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일타강사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둔 지상철은 사뭇 진지했다.
“몽규 형님한테 들었어요. 제게 일타강사 역할을 해 주실 분이라고. 한 번만 도와주십쇼.”
갑작스러운 요청에 심히 당황스러웠다.
내가 알기로 지상철은 운이 따르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을 뿐이지, 낚시라면 웬만한 일반인을 능가하는 실력을 갖춘 인물이다.
“제가 누굴 가르칠 입장은 아닌 것 같아서요.”
“에헤! 거절하는 겁니까? 규라인이라면서요.”
“그것도 사실은…….”
진정한 의미의 규라인은 아니라고 말하려다 말을 삼키고 말았다.
해맑은 얼굴로 고기를 입에 집어넣고 있는 이몽규의 눈치가 보였다.
한참 동안 입을 우물거리던 이몽규도 지상철을 거들고 나섰다.
“동생! 한번 도와줘. 지난번에 보니까 나와 덕호 형님을 잘 이끌어 주더만. 일타강사가 뭐 별건가? 우리 낚시하는 데 따라와서 그냥 슬쩍 봐주면 돼.”
“몽규 형님도 함께 가시나요?”
“나도 연습 삼아 따라가야지. 오죽하면 상철이가 저렇게 부탁하겠나. 불쌍하잖아. 장가도 못 가고, 낚시도 못 하고.”
“뭘 잡으시는데요?”
“대구라네.”
“대구…… 요?”
대구 낚시라면 경험은 있다.
입문 초기에 서해에서 오징어 내장으로 꽝을 쳐 봤고, 동해에서 지깅으로 팔뚝만 한 대구 한 마리를 걸어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럼 언제…….”
“낼모레야. 너무 촉박하게 부탁해서 미안해.”
“그건 괜찮습니다. 저야 뭐 아무 때나 떠날 수 있는 몸인데요.”
선뜻 거절하지 못하는 내게, 이몽규는 때를 놓칠세라 말뚝을 박기 시작했다.
“삼척 임원항에서 출발할 거야. 지깅 낚시로 할 거고. 상철이 차로 편하게 다녀오는 거지. 아! 동생 유튜브에 내보내도 좋아. 출연료와 수업료를 서로 퉁치는 거지 뭐. 이런 계산은 내가 참 빠르다니까.”
“아, 네…….”
우선 생각을 좀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개인적으로 지상철을 용감한 어부에서 자주 보게 된다면 나로서도 나쁠 것 없다.
이몽규와 지상철이 동시에 어반자TV에 출연해 준다면, 나야 감지덕지할 일이다.
그리고 대구 지깅 낚시.
10월이 가기 전에 꼭 해 보려 했던 장르다. 때마침 잘됐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일타강사 역할…….
솔직히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호기심을 끄는 부분이 있다.
어복의 황제라 불리는 이몽규.
갈치 낚시야 경험이 없어 허둥거렸다지만, 그는 나보다 훨씬 다양한 낚시를 섭렵한 낚시광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를 따라다니는 ‘어복’의 정체다.
반면에 어복이라고는 지지리도 없는 지상철.
내가 보기에는 이분도 웬만한 낚시 실력을 갖춘 인물이다.
다만 화면에 나올 때면 소심한 모습으로 돌변하여 애꿎은 낚싯대나 부러뜨리는 장면이 영 불가사의했다.
두 사람을 극명하게 가르는 어복의 실체.
나는 그것이 알고 싶어졌다.
“좋습니다. 대신에 선비(낚싯배 이용료)라든가 낚시에 필요한 경비들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오오! 그럼 정말로 내 인생에 깜빡이를 켜고 들어와 주신다 이거죠? 이거 고마워서 어쩌나.”
지상철이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이, 이몽규가 또 끼어들었다.
“고맙네. 역시 우리 규라인은 의리가 있다니까. 선비는 벌써 지불했어. 독배로 좋은 배를 빌려 놓았지. 나 이몽규야. 아직 죽지 않았다고.”
이몽규의 너스레를 끝으로 나는 지상철의 일타강사로 임명되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네요. 건배나 합시다.”
지상철이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잔을 높이 들었고, 나는 식어 빠진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저녁 식사 자리가 파할 무렵.
지상철은 너무 기분이 좋은지 잔뜩 취한 모습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만취하면 자신의 몸에 침을 뱉는다고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자네도 이제부터 형이라고 불러 줘. 알겠지? 우럭 동생.”
