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63화 (63/130)

[제63화] 어벤저스

낚시 대회가 끝나고 오른 상경길.

차에 오르자마자 나는 내비게이션에 아지트를 목적지로 설정했다.

원래는 안양 사심희의 집으로 가려던 계획이었다.

2박 3일 동안 베타 혼자 집에 두고 오기에는 마음이 걸렸다. 고심 끝에 사심희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목적지를 급선회하게 된 것은 사심희와의 통화 때문이었다. 베타의 안부를 물으려 그녀와 통화를 하던 중, 낚시 대회 우승 소식을 알렸다.

소식은 빠르게 수도권을 관통했다.

그녀와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연거푸 걸려 온 축하 전화에 출발이 더뎌지고 말았다.

모든 멤버들이 나를 축하하기 위해 만사 제쳐 놓고 모이기로 했다. 그들과의 술자리를 그리워하던 나로서는 나눔 배송을 하면서 7짜 대물 한 마리를 남겨놓았다.

부랴부랴 고속 도로에 진입하자, 나는 조수석에 놓인 물건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은빛 하트 문양이 박힌 릴.

김혁준이 내게 선물한, 정확히 말하자면 맡겨 놓은 물건이었다.

그와 헤어지기 직전에 나눴던 말들이 아련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럼 저도 우럭 님 방송에 나올 수 있는 건가요?’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잘생기지는 못했지만 꼭 나오게 해 주세요. 병원에서 심심할 때마다 보게요.’

나는 김혁준의 최고로 멋진 모습만 편집할 것을 약속했다. 물론 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는 사적인 대화들은 모두 제외하고 말이다.

‘상금은 어떻게 나누죠?’

‘혁준 님 통장으로 모두 들어가도록 조치해 놓았어요.’

‘그렇게는 안 되죠.’

‘방금 제 방송에 나오기로 하지 않으셨나요?’

‘그래서요?’

‘출연료입니다.’

흔들림 없는 내 눈빛에서 진심을 발견했는지는 모르겠다.

김혁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상에 젖어 한 손으로 그의 릴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어어, 사심희 님. 나 지금 대전까지 올라왔어.”

“그게 아니고요. 베타가…….”

“베타가 뭐?”

“고양이 낚시를 그만둘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말인데. 아지트로 올 때 식재료 좀 사 올 수 있어요? 제가 지금 밖에 나갈 수가 없어서요.”

“어. 미안해. 내가 마트 들렀다 갈게.”

“문자로 보내 줄게요. 바빠서 이만 끊어요.”

착한 사심희.

나라면 벌써 고양이 낚싯대를 침대 밑에 감춰 놓았을 텐데. 혼자서 키득거리며 나는 가속 페달을 더욱 세게 밟았다.

* * *

“푸른섬을 접수하고 돌아온 우리 피싱 어벤저스의 우럭 님을 위하여!”

“위하여!”

“잘했다. 내가 다 우승하고 온 기분이다.”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를 건배였다.

사심희가 한껏 멋을 부린 초대형 감성돔회는 벌써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주방에서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식욕을 자극했다.

“감성돔은 가을부터 겨울에 특히 회 맛이 좋지요. 특히 조금 더 추워지면 비싸서 사 먹을 엄두도 못 냅니다. 허허.”

“캡틴 님 말씀이 맞아요. 게다가 7짜 감성돔을 식당에서 어떻게 구합니까?”

장재준 영감은 라이더 일도 미루고, 고동우는 가게를 아내에게 맡기고, 보람이는 공장 문을 닫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와 주었다.

“베타야! 그거 건드리면 안 돼!”

자랑 삼아 창가에 올려 둔 우승 트로피를, 베타가 앞발로 건드리려 했다. 나는 냉큼 달려가 그것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사시미 님이 고생이 많았겠어. 베타 때문에.”

“아뇨. 덕분에 저도 운동 많이 했어요.”

“아아. 팔 운동?”

“……네.”

한참 동안의 무용담이 끝나고, 내가 막 매운탕을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았을 때였다.

장재준 영감이 은근슬쩍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사람들에게 내보였다.

“이것 좀 보십시오. 이번에 제가 산 보트입니다.”

“어디요?”

“이야! 죽이네요.”

사진상으로 그리 큰 보트는 아니었다.

중고로 보이는 그것은 4인승으로 그럭저럭 낚시하기에 괜찮아 보였다.

“시승식은 언제 할 겁니까?”

