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61화 (61/130)

[제61화] 버킷리스트

마지막 낚시라니.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그런데 갑자기 인기척을 느낀 김혁준이 고개를 뒤로 돌렸을 때,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물병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처음 그와 대면했을 때, 왠지 모를 초췌한 모습에 잠을 설쳐 피곤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지만 방금 전 밤바다를 비추는 낚싯배의 서치라이트가 김혁준의 얼굴을 훑고 지나던 순간, 나는 그의 얼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 같았다.

눈가에 서린 어두운 그림자.

쾌활한 목소리와 서글서글한 눈매에 가려 느낄 수 없었던 그것은 오랜 병마와 싸운 흔적처럼 보였다.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몹시 당황하며 물병을 주워 들던 순간, 백정철의 음성이 귓가를 울렸다.

‘이번 대회에 나가려는 걸 내가 말렸더니 혼자서 신청을 해 놓았지 뭔가.’

‘자세한 건 프라이버시 차원이니까 말해 줄 수 없고…….’

‘자네의 페이스메이커는 되어 줄 걸세.’

‘자네가 함께 있어서 안심이 되네.’

나와 김혁준을 한 조로 묶어 주고 안도하던 백정철의 모습이 눈가에 아른거렸다.

마지막 낚시.

불길한 세 글자의 단어가 연상되면서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한다.

내 추측이 틀리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그가 오늘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경직된 얼굴 근육을 억지로 펼쳐 보이며 그에게 물었다.

“낚시는 오랜만이라고 들었는데, 많이 설레는 모양입니다.”

“밤바다가 너무 좋아서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상쾌해지네요. 하하.”

그는 소풍을 나서는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눈을 깜빡거렸다. 당황한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돌아서려는데, 김혁준의 해맑은 음성이 튀어나왔다.

“우리 파이팅 한 번 합시다.”

나는 그를 따라 조용히 주먹을 쥐어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치는 것 같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젊은 날의 뜨거운 감격을 다시 느껴 보고 싶어서였을까.

그의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던 순간, 한 가지 결심만은 확고했다.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낚시에 도전했는지 모를 그와, 한 편의 멋진 드라마를 펼쳐 보리라.

* * *

“김혁준 조사님, 강유록 조사님. 두 분 내리세요.”

두 명씩 차례로 하선을 하던 중에 어느덧 우리 일행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뱃머리로 뒤뚱뒤뚱 달려갔다.

“11시에 낚시 종료입니다. 때 되면 종료하고 여기서 대기하세요. 그럼 이따 다시 태우러 오겠습니다.”

선장은 그렇게 말하고 거칠게 배를 후진시켰다.

배에서 비추는 서치라이트가 사라진 갯바위 위에는 어슴푸레한 달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혁준 님! 발 조심하세요. 많이 어둡네요.”

“괜찮습니다. 오래 전이지만 한 번 와 봤던 포인트입니다. 자라목 포인트라고 불리는 곳이죠.”

그나마 다행이다.

대회에서 허락한 낚시 시간은 길지 않다. 포인트의 특성을 파악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

나야 딱히 주변을 탐색할 필요가 없지만, 김혁준의 경우에는 그래도 친숙한 포인트가 유리할 테니까.

짐을 내려놓고 갯바위 주변을 둘러보니 낚시하기 편한 평평한 장소가 두어 군데 눈에 띄었다.

김혁준이 눈짓으로 내게 갯바위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우럭 님은 어디가 편하시겠습니까? 먼저 고르세요.”

“혁준 님이 먼저 정하세요. 저야 아무 데나 괜찮습니다.”

“그럼 제가 오른쪽에서 해 볼게요.”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갯바위 위에 섰다.

두레박으로 바닷물을 퍼서 벽돌처럼 얼린 크릴 미끼 덩어리를 담가 놓고, 낚싯대를 펴기 시작했다.

5미터의 긴 장대에 스피닝 릴을 장착하고, 구멍찌와 수중 봉돌을 차례로 연결하던 중이었다.

무심코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려보았더니, 김혁준이 씩 웃으며 자신의 릴을 흔들어 보였다.

자랑하듯 그가 내민 것을 살펴보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것처럼 보였다.

“새로 장만하신 모양입니다.”

“오늘을 위해서 큰맘 먹고 샀죠. 아마 내가 샀던 릴 중에는 제일 비쌀 겁니다.”