“하하. 알겠습니다. 형님.”
졸지에 연예인 형님이 두 명으로 늘었다.
식당을 나와 두 사람을 배웅하고 제일 먼저 연락한 사람은 사심희였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미안해서 어쩌죠?”
“괜찮아. 마음 쓰지 말고 편히 다녀와.”
제주도에서 돌아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너무 갑작스럽고 촉박한 일정인지라 다소 예상했던 일이다.
사심희는 추석에 찾아가지 못했던 외삼촌 가족과 가을 단풍 여행을 가기로 했다며, 몹시 미안해했다.
하는 수 없지. 쩝.
사내들 셋이서 가는 수밖에.
갑작스럽게 성사된 두 사람과의 동행 출조.
지상철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해 줘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지만, 나는 그들과 한 판의 즐거운 낚시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 * *
이틀 후.
나는 새벽이슬을 맞으며 분당 서현역 부근에 서 있었다.
한 대의 구형 SUV 차량이 다가와 끽 멈춘 것은 새벽 3시경이었다.
운전석 창문으로 지상철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동생! 어서 타!”
“네. 형님.”
뒷좌석에 올라 조수석 쪽을 살펴보니, 모자를 푹 눌러쓴 이몽규는 미동도 없었다.
“몽규 형님은 시체야. 욕하고 싶으면 지금 실컷 해도 돼.”
“하하. 운전은 제가 할까요?”
“이 차는 아무나 운전 못 해. 10년 동안 내 손에만 길들어져 있거든.”
“하아…….”
운전대가 심하게 진동하는 것으로 보아, 폐차 직전의 차량 같았다. 연예인은 죄다 고급 차를 타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다소 의외였다.
“동생도 편히 자. 도착하면 깨워 줄 테니까. 암튼 고마워. 나보다 바쁜 사람이 선생질에 선뜻 나서 줘서.”
“아닙니다. 저도 낚시라면 자다가도 일어납니다.”
낚시를 떠나는 길에 딱히 잠이 올 리가 없다.
그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고속 도로를 빠져나와 임원항이라 적힌 이정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몽규 형님! 다 왔어요. 일어나세요.”
“으음……. 벌써 다 왔나? 어라? 우리 우럭 동생은 언제 탔어? 아흠!”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이몽규가 길게 하품을 내뿜으며 기지개를 켜는 동안 나는 얼른 차에서 내려 낚싯짐부터 챙겼다.
“오늘 자느라고 용왕님한테 전화를 못 하고 왔네. 지금이라도 전화를 해야지.”
저런 썩은 개그는 방송에서만 하는 줄 알았는데.
희뿌옇게 밝아 오는 바다를 향해 이몽규는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지상철이 실실거리면서 이몽규의 어깨를 툭 쳤다.
“몽규 형님! 오늘 탈 배가 어떤 거요?”
“음. 나만 따라와.”
새벽의 임원항은 지깅 낚시를 즐기려는 적지 않은 인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몽규를 따라가 보니, 선착장 어귀에 불을 밝히고 우리를 기다리던 선장이 손을 흔들었다.
“선장님~ 이몽규가 왔수다.”
“어이쿠. 반갑습니다. 짐 이리 주세요.”
다른 배들에 비해 다소 젊어 보이는 선장이었다.
“뜸 들일 것 없이 당장 대구 밭으로 달립시다.”
“하하. 예.”
성미 급한 이몽규의 재촉에 선장은 군말 없이 배의 시동을 켰다.
“난 멀리 가는 건 질색이야. 가까운 곳부터 찔러 보게 해 줘요.”
“아아, 예.”
“어제는 대구가 많이 나왔어요?”
“어제는 별로 재미를 못 봤습니다.”
“에엥? 그럼 오늘 우리 꽝치는 거 아닌가?”
“제가 알아서 잘 모시겠습니다. 하하.”
흔한 말로 이몽규는 진상 손님에 가까워 보였다.
그의 까다로운 요구를 잘 받아주는 선장이 대단해 보였다.
30분 정도 배가 달리더니, 꾸르릉 소리를 내며 수면 위로 미끄러졌다.
나는 배가 정지하기도 전에 물속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바닥이 울퉁불퉁한 지형.
