몇 마리나 지나가는지 줄줄이 읊어 주었다고 하더군.”
“그래서요?”
“그 뒤로도 몇 번인가 만나 사진도 찍어 주고 낚시도 하고 그랬다나 어쨌다나. 그런데…….”
“…….”
“친구가 수년간 고향을 비우고 돌아왔더니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나 봐.”
김동현…….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입에서 외삼촌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머릿속 서랍 깊숙이 묻어 두었던 그 이름이 또다시 소환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정보와 일치했다.
남해, 외지인, 낚싯배, 그리고 그의 마지막 운명.
안개 속에 가려 있던 막연한 추측이 현실로 불쑥 튀어나온 순간이었다.
외삼촌도 나처럼 물속을 보는 능력자였던 것이다.
잠시 후 가까스로 가슴을 진정시킨 내가 넌지시 물었다.
만의 하나라도 다른 사람의 얘기일 가능성을 확인해 보려는 의도였다.
“혹시 친구분께서 그분 성함을 알고 계실까요?”
“호오. 자네가 이 얘기에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네. 글쎄. 30년은 지난 일이라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군. 그런데 이름이 왜 궁금하나?”
“……그냥요. 그런 엄청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 실제로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요.”
“어허! 내 말을 못 믿는 눈치로군. 그럼 내가 친구에게 확인해 주면 되겠나?”
내 의도와 다르게 얘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아닐세. 내친김에 확인해 보지 뭐. 안 그래도 안부 전화할 때도 되었고.”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그냥 대충 넘어갈 법도 한데, 백정철은 의외로 집요한 모습을 보였다.
“어어, 무영이. 나 정철이네. 펜션은 잘되고? 처음에는 다 그런 거지. 차차 나아질 걸세. 그나저나 일전에 얘기했던 그 기이한 낚시꾼 말일세.”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의외로 계속되자, 황선태와 사심희는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나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백정철의 통화에 귀를 세웠다.
“음.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아아. 그냥 누가 궁금하다고 해서. 사진이 있을 거라고? 찾아봐야 한다고? 알았네. 혹시 찾게 되면 내게 보내 줘 보게. 아이고, 알았어. 조만간 펜션으로 함 놀러 가지.”
백정철이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헛기침을 했다.
“들었지?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사람이었다네. 이름은 모르겠다고 하니, 사진이라도 오면 자네에게도 보내 줌세.”
그 순간, 배가 선착장에 쿵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다 왔나? 한참 떠들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네.”
백정철은 겸연쩍게 웃으며 선실을 나섰다.
그의 뒤를 따라 하선한 우리 일행이 주차장에서 인사를 나눌 때였다.
“오늘 모두들 고생 많았어. 특히 강 프로 자네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웃으면서 헤어질 수 없었을 테지. 혁준이 몫은 내가 따로 챙겨 가 전달하겠네.”
“백 프로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일행들이 떠나고 사심희와 둘만 남게 되자. 그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표정이 왜 그래요? 누가 보면 꽝치고 돌아온 사람인 줄 알겠어요.”
“별거 아니야. 뒤늦게 배멀미가 왔나 봐.”
아무렇지 않게 입꼬리를 샥 올렸지만, 차에 오르는 순간 내 안면 근육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몰랐던 얘기들이 한꺼번에 너울처럼 밀려와 마음을 술렁이게 만든 하루였다.
사심희의 놀라운 배경…….
그것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뜻하지 않게 알게 된 외삼촌의 생전 흔적들이었다.
이로써 가슴 한편에 묻어 두었던 의혹들 중 하나는 확실해졌다.
그것은 내 기이한 재능이 외가 쪽에서 유전으로 내려왔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