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62화 (62/130)

[제62화] 황금 물고기

계속 낚시를 지속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지금이라도 낚싯배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걱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멍하니 딴생각을 하다가 찌가 사라진 것도 모르고 허겁지겁 챔질을 했더니, 감성돔이 아니라 볼락 한 마리가 올라왔다.

씨알이 좋은 놈이라 살림망에 넣어 두고 다시 채비를 정돈하던 차에 김혁준이 슬그머니 자리를 털고 있어났다.

“좀 쉬었더니 이제 살 것 같네요.”

천만다행이었다.

실제로 그의 혈색이 아까보다는 훨씬 좋아 보였다.

“정말로 괜찮은 겁니까?”

“그럼요. 물속에 들어가 수영이라도 할 것처럼 가뿐해졌습니다.”

어느새 왼쪽 편으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발갛게 물든 얼굴로 다시금 갯바위에 나란히 섰다.

간간이 김혁준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낼 때마다, 그는 씩 웃으면서 파이팅을 외쳤다.

김혁준은 정말로 마지막 낚시에 나선 사람처럼 후회 없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히트!”

“왔어!”

캐스팅, 챔질 그리고 릴링.

그의 동작마다 배어 있는 간절함이 느껴져, 나 또한 모든 세포를 낚시에만 집중시켰다.

두 사람의 살림망에 하나둘씩 크고 작은 감성돔들이 쌓여 가고 있을 때였다.

내 머릿속 어탐기는 김혁준의 버킷리스트에 담겨 있다는 7짜 감성돔을 열심히 탐색하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오전 9시.

낚시 종료까지는 2시간을 남기고 본격적인 중들물이 한창인 시점이었다.

크다!

멀리서 한 쌍의 엄청난 감성돔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다.

다행이었다. 아니, 김혁준이 거의 모든 밑밥을 소진하며 공을 들인 결과였는지 모르겠다.

두 마리의 대어들이 김혁준의 채비 근처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낚시에 이렇게 가슴을 졸인 적이 있었던가.

나는 그가 버킷리스트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쐐애액!

입질을 감지한 김혁준이 느슨해진 줄을 천천히 회수하는가 싶더니 사정없이 낚싯대를 치켜들었다.

그의 낚싯대가 활처럼 휘어 부르르 떨자, 내 심장도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아, 이거…….”

김혁준이 이를 악물었다.

조금은 힘이 부치는지 그가 두 손으로 안간힘을 쓰며 낚싯대를 꽉 움켜쥐었다.

쩌러렁~

드랙이 풀리면서 그의 릴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내려다보니, 물속의 대어는 어뢰처럼 먼 바다로 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혁준은 노련했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물고기의 움직임을 예상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집념 어린 손짓으로 그는 차츰 놈을 제압하면서 대어와의 간격을 조금씩 좁혀 가고 있었다.

푸드덕!

그리고 마침내 그의 물고기가 대기하고 있던 내 뜰채에 골인하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듯한 기운이 내 가슴에도 번지고 있었다.

“이럴 수가……. 꿈만 같네요. 솔직히 오늘 7짜 감성돔을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김혁준은 감격에 겨워 울먹거렸다.

그가 잡은 감성돔은 내가 대략적으로 계측한 결과 7짜 중반에 달하는 엄청난 사이즈였다.

나는 그에게 활짝 웃으며 바위 근처를 가리켰다.

“대단하십니다. 이제 원을 푸셨군요. 잠깐 저쪽에서 쉬시죠.”

“그래야 되겠습니다.”

긴 사투를 치르느라 지친 그를 위해 나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할 계획이었다.

나는 살림망에서 아까 잡아 놓은 볼락을 꺼내서 돌아왔다.

회칼이 없어, 낚시칼로 썰었더니 모양은 영 형편없었다.

“요기라도 하시죠.”

“아…….”

좋아할 줄로만 알았던 김혁준이 난색을 보이자, 약간 당황스러웠다.

“회를 안 좋아하십니까?”

