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어반자 키드
“웃지 마세욧!”
“미안해. 여기 수건. 피부에 좋은 성분이 많다니까 너무 걱정할 건 없어.”
터진 웃음을 진정시키느라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준서는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미안해요. 이모.”
“아니야. 준서야. 혼날 사람은 삼촌이란다. 이모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근처의 공중화장실에서 씻고 돌아온 사심희는 원래의 쾌활한 표정으로 변신해 있었다.
“정말로 피부가 좋아진 것 같네. 준서야 고맙다. 이모 예쁘게 해 줘서.”
“거봐. 내 말이 맞다니까.”
계속 깐족거렸다가 사심희의 도끼눈만 정통으로 맞았다.
머쓱해진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준서에게 딴소리를 시작했다.
“준서야. 이모 말처럼 혼날 사람은 나란다.”
“삼촌이 뭘 잘못했게요?”
“갑오징어를 들어 올릴 때는 최대한 흔들림이 적게 해야 된단다. 사뿐히 올려서 손바닥으로 등을 잡으면 먹물을 쏘는 일이 드물지. 그걸 미리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 내 잘못이지.”
“아항…….”
곁에서 듣고 있던 사심희는 마른 수건으로 카메라에 묻은 얼룩을 정성스럽게 닦고 있었다.
“촬영, 마저 해야죠?”
“아니. 갑오징어가 타이밍 좋게 촬영을 종료시켜 줬어.”
“그럼 벌써 끝내는 거예요?”
“그럼. 제대로 한 마리를 잡았으니까, 끝!”
촬영은 대성공이다.
준서의 예상외의 선전으로 대상어를 일찍 포획했을 뿐만 아니라, 베타의 귀여운 모습과 사심희의 봉변(?)까지 더해졌으니.
나는 홀가분한 얼굴로 텐트 쪽을 가리켰다.
“자아, 그럼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캠핑을 해 볼까?”
“좋아요! 삼촌.”
캠핑은 꽃은 역시 숯불로 시작하는 게 진리.
나는 트렁크에서 미리 준비해 온 물품들을 잔뜩 꺼내 들고 텐트 앞에 내려놓았다.
사심희는 갑오징어에게 복수라도 하듯 딱딱한 등뼈를 단번에 빼내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준서가 내게 다가왔다.
“오늘 고기 먹는 거예요?”
“그럼. 너는 베타랑 근처에서 놀고 있어.”
“그래도 돼요?”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준서는 베타를 안고 다시 항구 쪽으로 달려갔다.
아이가 멀리 사라지자 사심희가 물었다.
“준서가 잡은 건 어떻게 할 거예요?”
“해물 된장찌개 어때?”
“오호. 삼선 된장찌개라. 그것도 괜찮겠네요.”
나는 부랴부랴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치이익!
불판에서 고기가 다 익어 가고 있을 무렵 준서가 돌아왔다.
“삼촌! 그런데 정말로 내가 유튜브에 나오는 거예요?”
“그럼. 삼촌이 멋지게 편집해서 내일 올릴 거야.”
“베타도 나오는 거죠?”
“그럼.”
“사심희 이모는요?”
나는 은근슬쩍 사심희의 눈치를 살폈다.
“설마 찍어 놓은 건 아니겠죠?”
“찍을 틈도 없었어. 준서야! 아쉽지만 이모는 신비주의란다.”
낚시를 끝낸 뒤의 즐거운 만찬이 시작되었다.
“우와! 정말 맛있어요.”
“오늘 고기 좋은 거 사 오셨네요. 빨리 뒤집어요.”
고기를 씹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내게도 캠핑은 처음이었다.
초등학교 때 스카우트에 가입한 아이들이 캠핑을 다녀와 자랑을 늘어놓던 기억이 있었다.
텐트에서 자다가 벌레에 물려 고생했다는 그들을, 나는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었다.
“삼촌, 정말로 오늘 차에서 잘 거예요?”
“그렇다니까. 베타랑 둘이서 오붓하게 잘 거니까 걱정 마.”
“그래도 불편하실 텐데. 아! 이렇게 하는 게 어때요?”
“또 무슨 소릴…….”
준서의 천진난만한 눈동자가 깜박거렸다.
“이모랑 텐트에서 주무시고 계세요. 저는 어차피 낚시를 더 하고 싶어요. 나중에 제가 돌아오면 그때…….”
“아이고, 아서라. 난 텐트라면 질색이다.”
당황한 나머지 나는 준서의 입에 고기를 쏙 집어넣어 버렸다. 이 녀석이 남녀가 유별하다는 참교육을 아직 받지 못한 게로구나…….
