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마스터
준서를 가르치고 싶다는 장재준 영감.
그의 진지한 표정으로 미루어 결코 즉흥적인 결정은 아닌 것 같았다.
“유튜브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저도 기억합니다.”
“주꾸미를 잡고 기뻐하는 아이의 웃음이 이상하게도 잊히지 않더군요. 그 방송분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재준 영감의 눈동자가 아련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럭 님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평생을 혼자 살아왔습니다. 제게 인생의 낙이 뭐가 있겠습니까? 저 아이가 훌륭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싶군요.”
휘이익! 철썩!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준서가 날린 채비가 멀리 날아가 수면에 안착했다.
“준서야! 아주 잘했다.”
“정말이죠? 할아버지.”
“그래. 이제부터는 찌를 잘 살펴보자꾸나.”
“네.”
준서에게 내밀었던 엄지손가락을 거두면서 장재준 영감이 나를 돌아보았다.
“낚시는 학원처럼 정식으로 가르쳐 주는 데가 없지요. 저렇게 잠재력과 열정이 있는 아이라면, 우리 낚시꾼의 손으로 직접 키워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로서야 너무 반가운 말씀이지만…….”
어쩐 일인지 쉽게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왜 망설이고 있는 것일까?
준서의 입장에서만 생각해 보자.
수십 년의 조력과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장재준 영감이야말로 나보다 훨씬 좋은 선생님이 되어 줄 것이다.
장재준 영감이 갑자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책임감 때문이군요. 후원자를 자처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허허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캡틴 님께 맡기면 마음이 편할 겁니다. 그렇지만 모든 짐을 다 벗어 던지는 것 같아서 왠지…….”
“뭐가 걱정입니까? 우리 둘이 함께 가르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
“저는 기본기와 선상 낚시에 강하니까 그쪽을 담당하고, 우럭 님은 도보 낚시를 맡으면 어떻겠습니까.”
장재준 영감은 벌써부터 모든 계획을 세워 둔 모양이다.
“분야별로 나눠서 가르친다. 준서에게도 최적의 방안일 것 같네요. 저는 무조건 찬성입니다.”
“다행이군요.”
곧바로 세부적인 계획이 논의되었다.
큰 틀에서 나는 매월 한 번씩 준서와 좌대나 방파제에서 실전 훈련을 쌓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주말은 장재준 영감이 낚시의 기본 이론과 선상 경험을 골자로 하는 낚시 교실을 열기로 했다.
대화 도중에 문득 궁금한 것이 떠올랐다.
“저야 좌대나 방파제를 이용하면 되지만 캡틴 님은 어디서 실습을 하신다는 거죠? 어린 애들이 승선할 수 있는 낚싯배가 별로 없잖습니까?”
“그것도 생각해 두었습니다.”
장재준 영감은 선뜻 대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아이에게 눈길을 떼지 않은 채 그가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준서의 꿈이 뭐라고 하셨죠?”
“금메달이라고 하더군요. 넓은 바다에 나가 세상에서 가장 큰 물고기를 잡고 싶다고요.”
언젠가 준서가 말했던 어린아이다운 표현이었다.
그때 아이의 눈망울 속에서 오대양을 누비며 대어를 낚고 싶은 나의 욕망을 발견하고 나 또한 놀라기도 했었다.
“그러니까요……. 역시 바다로 나가려면…….”
뜸을 들이던 장재준 영감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제가 보트를 하나 사겠습니다. 언젠가 먼 바다에 나가려면 가까운 내만 낚시부터 시작해야겠지요.”
사뭇 놀라운 얘기였다.
준서를 위해 보트까지 구입할 계획이라니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돈 걱정은 마세요. 혼자 살았으니 돈 쓸 데가 있었겠습니까? 군 생활이 박봉이었지만 아파트도 하나 장만했고, 연금 때문에 밥 걱정 없이 살고 있어요. 허허.”
“그런 말씀이 아니고요…….”
가슴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따스한 온기에 숙연해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잡았어요! 잡았어요!”
준서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왔다.
가만히 보니 초릿대가 축 늘어진 것이 중치급은 되는 우럭이 걸린 모양이다.
우리는 잠시 대화를 멈추고 아이를 지켜보았다.
“어어?”
아이가 힘에 부치는 모양이다.
허둥거리는 모습이 곧 낚싯대를 놓칠 것만 같았다. 내가 슬그머니 일어나려 하자.
“가만 놔두세요. 고기를 놓치는 것도 배움의 일부니까요.”
“…….”
역시 선생님으로서는 따라갈 수가 없는 분이다.
