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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70화 (70/130)

[제70화] 궁즉통

과연 그 방법이 통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고 있는 동안, 한석동은 묵직한 뭔가를 끌어당기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손맛 좋고!”

출렁거리는 그의 초릿대를 훑고 있던 내 시선이 곧바로 물속으로 옮겨졌다.

돌돔이 아니다! 얼룩말 무늬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뾰족해야 할 주둥이 부근과 이마가 불룩 튀어나온 생김새가 처음에는 옥돔인 줄 알았다.

발치 근처까지 끌려와 푸드덕거리는 고운 주황빛 물고기를 발견하고 한 프로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런……. 호박돔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구먼. 여름에도 그렇게 올라와서 극성이더만.”

4짜 중반의 호박돔을 손에 쥔 한석동은 실망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손맛은 고마웠다만, 가서 잘 살아라.”

바다에 물고기를 풍덩 내려놓은 그는, 곧장 채비를 멀리 던졌다. 그의 손을 떠난 채비가 수중여의 구석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어쩌면 저렇게 멀리, 심지어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도달할 수 있을까. 힘을 거의 쓰지 않는 것 같은데도.

실로 경이로운 예술의 경지였다.

눈앞에서 펼쳐진 베테랑의 화려한 테크닉에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는 거다.

나는 낚싯대를 가만히 거치대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이스박스로 달려가 안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는 미끼로 구입한 한 무더기의 붉은 성게를 주르륵 바닥에 쏟아 놓았다.

“뭐해요? 미끼를 바꾸게요?”

“아니야.”

나는 싱긋 웃으며 바닥에 흩어진 성게들을 발로 으깨기 시작했다.

수상쩍은 내 행동에 한석동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까운 성게를 왜 그렇게 뭉개고 있나?”

“밑밥을 만들고 있습니다.”

“……밑밥? 뭔 짓거리인 줄은 모르겠다만 열심히 해 보게나.”

나에게도 확신이 없는 터라 길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보내는 의심의 눈초리를 뒤로하고, 나는 또 한 무더기의 성게를 꺼내 똑같이 발로 뭉갰다.

사심희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넉넉하게 사 두길 잘했다.

잠시 후 나는 서너 줌의 뭉개진 성게를 그물망에 담았다. 성게와 참소라를 살 때 어시장 주인이 담아 준 그물망이었다.

나는 흐트러진 성게들을 각각 200그램씩 나눠, 두 개의 그물망에 담았다. 200그램이면 대략 50호의 봉돌에 해당하는 무게다.

그중의 하나를 집어 낚싯줄을 끝에 단단히 고정시킨 후에, 나는 바다를 향해 비장한 얼굴로 우뚝 섰다.

“자네 지금 그걸 바다에 던지려고 하는 건가?”

“…….”

한석동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구명조끼 주머니에서 쪽가위를 꺼내 들었다.

실로 기상천외한 장면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쒸이익!

목표물을 조준하고 그물망을 발사하자마자 나는 낚싯줄을 끊어 버렸다.

포물선을 그린 그물망은 대략 80미터를 날아가는가 싶더니, 사선으로 입수하여 바닥에 가라앉았다. 대략적으로 수중여에서 30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였다.

나는 같은 방법으로 한 무더기의 성게 뭉치를 같은 위치에 안착시켰다.

그리고 원래대로 채비를 장착한 낚싯대를 들고 힘차게 캐스팅을 시도했다. 미끼는 살짝 쪼갠 원형 그대로의 성게였다.

채비는 정확히 내가 목표한 지점에 박혔다.

두 개의 성게 그물망이 놓인 근처였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는 낚싯대를 거치대에 내려놓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돌돔에게 다가갈 수 없다면, 그들을 내가 있는 곳으로 불러들일 수밖에. 이제 이후의 일은 전적으로 돌돔에게 맡겨 보기로 했다.

멀리 수중여 바닥을 살펴보니 돌돔이라고는 너댓 마리뿐.

썰물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개체들이 유입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이제 놈들의 선택지는 가만히 앉아서 한 프로의 혼무시 미끼를 물든가, 아니면 조류에 밀려온 성게 냄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30미터 정도를 기어 나올 것인가, 둘 중의 하나였다.

나는 팔짱을 끼고 서서 성게의 내장들이 썰물을 따라 수중여 쪽으로 흘러 들어가기만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30분 정도가 속절없이 흘러갔다.