“그런데 옆에 반짝거리는 그건 뭔가요?”

릴의 회전부 아래쪽에 작은 문양이 눈에 띄었다. 은백색 하트 모양이었는데, 수작업으로 만든 스티커처럼 보였다.

“아…… 이거요? 감성돔 비늘로 만든 건데, 보기 이상한가요?”

“멋집니다. 누가 만들어 주셨나 보군요?”

“아닙니다. 제가 만들어서 붙였어요. 오래 전 대회에서 잡은 비늘로요.”

“아…….”

대물 감성돔의 비늘을 전리품처럼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뭐라 말할 틈도 없이, 김혁준이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아, 시작해 봅시다. 오늘 감성돔이 좀 들어와 있으려나?”

김혁준은 수심 봉돌이 달린 채비를 바로 발밑으로 살짝 던지고 나서, 다시 채비를 회수했다.

“아직 들물이 시작되기 전이라 그런가요? 이쪽은 수심이 그리 깊지 않네요. 10미터 정도로 시작하면 될 듯요.”

그의 말에 나는 머릿속 어탐기를 가동해 보았다.

내 발치 부근에 노닐고 있는 이름 모를 잡어 떼가 눈에 띄었다. 김혁준의 말처럼 수심은 10미터 안팎이었다.

포인트 추첨 운은 일견 나쁘지 않아 보였다.

김혁준이 자리한 오른 편에는 감성돔의 흔적이 또렷했다. 다만 그의 정면으로 멀리 떨어진 수중여(물속에 형성되어 있는 바위) 근처였다.

이때부터 김혁준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았다.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물의 흐름을 살피던 그가 밑밥을 주걱으로 퍼서 멀리 투척하기 시작했다.

그가 던진 밑밥이 조류를 따라 정확하게 물고기들을 향해 부옇게 하강하는 모습을 나는 속으로 감탄하며 지켜보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중 봉돌을 떼어 내고 튼실한 미끼를 끼우더니, 김혁준은 면사 매듭의 위치를 10미터 정도 위쪽으로 조정했다.

내가 놀란 이유는 그가 밑밥을 뿌린 지점의 수심이 눈대중으로 20미터 정도였기 때문이다.

의아한 눈길을 의식했는지 그가 나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예전 기억이 나네요. 저 앞쪽으로 10미터 정도 깊은 곳에 수중여가 있었지요. 우선 그곳을 공략해 보려고요.”

놀라운 기억력과 상황 판단.

범상치 않은 실력자임은 분명했다.

휘이익!

그의 채비가 우아한 포물선을 그렸다. 말할 것도 없이 채비가 안착한 지점은 수중여의 바로 위쪽이었다.

가만! 나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나는 서둘러 발밑으로 밑밥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잡어들을 한곳에 묶어 두려는 목적이었다. 곧바로 멀리 20여 미터 정면을 쏘아보며 그곳에도 밑밥을 투척했다.

멀리 떨어진 수중여의 끝자락.

나는 그곳을 집중 공략할 계획이었다.

휙! 처얼썩!

활시위를 떠난 채비가 20여 미터를 날아갔다.

수면 위에서 채비가 정렬되고 나자 내 빨간색 구멍찌가 슬금슬금 오른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온다!

한 마리의 은빛 생명체가 고개를 들고 덥석덥석 밑밥을 주워 먹으며 내 미끼로 근접하고 있었다.

나는 느슨해져 있던 줄을 약간 팽팽하게 만든 뒤, 호흡을 멈췄다. 어디선가 바람을 가르는 경쾌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쐐애액!

군더더기 하나 없는 간결한 챔질.

김혁준은 잇몸을 드러내며 나를 향해 활짝 웃었다.

“히트!”

좋은 출발이었다.

물고기를 바닥에서 띄우려 그가 이를 악물고 낚싯대를 곧추세웠다. 새로 샀다는 그의 릴에서 드랙이 풀리는 소리가 아름다운 종소리처럼 울려 왔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빨간 구멍찌가 사정없이 수면 아래로 빨려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는 낚싯대를 번쩍 치켜들었다.

쒸이익!

위쪽으로 솟구치던 내 초릿대가 철컥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낚싯대로 고압 전류가 흘렀다.

뒷덜미에서 분출되는 흥분을 만끽하면서, 나는 놈의 저항에 온몸으로 맞서고 있었다.

