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60화 (60/130)

[제60화] 푸른섬 낚시대회

김혁준.

목소리로 전달된 그의 첫인상은 쾌활함 그 자체였다.

“강유록 프로님? 전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저와 함께하신다고요. 그냥 우럭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럼 편하게 우럭 님이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대회 참가 신청은 제가 하면 되겠습니까?”

“벌써 신청했어요. 간단해요. 이름과 전화번호만 있으면 되니까요. 주소는 백정철 형님께서 따로 알려 주셨고요.”

내 주소를?

머리가 뒤죽박죽이라 기억나지는 않지만, 간밤에 내가 알려 드린 모양이다.

김혁준은 서울 말씨였지만, 약간의 경상도 사투리가 배어 있는 억양이었다. 그와 대회 당일 새벽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럼 슬슬 대회 요강을 알아볼까?

주의 사항이 많다고 하던데.

잠시 후 인터넷을 검색하던 내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지고 말았다.

우승 상금이 무려 2천만 원!

우럭 낚시 대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금액에서 대회의 규모와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승자, 아니 우승조는 25센티미터 이상의 감성돔을 대상으로 무게를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우승 말고도 2위와 3위까지는 조별로 시상을 하고, 그 밖에도 대어상, 잡어상 등 개인 부문 시상들도 눈을 휘둥그레 커지게 만들었다.

“베타야. 이번에 잘만 하면 또다시 죽방 멸치를 사 줄 수 있겠구나.”

“야~~~~ 홍!”

석 달 기간의 긴축 재정을 꾸려 가던 나로서는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용감한 어부 출연료도 받았고, 거기에 대회 상금까지 타게 된다면……… 조기에 적자 탈출을 할 수도 있겠다.

어차피 낚시는 운칠기삼.

실력도 실력이지만 낚시는 특히 돌발 변수가 많이 작용하는 종목이 아닌가.

더구나 이번 대회는 150개의 포인트로 분산되어 진행되다 보니 무작위로 정해지는 포인트야말로 승부의 최대 요건이 아니겠는가. 포인트 운이 따른다면 해 볼 만하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같은 조의 두 사람이 합심한 결과로 우승 트로피를 가져가는 방식.

‘낚싯대를 손에서 놓은 지가 오래되었어. 그 친구가 낚시는 예전 같지가 않을 거네.’

그렇지만 한때 프로 조사를 꿈꿨던 사람이고, 심지어 백정철의 제자였는데.

아무리 오래 쉬었다 한들 그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

아마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는 덕담이었을 게다.

아무렴 갯바위에 한 번밖에 가 보지 못한 일천한 경력의 나보다 못하겠는가.

나만 제 몫을 해내면 우승은 아니더라고 수상권은 노려볼 수 있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가슴에 차오른 풍선이 더욱 크게 부풀었다.

그런데 이건 좀…….

대회 주의 사항을 읽어 내려가던 내 눈동자가 한 곳에 멈췄다. 별로 달갑지 않은 조건이 달려 있었다.

포인트 내에서 개인 촬영은 가능하지만, 참가 선수만이 입장할 수 있다는 엄격한 규정이었다.

그 의미는 사심희와의 동행은 불가하다는 말이었다.

하는 수 없지. 삼각대를 가져갈 수밖에.

사심희가 적잖이 실망하겠지만, 규정을 따르려면 다른 방도가 없다. 이번 촬영은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해야 할 것 같다.

일단 필요한 물품부터 챙겨야겠군.

늦은 오후였지만, 나는 후다닥 외출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나가기 귀찮아하는 베타를 강제로 등에 업은 채.

그런데 상금이 정말 대단하군. 일등을 한다면 어반자TV의 반응도 장난이 아닐 테고.

고동우의 낚시점으로 향하는 도중, 내 얼굴에는 배시시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 * *

수일이 지나고 드디어 대회 당일.

나는 부스스한 몰골로 남해 지족항의 민박집을 나섰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하루 전날 출발해서 친숙한 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새벽 1시.

밖에는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비추고 있을 뿐,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에 오르기 전에 나는 항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살이 빠르기로 소문난 지족해협.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유유히 물이 흘러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하늘에는 희뿌연 달빛 사이로 옅은 구름이 흩어지고 있었다.

바람은 2m/s 안팎의 북서풍으로 낚시하기에는 최적이었다. 다소의 일교차는 있으나 낮에는 20도 정도의 전형적으로 쾌청한 가을 날씨를 기상청은 예고했다.

