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아나킨
용감한 어부를 촬영하고 돌아와 일주일이 지났다.
TV 화면에서 종료를 알리는 자막이 뜨자마자 나는 책상으로 다가가 마우스를 클릭했다.
장 피디와의 약속을 지켰다.
본방보다 앞서 절대로 어반자TV에 갈치 편을 올리지 않겠다던.
‘용감한 어부에서 어반자TV를 대놓고 홍보해 드릴 수는 없고, 강 프로님을 유명 유튜버로만 소개하겠습니다. 그래도 알아서 찾아가는 사람들이 장난 아닐 겁니다.’
조만간 전례 없는 어반자TV 구독자의 증가를 암시하는 장 피디의 마지막 말이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심야에 휴대폰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아버지였다.
“지금 마을 회관 문 닫고 집에 가는 길이다. 아주 잘했어.”
“야밤에 뭔 고생이세요. 월드컵 축구 경기도 집에서 보시는 분께서.”
“쓸데없는 잔소리는 됐고. 완장은 네가 받았어야지.”
“아이고, 아버지. 이덕호 씨가 대표로 받은 거예요.”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아무튼 고생했다. 용식이 애비가 갈치 잘 먹었다고 전해 달라더라.”
일주일 전에 나는 나눔을 위한 갈치의 일부를 충주 부모님께 보내 드렸다. 나눔을 하고도 남을 만큼 잡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휴대폰을 내려놓기 무섭게 멤버들의 축하 전화가 이어졌다.
자기 얼굴이 실물과 다르게 나왔다고 투덜거리는 사심희의 전화가, 나의 선전이 다 자신이 선물한 전동릴 덕분이 아니냐는 고동우의 공치사가, 보람이의 짤막한 본방 사수 생색이 이어졌다.
방송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이 끊어진 대학 친구의 전화가 와서 한참 동안 근황을 주고받았다.
밤이 이슥한 시간이 되고 나서야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아이고, 좋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와서 그런가.”
베타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아, 오랜만에 영화나 한 편 때릴까 하며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였다.
깨톡!
한밤중에 도착한 메시지 수신음.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낚시 영재, 준서였다.
이 녀석이 밤에 안 자고 TV를 본 모양이구나.
―삼촌! 잘 지내요? 오늘 그거 잘 봤어요. 그리고 휴대폰 선물 너무 감사합니다.
내가 선물한 스마트폰을 받고 처음 보내 온 메시지 인사였다.
―그래. 고맙다. 근데 내일 학교 안 가니? 벌써 잘 시간이 넘었어.
―내일 토요일인데요. ㅎㅎ
회사를 그만둔 뒤로 요일 개념을 상실했다.
잠깐 헛웃음을 짓다가 다시 문자판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요즘에 낚시 가 본 적 있어?
―아뇨. 아직 원장 할아버지가 몸이 불편하세요.
―저런. 그랬구나. 그럼 삼촌이랑 낚시나 갈까?
―정말요? 언제요?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게. 네가 원장님 허락을 받는다면.
―우와. 원장 할아버지 깨우면 안 되는데.
―내일 일찍 여쭤보거라.
―저 빨리 자야겠어요. 낼 아침에 전화드릴게요. 삼촌.
참 녀석도…….
낚시를 가고 싶은 것 같아 슬쩍 넘겨짚었더니 바로 넘어온다. 그리고 내가 낚시를 가자고 한 것은 미안함 때문이기도 했다.
스마트폰만 달랑 하나 보내 줬을 뿐.
낚시 영재의 후원자를 자처하고 나섰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준서의 훈련 방안을 세워 두지 못했다.
그저 나와 가끔씩 주말 낚시 여행을 떠나는 것 말고는…….
호기롭게 말을 꺼내긴 했는데 내일은 어디로 갈까?
어린아이다 보니 선상 낚시는 승선부터 어렵고, 가까운 방파제나 수상 좌대 말고는 대안이 없는 것 같다.
이왕이면 방파제보다는 좌대가 손맛을 볼 확률은 높겠지.
돌고 돌아 결론은 결국 M 좌대. 영재 훈련장으로서는 손색이 없는 곳이다.
후닥닥 낚싯짐을 챙기려는데 또 휴대폰 전화벨이 울린다.
누가 이 오밤중에 또…….
발신인을 확인해 보니 장재준 영감이었다.
그러고 보니 멤버들 중에서 그의 축하 전화가 아직 없었다.
“캡틴 님!”
“미안합니다. 본방을 놓치고 어반자TV로 지금 봤네요. 자고 있는 데 전화한 건 아닙니까.”
“아닙니다. 내일 낚시나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또 어디로요?”
“그냥 가까운 데로 낚시나 가려고요. 방송은 아니고. 김준서라고 아시죠? 같이 좌대로 놀러 갈 계획입니다.”
“정말입니까? 그럼 나도 갈 수 있을까요? 그 녀석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의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준서를 한번 만나 보고 싶다던 그의 말이 기억났다.
“야~~~~ 웅!”
잠을 청하던 베타가 계속되는 말소리에 짜증을 낸다.
나는 장재준 영감과 약속 시간을 정하고 부랴부랴 통화를 마쳤다.
저 녀석…….
상전이 따로 없다.
* * *
“근데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장재준 영감을 태우고 평택에 도착했을 때 준서가 꺼낸 질문이었다. 천진난만한 녀석의 눈빛에 장재준 영감은 껄껄 웃기만 했다.
“할아버지라니. 그냥 아저씨라고 해야지.”
요즘에 60대 초반에게 할아버지라 부르는 건 실례다.
간혹 시골 마을에 가보면 환갑의 주민이 청년 회장을 맡는 백세시대가 아니던가.
