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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64화 (64/130)

[제64화] 캠낚

“오늘 여기서 자는 거예요? 신난다.”

안면도 장곰항, 방파제가 보이는 한적한 곳.

사심희가 뚝딱뚝딱 텐트를 완성하자 준서가 내지른 탄성이었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심희는 거의 모든 캠핑 장비를 챙겨 왔다. 텐트는 물론, 바비큐 장비를 포함한 각종 취사 도구까지.

그녀가 준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텐트에서 자는 건 처음이니?”

“네. 항상 이런 데서 자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좁아서 이모랑 둘이만 자야 할 것 같구나.”

사심희가 그렇게 말하자 준서는 나를 돌아보았다.

“삼촌은 그럼 어디에서 자요?”

“응. 나는 차에서 자면 돼. 차박이라고 하지.”

“에이, 같이 자면 좋은데.”

원래 사심희 혼자 쓸 용도로 구입했다는 작은 텐트였다.

애초에 나는 차에서 잘 생각으로 두툼한 담요를 챙겨 왔다.

“저 잠깐 베타랑 놀아도 되죠?”

“그래. 방파제 아래쪽 조심해라.”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준서는 베타를 안고 방파제 쪽으로 달려갔다.

갑오징어 먹물 트라우마가 있는 베타는 준서가 하도 보고 싶다고 조르는 바람에 데려왔다.

이번만큼은 철저한 먹물 방어 시스템을 가동할 계획이었다.

베타와 뛰어 노는 준서에게 눈길을 떼지 않은 채 사심희가 물었다.

“방송 시나리오는 생각해 둔 게 있나요?”

“아니. 없어.”

“그래도 첫 촬영인데 뭐라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준서가 다 알아서 할 거야. 나는 꼭 필요한 타이밍에만 나설 테고.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있는 그대로의 준서의 모습을 원했다.

넘어지면 넘어지는 대로, 실수하면 실수하는 대로.

번외편은 ‘왕초보편’으로 소제목을 정해 두었다.

또한 채비 세팅부터 시작해서 제대로 잡은 모습까지를 약 15분 분량으로 편성하기로 했다.

먹방이나 다른 군더더기 없는, 오롯이 초심자들을 위한 입문 목적이었다.

서해 낚시는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느 덧 저녁 5시. 밤에 잘 나오는 갑오징어를 고려하여 느긋하게 도착한 항구에는 붉은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나와 사심희는 미리 준비한 장비를 챙겨 들고 준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제 낚시하는 건가요?”

“그래. 긴장하지 말고 그냥 평소대로 논다고 생각해.”

“사실은 좀 긴장돼요.”

차 안에서도 혼자 계속 뭔가를 외우는 것 같더라니.

처음이라 그런지 준서는 바짝 얼어 있었다.

사심희의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준서를 향해 열심히 준비했다는 인사를 해 보라고 눈짓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어반자TV 시청자 여러분. 오늘 어반자TV 왕초보편을 맡게 된 저는 3학년 2반 김…… 아, 이게 아니지. 어반자 키드라고 합니다. 헤헤.”

크윽. 시작부터 실수 연발.

사심희가 뒤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다시 찍을까요?”

“아니. 그냥 쭈욱 가지 뭐.”

딱히 신비주의를 표방할 의도는 아니었지만, 준서는 이미 학년과 성씨를 밝힌 셈이 되었다.

학급 회의에서 발표를 하는 억양 또한 나를 킥킥거리게 만들었다.

사전에 준서에게 닉네임을 정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마땅한 별명이 떠오르지 않아, 일단 ‘어반자 키드’라 붙여 주었다.

“저는 오늘 갑오징어를 잡기 위해 여기 안면도…… 안면도 어디라고 했죠? 삼촌?”

“장곰항!”

“맞다. 장곰항에 도착했습니다. 저 뒤로 아름다운 노을이 보이시죠? 아! 그리고 저기 베타도 좀 찍어 주세요. 오늘 저와 함께할 친구예요.”

사심희가 베타가 있는 쪽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방파제에 기어 나온 작은 게들을 쫒던 베타는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앞발을 잠깐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참고로 베타는 예전에 갑오징어 먹물에 당해서 고생을 했다네요. 그럼 오늘 저와 함께 갑오징어의 먹물에 흠뻑 빠지실 준비가 되셨나요?”

아주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시작이었다.

나는 카메라 뒤에서 그에게 우스갯소리로 오늘의 목표를 물었다.

“준서는 오늘 몇 마리나 잡을 것 같아?”

“글쎄요. 예전에 주꾸미를 100마리 넘게 잡았으니까, 갑오징어는 한 열 마리쯤?”

“목표가 너무 큰 거 아냐? 선상 낚시보다는 좀 어려울 텐데.”

“아녜요. 나름 봐 둔 게 있어서 그래요.”

“그게 뭔데?”

“이것 좀 보세요.”

준서가 가리키는 방파제 바닥을 카메라가 훑기 시작했다.

