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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59화 (59/130)

[제59화] 출전의 서막

9월의 마지막 주를 여는 어느 날 저녁.

나는 서현역 근처의 식당문을 열었다.

종업원을 따라 방문을 열자마자 너무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

“헉! 이게 누구십니까?”

“불청객이지 누군 누군가. 어서 들어오시게.”

방 안에는 백정철 프로가 활짝 웃고 있었다.

“오신다고 말씀을 하셨으면……. 너무 반갑습니다. 백 프로님!”

“사실은 갑자기 오게 됐어. 부담스러워할까 봐 귀띔하지 말라고 했으니 황 프로는 나무라지 말게.”

황선태가 내 눈을 피해 키득거렸다.

장난스럽게 그를 쏘아면서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원래는 황선태를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낚시점 인수 과정에서 호의를 베풀고, 특히 용감한 어부와 끈을 이어 준 것을 보답하려고 만든 술자리였다.

그런데 또 한 명의 반가운 손님이 와 있을 줄이야.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마음껏 들자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오늘은 제가 황 프로에게 내려는 자리였습니다. 선배님이시지만 그건 곤란합니다.”

“어허! 그래도 명색이 낚시 선배인데.”

“그렇지 않아도 선배님께도 인사를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워낙 바쁘신 분이라 감히…….”

“잔말 말고 어서 주문이나 하게.”

일반적으로 운동하는 분들의 후배 사랑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중간에 나가서 몰래 계산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일단 주문부터 하기로 했다.

“여기 돌돔 중짜로 해 주세요. 매운탕은 따로 주시는 거죠?”

“그럼요. 술은요?”

슬쩍 두 손님의 눈치를 살폈더니, 눈동자가 몹시 반짝거렸다. 생선회에 술이 빠지면 되겠냐는 무언의 표시였다.

“일단 소주 한 병에 맥주 두 병 주세요.”

종업원이 나가자마자 백정철의 칭찬 세례가 쏟아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너무 훌륭하게 내 빈자리를 메워 줬어. 아니, 나보다 훨씬 잘하던데?”

“아이고, 그건 아닙니다.”

“고정 출연 제안도 거절했다고 들었네. 나랑 자주 볼 수도 기회였는데 아쉽더군. 하지만 이해는 하네.”

“…….”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말잔치가 벌어졌다.

황선태는 새로 시작한 프로그램에 대한 고충을 늘어놓았고, 백정철은 점점 늘어만 가는 한국의 낚시 인구에 대한 기대감과 책임감을 연설했다.

바다낚시의 명인이라 불리는 백정철.

그리고 배스 낚시의 떠오르는 신예 황선태.

내가 그들에게 불쑥 질문을 꺼낸 것은 먹음직스러운 돌돔회가 나오고, 드디어 첫 잔을 기울이던 시점이었다.

“캬! 역시 회는 돌돔이지. 자아, 얼른 한 점씩 드시게.”

“감사합니다. 저어, 그런데…… 낚시 올림픽이라 할 만한 대회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올림픽?”

뜬금없는 내 질문에 백정철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자 황선태가 선뜻 나섰다.

“당연히 에프엘더불유(FLW, Fishing League Worldwide)죠.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배써(배스 낚시꾼)들이 참가하는 프로 리그잖아요.”

“미안하지만 배스 말고, 이를테면…… 바다낚시 중에서 빅게임에 해당하는 대회 말이야.”

단숨에 술잔을 털어 넣은 백정철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우리 우럭 님의 포부가 아주 큰가 보구만.”

“아닙니다. 제가 나가려는 게 아니고…….”

사실은 준서의 꿈을 알게 되면서부터 품게 된 질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물고리를 잡아 금메달을 따겠다던.

“가만 있어 보자. 빅게임이라면 우리 백상효 프로님이 전문이긴 하지. 뭐가 있더라…….”

백상효 프로는 일명 ‘백상어’라 불리는 우리나라 최고의 빅게임 전문 조사이다. 그가 나오는 TV 프로그램은 내가 빠지지 않고 챙겨 보곤 했다.

“바다낚시는 세계 대회가 워낙 많아야 말이지. 어종별로 나라별로 큰 대회들이 많아. 내가 알기론 빅게임이라면 멕시코 쪽이 규모가 제일 크다고 알고 있어. 로스카보스라는 곳에서 열리는 큰 대회만 해도 세 개나 있지.”

곁에서 듣고 있던 황선태가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끼어들었다.

“비즈비 블랙 앤 블루 대회는 저도 알아요. 상금 규모도 어마어마하다고 하던데요. 그 대회 말고도 튜나 잭팟이라는 참치 낚시 대회도 있고, 아무튼 국제 대회는 꽤 많아요.”

