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도약대
지상철이 첫수로 잡은 왕대구는 작은 서막에 불과했다.
점심 식사 직후부터 어복의 흐름은 급격히 그에게 기울고 있었다.
“또 왔어!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래?”
그리고 대략 10분이 지나, 그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어라? 이번에도 물었어! 또 왕대구야!”
다음은 채비를 다 내리기도 전에 지상철의 호들갑이 튀어나왔다.
“어엇! 말도 안 돼. 내 앞에 대구 가두리가 쳐 있나? 줄줄이 나오네요. 몽규 형님!”
지상철의 신들린 낚시가 이어졌다.
이몽규는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철이 너, 뭐 잘못 먹었나? 갑자기 왜 그래?”
“모르겠습니다. 용왕님이 마음이 변하셨는지 계속 걸리는 걸 어떡합니까? 하하하.”
한창 좋은 흐름을 이어 가던 이몽규에게는 약간 미안한 감도 없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도와야 할 대상이 지상철이니, 잠시 그의 어복은 쉬어 가도 좋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와서 뭐 하는 짓이람.
채비를 흔들고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지상철이 불운을 털어 낼 수 있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이고, 엘보우에 근육이 붙겠어요. 또 왔습니다. 하하핫.”
지상철의 다섯 번째 대구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이즈였다.
선장은 연속되는 지상철의 쾌거에 뜰채를 들고 아예 그의 옆에 대기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남몰래 바빠진 사람은 나였다.
만세를 부르듯 고패질을 하다가, 전동릴의 레버를 최고 속도로 올리고, 대구가 지상철의 바늘을 물고 늘어지는 것을 확인하면 다시 은근슬쩍 채비를 내리고.
지상철이 왕대구를 올리고 함박웃음을 짓는 사이, 이번에는 이몽규도 오랜만에 어신을 받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용왕님이 아직 나를 저버리지는 않았어. 다섯 마리니까 상철이 너도 긴장해야 할걸?”
“아이고, 형님은 뭔 피쉬 욕심이 그렇게 많아요? 전투 낚시가 이기는지 내 명랑 낚시가 이기는지, 어디 한번 해봅시다.”
지상철의 표현대로라면 그의 혀에 와이파이가 터지기 시작했다. 오전에 비하면 완연히 기가 살아난 모습이었다.
나는 잠시 은밀한 작업을 중단해 보기로 했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약발이 붙었는지 가늠해 보려는 의도였다.
때마침 전방에 한 마리의 대구가 눈에 띄었다.
육중하고 탐스러운 몸집을 흔들면서 녀석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자, 나는 얼른 강태공 미끼를 멀찌감치 올려놓았다.
지상철은 해맑은 표정으로 낚싯대를 크게 흔들었고, 이몽규는 특유의 신경질적인 고패질을 하느라 분주했다.
두 사람의 모습과 물속을 동시에 관찰하던 그때.
지상철이 힘차게 낚싯대를 쳐들었다.
“이야호! 우럭 동생 말이 맞았어. 처방전도 없이 나를 고쳐 줬으니 일타강사가 따로 없구만. 우헤헤.”
이제 슬슬 약발이 올라오는 건가.
나로서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인위적인 어복이 쏘아 올린 지상철의 대운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이어졌다.
* * *
낚시가 끝나고, 귀항하는 길이었다.
이몽규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혀를 찼다.
“오늘은 우럭 동생이 영 실력 발휘를 못 했네. 대구 고수들 틈에서 약간 긴장했던 모양이야.”
“…….”
눈으로 보이는 조과가 없었으니, 딱히 할 말도 없었다.
가만히 앉아 실실거리는 나를 향해 지상철이 한술 더 뜨고 나섰다. 그는 대형 아이스박스의 뚜껑을 열고 마릿수를 헤아리고 있었다.
“내가 열두 마리 잡았고, 몽규 형님이 일곱 마리 잡았으니까, 세 마리는 우럭 동생이 잡았지 아마. 이럴 줄 알았으면, 바쁜 동생 괜히 모시고 왔지 싶어.”
내가 잡은 대구는 점심 직후의 세 마리째가 마지막이었다.
