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어복(魚福)
“아싸! 역시 난 어복킹이야! 크하하.”
낚싯대를 타고 올라온 진동을 감지하고 이몽규는 있는 힘껏 강하게 챔질했다.
자칫하면 대구의 주둥이가 찢어질 수도 있는 무모한 행동이었다.
위이잉~
나의 우려와 달리 그의 낚싯대는 전동릴의 리듬에 맞춰 시종일관 움찔거렸다.
지상철이 부러운 시선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아니, 저 형님은 시작하자마자 사고를 치시네. 첫 끗발이 개끗발인 거 모르쇼?”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정석을 벗어난 채비 운용에 과도한 오버 액션. 어쩌다가 한 번의 행운이 따른 것이라 여겼다.
배가 통통한 대구를 물칸에 던져 넣으며, 이몽규가 요란을 떨었다.
“자네들은 뭐 해? 고기 안 잡고. 하하핫!”
“축하합니다. 꽤 좋은 놈이 올라왔네요.”
“예전에 갈치 낚시할 때와는 좀 달라 보이지?”
“그럼요. 계속 파이팅하세요.”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뭐야? 이거. 밑걸림인가?”
대구 낚시에서는 고패질을 빠르게 하지 않는다.
채비가 바닥에 닿으면 천천히 크게 들었다가 다시 천천히 내리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이몽규는 이번에도 기존의 상식을 뒤엎었다.
특유의 급한 성미를 보여 주듯 이몽규는 짧고 빠른 고패질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의 낚싯대가 활처럼 휘어진 것이다.
밑걸림이 아니었다.
낑낑거리며 낚싯대와 씨름을 벌이는 이몽규의 손끝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위이잉~
수심 80미터의 깊은 바닷속에서 대구가 몸부림을 치며 올라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거의 8짜에 육박하는 대물이었다.
“아이고, 이거 낚싯대 붙들고 있기도 힘드네.”
어금니까지 드러내며 은근히 자랑하는 이몽규.
이번에도 엄지를 치켜들어 축하해 주면서도 나는 의아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대구가 떼로 모여 다니는 상황이라면 초반에 연거푸 잡아 올리는 일이 별로 이상한 건 없다.
그렇지만 개체수가 적은 상황에서 한 사람이 독주하고 있다면 뭔가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채비 운용이 탁월하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고. 액션이 좋아서 그러는 것도 아니겠고.
뜰채로 이몽규의 대구를 건져 내던 선장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기가 많지 않은데 혼자서만 척척 올리시네요.”
“무슨 소립니까? 나 이몽규 몰라요? 용왕님의 아들이라니까.”
이몽규는 신이 나서 선장의 사진 촬영에 임하고, 곧바로 내가 설치한 카메라 앞에서 대구를 흔들었다.
기적은 또 이어졌다.
세 사람이 하염없이 10여 분의 고패질을 이어 가던 도중, 나는 은근슬쩍 다가오는 대구 한 마리를 목격했다.
이제는 별로 이상하지도 않았다.
이몽규의 메탈지그를 선택한 대구는 그의 성급한 챔질에 꼬리 부근에 바늘이 걸려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은 나만 잡는 날인가? 크하하하.”
기가 막힐 노릇이다.
초반부터 기가 꺾인 지상철의 푸념이 지금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형님은 내 개인 레슨에 왜 따라온 거요? 나 기죽이려고 온 거요?”
듣고 보니, 이몽규도 참 눈치 없기는 우리 작은아버지 뺨친다. 촬영에 앞서 후배의 실력 향상을 도와준답시고 따라와서 혼자 기분 내기 바쁘다니.
“그럼 낚시하지 말고 상철이 자네 꽝치는 거 구경만 할까? 나라도 잡아야 좋은 데 쓰지 않겠어?”
이몽규의 말도 틀리지 않다.
이왕 낚시를 왔으니 고기를 잡는 즐거움을 굳이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대체 뭐가 원인일까?
지상철의 채비는 딱히 나무랄 데가 없어 보였고, 그의 고패질은 오히려 이몽규에 비해 정석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연속 세 번의 기이한 현상을 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정말로 어복이란 말인가.
사실 나는 어복이라는 말 자체를 믿지 않는다.
간혹 운수 좋은 날이 있을 수는 있지만, 늘 특정인에게 고기가 몰리는 경우는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다.
용감한 형제에서 이몽규가 간혹 종료 직전에 기적 같은 버저 비터를 연출하고, 의외의 대물을 낚아 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우연히 발생한 결과에 대한 의미 부여라 여겨 왔다.
한차례의 소동이 지나가고 뱃전은 다시 고요해졌다.
