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66화 (66/130)

[제66화] 금의환향

“추석 인사나 드리려고 들렀습니다.”

“오우! 오늘은 방송 기획의 달인이 납셨구만.”

고동우는 전보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낚시점을 지키고 있었다. 직원을 두 명이나 구했다고 들었다.

직원들은 모두 ‘어반자스토어’ 글씨가 새겨진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는 그들을 향해 나는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기획의 달인이라. 듣기 나쁘진 않네요.”

“너도 참 대단하다. 솔직히 나는 약간 걱정했는데.”

왕초보편에 관한 얘기였다.

이틀 전 처음으로 선보였던 준서의 방송은 기대 이상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데 훨씬 잘하네.

―와. 갑오징어는 튀김이 맛있는데.

―냥이가 넘넘 예뻐요. 다음에도 데리고 나와요.

―먹물이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줄 알았음. ㅎㄷㄷ

예상했던 대로 어린이와 청소년층의 관심은 뜨거웠다.

내가 주목한 것은 성인들의 반응도 그에 못지않다는 사실이었다.

―저도 이번 주말에 딸내미랑 안면도나 가야겠네요. ㅎ

―왕초보는 아니지만 또 다른 재미가 있네요.

―아이에게서 기본기 잘 배우고 갑니다.

머릿속에 독자들의 댓글들을 연상하며 혼자 실실거리고 있을 때, 고동우가 위층으로 가 있으라고 손짓을 했다.

“캡틴 님이랑 사시미 님도 왔어. 어서 가 봐.”

“네. 그럼 이따가 봬요.”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는데도 낚시점 안에는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대부분 명절 제수용 물고기를 잡거나, 친지들과 나눌 생선을 머릿속에 그리는 분들이었다.

“우럭 님! 어서 오시게.”

“캡틴 님 안녕하세요? 사시미 님도 있었네? 두 분도 추석 잘 보내세요.”

나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서, 소파에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장재준 영감의 앞에 낚시용품들이 늘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낚시 가시려고요?”

“아닙니다. 준서와 같이 영화도 보고, 시장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남들처럼 재미있게 놀 계획입니다. 허허.”

“준서가 좋아하겠네요.”

“제가 더 좋지요. 안 그래도 아까 통화했습니다. 몹시 바쁜 모양이더군요.”

“그래요? 마침 저도 통화하려고 했는데.”

바지춤에서 휴대폰을 꺼내려 하자 장재준 영감이 손을 가로저었다.

“지금은 아니고, 저녁에 전화하는 게 좋을 겁니다.”

“왜요? 준서가 무슨 일이라도…….”

“저녁 먹을 때까지 공부할 게 많다고 하더군요. 원장님도 준서가 갑자기 책을 보기 시작해서 깜짝 놀랐다고 합디다. 허허.”

역시 내 방법이 먹혔구나.

사심희가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이 키득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시미 님은 외삼촌댁에 가는 줄 알았는데?”

“그냥 집에서 푹 쉬려고요. 길도 많이 막힐 것 같고. 저도 준서 낚시 가는 데나 따라갈까 하고 있어요.”

“그렇군. 도라에몽은 다녀갔어?”

그러고 보니 보람이와 명절 인사를 나눈 기억이 없었다.

장재준 영감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신 알려 주었다.

“한 시간 전에 다녀갔습니다. 양복을 쫙 빼입고 원주 집에 간다고 하더군요. 보기 좋습디다. 허허.”

“요즘에 누가 명절이라고 정장을 합니까? 하하. 이따가 전화나 해야겠네요.”

보람이도 나처럼 금의환향을 꿈꾸며 고향으로 달려간 모양이다.

“우럭 님도 길 막히기 전에 얼른 출발하세요. 우리도 조금 있다가 일어날 겁니다.

“네. 지나가다가 인사나 드리려던 참이었어요. 그럼 추석 끝나고 뵙겠습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데 무슨 일인지 사심희가 문가까지 쪼르르 따라왔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이번 달 월급이 좀 이상해서요.”

“뭐가?”

“금액이 달라졌어요. 혹시 추석이라고 무슨 상여금을 주신 건가요?”

“아…… 그거?”

입가에 약간의 거드름을 피우면서 나는 뜸을 들였다.