“아이가 말한 건데 뭘 그리 당황해요? 귀까지 빨개지셨네.”
“숯불이 너무 뜨거워서 그래…….”
사심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색을 하는 바람에, 나는 집게로 애꿎은 숯덩이를 뒤적거렸다.
그래도 민망함은 쉽게 가시지 않아, 급기야 끓지도 않은 된장찌개의 뚜껑을 들었다 놓았다 해야 했다.
“사시미 님!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 좀 쉬고 있어.”
“고마워요. 나는 커피나 끓이고 있을게요.”
가을밤의 만찬이 끝나자마자 준서가 주섬주섬 낚싯대를 챙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준서야, 정말로 또 하려고?”
“네. 갑오징어는 밤에 잘 나온다고 하니까요.”
“아까 열 마리 잡겠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구나.”
“하하. 원장 할아버지가 갑오징어 뼈가 좋다고 가져오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갑오징어의 뼈를 곱게 갈아 상처에 뿌리면 효과가 있다는 민간요법을 말하는 게로구나.
“그래. 많이 잡아서 할아버지 갖다 드려라. 대신에 10시 전에는 무조건 돌아와야 한다.”
“저 갔다 올게요.”
시계를 굽어보니 벌써 밤 아홉 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후딱 커피를 마시고, 사심희와 의자에 앉아 밤하늘에 걸친 달무리를 감상하며 커피를 마셨다.
이런 게 캠핑의 맛이로구나.
준서 덕분에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 캠핑을 해 보다니.
“저는 피곤해서 음악이나 들으면서 자야겠어요.”
“음. 나도 들어가야겠군. 그럼 편히 자.”
“우럭 님도 잘 자요.”
베타와 차에 들어와 의자를 길게 눕혔다.
공기 순환을 위해 아주 약간 창문을 열어 두었더니 그 틈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들어왔다.
“베타야, 오늘은 별을 보며 잘 수 있겠다.”
“야옹~”
베타가 담요를 덮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하루 종일 항구에서 뒹굴다 온 베타에게서 짠내가 풍겨 나왔다.
쉬익! 척!
불침번을 서야 하는 관계로 한눈에 텐트와 방파제가 보이는 위치에 차를 세워 두었다. 차창 밖에서 준서가 낚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빼고 보니, 가로등 불빛 아래 아이가 수면을 노려보며 천천히 릴을 감고 있었다.
저러다 곧 지쳐서 돌아오겠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던 순간 스르르 눈이 감겼다.
쉬이익! 퐁당!
잠결에 귓가를 울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시간을 확인해 보려 했지만 귀찮아서 그만 두었다.
* * *
다음 날, 아침.
부스스 눈을 뜨니 햇살이 너무 눈 부셔 얼른 눈을 감았다.
똑똑똑!
다시 눈을 뜨게 된 것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화들짝 놀라서 몸을 일으켜 보니, 차창 밖에 사심희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어어, 미안해. 지금 몇 시야?”
“미안할 거 없어요. 나도 지금 일어났어요.”
“준서는?”
“조용히 해요. 지금 시체처럼 잠들어 있으니까.”
가만히 텐트의 문 틈을 젖혀 보니 준서는 대자로 하늘을 보며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저 녀석 언제 들어온 거야?”
“저도 몰라요. 방금 일어나 보니까 저렇게 누워 있더라고요.”
허허. 녀석도 참.
10시까지 돌아오라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할 때 알아보긴 했었다.
“아침은 가다가 휴게소에 들러서 먹자고. 나는 준서부터 차로 옮겨 놓을게.”
나는 두 팔에 안고 아이를 차의 조수석으로 옮겨놓았다.
얼마나 피곤한지 준서는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사심희와 텐트를 정리하고, 낚싯짐을 꾸리고 있을 때였다.
“우럭 님! 이게 뭐죠?”
쓰레기를 정리하던 사심희가 소리치는 바람에 나는 얼른 그녀에게 다가가 보았다.
“이런…….”
어젯밤 갑오징어를 담았던 작은 물통이었다.
안에는 여러 마리의 갑오징어가 새하얀 배를 내밀고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어쩜 손질까지…….”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쩐지 엊저녁에 사심희가 갑오징어 손질을 할 때 빤히 내려다보고 있더라니.
준서가 잡은 갑오징어는 대략 열 마리 남짓.
등껍질은 그대로였지만, 하나같이 내장까지 빼내고 바닷물에 씻어 놓은 상태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옆에 놓인 검은 비닐봉지를 열어 보니 빳빳한 갑오징어 등뼈가 담겨 있었다.
“애가 아니네요.”