“여기 먹물 자국이 많잖아요. 다른 낚시꾼들도 손맛을 많이 봤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아까 베타와 마냥 뛰어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었나 보다.

준서의 예리한 관찰력을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나는 가만히 먹물 자국을 내려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흔히들 먹물 자국을 보고 갑오징어 포인트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준서는 처음이 아닌가.

오프닝 멘트가 끝나고 나는 준비된 장비와 채비를 준서 앞에 내려놓았다.

준서는 그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낚싯대를 주워 들었다.

“음. 채비가 집에서 예습한 거랑 약간 다르네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낚싯대는 이렇게 끝부분이 부드러운 게 좋아요. 배에서 할 때는 약간 뻣뻣해도 괜찮지만, 방파제에서 던지려면 그래야 캐스팅에 편하다고 해요. 그리고 이건…….”

준서가 이번에 손에 든 것은 릴이었다.

“스피닝 릴은 다 아시죠? 전에 배에서 주꾸미 잡을 때는 아래로 내리는 베이트 릴을 썼었는데, 이건 정면으로 던질 때 쓰는 용도랍니다. 헤헤.”

복잡한 설명을 쉽게도 한다.

준서는 머쓱하게 웃으며 다음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거는 오늘의 미끼인 에기. 사람들이 루어 낚시라고 하죠? 가짜 미끼로 하는 낚시를 그렇게 부르죠. 일단 시작은 이 알록달록한 색깔로 해 보려고요. 갑오징어가 좋아해야 할 텐데.”

처음의 어색한 억양과 달리 준서는 차츰 평소의 자연스러운 말투로 바뀌어 있었다.

준서가 웅얼거리면서 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낚싯대의 가이드에 줄을 끼우고, 줄의 끝에 핀도래를 연결하고, 핀도래에 3g의 아주 작은 봉돌을 끼워 넣고…….

“오늘은 다운샷 채비로 할 거예요. 갑오징어는 주꾸미와 달리 바닥에서 약간 떠서 돌아다닌다고 해요. 그래서 봉돌 약간 위쪽에 에기를 달아야 하는데……. 삼촌! 삼촌이 좀 도와주실래요?”

모르는 건 모른다고 밝히는 저 당당함.

준서가 처음에 미리 예습한 것과 다르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아마도 그가 집에서 공부한 것은 편리한 고리가 달린 기성 채비였을 것이다.

나는 준서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일부러 기성 채비를 가져오지 않았다.

나는 냉큼 달려가 적당한 위치에 에기를 달아 주고 다시 빠져나왔다.

“저도 아직 배우는 중이라서요. 헤헷. 어쨌든 이제 모든 낚시 준비 끝! 간단하죠? 그럼 이제 저를 따라오세요. 참! 먹물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조심하시고요.”

여유가 생겼는지 이제는 농담도 던질 줄 안다.

방송 체질인가?

준서를 따라간 곳은 방파제 중에서도 먹물의 흔적이 가장 많은 위치였다.

“최대한 멀리 던지고 천천히 채비를 끌어 오면서 갑오징어를 유혹해 볼 거예요. 자 그럼…….”

준서를 침을 꼴짝 삼키고 낚싯대를 뒤로 젖히더니, 힘껏 앞으로 던졌다.

쉬이익! 틱!

봉돌이 수면에 닿을 때 나오는 영롱한 물소리가 들리지 않고,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보니까 준서의 채비가 석축 아래 돌 틈에 박혀 있었다.

“앗! 나의 실수. 저 같은 초보에게 자주 발생하는 일이죠. 이럴 땐 당황하지 않고, 다시 하면 되는 겁니다.”

돌발적인 상황에도 한결같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저 뻔뻔함.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준서는 낚싯대를 휘릭휘릭 흔들어 채비를 회수하고는 다시 캐스팅을 시도했다.

“채비를 던질 때는 뒤를 꼭 조심해야 돼요. 장애물이 있을 수 있고, 누가 다칠 수도 있거든요. 베타야! 저리 가!”

준서는 호흡을 가다듬고 낚싯대의 탄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채비를 발사했다.

쉬이익~ 퐁!

성공이다. 지난번 M 좌대에서 받은 특별 훈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생각보다는 멀리 가지 못했어요. 조금씩 나아지겠죠. 시청자분들이 지루해하실 것 같으니까 일단은 그냥 해 볼게요.”

시청자들의 입장까지 고려하는 배려와 센스라니.

내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 준서의 채비가 입수한 곳으로 휘파람을 후욱 내뿜었다.

준서의 채비 근처에는 생명체의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 우주선처럼 둥둥 떠다니는 갑오징어의 무리가 언뜻 비쳤다.

쉬익!

그때 무슨 일인지 준서의 낚싯대가 바람을 갈랐다.

갑오징어는 멀리 있는데, 헛챔질인가…….

“와하하! 이것 보세요. 낙지예요. 낙지가 올라왔어요.”