두 사람의 말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국의 망망대해에서 엄청난 괴어를 잡고 활짝 웃는 준서의 얼굴이 머릿속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감사합니다. 참고해서 인터넷 검색을 더 해 보겠습니다. 자아, 한 잔씩 제가 올리겠습니다.”

두 사람의 빈 잔을 채우고 나자, 백정철의 눈이 갑자기 동그래졌다.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 표정이었다.

“아! 자네가 낚시 대회에 관심이 있는 것 같으니 하는 말인데…….”

“……?”

“우리나라에도 아주 좋은 낚시 대회가 있지. 혹시 남해에서 열리는 ‘푸른섬 낚시 대회’ 소식 들었나?”

솔직히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봄에 안흥항에서 열린 우럭 낚시 대회를 참가한 적이 있었지만, 크고 작은 여러 대회에 관심을 품을 새도 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백정철의 말 중에서 ‘남해’라는 단어가 확 들어왔다.

“남해에서 열리는 대회인가요?”

“이런……. 그 좋은 실력을 가지고 대회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구먼. 국내에서 열리는 갯바위 낚시 대회 중에서는 규모가 꽤 크지.”

“제가 아직 조력이 얼마 되지 않아서 모르는 게 많습니다. 대상어는 뭔가요?”

“감성돔일세. 남해군의 대표 어종 아닌가.”

“감성돔이라…….”

갈수록 구미가 당긴다.

갯바위 낚시는 고동우와 즐겼던 거제도 참돔 낚시 이후로 한동안 뜸했다.

내가 호기심을 보이자, 백정철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무튼 잘됐네. 이번에 그 대회에 한번 출전해 보면 어떻겠나?”

“……제가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어리둥절했지만, 내 입은 나도 모르게 자세한 사항들을 묻고 있었다.

“지금 신청하면 되나요?”

“사실은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어. 10월 5일이니까 바로 다음 주라네.”

“그럼 신청이 벌써 끝나지 않았을까요?”

“물론 마감이 됐지. 하지만 기회는 열려 있네.”

“무슨 말씀이신지…….”

“사정이 있어서 딱 한 자리가 남았거든. 내가 말해 주면 그 자리를 얻을 수 있다네. 내가 그 대회에서 기술 고문을 맡고 있거든. 별로 하는 일은 없지만 말이야.”

여전히 이해는 가지 않지만 상관없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자격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나는 서슴지 않고 출전 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객관적으로 점검해 볼 좋은 기회라는 판단이 섰다.

또한 대회가 열리는 주말에 준서와의 첫 훈련 일정이 있지만, 날짜가 겹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자격이야 충분하지. 무슨 겸손인가.”

“사실은 갯바위 낚시는 이번이 두 번째라 그렇습니다.”

“상관없네. 어차피 하루 놀다가 오면 그만이지. 자아. 그럼 한 잔씩 더 들지.”

이번에는 황선태가 건배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우럭 님의 감성돔 낚시 대회 우승을 위하여!”

“위하여!”

우승은 좀 부담스러운데…….

어정쩡한 내 표정을 살피던 백정철이 냉정한 평가를 내놓았다.

“섭섭하게 생각지는 말게나. 관례상 유명 프로 조사들만 없을 뿐이지 전국의 쟁쟁한 고수들이 죄다 출전하는 대회야. 우승이라는 부담은 내려놓고 그저 즐긴다고만 생각하게. 그게 자네의 장점 아니겠나.”

“하하. 그럼요.”

그렇다고 너무 정색을 하는 것 같아 약간 의아했다.

그래도 대회에 나가면서 누구나 큰 꿈을 꾸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백정철이 내 실력을 폄훼한다는 오해는 없었다.

그가 굳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술잔을 단숨에 털어 넣고 나서 백정철이 한 장의 티켓이 남은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대회는 2인 1조로 신청을 하게 되어 있어. 포인트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올라가게끔 하는 거지. 우승자도 당연히 조별로 시상하는 방식이네. 그런데 어떤 조에서 한 명이 미정인 상태로 있었던 것일세.”

“2인 1조로요? 특이하네요.”

“작년부터 그렇게 규정이 바뀌었네. 부정행위 단속에 한계가 있다 보니까 그렇게 한 것도 같은데 아무튼 그렇네.”

“그럼 제 파트너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말씀 아닙니까?”

듣고 보니 그랬다.

누군가의 짝이 확정되지 않아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거라면…….

“바로 맞았네. 내가 아는 사람인데 지금 자네와 함께 출전하면 좋겠다고 부탁하고 있는 거네.”