“너무 좋아해서 탈이지요. 회를 좋아하지 않는 낚시꾼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먹을 수가 없어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김혁준은 대답 대신 빙긋이 웃기만 했다.

그렇다면, 설마…….

머릿속에 불쑥 떠오른 불길한 단어, 내 입 안에서 맴돌던 상서롭지 않은 단어가 김혁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저는 간이 좋지 않아요.”

“아, 이런 제가 큰 실수를…….”

“간암이에요. 백 프로님이 귀띔을 해 준 줄 알았는데 모르고 계셨던 모양이군요. 괜찮습니다. 저는 김밥을 싸 왔으니까 같이 듭시다.”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바람에 간암이라는 말이 마치 감기처럼 들렸다. 그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김밥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나 드셔 보세요. 오늘 낚시도 좋고 나오기를 참 잘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분과 낚시도 즐기고 김밥도 먹고 말이죠.”

나는 말없이 김밥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목이 메어 와 밥알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김혁준이 자신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저는 예전에 전기 기사로 일했어요. 낚시가 좋아 자주 바다를 찾곤 했던 평범한 낚시꾼이었지요.”

“평범하다니요. 우승을 하셨다면서요.”

“하하. 그건 기적이었죠. 내게는 인생의 변곡점이 되었던 날이었습니다.”

“…….”

깁밥을 우걱거리는 김혁준의 눈동자가 먼 곳을 응시했다.

마치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프로 조사가 되기로 결심한 날이기도 했죠. 무작정 백정철 프로님을 찾아갔어요. 모든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더군요.”

나는 만지작거리던 물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물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힘든 치료였지만 난 이겨 냈었죠. 결국에는 완치 판정까지 받게 되었고요. 하지만 프로 조사의 꿈은 접어야 했어요. 그러다가 최근에는 암이 재발되고 말았고. 인생 참 우습죠?”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김혁준은 여전히 남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김밥을 하나 더 입에 털어놓으며 그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런 표정 하실 필요 없어요. 버킷리스트에 마지막 남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이뤘으니 저는 행운아죠. 우럭 님 덕분에 대회에 다시 나올 수 있었고, 인생 최대어를 만났고.”

“마지막이라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치료만 잘 받으시면…….”

“암이 재발되면 힘들다고 하더군요. 또다시 그 힘든 치료를 받으며 연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도…….”

목이 꽉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갯바위로 걸어가 낚싯대를 장검처럼 빼어 들었다.

전쟁에 임하는 장수의 표정으로 나는 결연히 물속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젊은 날, 그 찬란했던 우승컵의 감격을 다시 안겨 주는 일.

10년 만의 트로피가 텅 빈 그의 버킷리스트를 새로운 항목들로 채워 줄 새로운 변곡점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었다.

헛된 기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이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었다.

쉬익! 척!

나는 아주 멀리 밑밥을 흩뿌렸다. 아까 건져 내지 못한 대물 감성돔 한 마리가 그곳을 서성이고 있었다.

힘찬 캐스팅을 하던 순간, 어느새 김혁준도 일어나 내 옆에 나란히 섰다.

정면으로 내리쬐는 가을 햇살이 눈 부셔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 * *

푸른섬 낚시 대회는 모두 종료되었다.

오후 12시 30분경.

참가 선수들은 새벽의 그 냉동 창고 앞에 집결해 있었다. 조별 선수들의 조과물 계측까지 모두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냥 집에 가도 되는 거 아이가? 달랑 두 마리 잡았는데 무신 상을 기다리고 있노?”

“행운상이 있다 아이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담담한 심정으로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지금 막 수상 결과가 나왔습니다. 먼저 조별 1위부터 3위까지 발표하겠습니다.”

연단에서 마이크 소리가 울려 오자 주변이 고요해졌다.

“3등은 사천에서 오신 김영태 조사님과 왕현식 조사님! 축하드립니다. 호명되신 조사님들은 단상으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김혁준과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그는 심드렁하게 멀리 보이는 선술집을 가리켰다.

“저기 가서 소주라도 한잔하고 헤어지면 좋겠다, 그죠?”