낚시 대회가 열리는 미조항까지는 대략 25분 거리.

고요의 바다와 시원한 바람을 뒤로하고 나는 천천히 차에 올랐다. 선수 등록 확인을 위해 새벽 2시까지 도착해야 했다.

새벽의 미조항은 그야말로 다른 세상이었다.

대회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의 차량들 때문에 약간 먼 곳에 주차를 해야 했다. 낚시 가방은 어깨에 메고 한 손에는 밑밥통, 다른 손에는 보조 가방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도중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을 확인해 보니 김혁준이었다.

“벌써 도착하셨습니까?”

“네. 우럭 님. 지금 어디세요?”

“주차 마치고 밑밥이랑 미끼 사려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잘됐네요. 저도 지금 낚시점 앞인데. ○○낚시점으로 찾아오실 수 있겠어요?”

“저기 보이네요. 금방 가겠습니다.”

대회 일정에 맞춰 미조항의 낚시점이나 식당들은 거의 대부분 불을 밝히고 있었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낚시점 앞까지 다가가 보니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였다.

적당한 키에 몸은 약간 왜소해 보이는 사내였다. 검은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은색 안경테 아래로 선한 눈동자가 초승달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성큼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강유록이라고 합니다.”

“김혁준입니다.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 많았죠? 용감한 어부에 나온 얼굴보다 훨씬 미남이시네요.”

“하핫. 그런 농담을. 아무튼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혁준 님은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여기서 멀지 않아요. 진주에서 한 시간 정도 걸렸어요.”

그에 대해 내가 아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한때 백정철의 제자였다는 사실과 나이가 마흔이란 것 말고는.

우리는 크릴 미끼와 밑밥을 구입하고 대회장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우와! 사람이 장난이 아니군요.”

“우럭 님은 이런 대회는 처음이신가 보군요.”

“그럼 혁준 님은 처음이 아니시라는 말씀인가요?”

서글서글한 그의 말투가 어쩐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농담처럼 그렇게 물었더니 약간 애매한 반응이 돌아왔다.

김혁준은 씩 웃기만 할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어쩐지 처음이 아니라는 눈빛인데…….

의문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아 풀렸다.

새벽 1시 50분.

남해 미조항의 수산물 창고 앞 공터에는 에는 수많은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부둣가에는 차량들이 주차할 빈틈을 찾아 서치라이트를 번뜩였고, 구석에 웅크린 조사들이 담배 연기를 내뿜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어이! 두 사람. 왔으면 즉각 내게 전화하랬잖아.”

돌아보니 나와 김혁준을 번갈아 쳐다보며 웃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백 프로님! 그렇지 않아도 찾아보려던 참이었습니다.”

“스승님! 오랜만입니다.”

김혁준은 백정철을 스승이라 불렀다.

한번 제자는 영원한 제자라는 말을 말해 주듯.

“늦지는 않아 다행이군. 인사시켜 드릴 분이 있네. 낚싯짐은 그냥 거기에 두고 잠깐 따라오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부랴부랴 그를 따라간 곳은 대회 개회와 시장을 위해 임시로 마련한 작은 단상이었다.

“회장님!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데려왔습니다. 일전에 제가 말씀드렸던…….”

환갑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단상 위에 놓인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그가 지그시 눈을 떴다. 나이에 비해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날카로워 보였다.

“자네가 김혁준인가?”

“네. 그렇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 대회에 나오게 되었다고? 어려운 결정을 했구먼.”

“하하. 네…….”

“10년 전이라고 들었네. 그때보다는 쟁쟁한 선수들이 많을 걸세. 아무튼 왕년의 우승자가 왔으니 나로서도 기쁜 일이지.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나.”

“그럼요. 참가에 뜻을 두었을 뿐입니다.”

우승자……?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그렇다면 김혁준이 10년 전 이 대회의 우승자였다는 말인가.

놀라고 있을 틈도 없이 백정철이 내게 눈짓을 보냈다.

“남해 낚시인 협회 회장님이셔. 이번 대회 운영을 총괄하시는 분이시고. 강 프로도 어서 인사드려.”

“아, 안녕하십니까? 강유록이라고 합니다.”

“젊은 친구구먼, 어디에서 왔나?”

“서울, 아니 성남시에서 왔습니다.”

“멀리서도 왔군. 눈빛이 살아 있어 보기 좋구먼.”

