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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67화 (67/130)

[제67화] 판도라

“누구? 태산이? 네 녀석이 뜬금없이 왜…….”

강태산. 아버지의 유일한 동생.

내 기억 속에서도 한동안 사라져있던 이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그를 ‘삼촌’이 아닌, ‘작은아버지’라 부르라고 가르치셨다.

“근처에 왔다고? 너는 늘 네 마음대로구나. 10년이나 연락도 없다가 이렇게 불쑥…….”

아버지의 목소리에 노기가 짙어졌다.

곁에서 듣고 있던 엄마의 얼굴에도 긴장이 역력했다.

“……알겠다. 그래도 명절이라고 찾아온 사람인데, 잠깐 들렀다 가거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엄마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도련님이유? 갑자기 무슨 일이래요?”

“인사나 한다고 들르겠다는데 어쩌겠소. 그래도 동생 놈인데.”

“아이고, 돈깨나 있다고 괄시할 때는 언제고.”

“어허. 그런 소린 됐고. 밥상이나 준비해요. 저녁이나 먹여 보냅시다.”

“아유. 알았어요.”

따스하던 실내의 공기가 싸늘하게 바뀌고 있었다.

작은아버지를 언제 마지막으로 봤더라?

아마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였던 것 같다.

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떠난 뒤로, 다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두 분이 다투신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열 살 정도의 터울이 있는 동생과 거의 항상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와 동생은 상극이라 할 만큼 상이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나와 사촌지간이던 그 애들도 함께 오는 건가.

고것들도 버르장머리가 영 아니었는데.

30분가량이 지나고, 식당 밖에서 끼이익 거칠게 차가 정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나가 볼게요.”

“…….”

얼른 문밖으로 나가 보니 번쩍거리는 고급 아우디 차량에서 말쑥한 차림의 노인이 튀어나왔다. 다행히도 혼자였다.

“어이, 네가 유록이구나. 못 보던 새에 많이 컸다.”

“아, 안녕하세요? 작은아버지…….”

“짜아식. 그런데 저 차는 누구 거냐?”

그가 가리킨 것은 군데군데 찌그러지고 칠이 벗겨진 소형 SUV 차량이었다.

“제 겁니다.”

“나이 서른이 다 되어 가지고 저런 싸구려 차를……. 쯧쯧.”

“어서 들어가시죠.”

작은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단면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예전에도 속물근성이 남달랐던 그를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샌님 아버지와 달리, 그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분이었다.

이런저런 사업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거듭하던 그는, 결국 건물 조명 장치 설치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들었다.

앞장서서 식당 문턱을 넘어서는 그의 육중한 등짝을 보며 나는 속으로 키득거렸다.

왜소한 아버지와 사뭇 다른 체형 때문만은 아니었다.

10년 만에 형님을 찾아왔다면, 하다못해 돼지고기 한 덩이라도 사 오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거들먹거리며 허공을 휘적이는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았다.

돈은 많지만 남에게는 인색한 구두쇠.

오래전에도 작은아버지는 비싼 손목시계를 자랑하면서도 내게는 천 원짜리 한 장 용돈을 주신 적이 없었다.

“형님! 저 왔습니다.”

“……그래. 들어와서 앉아라.”

“형수님! 못 보던 사이에 주름살이 늘었네요.”

“10년 만에 하는 인사치고는 좀 그렇네요. 식사는 하고 가실 거죠?”

“좋지요. 형수님 음식 솜씨가 그리웠습니다. 하하핫.”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시고 주방으로 나가셨다.

눈치 없는 작은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아이고, 어쩜 이렇게 하나도 안 변했을까. 저 액자도 그대로고, 저 화병도 그대로고.”

“그래. 요즘 일은 잘하고 있느냐? 제수씨랑 애들은 잘 지내고?”

형식적인 냄새가 풀풀 풍기는 아버지의 질문이었다. 그냥 할 말이 없어서 꺼낸 물음에 작은아버지의 대답은 구구절절이었다.