“치료 잘 마치시면 제가 한잔 꼭 사 드리겠습니다.”

“그런 날이 정말로 올까요?”

“그럼요.”

돌아오는 배 안에서 김혁준은 심경의 큰 변화를 드러냈다. 다시 치료를 받겠다는 결심이었다. 고통스러운 치료를 감내해야 할 그에게 차마 잘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잠시 후 마이크에서 삑 하는 소리가 나더니 2등 수상자를 호명했다.

“2등은…….”

이번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김혁준이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불쑥 내밀었다.

“안 받아 주시면 많이 실망할 겁니다.”

그가 새로 샀다는 신형 스피닝 릴이었다. 감성돔 비늘로 옆면을 장식한.

“나중에 다시 쓰실 일이 있을 겁니다. 넣어 두세요.”

“그때까지 잘 쓰고 있으란 말입니다. 내가 돌아오면 돌려주세요. 뭐 하세요? 팔 아파요.”

나는 가만히 그것을 받아 들었다.

한참 동안 그의 선물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또다시 주변이 고요해졌다. 우승자 발표가 임박했다는 신호였다.

나는 김혁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가시죠. 우리 순서인 것 같습니다.”

“아이고, 다리야.”

우리는 히죽 웃으면서 연단으로 달려갔다.

그러는 동안 마이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1등은 너무 놀라운 결과였음을 미리 밝혀 두겠습니다. 진주에서 오신 김혁준 조사님과 성남에서 오신 강유록 조사님. 어디 계신가요?”

뛰어가는 동안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들이네. 아까 계측하는 거 봤어. 2등이 잡은 것보다 갑절은 되더만.”

“벌써 1등인 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여. 부럽네. 부러워.”

단상에 오르자마자 백정철이 두 팔을 벌리고 달려 나왔다.

“아이고, 이 친구들. 정말 장하네. 설마 우승을 할 줄은 정말로 기대하지 않았어.”

“스승님 덕분입니다.”

“말도 안 되는 결과에 내 귀를 위심했지 뭔가. 이건 영원히 기록에 남을 대사건이야.”

감격에 겨워 백정철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시상을 맡은 노인이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정신 좀 보게. 얼른 가 보게.”

“백 프로님. 이것 좀…….”

“이게 뭔가?”

내가 수줍게 내민 것을 내려다보고 백정철의 눈이 동그래졌다.

“카메라입니다. 촬영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지. 이런 순간은 영원히 남겨야 되지 않겠어?”

백정철이 동영상을 찍는 동안 나와 김혁준은 당당히 시상대에 다가섰다.

“시상은 남해 낚시인 협회 이해구 회장님이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사회자의 멘트에 노인은 김혁준과 나에게 차례로 악수를 나누며 각각 트로피를 안겨 주었다.

금박으로 칠해진 감성돔이 하늘로 비상하는 형상의 트로피였다.

“10년 만에 다시 우승이라니 놀랍군.”

“감사합니다.”

“멀리서 온 자네도 수고했네.”

“고맙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만큼 짤막한 덕담이었다.

트로피를 들고 큼지막하게 상금 액수가 적힌 보드를 들고 기념 촬영을 마치고서야 우리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백정철이 기다렸다는 듯이 참았던 질문을 퍼부었다.

“7짜 감성돔을 두 마리나 잡았더군. 똑같이 76센티였어. 대체 누가 잡은 건가?”

나는 씩 웃으며 김혁준을 곁눈질했다.

그가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럭 님과 제가 한 마리씩 잡았습니다.”

“중복 수상이 금지 규정만 아니라면 대어상까지 받았을 걸세.”

“꿈에 그리던 제 인생 최대어를…….”

늘 해맑게 웃기만 하던 김혁준도 이번에는 감격에 겨워 말을 끝맺지 못했다.

“자세한 건 식사나 하면서 얘기하지. 어서 가세.”

뒤쪽에서 걸어가던 나는 김혁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손끝에서 흔들리는 금빛 감성돔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불운으로 점철되었던 그의 고단했던 삶에 작은 서광을 비춰 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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