한석동이 다시금 낚싯대를 힘차게 들어 올렸다. 사심희가 긴장한 얼굴로 그에게 카메라를 가까이 가져갔지만,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번에도 얼룩말 물고기가 아니었다.

아까부터 그의 미끼 근처를 얼씬거리던 이상한 생김새의 물고기를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왔어! 이번엔 완전 대물이야!”

요란법석을 떨며 한 프로가 챔질에 성공했다.

노련한 그는 이번에는 손맛이 돌돔과 다르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린 모양이다.

“혹돔이구만. 오늘따라 손님 고기가 많구먼. 서울에서 손님들이 와서 그런가? 하하핫.”

그의 썰렁한 농담에 어색하게 웃어 주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나는 흠칫 놀라며 시선을 수중여에 고정시켰다.

틀림없는 돌돔이었다.

수중여를 빠져나온 돌돔 한 마리가 슬금슬금 그물망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톡톡! 토독!

뾰족한 주둥이로 그물망을 건드리는 돌돔이 보였다. 아직 내 미끼는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한 손은 낚싯대의 손잡이에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원줄을 살짝 잡아당기면서 놈의 반응을 유도해 보았다.

성공이다!

온전한 형태의 성게를 발견한 돌돔이 호기심 많은 눈알을 굴리며 미끼로 고개를 돌렸다.

톡! 톡톡!

경계심이 많은 녀석이었다. 단단한 이빨로 성게를 깨물던 녀석이 약간 뒤로 물러서 미끼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윽고 작심이라도 한 듯 다시 다가온 녀석이 사정없이 성게의 속살을 물고 늘어졌다.

초릿대가 아래를 향해 고꾸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낚싯대를 치켜들었다.

찌이이잉~

온몸에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는 짜릿한 손맛.

드랙을 치고 나가는 놈의 강렬한 저항이 낚싯대를 타고 올라왔다.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릴을 감고 있는 내 모습에 사심희가 얼른 달려왔다.

“잡았어요?”

“아마도.”

너무나 기다리던 손맛이었다.

멀리서 끌어오는 손맛은 진하고 또 길었다. 한참 동안의 줄다리기 끝에 드디어 수면 위로 포말을 일으키며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아름다운 자태.

50센티 후반 크기의 중치급 돌돔이었다.

“어이, 축하하네. 그쪽에 지나가던 녀석이 하나 있었나 보구먼.”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일 대 일이군. 분발하게나. 이제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어.”

나는 돌돔의 위턱에 걸린 바늘을 제거하고 곧바로 캐스팅을 서둘렀다. 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포인트로 다가오는 돌돔을 이미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였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며 나의 두 번째 채비가 정확한 목표 지점에 떨어졌다.

나의 두 눈은 초릿대를 향했다. 그리고 열어 놓은 제3의 눈으로는 돌돔의 모습을 동시에 지켜보았다. 물고기의 움직임과 초릿대의 반응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기괴한 화면이었다.

미끼가 채 가라앉기도 전이었다. 놈이 그것을 덥석 물고 늘어졌다.

“히트!”

사이즈는 고만고만하지만 힘이 센 녀석이었다.

제대로 걸었다고 판단한 나는 주저 없이 강제 집행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손맛이고 뭐고 없었다.

재빨리 마릿수를 추가하고 다른 한 놈을 포획할 생각뿐이었다.

30센티 초반의 돌돔.

한 프로가 킬킬거리며 손뼉을 치며 외쳤다.

“좋아! 이제 앞서가게 되었구먼.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네.”

그래. 아직 안심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어렴풋이 직감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내가 테스트를 통과할 수도 있겠다고.

한 프로는 미동도 없는 채비를 회수하더니 미끼를 성게로 갈아 끼웠다. 그리고 또다시 가공할 장거리 캐스팅을 선보였다.

나도 질세라 낚싯대를 휘둘러 나만의 포인트로 골인시켰다. 다행히 아까 동료를 떠나보낸 녀석이 아직 그물망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쉬이익!

잠시 후 나의 신들린 듯한 챔질이 이어졌다. 한눈에 보아도 60센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대물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강제 집행을 하려다가는 줄이 끊어질 수 있는 상황.

드랙을 약간 풀었더니 곧바로 줄이 풀려 나갔다. 연거푸 세 마리째 줄다리기를 벌이는 터라 손목이 아려 왔다.

“오오!”