그 사람이 누군지 궁금한 것은 당연했다.

“그분이 누군데요?”

“한때 내 제자였던 사람이야. 올해 마흔이니까 자네보다 열 살 정도 위겠구만.”

“백 프로님 제자였다면 실력이 상당하겠는데요?”

“그렇지 않아. 한동안 낚싯대를 놓고 살았으니까. 사실은 이번 대회에 나가려는 걸 내가 말렸더니 혼자서 신청을 해 놓았지 뭔가.”

낚시야 어떤 사정으로 중단할 수 있겠지만 대회에 나가려는 사람을 만류했다니 약간 의문이 들었다.

호기심으로 덮인 내 표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백정철은 말을 덧붙였다.

“자세한 건 프라이버시 차원이니까 말해 줄 수 없고, 그냥 즐기다 오면 좋겠네. 그 친구가 낚시는 예전 같지가 않다네. 하지만 자네의 페이스메이커는 되어 줄 걸세. 우승까지는 기대하지 말라는 내 말은 다른 뜻이 아니었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제자들 중에서 일찍 포기하고 떠난 사람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실력이 부족해서 퇴출을 당했거나.

다만 백정철이 그를 언급할 때마다 애정이 담긴 말투로 변했다는 것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자아, 그럼 본격적으로 마셔 볼까?”

“좋습니다!”

지금까지 마신 것도 적지 않은데 백정철은 또다시 술잔을 번쩍 들었다. 그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술잔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취중의 백정철은 기분이 몹시 좋아 보였다.

“자네가 하는 방송. 언제 나도 한번 초청해 주겠나?”

“정말입니까? 한 수 가르쳐 주신다면 저야 영광이지요.”

솔깃한 말이었지만 취중 약속인지라 크게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았다.

안주가 떨어지자 매운탕을 주문하고, 유쾌한 술자리는 길게 이어졌다.

슬슬 술자리가 파할 무렵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도중에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술값을 계산하려는 목적이었다.

“얼마 나왔습니까?”

“벌써 계산하셨는데요?”

“네에? 누가요?”

“그 TV에 나오시는 분……. 나이 약간 드신.”

아뿔싸!

한발 늦었구나. 아까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선수를 쳤을 때 알아챘어야 했다. 방송국에서 두둑한 출연료가 나와서 내가 사야 하는데.

식당을 나와 헤어지려 할 때 백정철이 내 옷소매를 붙잡았다.

“그냥 가려고? 이렇게 만날 기회도 많지 않은데. 2차는 자네가 사게. 오다가 보니 저쪽에 호프집이 있더군.”

“이번에는 정말로 제가 사는 겁니다.”

“불청객 주제에 내가 결례를 했으니, 이번에는 자네가 낼 기회를 주는 거네. 하하.”

“좋습니다. 가시죠!”

우리는 비틀거리며 또다시 근처의 선술집을 찾았다.

* * *

“아이고, 죽겠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깨지는 것처럼 욱신거렸다. 근래에 경험하지 못했던 숙취였다.

어제 어디서 마셨더라?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2차로 맥주를 마신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뒤로 필름이 군데군데 끊어져 있었다. 억지를 쥐어짜 보니 2차가 끝이 아닌 것도 같았다.

갑자기 타는 듯한 갈증이 밀려와 나는 간신히 냉장고까지 기어갔다.

“야~~~ 옹!”

“알았다. 물 좀 마시고 밥상 대령하마.”

벌컥벌컥 냉수를 한 사발 들이켰더니 약간 정신이 들었다.

어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도 모르겠네.

낚시 대회 주의 사항은 인터넷에서 검색해 찾아보라는 말까지는 들은 것도 같고.

계산은 내가 한 게 맞나? 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바닥에 널브러진 바지를 뒤적거렸다. 지갑을 꺼내 보니 카드 옆에 고이 접어 놓은 종잇조각이 눈에 띄었다. 호프집의 상호가 적인 영수증이었다.

그래도 2차는 내가 샀나 보네.

무심코 지갑을 닫으려 하던 순간, 거기서 뭔가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가만히 주워 보니 백정철의 명함이었다.

그런데 명함 뒤쪽에 다른 사람의 이름과 휴대폰 전화번호가 휘갈긴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김혁준. 010―300X―128X

아! 그랬었지.

백정철이 낚시 대회에 함께 출전하라고 했던 그 사람.

좋은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줄 거라고 했던가?

서로 연락해서 참가 신청을 마무리하고, 당일 약속도 잡으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에게 연락을 취한 것은 라면을 먹고 적당히 숙취가 가신 한참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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