조과가 아쉽다거나, 지상철의 말이 서운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일타강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이어진 이몽규의 말에 조금은 어이 상실.
“우리가 잡은 대구가 좋은 일에 쓰인다니, 그래도 데리고 오길 잘했지. 뭐.”
‘그래도’ 데리고 오길 잘했단다.
코치로 초빙되어 왔다가, 졸지에 깍두기 신세로 전락했다. 속으로 씁쓸한 웃음을 짓고 있었더니, 이몽규가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하지만 오늘 진정한 승자는 우럭 동생이었어. 난 그걸 알고 있지.”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오늘 자네가 선보인 낚시가 한 수 위였다는 말이야.”
“……?”
가슴이 뜨끔했다.
설마 바늘을 제거한 강태공 채비를 본 것은 아닐까?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놀라는 걸 보니 내 개그가 먹혔구만. 고기를 잡지 않고도, 저 많은 대구를 몽땅 차지했으니 하는 말이야. 그런 걸 갈매기 조법이라고 하던가? 하하하.”
“아아……. 네. 그렇게 됐네요. 하하.”
하아, 갈매기 조법이라니.
어이가 없어 어색하게 웃었지만, 별로 마음에 두지는 않았다. 아니, 두 사람이 아무것도 몰라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때마침 몇 마리의 갈매기가 빙빙 떠돌며 아이스박스를 꽉 채운 대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며칠 후.
나는 차를 몰고 수원 모처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휴대폰 벨이 울려 스피커폰 모드로 전환했더니,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화 가능해? 나 지상철이야.”
“오오. 형님. 어디십니까?”
“어디긴 어디야? 지금 녹화 끝내자마자 전화하는 거야.”
벌써 그렇게 되었나?
삼척에 다녀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다짜고짜 조황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쩐지 불안해서 빙 돌려 물었다.
“오늘은 신선한 개그 좀 빵빵 터뜨리셨나요?”
“그럴 시간도 없었어. 오늘 내가 대구 부레에 바람을 넣느라 바빴거든.”
부레에 바람을? 신종 개그인가 보다.
그의 팬으로서 나는 곧 말뜻을 알아챘다.
“그럼……. 꽤 잡으셨다는 말이군요?”
“그렇다니까. 완장은 놓쳤지만 내가 한 마리 차이로 2등 먹었어. 피디가 다음에 또 보자고 하더만. 하하하.”
“와아. 다행입니다. 너무 잘하셨어요.”
“생각해 보니까 이게 다 동생 덕이 아닌가 싶어서 전화했어. 어쩐지 동생이 내 전동릴 모터를 갈아 준 게 아닌가 싶더라고.”
“제가 뭐 해 드린 게 있나요. 멀리서 계속 응원이나 할게요.”
“오케이. 다음에 또 보자구.”
다행이다.
팔이 빠지도록 강태공 흉내를 수행한 효과가 있었나 보다. 약효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나로서도 알 수 없지만, 나는 TV에서 오랫동안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나는 더욱 세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 * *
내 차가 멈춘 곳은 수원 외곽의 한적한 상가 지역이었다.
대로에서 골목길로 접어들어 200미터쯤 서행하다 보니,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어반자팩토리]
건물 입구에 걸려 있는 나무 현판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건물 안으로 슬며시 차를 몰았다.
정면으로 옆으로 길게 누운 단층 공장이 보였고, 오른쪽으로는 작은 컨테이너 건물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왼쪽편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는 운전석 문을 열고 나왔다.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는 사이, 웬 사내가 나를 발견하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우럭, 아니 강유록 사장님 아니십니까?”
“아, 네. 그렇습니다만.”
“드디어 뵙게 되네요. 저는 여기 공장장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반갑습니다. 하하.”
“김보람 사장님 찾아오신 거죠? 얼른 따라오세요.”
그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 곳은 공장 건물이 아니라, 그 옆에 놓은 컨테이너 사무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보람이가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도라에몽! 나 왔다.”
“네가 웬일이냐? 연락이라도 좀 하고 오지 않고.”
“갑자기 보고 싶어서 이렇게 왔다.”
“오라고 할 때는 그렇게 거절하더니. 아무튼 잘 왔다. 거기 앉아라.”