아침에 낮게 깔려있던 구름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눈 부신 햇살이 바닷속을 비추고 있었다.
미끼를 바꿀 타이밍이군.
나는 낚싯줄을 감아올리고, 번쩍이는 홀로그램 문양의 메탈지그로 교체했다.
“상철이 형님도 채비 바꾸시죠. 날이 좋으니까 번쩍거리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어어, 알았어.”
지상철은 잔뜩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그는 입술을 쭉 내밀고 나와 비슷한 채비로 교체한 뒤, 힘없이 채비를 떨궜다.
나는 이제부터 지상철의 낚시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기로 했다.
1미터 정도 크게 들어 올렸다가, 가만히 바닥에 쿵 내려놓고, 몇 초간 정지.
“아이고. 하루 종일 이렇게 흔들기만 하면 뭐 하나.”
지상철은 계속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그의 액션에서 이렇다 할 문제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비친 불운의 기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였다. 이몽규가 내 초릿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어? 뭐 해? 자네도 입질 왔어.”
다른 데 정신을 팔던 사이, 내게도 첫 어신이 찾아왔다.
엉겁결에 챔질도 없이 전동릴의 레버를 올렸더니, 낚싯대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야! 역시 이제야 실력이 나오는군. 멍을 때리는 것 같은데도 고기가 알아서 물어 주네.”
수면 위로 올라온 대구의 연갈색 등껍질을 내려다보며 이몽규가 너스레를 떨었다.
마냥 기뻐할 수도 없고 지상철의 눈치가 보여, 나는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지상철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휴우. 나는 팔자가 꽝조사인가 봐. 누군 가만히 있어도 물고기가 알아서 척척 물어 주는데.”
“…….”
팔자가 꽝조사.
다른 어떤 이유로도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그의 푸념을 듣는 순간, 나는 이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어복’뿐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시간은 흘러 지루한 낱마리 조황이 계속 이어졌다.
이몽규는 한 마리의 대구를 추가하며 총 네 번의 손맛을 보았고, 나도 엉겁결에 한 마리를 더 잡아서 조용히 물칸에 모셔 놓았다.
문제는 아직도 변변한 입질 한번을 받지 못한 지상철.
그의 의욕마저 저 아래 해저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을 때, 때마침 선장이 우리를 향해 외쳤다.
“점심 먹고 합시다.”
낚시가 안 될 때는 쉬어 가는 것도 방법이다.
선장이 내려놓은 도시락과 팔팔 끊인 동태탕을 가운데 두고 우리는 빙 둘러앉았다.
“아아! 날씨도 좋고, 바람도 좋고, 동태탕도 죽이네.”
연신 싱글거리며 맛있게 도시락을 까먹는 이몽규와 달리 지상철은 식사 내내 말이 없었다.
이몽규가 혀를 끌끌 차면서 그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쯧쯧쯧. 상철이 자네는 이런 식으로 하다간 실제 촬영에서도 끝장이야. 우럭 동생! 뭐가 문제인지 말 좀 해 보게.”
“글쎄요. 저도 아직……. 나름 열심히 잘하고는 계신데…….”
나로서도 뾰족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자, 지상철은 애꿎은 이몽규에게 톡 쏘아붙였다.
“아무리 열심히 하면 뭐 해요? 입질 자체가 없는데.”
“자네에게 고기를 쫓아내는 기운이 있는 게야. 지금이라도 용왕님께 빌어 보는 건 어때?”
“용왕 타령 좀 그만하세요. 형님.”
지상철은 급기야 숟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홱 바다로 돌려 버렸다.
이를 어쩐다.
그래도 뭔가 도움이 되려고 온 마당에 아무것도 해 줄 게 없으니. 어복은 나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분야가 아닌가.
고민이 시작되었다.
지상철의 낚시 자체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단지 어복이 문제라면…….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이몽규의 태도와 달리, 그의 소심한 성격이 작용하는 건 아닐까.
솔직히 그의 성격 때문인지는 나도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나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복이 없다면, 만들어 주는 수밖에.
지상철에게 인위적인 어복을 선사하여, 그의 어두운 기운을 떨쳐 내게 하는 방법 말고는 도리가 없다.
나는 벌떡 일어나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선장은 포인트를 이동하여 수심이 더 깊은 곳으로 배를 옮겨 놓았다.
여전히 바닥에는 낱마리의 대구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거치대에 놓인 낚싯대를 빼 들고, 슬그머니 지상철의 오른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몽규가 또 눈치 없는 농담을 던졌다.
“그쪽으로 갔다간 그나마 한 마리도 못 건질걸? 나쁜 기운이 있어서 안 된다니까.”
