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제주행
추석 연휴가 끝나고 올라온 다음 날.
아지트에 놀러 갔더니, 고동우가 커피를 들고 2층으로 올라왔다.
“집에서 잘 쉬다 왔냐?”
“에휴. ……그럭저럭요.”
“웬 한숨이냐?”
잘 쉬지는 못했다.
그래서 대충 얼버무리고 화제를 돌렸다.
“구피 님은 어땠어요?”
“나도 당일에는 파주 부모님 댁에 다녀왔어.”
불청객의 방문과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외삼촌 얘기로, 이번 추석은 몹시 무거운 분위기에서 보내야 했다.
추석 당일에 상경하려던 계획을 하루 더 연장한 것은, 엄마를 위로하느라 재주도 없는 재롱을 떨기 위해서였다.
‘반찬 챙겨 넣었으니까 꼭 챙겨 먹어라. 엄마는 괜찮다. 다 지나간 일이니까.’
마지막에 엄마가 억지웃음이라도 보이신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갑자기 고동우가 테이블에 잡지 한 권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옜다! 사는 김에 한 권 더 샀으니까, 기념품으로 보관해 둬라.”
“이게 무슨 책이죠?”
[월간낚시]
요즘 들어 고동우가 틈만 나면 읽고 있는 낚시 전문 잡지였다.
기념품이란 말이 뭔 소린가 하여, 나는 무심코 책자를 집어 들었다.
“이번 달 신간이야. 넘겨 보면 네 사진이 나와 있을 거다.”
“제 사진이요?”
집히는 구석이 있어, 나는 휘리릭 책장을 넘겨 보았다.
아…… 이거구나.
낚시 대회에서 트로피를 들고 김혁준과 나란히 서서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
“웃으려면 좀 제대로 웃지 그랬냐. 옆에 있는 그 친구 봐라. 얼마나 멋지게 웃고 있는지.”
세상 행복한 웃음을 짓는 김혁준의 얼굴이 아련하게 다가왔다. 지금쯤 병원에서 치료는 잘 받고 있는지…….
한 페이지의 짧은 기사는 대회의 요강과 주요 결과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남해에서 낚시 대회가 끝났을 때, 잡지 기사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김혁준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정중하게 거절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책장을 덮었다.
“고마워요. 가보로 삼아 잘 보관하겠습니다.”
“가보는 가보지. 나 같은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할 대회 우승인데.”
고동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을 때, 테이블에 내려놓은 잡지 표지에 반가운 이름이 눈에 띄었다.
나는 다시 잡지를 들어 휘리릭 책장을 넘겨 보았다.
내 손가락이 거의 마지막 페이지 부근에서 스르르 멈췄다.
멋진 콧수염의 사내가 푸른 바다를 등지고 금방 잡은 얼룩말 무늬의 물고기를 내밀고 있는 사진이었다.
“한석동 프로님 기사도 나왔네요?”
“요즘 TV에서 안 보인다 싶었더니, 제주도에 내려가 살고 있었더만.”
“제주도요?”
“요즘에는 연예인들이고 뭐고 죄다 제주도야. 거기가 그렇게 좋은가?”
수년 전 케이블 낚시 채널에서 즐겨 찾던 반가운 얼굴.
돌돔 원투 낚시(채비를 멀리 던져 바닥에 고정시키고 하는 낚시) 분야에서 국내 최대 비거리를 자랑하는 프로 중의 프로 한석동의 얼굴이었다.
기사는 한석동 프로의 최근 근황에 대한 내용이었다.
거친 바다와 싸워 왔던 프로 조사의 생활을 접고, 그토록 좋아하던 제주도에 정착하여 안빈낙도를 즐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언젠가 남해에서 그와 비슷한 삶을 꿈꾸는 나로서는 묘하게도 관심을 끌었다.
그의 사진이 나오는 페이지를 펼쳐 잡지를 내려놓았더니, 고동우는 사진 속의 돌돔에 관심을 보이며 입맛을 다셨다.
“히야! 오랜만에 돌돔 회나 먹어 봤으면 좋겠다. 언제 먹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사 드시면 되잖아요. 이제 직원을 두 분이나 두신 사장님인데.”
“너무 비싸잖아.”
나는 최근에 백정철과 함께했던 술자리에서 먹었던 돌돔회를 떠올렸다
만취해서 뭘 먹었는지 가물가물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되는 장면이었다.
“우럭 님도 저런 거 한 마리 잡아 오면 얼마나 좋아?”
“안 그래도 지금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 그럼 다음 출조는 돌돔인가?”
나는 선뜻 대답하지 않고, 다시금 잡지를 들어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내 눈길이 머문 곳은 돌돔이 아니었다.
한석동이 뒤에 펼쳐진 아름다운 제주의 푸른 바다도 아니었다.
나는 한석동의 이마에 새겨진 깊은 주름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분에게 가르침을 요청한다면 받아 줄까요?”