움푹 팬 몇 개의 웅덩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대구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대구가 마릿수로 눈에 띄지는 않았다. 대신에 횟대나 복어 같은 잡고기들이 더 많아 보였다.
뭐, 첫 포인트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장비를 세팅하려 할 때. 내 앞으로 이몽규가 불쑥 내밀었다.
“느낌이 좋은가 보네? 시작도 하기 전에 휘파람을 부는 걸 보니.”
“그, 그럼요.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대충 얼버무리고 우리 일행의 낚싯짐을 살펴보니, 아이스박스가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이몽규와 지상철 두 사람이 아이스박스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몽규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이스박스는 안 챙겨 오셨나요?”
“자네 거 하나면 됐지. 뭘 그래?”
“네에?”
“상철이랑 나는 고기 욕심 없어. 잡는 것만 좋아하지. 가져가 봐야 귀찮기만 하고. 자네는 무신 나눔인가 뭐시긴가 한다면서? 우리가 잡는 것도 거기에 보태려고.”
하아, 이런 게 이몽규의 매력인가.
까칠한 성격이지만 이럴 때 보면 전형적인 츤데레다.
“고맙습니다. 우리 시청자들에게 꼭 알리겠습니다.”
“당연하지. 미담은 널리 알리라고 하는 거야.”
“하하하.”
그때 지상철이 자신의 낚시 가방에서 날렵해 보이는 낚싯대를 꺼내더니, 나를 향해 흔들었다.
“동생! 이거 어때? 대구 낚시에 괜찮겠지?”
“좋아 보이네요. 오늘 대구들이 긴장해야 되겠는데요.”
“오우! 혓바닥에 구리스라도 칠하고 온 거야? 동생이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오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어록 중의 하나다.
이몽규도 지상철과 거의 유사한 1.8미터 정도의 라이트 지깅대를 꺼냈다.
작고 가벼워도 웬만한 대물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장비였다.
언제부터인가 대물 낚시에서도 묵직한 채비보다 가벼운 라이트 지깅 낚시를 선호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나고 있었다.
“엥? 동생은 그게 뭔가?”
내가 꺼낸 낚싯대를 보고, 이몽규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는 우럭대를 가져왔어요.”
“어허, 돈이 없어 그랬을 리는 없겠고, 모양새가 좀 빠지는데?”
“이걸로도 충분합니다.”
일전에 부시리를 잡았던 빅게임용 지깅대가 약간 과하다는 판단에, 손에 익은 로드 중에서 적당한 것을 골라 왔을 뿐이다.
지상철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내 편을 들어 주었다.
“튼튼한 우럭대를 가져온 걸 보니 우리 코치님이 대물을 노리시나 보네. 역시 고수는 다르다니까.”
딱히 그런 이유는 아닌데.
대상어마다 어떤 장비가 적합할지 정답은 없다.
터무니없이 불편한 장비가 아니라면, 나는 가급적 손에 익은 범용의 장비를 선호하는 편이다.
“준비되었으면 낚시하세요. 수심은 80미터입니다!”
선장의 구령에 세 사람은 배의 우현에 나란히 섰다.
두 사람이 자신의 문제점을 봐달라며, 한사코 나를 중간에 세우는 바람에 앞쪽부터 지상철, 나, 그리고 이몽규의 순서였다.
오른쪽을 보니 지상철은 어두운 색깔의 200g짜리 메탈지그를 쥐고 있었고, 왼쪽의 이몽규는 같은 200g이지만 반짝거리는 은갈치 색상의 메탈지그를 매달았다.
낚시에 임하는 지상철의 표정은 사뭇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몽규는 소풍을 나온 아이처럼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시작하시죠!”
나는 그렇게 외치면서 붉고 어두운 계열의 400g짜리 메탈을 아래로 떨궜다.
세 개의 메탈지그들이 바닥에 가까워지던 순간, 나는 정면에서 어슬렁거리는 한 마리의 대구를 발견했다.
과연 누구의 채비를 물어 줄 것인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각.
어두운 환경에서는 오히려 칙칙한 색깔의 미끼가 효과적이라는 속설이 있다.
나는 내심 지상철 또는 내가 첫수를 기록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어라?
그런데 내 예상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해저 바닥을 쿵 치고 뿌연 부유물을 퍼뜨리는 이몽규의 은백색 메탈지그. 대구가 큰 입을 쩌억 벌리고 그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정말로 어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