겸연쩍게 웃으며 다시 앉았더니, 아이 쪽에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팅!
낚싯줄이 터지는 소리였다. 채비 쪽으로 조용히 휘파람을 불어 보니 물속에 좌대와 연결된 밧줄이 늘어져 있었다.
밧줄에 걸린 채비가 힘없이 끊어졌고, 우럭은 유유히 꼬리를 흔들면서 사라진 뒤였다.
준서가 허망한 얼굴로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줄을 회수한 아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게 아닌가.
“괜찮아. 이왕 도망갔으면 오래오래 살아라.”
보통의 아이였으면, 아쉬움에 한참 동안 풀이 죽을 상황이었다. 의외로 강한 멘탈까지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삼촌! 미안해요. 힘들게 구해 오신 채비였는데.”
“괜찮다. 그럴 줄 알고 하나 더 사 왔거든.”
채비를 들고 준서의 낚싯대에 매 주려고 할 때였다.
“이번에는 제가 해 볼게요.”
“할 수 있겠어?”
“아까 자세히 봐 뒀어요.”
준서는 낚싯줄에 찌와 봉돌과 다른 구성품들을 순서대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면사 매듭(찌의 위치를 고정하는 소품)은 쉽지 않아 내가 도와주었지만, 거의 다 아이가 완성한 거나 다름없었다.
자리로 돌아왔더니 장재준 영감은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습득이 빠른 아이로군요. 가르칠 게 있을지나 모르겠습니다.”
준서가 다시 캐스팅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던 장재준 영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 이럴 게 아니라 준서의 의견도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고 보니 우리끼리만 밀담을 나눴군요. 준서야! 이리 좀 와 볼래?”
나는 준서를 불러 그동안 장재준 영감과 상의한 내용을 짤막하게 들려주었다.
그냥 펄펄 뛰며 좋아할 줄로만 알았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고마워요. 삼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준서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 가만히 장재준 영감의 품에 안겼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장재준 영감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도, 가끔씩 눈을 끔뻑거리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내 눈시울도 붉어졌다.
갑자기 불어온 가을바람에 모래가 섞여 있었나 보다.
짜아식.
삼촌인 나에게 먼저 안길 줄 알았는데. 어릴 적에 할아버지랑 살았다더니, 그래서 그럴 거야…….
준서에게 두 명의 마스터가 동시에 생긴 날이었다.
* * *
다음 날.
나는 베타를 데리고 아지트로 향했다. 반나절 동안 집에서 뒹굴다가 바람을 쐬고 싶어졌다.
일요일이라 낚시점 안에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우럭 님 아니세요?”
“정말이네. 실물로 보니까 훨씬 미남이네요. 용감한 어부 너무 잘 봤습니다.”
“저는 지난번에 문어 잘 먹었어요.”
어반자의 팬들인지, 용감한 어부의 애청자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를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찾아와 주셔서.”
누가 보면 낚시점 주인인 줄 알겠다.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고동우가 어디 있나 찾아보았더니, 그는 손님들 틈에 섞여 열심히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저 형님도 참.
카운터에 앉아 계산하기도 바쁠 것 같은데.
천성이 사람과 낚시와 떠들기를 좋아하다 보니, 일일이 제품을 설명하고 추천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가 나를 알아보고 멀리서 소리쳤다.
“우럭 님! 먼저 올라가 있어라. 나중에 한가해지면 따라갈 테니까.”
베타를 안고 2층에 올라가 보니.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텅 비어 있었다. 모두들 바빠진 탓이다.
멀뚱히 앉아 낚시 잡지나 뒤적거리던 도중, 고동우가 2층에 얼굴을 내민 것은 점심시간 무렵이었다.
“휴우. 점심시간에는 우리 마나님이 교대해 주니까 숨이라도 쉬지. 정말로 사람 하나 구해야 되겠다.”
“전부터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알바가 아니라 정직원으로 뽑아야 되겠어. 추세를 봐서 필요하면 인원을 늘려야 할 것도 같고.”
반가운 소식이다.
급기야 고용 창출까지 넘보는 사장이 되었으니.
“그리고 이거. 우리 마나님이 너 주라고 가져왔더라.”
고동우는 작은 꾸러미를 테이블에 툭 내려놓았다.
“이게 뭐예요?”
“너 왔다니까 집에서 도시락을 싸 왔더라고. 일전에 너한테 많이 미안했나 봐. 불쑥 찾아갔던 일 말이야.”
“에구. 그럴 필요 없는데. 잘됐네요. 안 그래도 출출해서 짜장면이나 시킬까 했는데. 이따가 형수님께 인사나 드리고 가야겠다.”
