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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69화 (69/130)

[제69화] 머나먼 돌돔

다음 날, 이른 아침.

나는 차를 몰고 근처의 낚시점에서 미끼로 쓸 혼무시를 사 가지고 오는 길이었다.

나 같은 아마추어를 상대로 뭘 어쩌시겠다는 건지.

혼자 운전을 하면서도 몇 번이나 투덜거렸는지 모르겠다. 평소에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던 동경의 대상이었기에 실망감은 더욱 컸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야행성인 돌돔의 특성상 처음에 나는 야간 낚시를 예상했다. 그런데 내려가기로 하기 바로 전날, 한 프로는 돌연 전화를 걸어와 주간 낚시를 제안해 왔다.

감기 기운이 있어 추운 밤에는 낚시가 어렵다는 얘기였다.

물때표를 찾아보니 변경된 오전 시간대는 날물이라 낚시에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찜찜했지만 그냥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캐스팅을 배우는 자리니까 조황은 그리 중요하지 않겠다,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한석동의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보니, 사심희가 앞마당에 나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낚시점 다녀오는 거죠? 아침 일찍 어디 갔나 했어요.”

“응. 아주 쌩쌩한 혼무시를 구해 왔어.”

“오오! 혈전을 치르시겠다는 각오? 베테랑 프로 조사를 상대로 오늘 승부를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사심희가 장난스럽게 내 입가에 마이크 대신 주먹을 가까이 댔다. 나는 그녀의 주먹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후딱 장렬하게 전사하고 돈가스나 먹으러 갈 생각입니다.”

사심희가 까르르 웃는 사이, 창문 쪽에서 한석동이 우리에게 소리쳤다.

“아침밥으로 갈치조림 차려 놓았네. 어서 와서 드시게.”

갈치조림이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리는 집으로 달려 들어갔다.

* * *

한석동을 태운 차가 서귀포항에 멈췄다.

낚싯배에 오르자마자 한석동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문섬이 오늘 낚시 포인트라네. 혹시 가 본 적 있는가?”

“아닙니다. 사실 제주도에서 낚시는 처음입니다.”

“그렇군. 오늘 진하게 제주도 손맛을 봐야 할 텐데.”

손맛을 보라는 소리가, 마치 쓴맛을 보라는 말처럼 들리는 이유는 뭘까. 한석동이 또 괴팍한 웃음소리를 내자 기분이 내려앉았다.

제주도에 오신 이후로 많이 적적해서 그런가?

나 같은 애송이를 데리고 장난을 치시는 것도 아니겠고.

도무지 그의 속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서귀포항에서 출발한 작은 낚싯배는 얼마 가지 않아, 문섬도 아니고 그 옆에 위치한 작은 새끼 섬에 우리 일행을 내려놓았다.

꽤 널찍한 너럭바위였다.

바다는 적당한 파도를 일으키며 바위 아래쪽에 작은 포말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미 자포자기한 상태라 간밤에 잠은 푹 잘 수 있었다.

상쾌한 제주의 바람을 맞으며 탁 트인 푸른 바다를 본 순간, 내가 여기에 왜 왔는지 잊을 정도로 머리가 상쾌해졌다.

한 프로는 친절한 목소리로 내게 자리 선점을 권했다.

“손님이니까 자네가 먼저 편한 자리를 잡으시게.”

“저는 그냥 여기서 하겠습니다.”

자리가 무슨 대수겠는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놀러 온 셈 치고 즐기다 가면 그뿐이지.

나는 서 있던 자리에 가방을 털썩 내려놓으며 그에게 물었다.

“승부는 어떤 방식으로 정하시는 겁니까?”

“마릿수가 어떤가. 물론 30센티 아래 잔챙이는 빼고. 지금이 오전 9시니까 딱 12시까지만 하세.”

“좋습니다.”

어차피 길게 끌 것 없다. 차라리 잘됐다.

나는 주섬주섬 가방에 있는 채비를 꺼내 정돈하기 시작했다. 먼저 갯바위 위에 받침대를 고정시키고 네 칸짜리 돌돔대를 거치했다.