“언제라도 좋습니다. 다만 배가 작아서 우리 멤버들을 한꺼번에 태우지는 못할 겁니다.”

“제가 먼저 손 들었어요.”

사심희가 신이 나서 손을 들어 보이더니, 곧바로 냄비 뚜껑을 활짝 열었다.

“보트도 좋지만, 이건 식기 전에 드셔야 해요.”

“이야. 냄새가 끝내주는구만.”

내가 보기에도 근사한 매운탕이었다.

특히 뼈와 머리에서 흘러나온 기름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다들 공깃밥을 손에 들고 정신없이 2차 먹방에 여념이 없을 때 나는 장재준 영감을 바라보았다.

벌써 두 번이나 준서의 훈련을 지켜본 결과가 몹시 궁금했다.

“준서는 좀 어떻던가요? 잘 따라오던가요?”

“아……. 그 녀석은 말할 것도 없지요. 너무 잘해서 깜짝깜짝 놀라게 한답니다.”

“역시 그랬군요. 그동안 뭘 가르쳤는데요?”

“첫날은 우리나라 바다에서 나오는 어종들에 대해 도감을 보면서 공부했고, 두 번째는 매듭법 연습을 좀 시켜 봤었죠.”

“대충 알고 있지 않던가요?”

“그게 내 실수였어요. 매듭을 놀이 삼아 하는 아이는 나도 처음이었으니까요. 아무튼 이제 보트도 구했으니 곧 실전 훈련에 들어갈 겁니다. 허허.”

너털웃음을 짓던 장재준 영감이 갑자기 생각난 듯 눈을 깜빡거렸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주말은 우럭 님이 준서를 만나는 날이군요. 준서가 무슨 방송에 출연하다고 들떠 있던데 그게 무슨 말인가요?”

때마침 모두 모였으니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멤버들에게 공유할 계획이었다. 그동안 모두들 바빠서 사심희하고만 의견을 교환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심희에게 눈을 찡긋하면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준서를 우리 어반자TV에 출연시킬 생각입니다. 자주는 아니고 한 달에 한 번씩. 말하자면 번외편이죠.”

“허어, 그거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오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좋아했군요. 허허.”

모두들 놀라는 가운데, 사심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에게는 아예 새로운 채널을 개설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계획을 수정한 이유가 있었어.”

나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였다.

나는 멤버들에게 신규 채널을 만들지 않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처음에는 준서가 출연하는 방송은 철저하게 낚시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채널을 구상했었다.

선상과 갯바위 위주의 기존 방송과 달리 간편한 도보 위주가 될 것이라 타깃 시청자가 다를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이미 확보된 구독자들을 포기하고 굳이 먼 길을 돌아갈 필요는 없어 보였다.

기존의 구독자 중에서 번외편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든지 찾아보리라는 판단이었다.

물론 번외편의 수익금을 구분하여 준서의 몫으로 책정하는 작업은 번거로울 수 있다.

그렇지만 기존 회차들을 모두 포함하여 조회 수의 증가분을 기준으로 나름 합리적인 산식을 세워 두었다.

내 설명을 들은 사심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구석에서 식사에만 열중하던 보람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이번 주말 첫 촬영은 어디로 갈 거냐?”

그것도 이미 정해 두었다.

첫 방송은 멋진 여행을 겸하여 안면도로 캠핑 낚시를 가기로 결정했다.

“안면도에서 캠낚을 하고 올 생각이야. 갑오징어가 잘 나오는 방파제가 있다고 들었거든.”

“방파제에서 쉽지 않을 텐데.”

“어차피 마릿수로 잡을 생각은 없어. 제대로 몇 마리만 잡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해. 어차피 방송 컨셉도 기본기를 선보이는 거니까.”

“애들만 아니라 나 같은 허당 낚시꾼들도 열심히 봐야겠구나. 헤헤.”

“내가 바라는 게 바로 그거다.”

보람이의 너스레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낚시 대회 우승과 새로 시작하는 방송에 대한 기대감으로 저녁 식사 내내 수다의 향연이었다.

밤샘 낚시의 여파가 밀려와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질 무렵, 장재준 영감이 사심희에게 눈짓을 보냈다.

“밤도 늦었으니 우리는 슬슬 일어납시다.”

“안 그래도 일어나려던 참이었어요.”

나와 보람이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데, 고동우가 우리 둘을 향해 은밀한 눈짓을 보내는 것 같았다. 할 이야기가 있는 눈치였다.