뚜껑을 열어 보니 김밥이었다.
한 조각 꺼내 우적거리고 있을 때 고동우가 넌지시 물었다.
“어제 캡틴 님이랑 좌대에 다녀왔다면서? 그 꼬마하고.”
멤버들 간에는 비밀이 없다.
한 사람과 전화 통화라도 하면 곧장 모든 멤버들에게 전파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소문도 참 빠르네요.”
“캡틴 님이 그 꼬마의 선생님으로 나섰고, 그 참에 보트까지 사기로 했다면서?”
“아이가 좋아하더라고요. 너무 잘됐죠.”
“캡틴 님도 적적하지 않을 테니 서로 잘된 거지. 그래서 말인데…….”
고동우의 말투가 은근해졌다.
뭔가 부탁을 할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반대였다.
“나도 뭔가 해 주고 싶다.”
“예에?”
“명색이 낚시점 사장 아니냐. 낚시용품은 내가 대 주고 싶다는 말이야.”
나도 모르게 김밥으로 향하던 손이 멈췄다.
각지에서 온정이 넘치는구나. 그렇지만 뭐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돼요.”
“어허, 나 그렇게 야박한 사람 아니다.”
“사실은 준서가 그런 걸 원하지 않아요.”
“뭐?”
고동우에게는 의외의 대답이었나 보다.
나는 말없이 웃으며, 전날 준서를 보육원에 데려다주면서 원장과 나눴던 얘기를 떠올렸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이의 고집이 그러하니.’
철이 너무 일찍 들어 버린 아이였다.
원장은 내가 보내 준 스마트폰을 받지 않겠다고 처음에 펄펄 뛰었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서로 민망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이를 달래고 달랬다는 얘기였다. 준서에게서 고맙다는 메시지가 수일이 지나 도착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자립심이 남다른 아이.
일전에 주꾸미도 자신이 직접 잡은 걸로만 가져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던 녀석이 아니던가.
아무리 어린아이지만 준서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마음만 받을게요.”
“눈치로 보아 뭔 상황인지 알겠다. 그럼 나중에 생각 바뀌면 그렇게 해.”
“네.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그 꼬마랑 첫 수업은 언제야?”
“다음 달 10월 첫 주말요. 추석 직전이죠. 그 전에는 캡틴 님과 이론 공부를 하겠다나 봐요.”
“아이고, 낚시 댕기느라 애들 가르치느라 다들 고생이 많다. 그럼 나는 이제 가 보마. 천천히 놀다 가라.”
혼자서 뭘 하면서 놀라고…….
고동우가 내려가고 멀뚱히 있다 보니, 전에 놓고 갔던 고양이 낚싯대가 눈에 띄었다.
“베타야! 나랑 운동이나 하자.”
“야~~~~ 옹!”
휘리릭! 폴짝!
휘리릭! 폴짝!
잘도 논다.
요즘 녀석이 밖에도 잘 안 나가려고 해서 이렇게라도 다이어트를 시켜야겠다.
휘리릭! 터억!
녀석이 미끼를 덥석 잡고 의기양양하게 웃는다.
너무 귀여워서 깨물어 주고 싶구나.
지난 3월쯤이었지, 아마…….
벌써 반년 정도나 흘렀구나.
문득 베타의 옛 모습이 아련한 기억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처음 꾀죄죄한 모습으로 우리 집에 왔을 때는 그토록 작은 아기였는데. 이렇게 훌쩍 클 줄 미리 알았다면, 그동안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 둘걸…….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앳된 모습이 남아 있을 때, 동영상에 담아야겠다.
“자아, 찍는다.”
한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낚싯대를 휘두르며 나는 베타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가, 가만…….
휴대폰의 화면 속에서 뛰노는 베타의 모습에 갑자기 준서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번개처럼 머리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준서가 커 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긴다면.
그가 멋진 낚시꾼으로 성장하는 감동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경제적 지원을 마다하는 아이에게 스스로의 자립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수 있다면…….
준서를 위한 새로운 채널을 만들어 주는 거다!
아이의 시각에서 펼치는 초보를 위한 좌충우돌 낚시 방송.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수익금이 생긴다면 절반은 보육원에 기부하고, 나머지 반은 준서의 미래를 위해 적립하는 게 어떨까.
추석 전까지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그때까지는 차분히 계획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준서의 의향도 들어 봐야 하겠고.
그때 갑자기 몰려온 흥분을 일시에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용!”
정신이 팔려 가만히 내려놓은 내 손을, 베타가 툭툭 건드리며 보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