준서는 에기 바늘에 매달려 다리를 허우적거리는 하얀 생명체를 가리켰다. 펄 바닥에 낙지가 도사리고 있는 줄은 나도 알지 못했다.

때로는 대상어보다 더 반가운 잡어가 큰 기쁨을 주기도 한다. 나는 물통에 바닷물을 담고 돌아와, 준서의 첫수를 잘 보관해 두었다.

준서의 다음 캐스팅은 아까보다 더욱 먼 위치에 안착했다.

하지만 갑오징어가 운집한 위치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다.

쉬이익!

어라? 준서의 챔질이 또 이어졌다.

수면을 헤치며 뭔가 끌려오는 걸 보니, 이번에도 헛챔질은 아니었다.

“저의 두 번째 친구가 인사드립니다. 주꾸미입니다. 헤헤.”

준서는 카메라 앞에 낙지만 한 크기의 주꾸미를 흔들다가 물통으로 쏙 집어넣었다.

이제 갑오징어만 잡으면 그랜드 슬램의 달성인가.

그렇게 속으로 기대하고 있을 때 준서의 낚싯대를 떠난 채비가 꽤 멀리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아, 약간 아쉽군.

계속 비거리가 좋아지고는 있지만, 5미터 정도 미치지 못하는 위치였다.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던져 보려고 말하려 하던 순간, 베타의 앙칼진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왜~~~~~ 앵!”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니 아까 내가 가져다 놓은 물통 앞이었다. 베타가 콧잔등에 달라붙은 뭔가를 떼어 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준서가 잡은 주꾸미였다.

물통을 탈출해서 바닥을 기다가 호기심 많은 베타에게 딱 걸린 모양이다.

“아이고, 이 녀석아.”

나는 베타를 안아 들고, 녀석의 코를 꽉 붙잡고 있던 주꾸미를 황급히 떼어 냈다.

“와~~~~ 웅!”

베타도 성질이 잔뜩 났나 보다.

주꾸미를 다시 물통에 넣고 뚜껑을 닫아 놓을 때까지 녀석은 허공에 앞발을 휘저었다.

“호호. 베타가 오늘도 수난이네요. 조심하세요.”

“알았어. 내가 계속 안고 있어야겠어.”

입맛을 쩝쩝거리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베타가 주꾸미를 날로 먹으려 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한바탕 작은 소동을 뒤로하고 다시 준서를 지켜보기로 했다.

스르륵 스르륵.

미리 동영상을 연구하고 온 모양이다. 준서가 아주 천천히 채비를 끌어당겼다가 쉬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갑오징어를 유인하는 방법이었다.

그때 나는 5미터밖에 머물고 있던 한 마리의 갑오징어가 준서의 에기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걸 목격했다. 날개를 팔랑거리는 둥근 물체는 어른 손바닥 정도의 크기였다.

오오. 드디어 온다.

소형 우주선의 속도가 빨라졌다. 어느 틈에 준서의 미끼로 달려온 녀석이 정지 모드로 전환하는가 싶더니, 에기를 향해 두 발의 촉수를 발사했다.

“어어? 뭐가 잡아당기는데요?”

준서는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그로서는 처음 느껴 보는 갑오징어의 입질이니 그럴 만도 하다. 살포시 올라타는 주꾸미와 달리 촉수로 확 잡아끄는 느낌.

쐐액!

준서의 낚싯대가 바람을 갈랐다.

그리고 약간은 어설픈 그의 릴링이 시작되었다.

“어어? 묵직해요.”

혹시나 갑오징어가 빠져나갈까 염려되어 살펴보니 정말로 다리 한 짝을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끌려오는 갑오징어가 보였다.

“준서야.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알았어요.”

내 심장까지 쫄깃하게 만드는 줄다리기였다.

뜰채라도 챙겨 왔으면 좋겠지만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다 올리다가 떨구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지.

뿌욱! 뿍!

석축 아래까지 끌려온 갑오징어가 거칠게 먹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이쿠. 베타야. 빨리 숨자.

과감하게 또는 무모하게도 준서가 ‘들어뽕’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안고 있던 베타와 함께 등을 돌렸다.

아차! 그걸 말하지 않았군.

그 순간 불길한 생각이 엄습했다. 최소한 갑오징어의 먹물 분출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알려 줬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살짝 고개를 돌려 보니 준서가 어쩔 줄을 모르고 허둥거렸다. 그리고 허공에 매달린 갑오징어가 팽이처럼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었다.

“끼약~~~!”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방파제를 크게 흔들었다.

“이게 뭐예요?”

사심희였다.

그녀의 콧날 근처만 빼고 얼굴이 온통 검게 변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상태에서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모양이다.

푸웁!

멍하니 서서 눈만 깜짝거리는 그녀를 보고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야 했다.

내 품에 숨어 있던 베타는 오랜만에 맡아 보는 먹물 냄새를 기억하는지, 계속해서 하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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