사심희가 나가려다 뒤를 돌아보았다.

“다들 안 가세요?”

“우리는 조금 더 수다나 떨다 가려고.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사시미 님도 오늘 고생 많았어.”

그렇게 아지트 안에는 나와 고동우 그리고 보람이만 남게 되었다. 무슨 말을 꺼내려는 건지 고동우의 표정이 약간 진지해 보였다.

“일단 우럭 님 의견부터 묻고 싶어.”

“뭔데 그렇게 심각한 얼굴이세요?”

“어반자스토어 말이야.”

“왜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요?”

“생겼지. 아주 큰 문제가. 장사가 너무 잘되는 게 문제야.”

에이, 난 또 뭐라고.

일시에 긴장이 풀리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럼 잘된 거죠. 뭐가 문제예요?”

“들어 봐. 지금부터가 본론이니까.”

고동우는 여전히 정색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네 돈도 많이 들어갔고 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어. 너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테고.”

“돈 얘기라면…….”

문득 그가 돈을 갚으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 대출이야 그렇다 치고, 남의 돈까지 끌어다 썼으니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을 고동우였다.

“구피 님. 천천히 갚으셔도 돼요. 용감한 어부 덕분에 저도 한숨 돌리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사실 출연료는 그리 큰 금액은 아니었다.

내 말은 방송 출연 이후에 어반자TV의 폭발적인 구독자 유입으로 기대 이상의 정산금을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고동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내 말을 받았다.

“오해를 했구나. 나 그렇게 계산적인 사람 아니다. 네 돈은 투자였어. 막말로 내가 쫄딱 망했으면 너도 같이 손해를 봤을 거라고. 애초에 네가 빌려줄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투자로 해 준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렇긴 했다.

하지만 내가 딱히 고동우의 낚시점 지분에 욕심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뭘 그렇게 발끈하십니까? 하하. 구피 님이 잘되시면 저는 그걸로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나도 낚시점이 잘된다고 금방 생각을 바꾸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아이고, 알았어요. 알았어. 그러면 대체 하려는 말씀이 뭐예요?”

고동우는 작은 눈알을 굴리며 곁에 있던 보람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문득 보람이까지 남으라고 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멀티싱커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보기에 낚시점이 잘되는 이유는 그것 말고는 없어. 요즘에는 멀리 서울에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그래서 말인데. 내 입장을 생각하지 말고 그 물건을 다른 낚시점에도 공급하라는 거야.”

이제야 알겠다.

애초에 나는 고동우의 낚시점에 멀티싱커를 독점적으로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고동우는 지금 자신 때문에 나와 보람이가 멀티싱커의 전국적인 오프라인 매출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나는 씩 웃으며 보람이의 의견을 먼저 묻기로 했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표정에서 읽었다.

“도라에몽 네 생각은 어때? 구피 님이 지금 우리 돈 많이 벌라고 부담을 덜어 주시려는 모양인데.”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땡큐지. 그렇지 않아도 요즘 대형 낚시점에서 멀티싱커 공급해 줄 수 없냐고 난리던데.”

“그렇지?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온라인 공급 물량도 달려서 못 한다고 정중히 거절했지. 사실 지금 공장을 풀가동해도 재고가 거의 없거든.”

고동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들으셨죠? 보람이가 못 한다네요.”

“그거야 설비도 늘리고 공장을 키우면 해결될 수 있잖아.”

“도라에몽. 들었냐?”

“저희는 천천히 가려고요. 지금도 돈은 벌 만큼 벌고 있어요. 구피 님이 2호점, 3호점으로 키울 때까지 저희는 기다릴 겁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피싱 어벤저스잖아요.”

고동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린 동생들의 말에서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그래. 알겠다. 동생들이 나보다 생각이 깊었구나. 내가 열심히 잘해 보마. 2호점도 열고, 3호점도 열 수 있도록.”

“열심히 하셔서 얼른 빚도 다 갚으시고 슬슬 낚시도 다니셔야죠.”

“그래……. 고맙다.”

보람이와 나는 아지트를 나왔다.

짜아식. 가끔 멋있는 말도 할 줄 안다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보람이가 했던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다.

‘우린 피싱 어벤저스잖아요.’

그래! 우리는 피싱 어벤저스다.

사업도 낚시도. 우리의 멋진 여정을 영원히 함께 걸어갈 어벤저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