보람이가 손짓으로 가리킨 곳은 사무실 구석의 작은 4인용 소파였다. 낡은 소파의 가죽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잠시 후 보람이가 커피가 든 종이컵을 들고 맞은편에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그는 아까 마주친 공장장과 똑같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회사명이 새겨진 감청색 점퍼였다.
“전에 계시던 사장님이 물려주신 가구들이라 좀 우중충해. 나야 덕분에 잘 쓰고 있다만.”
“그런데 뭘 하고 있었냐? 모니터에 구멍 뚫릴 것처럼 쏘아보고 있던데.”
“아, 가끔씩 여기 들어와서 온라인 주문 확인하는 거야. 하루에 두 번씩 실어 보내야 하니까.”
“그런 것도 네가 직접 하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잖아. 그나저나 갑자기 웬일이냐? 엊그제 먹방에 못 가서 미안하더라만.”
“덕분에 이번에도 대구탕은 구피 님 차지였어. 맛이 끝내주더라.”
“아아, 이런 쌀쌀한 날씨에는 대구탕이 딱인데. 근데 정말로 무슨 바람이 불어 여기까지 온 거야?”
“공장을 좀 둘러보고 싶어. 안내 좀 해 줄래?”
갑작스러운 내 말에 보람이는 눈을 휘둥그레 치켜떴다.
“요즘 무슨 일이 있나? 얼마 전에도 너처럼 공장을 좀 보자고 온 사람이 있었거든.”
“……그래?”
누구였는지 집히는 구석이 있었다.
“대량으로 물건을 구입할 의향이 있다고 왔길래 잠깐 둘러보게 해 줬어. 그냥 말도 없이 사라져서 누군지는 나도 몰라. 그냥 양복쟁이 남자였어.”
“…….”
“커피 다 마셨으면 가 보자. 모회사의 대표가 오셨는데 제대로 살펴보고 가셔야지.”
그 사람들이 진즉에 다녀간 게로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람이를 따라 공장 건물로 들어섰다.
쇳가루가 날리는 칙칙한 공간을 예상했던 나로서는 너무 깔끔한 내부의 전경에 짐짓 놀라고 말았다.
“그래도 공장이니까 하이바는 착용해야지. 여기.”
“응. 고마워.”
나는 보람이가 건네준 하얀 안전모를 눌러썼다. 그리고 그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내부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이게 CNC 복합기라는 설비야. 와이어 상태로 가져온 원재료로 멀티싱커 형태로 가공하는 장비지. 죄다 중고지만 그런대로 쓸 만해. 조만간 새것들도 몇 대 들여올 계획이지만.”
“공장이 생각보다 넓네.”
“예전 사장님이 한때 잘나가셨거든. 공간은 여유가 많아.”
“도금은 어디서 하지? 내 눈엔 보이지 않는데.”
“도금은 전부 외주로 하고 있어. 환경 규제 때문에 아무 데서나 못 하거든. 아! 저쪽은 포장 라인이야. 내가 주문량을 확인해 주면 곧바로 박스 포장해서 택배로 부치는 거지.”
“아아, 대충 알겠다. 이만하면 된 것 같구나.”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묵례를 건네면서, 나는 보람이에게 나가자는 눈짓을 보냈다.
후욱~
보람이가 내뿜은 담배 연기가 청명한 가을하늘에 흩어지고 있었다. 공장을 둘러보고 나온 우리는 주차장 앞에 서 있었다.
“그냥 왔을 리는 없겠고. 이제 슬슬 풀어 보시지.”
짜아식.
신경이 무딘 줄만 알았는데, 요즘 눈치가 백 단이라니까.
하긴,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울 때까지 멀뚱히 서 있기만 했으니 그럴 만도 했겠다.
그가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마른 입술을 떼었다.
“의사 결정을 내릴 때가 온 것 같다.”
“……무슨?”
“어반자팩토리가 도약대에 올라서 있는 것 같아. 이대로 갈지, 아니면 더 높은 곳으로 뛰어오를지. 결정은 네가 하는 거야.”
“콜록! 콜록!”
깜짝 놀란 보람이가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연기가 하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푸른 연기 속에서 수일 전부터 주고받았던 누군가와의 이메일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