마지막 몸부림을 끝으로 대어가 물살을 가르며 끌려왔다. 100여 미터의 긴 싸움에 패배를 인정하듯 6짜 돌돔은 등지느러미를 축 늘어뜨렸다.

카메라에 대고 한껏 포즈를 취하고 나서 계측해 보니 63센티미터. 그리고 스코어는 순식간에 3:1.

남은 시간이 거의 없음을 확인한 나는, 승부가 완전히 내게로 기울었음을 확신했다.

하아, 하아.

장거리 줄다리기에 녹초가 된 내가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였다. 멀리 수중여를 향해 우두커니 서 있는 한석동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새카만 후배에게 당한 일격에 충격을 받으신 걸까.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의 등에 다가섰다.

“죄송합니다. 운이 따랐던 것 같습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한석동은 여전히 바다를 향해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천천히 몸을 돌리면서 두 손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오랜 동안 기다렸던 순간이라 감격스럽군.”

“어, 어르신…….”

갑작스러운 그의 태도 변화에 나는 말을 더듬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기술을 탐내고 찾아왔었지. 하지만 내 테스트를 멋지게 통과한 사람은 자네가 유일하네. 솔직히 지금 나는 기쁘다네.”

“…….”

한석동의 눈동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를 향해 품었던 모든 오해가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제게 비법을 전수해 주시는 겁니까?”

“오늘 서울로 올라간다고 하지 않았나? 서둘러 올라가시게.”

“그럼 다음에 와서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한석동은 대답 대신 껄껄 웃으며 낚싯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양반이군.

또다시 태도를 바꾸는 것 같아 당황하고 있을 때, 그의 입에서 해괴한 말이 흘러나왔다.

“벌써 가르쳐 주었는데 잘 모르고 있었구먼.”

“네에?”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선문답 같은 그의 말에 나는 지난 세 시간을 곰곰이 되돌아보았다.

물론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는 바람에 처음보다 내 비거리는 계속 늘어간 게 사실이다.

갑자기 밀려온 허탈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설마 영화 ‘위플래쉬’의 미치광이 지휘자 흉내를 내려는 것인가?

내게 독기를 품게 만들어 비거리가 향상되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는 의미인 걸까?

의혹의 눈길로 한 프로의 얼굴을 올려다보자, 그가 아직도 모르겠냐는 투로 혀를 찼다.

“낚시는 천재인데, 말뜻을 잘 모르는 둔재로구먼. 쯧쯧.”

“그, 그게 무슨…….”

“아무리 먼 거리라도 드론으로 척척 원하는 위치에 채비를 가져다 놓는 세상이 아니던가. 물리적인 비거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말일세.”

“그럼 뭐가 중요하단 말씀입니까?”

“더 높은 차원의 낚시를 향한 자네의 집념.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류와 바람을 자네의 것으로 만들어 낸 그 창의성. 그만하면 내가 가르칠 게 없을 것 같네만.”

놀라운 얘기였다.

처음부터 그가 설계한 테스트는 비거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그의 참뜻을 이제야 알 것 같아 저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감사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괜찮네. 다들 그랬으니까. 그래도 제대로 배우고 가는 사람이 하나 생겼으니 나는 기쁘기 한이 없구먼.”

하아. 그것도 모르고 하루 종일 속으로 투덜거렸다니.

존경의 마음과 더불어 미안함이 가슴속에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술은 다음에 와서 마시고 가게나. 아침에 들으니 무슨 돈가스 타령이나 하고 있더만. 아! 그리고…….”

멍하니 서 있는 내게 한석동이 다가왔다.

“오늘 자네의 행동에서 유일한 결함이 하나 있었네.”

“그게 뭡니까?”

“아까 물속에 던져 넣은 그물망 말일세. 낚시를 한다는 사람이 해양 쓰레기를 만들고 떠나면 되겠는가?”

“아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조건 이기고 싶은 마음에 간과했던 그릇된 행동이었다.

“지금이라도 치우고 가겠습니다.”

“어떻게?”

“그, 그게 그러니까 잠수라도 해서…….”

“그거 이리 줘 보게.”

한석동은 내 낚싯대를 집어 들더니 먼 곳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물망을 훌쩍 넘겨 캐스팅을 하더니 채비를 지그재그로 끌어 결국 바늘에 그물망을 거는 데 성공했다.

“뭐 하나? 빨리 정리하고 배를 타러 가야지.”

무심히 두 개의 그물망을 내 발밑에 던져 놓고 떠나는 한석동.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멋지다. 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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