“상여금은 없어. 급여 자체를 인상했거든.”

“네에?”

“이의 제기는 받지 않겠어. 나름 우리 어반자의 합리적인 성과 보상 시스템을 가동한 결과니까. 그럼 난 갈게.”

성과 보상 시스템이 뭐 별건가.

처음부터 적은 액수로 시작한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번외편 일이 추가되면서 증가한 업무량을 반영했을 뿐이다.

전날 통장에 입금된 정산금을 확인하고 나는 감격에 겨워 찔끔 눈물을 흘렸다.

석 달로 예상했던 보릿고개를 두 달 만에 완벽하게 넘어서게 해 준 금액이었다.

비로소 다시 돌아온 무차입 경영의 시대.

낚시점 잔금을 조기 결제하고, 사심희의 급여 인상은 물론 밀려 있던 내 몫의 급여로 두 손 가득 부모님의 선물을 사고도 남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나는 머리 위로 손을 흔들면서 후다닥 계단을 내려갔다.

차에 올라 보람이처럼 멋진 금의환향을 그리면서.

* * *

끼이익!

충주 일성 식당의 맞은편에 차를 멈추고 나오자, 누군가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유록이 형님! 지금 오시는 거예요?”

“어어? 오랜만이다. 너. 그동안 잘 지냈어?”

아버지의 영원한 친구이자 라이벌인 용식이 아버지의 아들, 그러니까 용식이었다.

“신수가 훤하시네요. 역시 서울 물은 다른가 봐요. 하하.”

“너도 좋아 보인다. 시내에서 카센터 한다고 들었는데. 잘되냐?”

“그럼요. 저보다 형님 얘기는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고 있어요. 사장님이 되셨다면서요?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부러워하시는지.”

“너도 사장인데 뭘 그러냐. 정말 반갑다. 서로 얼굴도 자주 못 보고.”

“그러게요. 젊을 때 열심히 돈 벌어야죠.”

어깨를 툭 치면서 헤어지려는데 갑자기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제가 형님 오늘 저녁에 뭐 드실지 맞혀 볼까요?”

“그게 뭔데?”

“틀림없이 붕어찜일 겁니다. 저도 어제 저녁부터 줄창 먹고 있다니까요.”

“…….”

“요즘 두 분이 근처의 붕어들 씨를 말리고 있어요. 그럼 추석 잘 보내세요.”

“……그래. 잘 가라.”

아버지가 요즘 붕어 낚시에 푹 빠지셨나 보다.

혼자서 키득거리며 나는 차의 트렁크 뚜껑을 열었다.

포장부터 번쩍거리는 고급 한우 세트, 엄마와 어버지의 가을 점퍼 한 벌씩, 그리고 남해에서 받은 금빛 트로피까지.

“베타야. 손이 없으니 너는 내 어깨에 올라타야 되겠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베타를 어깨에 올려놓고, 나는 당당하게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엄마는 벌써부터 차례 음식을 준비하시는지 채소를 다듬고 계셨다.

“엄마! 저 왔어요.”

“아이고, 안 그래도 언제 오나 했다. 길 많이 막혔지?”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아버지는요?”

“그 양반이 언제 집에 붙어 있드나? 회관에서 사람들 화투 치는 거 기웃거리고 있을 거다.”

엄마의 가벼운 푸념을 듣고 있을 때, 내 어깨 위에 웅크리고 있던 베타가 사뿐히 바닥에 내려앉았다.

“아이고, 깜짝이야. 우리 베타도 왔구나. 몰라보게 많이 컸네.”

베타는 엄마가 내민 손을 뿌리치는가 싶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방으로 줄달음쳤다.

“저 녀석이 또 뭔 냄새를 맡고.”

허겁지겁 들고 있던 선물들을 빈 테이블에 올려놓고 나는 베타의 뒤를 쫒아갔다.

주방으로 연결되는 작은 천을 젖히자마자, 내 머리에 떠오른 사람은 아까 마주쳤던 용식이었다.

그의 예언이 적중했다.

주방 안 화구에 놓인 큰 냄비 안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붕어찜이었다.

베타를 강제로 들고나와 보니 엄마가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너 오면 해 준다고 벌써부터 벼르셔서 어쩔 수 없이 준비했다. 냉동실에 그놈의 붕어가 잔뜩 쌓여 있단다.”