“감사합니다.”

단상에서 내려와 얼떨떨한 표정한 짓고 있던 내게, 백정철이 다가왔다. 김혁준은 짐이 있는 곳으로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자네에게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네.”

“10년 전의 우승자였다는 게 사실인가요?”

“사실일세. 그때는 철저하게 개인전 방식이었고, 혁준이가 우승을 했었지. 딱 자네만 한 나이였을 거야.”

“그런 대단한 분을…….”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까.”

“……?”

과거는 과거라니…….

여전히 똑같은 소리였다. 팔이라도 부러져 실력 발휘가 어렵다는 말인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더 캐묻고 싶었지만 나는 떼려던 입술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백정철의 얼굴을 스쳐가는 어두운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

화제를 돌리고 싶었는지 백정철은 다른 얘기를 불쑥 꺼냈다.

“저 영감님도 대단하신 분이야. 30년 전에 이 대회를 석권하셨지.”

“30년 전이라고요? 푸른섬 낚시 대회는 이번이 15회라고 알고 있는데요.”

“남해군이 후원하기 시작한 게 15년 되었지만, 그 전에도 규모는 작았지만 같은 이름의 대회가 있었네. 저 영감님이 첫 대회부터 내리 삼 연패를 하신 분이지.”

“아…….”

형식적인 탄식을 내뱉고 있었지만 내 머리는 다른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혁준이 10년 전의 우승자였다니…….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몸조심하고.”

“아유. 걱정 마시고 얼른 일 보세요.”

김혁준에게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거두면서, 백정철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대어상이라는 개인 시상도 있으니까 잘해 보게. 자네가 함께 있어서 안심이 되네. 그럼.”

백정철은 그렇게 말하고 단상 쪽으로 돌아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마이크를 들고 연단에 나타났다.

“자아, 그럼 지금부터 제15회 푸른섬 낚시 대회를 개최하겠습니다. 참가하신 분들께서는 단상 쪽으로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멘트였다.

잠시 후 아까 인사를 나눴던 노인이 연단에 올라섰다.

“안녕하십니까? 남해 낚시인 협회 회장 이해구가 인사 올립니다. 오늘 화창한 가을날을 맞아 이렇게 찾아 주신 열혈 조사님들께 심심한……….”

그야말로 심심하고 지루한 개회사였다.

이제야 끝났구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남해 군수를 대신해서 누군가가 나와 마이크를 잡았고, 그다음에는 대회를 후원하는 조구사 대표가 나와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이러다 날 새는 거 아이가?”

“그러게 말여. 밑밥이 다 썩겠구먼. 낚시는 언제 하는 거여?”

“이 많은 사람들 자리 추첨도 해야 하는데 뭔 잔소리가 이렇게 길어? 무신 국민핵교 입학식도 아니고.”

주변에 서 있던 연세 지긋한 분들의 푸념이 이어졌다.

속으로 킥킥거리며 김혁준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보조 가방에 걸터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귀에 꽂힌 이어폰으로 미루어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인드 컨트롤이라도 하는 걸까?

다리도 아프고 해서 나도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다가 다시 김혁준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많이 피곤한 모양이군.

가만히 보니까 그는 아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왕년의 우승자…….

그런 경력을 가진 분이 낚시를 접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백정철은 왜 여전히 내게 개인상을 노리라는 말을 한 걸까? 그리고 돌아설 때 내게 미안해하던 그 표정은 무슨 의미였을까?

수많은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있을 때 김혁준이 눈을 떴다.

“내가 깜짝 잠이 들었나 보네요.”

“너무 곤히 주무셔서…….”

“미안합니다. 아! 이제 자리 추첨을 하나 보네요. 어서 가 봅시다.”

김혁준은 쾌활한 목소리로 내 소매를 잡고 일어섰다.

그와 함께 포인트를 배정받고, 선착장에서 지정된 배를 타고,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낸 기암절벽들을 지나치고 있을 때였다.

김혁준은 배의 난간을 짚고 서서 검은 바다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혼잣말로 뭔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은 내가 생수 한 병을 들고 그의 등 뒤로 다가서던 찰나였다.

어떤 영화에서 들었던 대사와 비슷한 말이었다.

낡은 배의 엔진 소음 때문에 또렷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의 나직한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 낚시에 딱 좋은 날씨로군.”

그 한마디에 머릿속에 흐트러져 있던 모든 퍼즐 조각들이 화르륵 제자리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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