“그 낚싯대는 새로 샀나? 좋아 보이는구먼.”

“예. 한 수 배우려고 꽤 비싼 걸로 샀습니다.”

“낚싯대는 한 대만 가지고 할 건가?”

“네. 이럴 줄 알았으면 하나 더 가져올 걸 그랬습니다.”

“어째 말에 가시가 박힌 것 같구먼.”

“아, 아닙니다.”

뜨끔하다.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지만, 대선배에게 불손하게 비치면 되겠는가.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으며 나는 낚시 준비를 마무리했다.

로드는 탄성이 높은 5.4미터의 돌돔 전용대.

약간의 바람이 부는 상황인지라 나일론 14호 원줄을 감은 장구통릴을 장착했다.

버림봉돌 채비에 봉돌 무게는 40호.

미끼는 일단 값비싼 혼무시(참갯지렁이)를 길게 매달았다.

“그럼 시작하지. 오늘 돌돔이 얼굴을 보여 줄는지 모르겠구먼. 허허허.”

한 프로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먼저 캐스팅을 시도했다.

쒸이익!

전투기가 지나가는 소리인 줄 알았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심희도 깜짝 놀라 뒤로 주춤했다.

그의 초릿대에서 발사된 봉돌이 총알처럼 허공을 가르며 아주 먼 바다 위에 동심원을 그렸다. 족히 100미터는 크게 넘어서는 비거리였다.

역시 가공할 위력이다.

화면으로만 보았던 엄청난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나는 그만 넋을 놓고 말았다.

“잠을 설쳤는지, 나도 예전 같지 않구먼.”

거치대에 낚싯대를 내려놓으며 한 프로가 자신의 어깨를 주물렀다.

방금 본 것이 예전과 같았다면 어디까지 날아갔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보람이 조금은 있네. 좋은 구경이라도 하게 되었으니.

“듣던 대로 비거리가 상당하시군요.”

“아닐세. 한참 멀었네.”

한석동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채비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먼 곳을 겨누는가 싶더니 유연한 동작으로 탄환을 발사했다.

쐐애액!

그의 총구에서 아까보다 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보다 더 먼 곳에 채비가 안착하는 모습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기죽어서 어디 낚시하겠나.

나는 낚싯대를 들고 망설였다. 상대방의 코웃음을 얻을 게 불을 보듯 빤한 상황이었다.

어차피 배우러 온 거지. 뽐내려고 온 것은 아니잖아.

낚싯대를 치켜들고 어디로 던질까 확인하려 입술을 오므리고 있던 찰나였다.

가만, 뭔가 이상하잖아!

한 줄기 의혹이 관자놀이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나는 한 프로의 행동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투포환 대회도 아닌데, 왜 저렇게 멀리 던지신 걸까?

돌돔 낚시는 가까운 곳부터 공략하거나, 또는 두 대로 원거리와 근거리를 동시에 탐색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한 프로는 처음부터 아주 먼 곳으로 채비를 던졌다.

마치 돌돔이 있는 곳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러고 보니 여기는 그의 영역인 제주도가 아닌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바다를 향해 휘파람을 뿌리는 순간, 의문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당황하는 표정은 애써 감췄다.

가까운 곳에는 생명체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멀리 120여 미터 밖에 펼쳐진 수중여 구석에, 몇 마리의 물고기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숨어 있었다.

아아, 이제야 알겠다.

굳이 활성도가 높은 밤낚시를 기피한 이유도, 물이 빠지는 날물에 낚시를 하자고 했던 이유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려는 걸까.

120미터가 커트라인인가?

최소한 120미터는 던질 줄 아는 사람에게만 기술을 전수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는 말인가.

의뭉스럽게 눈알을 굴리는 노장의 의도를 좀처럼 알 수가 없었다.

“뭐 하세요? 빨리 안 던지고.”

아무것도 알 리 없는 사심희가 나를 재촉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있는 힘껏 낚싯대를 젖혔다.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집중하여 힘차게 45도 각도로 채비를 캐스팅했다.

슈우욱!

시위를 떠난 채비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거리를 가늠할 필요도 없는 민망한 결과였다.