하아. 장족의 발전이다.

지난여름에만 해도 빈손으로 돌아오시던 아버지가 아니었는가. 인근의 붕어 씨를 말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사실 반신반의했었다.

엄마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피식거렸다.

“허구한 날 용식이 아버지하고 티격태격하면서도 낚시라면 자다가도 일어나 손 붙잡고 다니신다. 그 좋아하는 술도 마다하고 그건 잘됐지 뭐냐.”

“아버지가 술을요?”

“술을 끊든지 낚시를 끊든지 둘 중에 하나만 하라고 했다. 술이라면 이가 갈렸는데 차라리 잘됐지 뭐냐.”

“듣던 중 다행이네요.”

그때 식당문이 열리면서 찬 바람과 함께 아버지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저 사람이 또 내 흉을 보는 모양이네. 유록이 왔느냐? 아이고, 베타도 함께 왔구나.”

“아, 아버지. 안녕하셨어요?”

“안녕이야 했지. 붕어들이 안녕을 못 해서 탈이지만.”

“하하. 말씀 들었어요. 정말 대단하세요.”

“음. 피곤할 텐데 어서 들어가 쉬자. 그런데 이건 뭐냐?”

아버지는 식탁 위에 놓인 선물 꾸러미를 가리켰다.

“두 분, 가을 옷 한 벌씩 사 왔어요. 추석 선물로.”

“아니, 그것 말고. 번쩍거리는 저거 말이다.”

아버지가 가리킨 것은 황금빛 감성돔이었다.

“아! 방송 보셨죠? 남해에서 우승하고 받은 상이에요.”

“오……. 봤다. 깨지지 않게 어디 잘 놔두거라.”

의외의 반응이었다.

상을 받았다는 말에 활짝 만개하려던 아버지의 동공이 일시에 작아졌다. 억지로 기쁨을 감추려는 듯한 모습이랄까.

하긴…….

어렸을 때 학교에서 상을 받아 와도 표정에 큰 변화가 없던 아버지가 아니었는가.

그런데 이상한 반응은 또 있었다.

내가 트로피를 식당 구석의 빈 탁자 위에 올려놓을 때까지 엄마는 일언반구 말씀이 없으셨다. 마치 두 사람의 대화를 전혀 못 들은 사람처럼.

머쓱해져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아버지가 갑자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아들이 사 온 옷이나 한번 입어 볼까? 이거 백화점에서 산 거로구나. 아들이 돈 벌어서 이런 것도 선물해 주니 정말 다 컸구나.”

입을 꾹 다물고 부추를 다듬고 있던 엄마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다.

아버지의 말에 못 이기는 척 손을 씻고 달려오신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잇몸을 보이셨다.

“어쩜 내가 딱 좋아하는 색깔이구나. 이런 비싼 걸 왜 사 왔어. 고맙다. 내 아들.”

엄마가 기특하다는 투로 엉덩이를 가볍게 쳐 주시는 바람에 작은 서운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금의환향이 뭐 별건가.

부모님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그려 줄 수 있다면 그게 금의환향이지.

* * *

추석을 하루 앞둔 다음 날.

본격적인 차례 준비가 한창이었다.

평생을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살아오신 아버지는 손에 물을 묻히는 일은 절대로 삼가셨다.

대신에 앞마당을 쓸어 내고, 먼지 묻은 제기들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 내는 등의 일은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내가 맡은 일은 언제나 고정되어 있었다.

주로 엄마와 마트와 시장을 돌아다니는 일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일도 추가되었다.

차례상에 올릴 음식 중에서 밤을 까는 작업 또한 내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과도를 들고 밤의 겉껍질을 벗겨 낸 뒤에 다시 하나씩 속껍질을 예쁘게 깎고 있던 도중이었다.

베타는 곁에서 내가 던져 준 알밤 하나를 오도독거리며 장난치고 있었다.

평온한 추석 명절의 단상이었다.

난데없는 전화 벨소리가 오후의 정적을 깨기 전까지는.

“여보시오.”

누굴까?

나는 수화기를 든 아버지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무표정하던 아버지의 얼굴에 노여움이 번지는 것 같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불청객의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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