“…….”
지상철을 왼쪽에 두고 나는 얼른 채비를 내렸다.
수심은 대략 100미터. 아까보다 몸집이 큰 대구들이 멀리서 반짝이는 내 메탈지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상철이 형님, 뭐 하세요. 얼른 채비 내리세요.”
“아, 알았어.”
이몽규와 멀리 떨어져 굳이 지상철과 근접한 위치로 옮긴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흔들어 대는 미끼는 한 사람의 그것보다는 대구의 관심을 끌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을 수밖에 없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커다란 대구가 우리가 있는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옳지! 조금만 더…….
대구가 거의 우리에게 근접했을 때였다. 나는 채비를 회수하는 척하면서 전동릴을 감아올렸다.
이제 닭 쫓던 개…… 아니, 대구가 지상철의 미끼를 물어줄 수밖에.
전동릴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을 피하다가, 다시 물속을 살피려던 그때였다.
투두둑!
난데없이 내 낚싯대가 확 고꾸라지면서 갑자기 날뛰기 시작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당황한 나머지 전동릴을 멈추고 다시 내려다보니.
아뿔싸!
내 미끼에 대구가 걸려 있었다. 놈이 도망치는 내 미끼를 끈질기게 좇아와 물고 늘어진 것이다.
좀처럼 공중 부양을 기피하는 대구가 코앞에 있는 지상철의 미끼를 외면하다니.
9짜 정도의 대물이었다.
말없이 대구를 처리하고 지상철의 눈치를 살펴보니, 그는 입을 꾹 닫은 채 기계적으로 팔을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표정으로만 본다면 거의 낚시를 포기한 것 같았다.
도대체 그의 불운의 끝은 어디인가…….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용왕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을 쉽게 생각했다면 애초에 시도하지도 않았다.
나는 지상철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메탈지그에서 바늘을 모두 제거했다. 그리고 은밀하게 채비를 풍덩 빠뜨렸다.
이른바 강태공 조법.
나로서도 처음 해 보는 낚시에 헛웃음이 나왔다.
추르르르.
바늘도 없는 빈 메탈지그가 하강하는 동안, 지상철은 아예 고패질까지 멈추고 멍하니 서 있었다.
“상철이 형님, 뭐 하세요?”
“청기 올려 백기 올려도 아니고 좀 지겹네. 그냥 쉬려고.”
“그래도 조금 흔들어 보세요. 낚시는 타이밍이라고 하잖아요. 지금부터라도 어복이 형님에게 몰려올지 누가 알아요?”
“에이, 무슨 농담이 나보다 썰렁해? 헤헤. 말이라도 그렇게 해 주니 고맙네.”
위안의 말이라고 여겼는지, 지상철은 씩 웃으며 성의 없이 낚싯대를 흔들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내가 최대 속도로 전동릴을 올린 것은 잠시 후의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란 지상철의 상체가 움찔하는 것 같더니 앞으로 확 쏠렸다.
그가 두 손으로 낚싯대를 움켜쥐고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내가 보여 줄 건 다 보여 주는구나. 채비 떨군 것만 해도 서울까지 기름값은 나오겠어.”
“밑걸림이 아닙니다. 전동릴 감으세요!”
하루 종일 처음 받은 입질이다 보니, 감이 영 떨어진 모양이다. 내 말에 화들짝 놀란 지상철은 엉겁결에 전동릴의 레버를 더듬었다.
위이~ 위~ 윙~
어찌나 큰 대구인지 그의 전동릴이 움직이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줄을 회수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채비 끝에 매달려 올라오는 괴물을 내려다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1미터는 훌쩍 넘길 만한 무시무시한 왕대구.
처음에는 내 메탈지그에 눈독을 들이던 놈이었다. 조금 늦었다면 바늘도 없는 내 메탈지그를 꿀꺽 삼켰을지도 모를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최대 속도로 도망치던 내 미끼에 잔뜩 성난 놈은 다행스럽게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지상철의 미끼를 발견했던 것이다.
이몽규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좁히며 수선을 떨었다.
“어이고! 상철이 네가 드디어 사고 쳤구나! 얻어걸린 거 아냐?”
“형님! 이런 대구 보신 적 있습니까? 동생 말대로 정말 내 시간이 온 건가? 믿을 수가 없네.”
선장을 향해 1.2미터의 왕대구를 불쑥 내민 지상철의 눈이 갈매기처럼 웃었다.
그때 그를 흐뭇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내 입가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한 마리의 대구로 불운의 기운을 완벽하게 뒤바꿀 수는 없을 터. 지금까지 지상철이 경험하지 못했을 엄청난 어복을 선사해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