내가 생각해도 엉뚱한 질문이었다.
고동우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은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아무리 은퇴했다지만 명색이 최고의 원투 달인인데 선뜻 나서 주겠어?”
“……그렇겠죠?”
“그런데 갑자기 원투 낚시 타령이냐?”
“갑자기는 아니고요……. 아직 제가 원투 낚시에 취약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최근부터 품게 된 생각이었다.
준서에게 도보 낚시를 가르치게 되면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의 비거리를 늘려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원투 낚시는 내가 처음 낚시에 입문할 당시에 방파제에서 가끔 다뤄 본 경험이 있었다.
그 후로 선상 낚시에 몰두하고 이어서 갯바위 낚시와 빅게임 분야까지 범위를 넓혀 왔지만, 원투 낚시는 여전히 아쉬운 부분으로 남아 있었다.
원투 낚시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돌돔 원투 낚시.
물속을 보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채비가 닿지 못한다면, 멀리 있는 물고기는 그림의 떡이다.
고동우가 지나가는 말로 내게 말했다.
“연락이라도 해 보든가. 밑져야 본전인데.”
“잡지에는 연락처가 안 나오네요.”
“너 정말이구나? 그럼 기자에게 연락해 봐. 아니면 백정철 프로와 친분이 있다면서. 그분에게 부탁하면 쉽게 풀리지 않겠냐?”
공사다망한 백정철 프로를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기사 하단에 있는 기자의 이메일 주소를 메모하고 아지트를 나섰다.
* * *
며칠 후.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야~~~~ 옹!”
벌서부터 아침밥을 달라고 치근덕거리는 베타를 무시한 채 나는 떨리는 손으로 미열람 이메일 한 통을 클릭했다.
한석동 프로.
그에게서 온 메일은 달랑 한 줄뿐이었다.
‘010―7XXX―3XXX.’
희한한 양반이시네.
전화번호 하나만 남겨 주시다니. 예전부터 약간 괴팍한 분이라고는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답장이라도 받았으니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돌고 돌아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메일이었다.
나는 얼른 일어나 베타의 아침밥을 챙겨 주고 다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의 답신을 받기까지의 눈물겨운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처음에 월간낚시 담당 기자에게 보냈던 메일은 하루 종일 묵묵부답이었다. 잡지사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그는 일언지하에 내 부탁을 거절했다.
‘개인 정보는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의 짤막한 대답이었다.
한 시간 뒤에 다시 전화를 건 나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그도 지쳤는지 결국에는 한석동의 이메일 주소를 불러 줬다.
자신이 알려 줬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아 달라는 단서와 함께.
곧바로 나는 한석동 프로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의 답장이 돌아온 것은 이틀 만의 일이었다.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헛기침으로 잠긴 목을 가다듬고 휴대폰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한석동의 음성은 예전에 TV에서 듣던 것보다 묵직하게 울려왔다.
“한석동입니다.”
“저, 저어. 그러니까 저는…….”
“강유록이라는 젊은이인가? 유튜버 낚시꾼이라는.”
“……아, 네. 그렇습니다.”
“편지 내용은 당돌하기 그지없더니만 말은 왜 그리 더듬는가. 내려오시게. 그게 뭐 대단한 기술이라고 아끼겠나. 후배들에게 전수할 수 있다면 나도 대환영일세.”
아아. 시작이 너무 좋다.
“고맙습니다. 그럼 언제가 편하시겠습니까?”
“언제라도 좋네. 준비가 되면 하루 전날 연락하고, 아무 때나 오시게나.”
“그래도 되겠습니까?”
“나야, 별로 하는 일 없이 지내는 사람이니 바쁜 척하고 싶지 않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네. 유료 방송이라면 공짜로 가르쳐 줄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조건이라…….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내가 보낸 메일에서 나는 유튜버임을 밝히며, 허락한다면 기술을 전수받는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겠다는 부탁을 해 놓았다.
“말씀해 주십시오. 당연히 출연료는 드려야겠지요.”
“그렇다고 긴장할 필요까지는 없네. 좋은 술이나 한 병 들고 오게나. 제주도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술친구가 없지 않은가. 우리 집에서 나랑 술이나 하세. 하하하.”
“아아. 네. 그럼요. 당연히 그렇게 하겠습니다.”
호인이시다.
명인을 초대하는 데 출연료가 고작 술 한 병이라니.
한석동 프로의 호쾌한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최고로 좋은 술을 가져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통화를 마친 나는 방 안이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질렀다.
오랫동안 동경해오던 대가의 비기를 전수받게 되다니.
파도가 넘실거리는 제주의 에메랄드빛 바다.
거기에서 펼쳐질 한석동과 내가 그려 낼 멋진 포물선.
게다가 수면을 가르면서 올라와 내 손에 움켜쥐게 될 대물 돌돔의 아름다운 자태.
