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규라인
“돌돔회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바로 구해다 주는구나. 역시 네가 최고다.”
제주도에서 돌아온 다음 날, 점심 무렵.
아지트 안에서 고동우의 입이 떡 벌어졌다.
“캡틴 님과 도라에몽도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요.”
“아이고, 먹을 복을 걷어찬 사람들 얘기 꺼내지도 마라. 나 먹을 것도 부족한데 잘됐다.”
테이블에 놓인 돌돔회에, 사심희가 돌돔 초밥까지 들고 오자 고동우는 마치 생일상을 받은 사람처럼 흥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잡은 걸 몽땅 가지고 온 거냐? 나눔은 안 하고?”
“그렇게 됐어요.”
이번에는 나눔 신청이 전혀 없었다.
어반자의 구독자들이 베풀어 준 배려 덕분이었다.
그들은 무조건 고기 욕심을 내는 분들이 아니었다.
제주도까지 가서 가르침을 받고 오겠다는 예고편을 보고, 독자들은 열렬한 응원을 보내 주면서도 동시에 부담은 덜어 주려 했나 보다.
물론 거의 한두 마리의 조황이면 다행이라는 갯바위 돌돔 낚시의 특성에 대한 이해도 작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고마운 독자들의 배려로 돌돔은 오롯이 고동우의 차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고동우가 갑자기 냉장고로 달려가 소주를 들고 돌아왔다.
“대낮이지만 좋은 음식에 술이 빠질 수 없지. 한 잔씩 받아.”
“아…… 저는 그냥 물을 마실게요.”
“왜 그래? 술이라면 한 번도 빼지 않던 녀석이.”
“해도 안 떨어진 시간이잖아요. 주세요. 제가 한 잔 드릴게요.”
나는 술병을 가로채서 얼른 그의 술잔을 채워 주었다.
엄마의 신신당부 때문이었다.
전혀 입에 대지 않고 살 결심까지는 아니지만, 예전처럼 만취할 정도로 마시는 일은 피하기로 했다.
“키야! 술맛 좋다. 사시미 님이라도 한잔할래?”
“저는 딱 한 잔만요.”
“오케이. 술은 함께 마시는 맛이지.”
“됐어요.”
두 사람이 술잔을 부닥뜨리는 모습을 보며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김동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외삼촌의 이름이었고, 내가 알고 있는 그의 거의 전부였다.
하나 더 아는 게 있다면, 그가 30년 전에 남해에서 낚싯배를 운영했다는 정도…….
명절이 끝나고 올라오는 길에 불현듯 남해로 차를 돌릴까, 하는 충동이 일기도 했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의혹들이 자꾸만 살아나 머릿속을 빙빙 돌아다닌 탓이었다.
비록 오랜 옛날의 일이지만, 외삼촌을 아는 사람을 남해에서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만은 않아 보였다.
폐쇄적인 지역에 흘러들어온 외지 젊은이를, 심지어 흔치 않은 일로 운명을 달리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을 가슴에 묻어 둔 채 인고의 세월을 견뎌 오신 엄마. 그녀의 슬픈 상처를 다시 들추는 게 옳은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그것은 또한 아버지의 당부이기도 했다.
초밥을 하나 집어 우물거리고 있을 때 고동우가 불쑥 물었다.
“그래……. 한석동이라는 사람한테서 원투 캐스팅은 제대로 배우고 왔냐?”
제일 먼저 물어볼 줄 알았는데, 음식에 정신이 팔려 이제야 생각났나 보다.
“그럼요. 아주 잘 배우고 왔습니다.”
“오호! 그럼 이제 한 200미터는 던질 수 있는 거냐?”
“200미터가 장난인가요? 드론으로 한다면 모를까.”
“그럼 몇 미터까지 가능해진 거냐?”
“나중에 방송으로 확인해 보세요.”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더니.
“실실 웃는 걸 보니까 배우고 돌아온 게 아니라 아예 박살을 낸 거 아냐?”
“아휴, 형님도 참……. 그런 거 아닙니다.”
그가 내민 빈 잔에 소주를 채워 주면서, 나는 전날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괜찮은 낚시꾼을 만난 것 같으이. 그래도 비거리 욕심이 난다면 언제라도 놀러 오게. 자네의 술은 그때 개봉하지.’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석동의 집앞에서 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장면이었다.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먹방을 제외한 방송분을 미리 편집해 두었다.