“와아! 우럭 님도 한 마리 걸었군요.”

“조금…… 큰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조금만 큰 놈이 아니었다.

지난여름에 보람이와 선상 낚시로 잡았던 감성돔은 대략 4짜 안팎. 지금 내 바늘에 걸린 녀석은 못해도 5짜는 됨직한 사이즈였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바람에 김혁준의 파이팅을 살펴볼 틈도 없었다.

낚싯대를 쭈욱 들어 올리고, 물고기가 달려가는 방향으로 낚싯대를 내리면서 휘리릭 릴을 감고…….

짜릿하다…….

어느덧 약간의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자, 김혁준 쪽으로 눈길을 돌려보았다.

그는 벌써 뜰채를 길게 펴고 절벽 아래로 내려 뭔가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언뜻 비친 은백색 물고기는 감성돔이 틀림없었다. 잠시 후 뜰채에서 꺼낸 그것을, 김혁준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견 보기에 그리 큰 감성돔은 아니었다.

기준 체장인 25센티미터를 넘겨 3짜 정도의 크기로 보였다.

잠시 후 내 발밑까지 끌려온 감성돔을 보고 김혁준이 뜰채를 들고 달려와 주었다.

“와우! 아주 튼실한 놈이 올라오는군요.”

“고맙습니다.”

펄떡펄떡!

뜰채에 담겨 올라오자마자 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5짜 감성돔. 나는 얼른 달려가 놈을 주워들고 뒤쪽의 삼각대를 향해 포즈를 취했다.

“축하합니다.”

“저도 축하해요.”

낚시를 시작하고 불과 20분 만에 기록한 첫수.

우리는 서로를 축하하며 각자의 살림망(물속에 물고기를 산 채로 보관하는 그물망)에 물고기를 집어넣었다.

대회 규정상 죽은 물고기는 계측에서 제외된다.

다른 곳에서 가져온 물고기로 속임수를 쓰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이다.

시작이 좋다.

빠른 첫수도 첫수지만, 수중에 보이는 적지 않은 개체수가 고무적이었다.

그렇지만 바다의 상황은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지체 없이 다음 행동을 개시했다.

쉬익! 쐐액!

두 사람의 채비가 동시에 손끝을 떠났다. 그리고 잠시 후 거짓말처럼 두 사람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튀어나왔다.

“왔어!”

“히트!”

김혁준의 낚싯대 휨새로 보아 이번에는 그가 엄청난 녀석을 걸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눈을 찡긋거리며 힘찬 릴링을 이어 갔다.

쩌러러렁~~

김혁준의 릴에서 경쾌한 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그 리듬에 맞춰 여유롭게 물고기를 끌어당겼다.

푸드덕!

이번에는 내 물고기가 먼저 수면에 안착했다. 뜰채로 3짜 중반의 감성돔을 올린 직후, 나는 곧바로 김혁준에게로 달려갔다.

“에구구. 장난 아닌데요?”

낑낑거리면서도 김혁준의 입가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우와! 대단한 게 올라왔어요.”

마침내 발밑까지 끌려온 물고기를 확인하고, 나는 탄성을 질렀다. 뜰채가 부러질까 조심조심 들어 올린 그것은 6짜 중반으로 나로서는 처음 보는 대물 감성돔이었다.

“휴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김혁준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그윽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이런 녀석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오랜 기간 낚시를 중단해야 했던 그에게는 얼마나 간절한 물고기였을까.

지친 기색의 그를 뒤로하고 나는 두 마리의 감성돔을 각각의 살림망에 넣고 신이 나서 달려왔다.

포인트에 도착하기 전에 품었던 우려와 걱정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김혁준에게서 컨디션 난조가 감지되었다. 바닥에 앉아 있던 그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미안합니다. 잠깐 쉬고 있었어요. 잠깐이면 될 거예요.”

내 추측이 틀리기를 바랐건만…….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예사롭지 않았다.

김혁준이 히죽 웃으며 걱정으로 가득한 내 눈동자를 응시했다.

“걱정 마세요. 오늘 반드시 내 생애 최대어를 잡을 테니까요. 내 버킷리스트에 있는 물고기는 7짜 감성돔이에요.”

버킷리스트.

생전에 꼭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이며 그가 내뱉은 말이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 해맑아서, 오히려 슬픈 음악 소리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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