얼른 이 소식을 사심희에게 알려야겠다.
“사시미 님? 자고 있었던 건 아니지? 내가 말이야, 이번에 말이야, 제주도로 출조를 가게 되었는데 말이야, 돌돔을 잡을 건데 말이야…….”
휴대폰을 들고 킥킥거리며 주저리주저리 두서없는 통화를 이어 가는 나를, 베타는 한심하다는 듯 흘겼다.
* * *
다시 며칠 후, 제주 공항.
“역시 제주도는 공기부터 다르구나. 하핫.”
“제주도 처음이세요? 무슨 호들갑이 그래요?”
“처음은 아니고 두 번째거든.”
“서둘러요. 비행기가 연착해서 렌터카 업체 직원이랑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났어요.”
헐랭이나 다름없는 나 때문에 일정을 챙기느라 사심희가 고생이다. 말은 안 했지만 매니저 역할까지 도맡아 주는 그녀를 항상 고맙게 여기고 있다.
제주도는 내게 두 번째 방문이다.
대학교 졸업반이던 시절, 졸업 여행으로 처음 왔었지만 한라산 정상까지 헉헉거리며 올라갔던 장면 외에는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다.
미리 예약해 둔 렌터카를 배정받고, 나는 트렁크에 낚싯짐을 실었다.
고동우의 낚시점에서 새로 산 돌돔 원투대는, 그동안 내가 구입한 물품 중에서 최고가에 속하는 낚싯대였다.
“바로 서귀포로 가는 거죠?”
“그래야지.”
한석동이 알려 준 집 주소는 서귀포항 인근이었다.
“가다가 잠깐 그 식당에 가 보는 건 어때?”
“어디요?”
“유명한 돈가스 가게가 있다고 하던데.”
“아휴. 줄 서서 시간 다 보내게요? 그리고 돌돔 미끼도 산다면서요? 곧장 한 프로님 댁으로 가도 시간도 빡빡해요.”
사심희는 목적지로 향하던 도중에 작은 어시장에 차를 세웠다. 제주도에 나보다 훨씬 많이 와 본 경험이 있는 사심희는 머릿속에 미리 동선을 그려 놓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많이 사요?”
“제주도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거야. 남으면 가져가서 멤버들이랑 먹으면 되잖아.”
그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돌돔 미끼로 사용할 성게며 참소라를 아이스박스에 가득 실었다.
혼무시(참갯지렁이) 미끼는 다음 날 출조지에서 구입할 계획이라 이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마침내 내비게이션이 알려 준 한석동의 집 앞에 도착하고, 나는 조수석의 문을 활짝 열고 나왔다.
“어서들 오시게나.”
“안녕하십니까? 강유록이라고 합니다.”
“기다리고 있었네.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게.”
한석동을 따라 들어간 집 안에는 그의 아내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분이 수줍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내 아내일세. 낚시꾼 아내로 사느라 고생만 하더니, 요즘에는 펜션 청소하느라 또 고생이지.”
“안녕하십니까?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아니에요. 어서 와요. 아이고, 예쁜 아가씨도 오셨네. 방은 많으니까 편히 쉬다 가세요.”
한석동의 집은 작은 펜션에 딸린 살림집이었다.
노후를 위해 모은 돈을 몽땅 투자했다는 건물은, 아담한 크기였지만,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자아, 멀리서 왔으니 목부터 축이지.”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져온 술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중국산 최고급 고량주였다.
당연히 이 정도는 해 드려야겠지…….
기대했던 것처럼 한석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내가 말실수를 했구먼. 이렇게 비싼 술을.”
“아닙니다. 한 프로님의 가르침에 비하면 보잘것없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하자면, 저는 술을 잘 못 하니 한 잔만 마시겠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한석동의 말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고맙네. 그런데 오늘은 술이 아니라 차를 마시자고 한 거네.”
“그럼 내일 낚시 마치고 마시자는 말씀이었군요.”
“그건 모르지. 내일 테스트 결과에 따라 마실 수도 있고, 그냥 두고 갈 수도 있겠지.”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중요한 얘기를 빼먹은 모양이구만.”
“…….”
“하하하하!”
한석동이 갑자기 껄껄껄 크게 웃기 시작했다.
곧이어 튀어나온 그의 말에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나에게 한 수 가르쳐 달라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세. 그래서 나는 시험 삼아 먼저 대결을 한다네.”
“……대결을 말입니까?”
“나를 이긴 사람에게만 기술을 전수한다는 원칙이지. 내 정신 좀 보게. 나이가 드니 자꾸 깜빡깜빡하는구먼.”
이, 이런…….
돌돔 낚시의 최고수를 이겨야 비기를 알려 주겠다니.
그렇다면 결국 가르쳐 주지 않겠다는 말이 아닌가.
“하하하하!”
한석동의 호탕한 웃음이 마치 괴기 영화에 나오는 소리처럼 방 안을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