나는 두 사람 간에 비밀스러운 대결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장면과 대화는 모조리 제거했다. 대신에 제주의 푸른 바다와 한석동의 멋진 캐스팅을 담는 데 주력했다.
어설픈 오기와 행운으로 그를 이겼다는 대중들의 칭송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이 명인에 대한 나름의 예우라고 여긴 것이다.
“아, 자알 먹었다.”
테이블에 올려놓은 내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린 것은, 고동우가 남은 술잔을 막 들이켜고 있던 시점이었다.
누굴까?
모르는 번호였다. 발신자가 입력되지 않은.
전화를 받자마자 남자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이, 동생? 이거 참 섭섭하네. 전화도 한번 안 하고 말이야.”
“누, 누구시죠?”
“목소리 들으면 몰라? 내가 준 전화번호를 입력도 안 해 놓은 모양이군. 섭섭하네.”
자갈이 굴러가는 듯한, 어찌 들으면 호통을 치는 듯한 앵앵거리는 목소리.
나는 곧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챘다.
“아아, 죄송합니다. 이몽규 선생님…….”
“선생님이라니!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아, 형님…….”
예전에 갈치 낚시를 마치고 선실에서 노닥거리는 동안, 이몽규는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나는 유명 연예인과 친분을 이어 갈 일이 별로 없을 거라 지레짐작했다. 그의 전화번호를 입력해 놓지 않은 것이 내 실수였다.
이몽규라는 말에 고동우와 사심희가 귀를 쫑긋 세웠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 저녁에 무슨 약속 있나?”
“……약속은 없는데요.”
“그럼 잘됐군. 여섯 시까지 서울로 올라와. 예전에 그 소고기 먹던 식당 알지?”
이몽규는 시원시원한 건지, 우격다짐인 건지, 다짜고짜 말을 쏟아 냈다. 그 바람에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저녁 약속이 잡히고 말았다.
“알지만 무슨 일이신지…….”
“형님이 동생하고 밥이나 먹자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한번 규라인이면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거야. 잔말 말고 시간 맞춰서 오라고.”
“……알겠습니다.”
또 규라인이란다.
헛웃음을 내뱉으며 휴대폰을 귀에서 떼었더니, 저녁 자리에 다른 일행은 없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규라인 회식인가? 단둘이서 보자고 했을 리는 없고.
연예인들 틈에 끼는 건 영 어색한데. 규라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누가 있더라?
자리로 돌아와 보니, 사심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오늘 보재요?”
“저녁을 먹자네.”
“우럭 님 이러다가 연예인 되는 거 아녜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연예인 병 그거 무섭다던데. 조심해요. 호홋.”
“아이고, 난 설거지나 해야겠다.”
마땅히 대꾸할 말도 없고 해서, 나는 부리나케 그릇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로 왜 보자고 했을까?
설거지를 하는 도중 나도 모르게 손이 멈췄다.
소문으로 들으니 술고래라고 하던데. 조심해야겠군.
단단히 마음을 다잡으며 나는 손에 쥔 수세미에 꽉 힘을 주었다.
* * *
집에서 베타와 놀아 주다가 밖으로 나선 것은 오후 5시경이었다. 의외로 도로가 막혀 약속 시간에 5분 지각을 하고 말았다.
“저어, 이몽규 씨가 예약한 방을 찾는데요.”
“아! 오셨군요. 따라오세요.”
종업원의 뒤를 따르면서 나는 그녀에게 슬쩍 물었다.
“몇 분이나 와 계신가요?”
“두 분이 계십니다. 세 분 예약이니까 손님이 마지막일 거예요.”
그럼 한 사람이 더 있다는 얘긴데.
드르륵 문을 열자,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두 사람의 대화가 뚝 끊어졌다.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어서 와. 동생.”
내 눈길이 반사적으로 이몽규의 앞자리로 향했다.
“나 알죠? 화면에서 본 것보다 키가 크네. 안면에 니스칠이라도 했나? 빤들빤들 아주 잘생기셨네.”
안경 너머로 반달처럼 생긴 눈웃음을 짓는 사내였다.
잘 알다마다.
그의 개그는 오래전부터 내 취항 저격이었다.
“그럼요. 평소에 너무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강유록이라고 합니다. 그냥 우럭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나는 신발을 벗고 달려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에이, 요즘 나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라고. 어서 앉아요.”
지상철.
대표적인 노총각 개그맨으로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의 아재 개그는 올드하다는 평가와 함께 사람들의 외면을 받고 있었지만, 그의 기발한 입담을 들을 때마다 나는 배꼽을 잡곤 했었다.