“최근에 조그만 건설 회사 하나 차렸어요. 마누라요? 마누라는 작은 애 공부 때문에 미국에 보냈지요. 아! 저희 큰놈 아시죠? 유식이. 그 애는 미국에서 박사 과정 밟고 있잖아요.”

주저리주저리 입만 열면 자랑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오랜만에 찾아온 동생의 말을 못 이기는 척 받아 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너 혼자라는 말이구나. 밥은 제때 챙겨 먹고?”

“요즘 배달 음식도 얼마나 잘 나오는데요. 걱정 마시고 형님 몸이나 잘 챙기세요.”

때마침 엄마가 밥상을 들고 들어오셨다.

저녁 식사라기엔 다소 이른 시각이었지만, 엄마는 빨리 드시고 일찍 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아이고, 음식은 역시 형수님이 최고라니까.”

“부족한 거 있으면 말해요.”

돈도 잘 버신다면서 며칠 굶고 다니셨나?

작은아버지는 아예 국그릇에 얼굴을 숙이고 싹 비운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

“유록이 너는 대학 전공이 뭐였다고?”

“경제학과 나왔습니다.”

“이런, 이런. 돈 되는 전공을 했어야지. 차라리 경영학을 배우든가.”

“…….”

듣기 싫은 소리였다.

작은아버지는 식사를 마치고 이쑤시개로 쯥쯥 소리를 내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본격적으로 집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두리번거리던 그의 작은 눈알이 벽에 놓인 장식장에서 멈췄다.

“이건 뭐냐? 누가 상이라도 타 왔나?”

“아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 가져온 낚시 대회 트로피였다.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할 것 같아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작은아버지는 쉽게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가 장식장 앞으로 바짝 다가서는가 싶더니.

“제15회 남해 군수 배 푸른섬 낚시 대회 우승, 유록이 너 낚시도 하냐?”

“별거 아니라니까요.”

귀찮게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의 입에서 상상도 못 할 얘기가 튀어나올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유록이가 낚시를 한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구만. 돈 되는 일을 해야지. 이 녀석아.”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피는 못 속인다…….

두 번째로 듣게 되는 해괴한 말에 밥숟가락을 들고 있던 내 손이 미세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엄마의 안색이 심상치 않았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밥을 넘기고 있다가 목에 걸렸는지 아버지는 헛기침을 내뱉고 있었다.

뒤쪽에서 피어오르는 냉기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작은아버지는 계속해서 떠벌렸다.

“가만있자. 남해라……. 형님! 그러고 보니 유록이 외삼촌이 죽은 곳도 남해 아니었소?”

잠재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던, 판도라의 상자가 뚜껑을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추석 전날의 만찬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 * *

작은아버지가 쫓기다시피 떠난 방 안에는 엄마의 울음소리만 울려 왔다.

“그만해요. 그래도 동생이라고 녀석을 맞아들인 내 잘못이요.”

외삼촌이라니.

무남독녀라고만 알았던 엄마에게 남동생이 있었다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가만히 등을 토닥거렸다.

“엄마. 그만 우세요.”

“아이고, 동현아…….”

엄마와 같은 성씨를 붙인다면 ‘김동현’.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외삼촌의 이름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엄마의 흐느낌은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없었다.

“나 잠깐 나갔다 오마.”

아버지가 슬그머니 일어서는 걸 보니 담배를 피우려는 모양이다. 나는 식당 밖으로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휴우…….”

가을바람에 아버지의 푸른 연기가 휘날렸다.

곁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외면하고 아버지의 긴 침묵이 이어졌다.

잠시 후 아버지가 무거운 입을 떼었다.

“많이 놀랐을 거다.”

“……예.”

“네게 외삼촌이 있었다.”

“그동안 제게 왜…….”

존재조차 알려 주지 않았던 이유가 몹시 궁금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네 엄마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었지만, 남들 눈에는 천하의 망나니였거든.”

“……망나니라뇨?”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는데, 천성이 술과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처가의 재산을 전부 탕진했었지.”

“아아…….”