나를 지켜보고 있는 한 프로의 눈길을 피하면서, 빠르게 채비를 회수하고 있을 때였다.

“너무 힘을 줬어. 낚싯대의 탄성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네.”

“……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나는 다시금 이를 악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오기가 생겼다.

새카만 아마추어 후배에게 결코 이길 수 없는 게임을 제안한 노장. 이런 걸 전문 용어로 설계당했다고 하던가.

질 때 지더라도 그에게 결코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만은 않고 싶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멀리 떨어진 목표 지점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낚싯대의 탄성을 허리로 느끼며 힘차게 팔을 앞으로 뻗었다.

추르르륵. 척!

아까보다는 훨씬 안정된 자세임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채비는 멀리 날아가 잔파도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대략 70미터.

내 채비는 수면 아래로 하강하다가 황무지 같은 바닥에 푹 박혀 버렸다.

“훨씬 좋아졌구먼. 하지만 승부는 비거리가 아니라 고기를 잡는 걸세. 바로 이렇게 말이네.”

때마침 한 프로의 초릿대가 간헐적으로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수중여 근처를 살펴보니 얼룩말 무늬의 물고기가 혼무시를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옳거니!”

내가 보기에도 귀신같은 챔질 타이밍이었다.

한동안 조용하던 초릿대가 크게 아래로 휘청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한 프로는 거치대에 놓인 낚싯대를 번쩍 들어 올렸다.

“걸렸어!”

노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갈매기가 깜짝 놀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제법 힘을 쓰지만 자잘한 놈이구먼.”

한 프로는 한껏 손맛을 만끽하며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발밑까지 끌려온 물고기를 보니 중치급 돌돔이었다.

“30센티는 족히 넘어 보이는군. 그럼 일 대 영이 되는 건가? 크하하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자네도 열심히 해 보게. 돌돔이 꼭 멀리에만 있는 건 아닐 테니 곧 입질을 받을 걸세.”

“그래야죠.”

정말 모르고 하는 말씀인가? 아니면…….

나는 턱에 힘을 잔뜩 주고 채비를 회수했다. 눈을 씻고 봐도 생명체가 없는 황량한 곳에서 시간을 허비할 이유는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캐스팅.

쒸이익! 촤악!

채비가 낚싯대를 떠나는 순간, 이번에는 더 멀리 날아갈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80여 미터.

여전히 수중여 근처에는 어림도 없는 비거리였다.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었지만, 지금이 캐스팅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생각에 오히려 허탈감이 밀려왔다.

“좋아! 점점 좋아지고 있어.”

정말 나는 안 되는 건가…….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대로는 상대방의 돌돔들을 구경만 하다가 돌아갈 판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채비를 걷었다.

그리고 낚시 보조 가방을 뒤적거려, 다른 6호 합사를 감아 놓은 릴을 꺼내 들었다.

봉돌도 40호에서 60호로 교체했다. 가느다란 원줄로 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봉돌의 무게를 늘려 조금이라도 비거리를 늘려 보려는 시도였다.

낚싯대를 들고 호흡을 가다듬는 나를, 한석동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쉬이잇!

바람을 가르는 초릿대의 쇳소리가 훨씬 경쾌해졌다. 묵직한 봉돌을 앞세운 채비가 멋진 포물선을 만들어 내는 동안,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봉돌을 살폈다.

풍덩!

그러나 대략 100미터.

허망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수중여와의 격차는 아직도 20미터. 더 이상은 무리였다.

설상가상으로 낚싯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던 한 프로가 번쩍 두 번째 챔질을 시도하고 있었다.

“왔어! 이번에는 아까보다 큰 놈이야. 크하하하.”

아아. 멀리 제주까지 와서 돈가스나 먹고 갈 운명이란 말인가.

더 이상은 나의 한계다. 아무리 물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한들 뭘 하겠나. 포인트에 닿을 수 없다면 무소용인걸.

멀고 먼 수중여를 원망 어린 눈길로 바라보던 그때였다. 머릿속에 세 글자의 단어가 불쑥 솟아올랐다.

궁즉통이라고 하던가.

천천히 채비를 거두는 내 머릿속에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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