말하자면 ‘샤이 지상철’이라고나 할까.
“우럭 님이 요즘 낚시 좀 하신다고? 몽규 형님이 혀에 와이파이가 터졌는지 계속 칭찬하고 있었어요.”
“하하하하.”
허리를 젖히고 웃어 대는 내 모습에 이몽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얘기를 들을 때와는 영 딴판이네. 우리 동생이 지상철 자네를 정말 좋아하나 봐. 그 썰렁한 농담 때문에 용감한 어부에서도 잘렸는데.”
“형님. 제가 왜 잘려요. 자진 하차했다고 몇 번이나 말해요.”
대략 반년 전쯤의 일이다.
지상철은 용감한 어부에 몇 차례 얼굴을 비쳤다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나로서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스케줄이 많아져 자진 하차했다는 단신 기사가 있었다. 하지만 지상철의 조과가 영 형편없는 데다, 썰렁한 개그에 시청률이 하락한 게 실제 이유라는 후문이 있었다.
내가 알기론 지상철이 그 후로 다른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친 일이 전혀 없어, 스케줄 운운은 헛소문인 것 같았다.
“자자, 쓸데없는 소린 됐고, 술이나 들지.”
“그럽시다. 이렇게 잘생긴 후배도 왔으니, 제가 한 잔 말아 보겠습니다.”
큰일이다.
지상철은 연예계에서도 소문난 주당이 아니던가.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았다가는 최소한 사망이다.
초면에 실례지만 처음부터 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겠다.
“죄송하지만 저는 술을 잘 못 마십니다.”
“무슨 소리야? 지난번에는 곧잘 마시더만.”
갑작스러운 내 말에 이몽규가 발끈했다.
“요즘 간이 좀…….”
“그런가? 그러고 보니 얼굴이 전보다 더 까매진 것도 같고.”
다행이다.
제주도에서 잔뜩 그을려서 그런 건데. 까만 피부가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지상철이 약간 아쉽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쾌활하게 웃기 시작했다.
“아픈 사람에게 억지로 먹일 수야 없지. 나는 그렇게 많이 마셔도 간이 신생아인데.”
“하하. 죄송합니다. 대신에 맥주나 한 잔 마시겠습니다.”
폭탄주 대신에 받은 맥주 한 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이어 갔다.
“몽규 형님! 그나저나 고맙습니다. 저까지 꽂아 주시고.”
“너무 오래 쉬고 있잖아. 아무튼 내 역할은 거기까지야. 이번에는 제대로 좀 해 봐.”
“그래야죠. 오죽하면 평생 해 보지 않던 리허설까지 제가 하려고 하겠어요?”
꽂아 준 건 뭐고, 리허설은 뭔 소린가.
영 알 수가 없는 대목이었다. 눈만 깜빡거리고 있던 내게 지상철이 설명해 주었다
“이번에 용감한 어부에 자리가 하나 비었어요. 전에 봤었죠? 그 가수 녀석. 약간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서 하차했거든요. 급한 대로 형님께서 저를 추천해 주셨지 뭡니까.”
“아. 다행이군요.”
지상철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겠다는 반가운 마음에, 나는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이몽규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폭탄주를 단숨에 들이켜고 잔을 탁 내려놓았다.
“그럼 뭘 해? 고기를 잘 잡아야지. 피디가 그러더군. 한번 써 보고 이번에도 시원치 않으면 다른 사람 구해 보겠다고. 썩은 개그야 어쩔 수 없다지만 낚시는 잘해야 되지 않겠나? 아무리 예능이지만 그래도 낚시 전문 프로그램이잖아.”
그 말에 겸연쩍게 미소를 짓던 지상철이 내게 잔을 내밀었다.
“미안하지만 그래서 우럭 님을 불러 달라고 했어요. 제게 큰 도움을 주실 수 있을 것 같다고 몽규 형님이 하도 칭찬을 하시길래.”
“제, 제가요? 제가 무슨 도움을…….”
“에이, 그렇게 빼지 마시고. 내 인생에 리모컨을 좀 쏴 주세요.”
새로 나온 개그인가?
말뜻을 몰라 멍하니 있는 내게 지상철이 눈을 찡긋했다.
“저를 도와 달라는 말입니다. 다음 촬영할 낚시를 미리 해 보려고 하는데, 문제가 뭔지 봐줬으면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