“엄마가 내게 시집을 온 뒤로도 네 외삼촌이 가끔 나타나 손을 벌리곤 했었다. 그 바람에 엄마의 마음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일부는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그렇다고 나한테까지 감췄어야 할 만한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네 외삼촌이 마지막으로 찾아온 것이, 네가 태어나기 두어 해 전의 일이었다. 갑자기 찾아와 남해로 내려간다고 하더구나. 거기서 낚싯배를 사서 먹고살 계획이니, 돈을 빌려 달라는 얘기였다.”

“그럼 거기서 돌아가셨다는…….”

“그래. 술에 취해서 그만 방파제에서 실족을 했어. 8대 독자를 잃었으니 외가 쪽에서는 너무나 황망한 일이었을 게다. 그 바람에 네 외할아버지까지 그길로 떠나셨고…….

“결국 술 때문에…….”

“못난 동생을 가슴 깊이 묻고, 입 밖에도 꺼내지 않고 살아온 게 오히려 당연하겠지.”

머릿속의 여러 실타래가 한꺼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

나를 형성하는 유전자의 절반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았음에도, 강씨 집안의 계보에서만 유전의 근원을 찾으려 했던 것은 큰 착각이었다.

‘아버지처럼 허구한 날 술 마시고 다니면 못쓴다. 전혀 입에 대지 말라는 게 아니야. 취하지 않게만 마셔라.’

내가 회사에 들어갈 때부터 틈만 나면 해 오시던 엄마의 잔소리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이냐?’

조상 중에 낚시를 하던 분이 있었느냐는 내 질문에 슬쩍 시선을 피하던 엄마. 그리고 정색을 하며 담뱃갑을 들고 나가시던 아버지.

그때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지만, 모든 일들이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운 아버지가 두 번째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낚시도 엄마가 내색은 하지 않았다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나야 괜찮다만 엄마를 잘 안심시켜 드려라.”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낚시에 뛰어든 사실을 아버지는 먼저 알고 계셨다. 엄마에게 비밀로 하며 끙끙 앓았던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춥다. 어서 들어가자.”

방 안으로 돌아오니, 엄마는 어느새 울음을 멈추고 빈 그릇을 정리하고 계셨다.

나는 가만히 엄마에게 다가가 꼭 안아 주었다.

“엄마. 너무 걱정마세요. 제가 조심해서 잘할게요.”

“……됐다. 낚시가 뭔 죄겠니. 그놈의 술이 문제지.”

“그래도요. 술도 조심할게요.”

“그래야지……. 내 새끼…….”

얼마 전 백정철 프로를 만나 필름이 끊기도록 마셔 댄 기억이 떠올라 뜨끔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내 결심은 진심이었다.

그날 밤.

나는 다락방 침대에 누워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외삼촌.

망나니처럼 살다가 낚시에 빠져 남해로 떠났다는 외삼촌.

그리고 물에 빠져 운명을 달리했다는 그분.

왜 하필이면 남해였을까?

혹시 그에게도 나처럼 물속을 보는 능력이 있지는 않았을까?

문득 차 안에서 아버지가 말했던 신신당부가 떠올랐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고 계실 때, 아버지와 마트에 다녀오던 중에 나눈 대화였다.

‘사실 나는 딱 한 번 남해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외삼촌의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갔었지. 배 속에 너를 품고 있던 엄마도 나서려고 했지만 내가 말렸다. 그리고 당부하건대 앞으로 엄마에게 외삼촌 얘기는 입 밖에 꺼내지도 말거라. 법적으로는 사망 처리까지 되었지만, 시신도 찾지 못했어. 엄마는 가끔 남동생이 돌아올 거라고 믿는 것 같으니까.’

‘네. 명심할게요.’

‘처음에 네 입에서 남해라는 말이 튀어나왔을 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줄 알았다. 하긴 살다 보니 세상에 우연이라는 게 적지 않더라만.’

과연 우연이었을까?

어쩌면 나와 외삼촌에게 내재되어 있던 어떤 회귀 본능은 아니었을까?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물음표들이 천정을 헤집고 다녔고, 해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창문 밖으로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

해답은 저 달처럼 멀리 있겠지만, 확연히 존재하고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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