사심희가 기특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내 얼굴은 사뭇 심각해졌다.
마냥 대견하게 여길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아이의 열정이 지나치다는 느낌이었다.
낚시를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지 않겠는가.
어릴 때의 열정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이가 원한다고 하니 지금은 그 길을 터 주려 하는 것이지만, 아이의 앞날을 생각하면 낚시에만 유년기의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찌해야 좋을까…….
머리를 굴리던 나는 곧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사심희와 나는 준서의 물건까지 모두 챙기고 차에 올랐다.
내비게이션에 나온 평택까지의 도착 시간은 두 시간 반 정도로 예고되었다.
* * *
보육원 입구에서 준서와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사심희가 허리를 굽혀 준서의 이마에 입술을 갖다 댔다.
“곧 추석인데 준서는 뭐 할 거니?”
“우리도 원장 할아버지랑 차례 지내요. 그리고 저녁에는 안양 할아버지 집에 가기로 했어요.”
“어떤 할아버지?”
“캡틴 할아버지요.”
“오. 그래? 잘됐구나.”
사심희는 모르는 눈치였지만, 나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준서와 오붓하게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며 장재준 영감의 전화 목소리는 몹시 들떠 있었다.
나는 무릎을 굽혀 준서와 시선을 맞췄다.
그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준서야, 낚시도 좋지만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에이, 또 그 말씀이다.”
“훌륭한 낚시꾼이 되고 싶지 않아?”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앞으로 낚시 전문 낚시 서적은 안 볼 거야? 어려운 글도 읽으려면 국어도 열심히 해야 하고, 물의 흐름과 지형과 물고기를 알려면 과학도 알아야 하고, 올림픽에 나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지 않으려면 외국어도 배워야 하고…….”
일부는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얘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참 동안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더니 준서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알았어요. 삼촌. 공부도 열심히 해 볼게요.”
“머리 나쁜 낚시꾼은 고기를 잡는 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야. 알겠지?”
“네…….”
정말로 알아들은 건가?
어째 대답이 영 시원치가 않네…….
미심쩍었지만 나는 아이와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다시 차에 올랐다.
* * *
“베타야. 늦었지만 밥 먹어라.”
집에 돌아오자마자 베타의 브런치를 챙겨 주고 내가 향한 곳은 침대가 아니라 책상 앞이었다.
준서와의 멋진 추억의 그림을 서둘러 완성하고 싶었다.
툭툭! 투다닥!
생각보다 좋은 장면이 많아 편집하면서 나도 모르게 삼촌 미소가 그려졌다.
어색한 첫 멘트, 허둥지둥 첫 캐스팅에 실패한 뒤의 뻔뻔한 미소, 간혹 아이답지 않게 번뜩이는 눈빛.
게다가 주꾸미를 건드리다가 봉변을 당한 베타의 앙증맞은 모습까지.
마지막에 성난 갑오징어가 발사한 먹물이 화면 전체를 덮으면서 동영상은 종료되었다.
하아. 어떤 반응이 나올까.
회사를 그만두고 첫 방송 편을 올리던 때보다 심장이 더 크게 콩닥거렸다.
오롯이 준서를 위해 시작한 번외편 방송.
나는 그것이 앞으로 아이가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좋은 추억이 되기를, 그리고 그의 자립에 필요한 경제적 마중물이 되기를 바랐다.
첫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마음을 졸이는 이유는 단지 그 때문이었다.
동영상을 업로드하자마자, 나는 1분 간격으로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며 조회수를 확인해 보았다.
이런…….
일요일 점심때라 다들 외출을 해서 그런가?
하나둘씩 숫자가 올라가고 있었지만, 기존의 방송 편에 비해 확연하게 느린 속도였다.
에라. 모르겠다. 낮잠이나 때리자.
간밤에 한데서 잔 탓에 허리가 욱신거려 계속 앉아 있기도 어려웠다.
나는 포근한 침대에 벌러덩 누워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곧 추석인데 집에는 뭐를 사 갈까?
의기양양하게 두 손 가득 비싼 선물을 들고 가야겠다. 내일 정산금이 나오는 날이니까, 부모님 가을 옷도 사 드리면 좋아하시겠지.
아차! 남해에서 받은 트로피도 가져가 자랑해야겠다.
성공한 아들처럼 폼 나게 가는 거다. 이런 걸 금의환향이라고 하는 건가.
이런저런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펴다 보니, 눈꺼풀이 저절로 닫혔다. 참으로 깊고 긴 잠이었다.
한낮의 꿈속을 헤매는 동안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오후가 깊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어반자 키드의 화려한 데뷔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