장재준 영감은 뒷좌석으로 자리를 바꾸면서 준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다. 그냥 할아버지라고 불러라.”
“우와. 그러고 보니까 우리 할아버지 냄새가 나요. 너무 좋은 냄새.”
우리 할아버지?
궁금해서 무심코 물었다.
“원장 할아버지 말하는 거지?”
“아뇨. 예전에 할아버지랑 살았거든요.”
“그랬구나…….”
처음 준서를 만났을 때 나는 그의 과거사를 묻지 않았다.
어떻게 보육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언제 들어왔는지 등등…….
아이가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은 기억일 거라서 같아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너무나 밝은 아이의 얼굴 때문에 물어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준서는 오히려 신이 나서 할아버지 얘기를 술술 풀어 갔다.
“다섯 살 때까지 같이 살았어요. 저에게 맛있는 된장찌개도 참 많이 해 주셨는데. 헤헤.”
그렇다면 다섯 살에 보육원으로 왔다는 말이로구나.
준서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바람에 할 말을 잊었다. 장재준 영감이 아이의 말을 받았다.
“오오. 그렇구나. 나도 된장찌개 잘 끓이는데.”
“그래도 우리 할아버지보다는 못 만드실걸요? 바지락을 듬뿍 넣은 된장찌개.”
“그러냐? 나도 바지락 좋아한다. 너도 그러냐?”
“옛날 살던 동네에 바지락이 많았거든요.”
“동네가 어디였는데?”
“음……. 잘 기억이 안 나요.”
바닷가 근처에 살았나 보다.
평택에 있는 보육원으로 온 것으로 미루어 경기도 화성 인근이 아닐까 짐작만 할 뿐이었다.
준서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창문 틈으로 짠내가 흘러 들어왔다.
주차를 마치고 작은 배로 옮겨, M 좌대에 발을 올리던 순간 준서가 탄성을 내질렀다.
“우와! 이런 곳도 있어요?”
준서의 눈에는 꿈의 낙원처럼 보인 모양이다.
널찍한 수상 좌대 위에는 휴일을 맞아 낚시를 즐기러 온 손님들이 꽤 많았다.
난생처음 수상 좌대에 오른 준서가 앞장을 서서 살금살금 걸어가고 있었다.
“발판이 튼튼해서 물에 빠질 염려는 없어. 그렇게 조심하지 않아도 된단다. 하하.”
아이의 모습에 웃으며 알려 주었더니, 준서는 씩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쿵쿵거리면 물고기들이 도망갈까 봐서 그래요.”
특이한 녀석이다.
바다를 보자마자 그의 머릿속에는 물고기들이 떠다니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기본 옵션으로 좌대 예절이 몸에 프로그래밍되어 있었거나.
곁에서 지켜보던 장재준 영감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보니까 평범한 아이는 아닌 것 같군요. 허허.”
“그렇죠?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녀석이에요.”
적당한 장소에 짐을 내리고 보니 장재준 영감은 빈손이었다.
“캡틴 님은 낚시 안 하시나요?”
“오늘은 그냥 바닷바람이나 쐬러 왔습니다. 편하게 낚시하세요.”
사실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 또한 오늘은 준서의 훈련에만 집중할 생각으로 낚싯대는 하나만 챙겨 왔다.
내 낚싯대 중에서 비교적 가볍고 짧은, 1.5미터 길이의 라이트 지깅대였다.
낚싯줄에 내림 낚시(찌 없이 채비를 내리고 초릿대의 진동으로 입질을 파악하는 낚시) 채비를 만들어 준서에게 건네주면서 내가 물었다.
“준서야. 우럭이 좋아하는 미끼가 뭘까?”
“갯지렁이. 그리고 오징어요.”
“맞아. 오늘은 오징어를 준비해 왔어. 이걸 바늘에 끼우고 바닥에 내리면…….”
“내림 낚시라 이거죠?”
“엥? 혹시 해 봤어?”
“그럼요. 삼촌이랑 했던 주꾸미 낚시도 내림 낚시였잖아요?”
듣고 보니 그렇다.
척척박사에게 이론 학습은 별로 필요 없겠다.
그렇다면 곧바로 실전 훈련이다.
나는 허리를 숙이고 좌대 바닥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지난봄에 아빠와 왔던 이름 모를 소년. 그에게 알려 준 것처럼 ‘구멍치기’부터 시도해 볼 참이었다.
큼직한 구멍마다 돌아다니며 휘파람을 불어 넣다가 딱 좋은 곳을 발견했다.
“준서야! 여기에 채비를 넣어 보거라.”
“이 작은 구멍에 우럭이 살아요?”
“하하. 그래. 한번 해 봐.”
준서가 채비를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장재준 영감의 옆자리로 의자를 들고 다가갔다.
“어떠세요?”
“어리지만 자세가 안정되어 보이는군요.”
“열 살 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어디 한번 지켜봅시다.”
잠시 후 준서의 작은 손에 들려 있던 라이트 지깅대가 살짝 까딱거렸다. 아이가 깜짝 놀라는가 싶더니 침착하게 릴을 살살 감기 시작했다.
장재준 영감이 중얼거렸다.
“웬만한 아이였다면 흥분해서 바로 낚싯대를 치켜들었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잠시 후.
초릿대가 아까보다 길고 큰 진폭으로 부르르 떨고 나서야 준서는 낚싯대를 치켜들었다.
“에구구. 어어?”
약간 당황했는지 처음에 아이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곧 낚싯대의 손잡이를 옆구리에 꽉 붙이더니, 이를 꽉 깨물었다.
준서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던 장재준 영감이 중얼거렸다.
“범상치 않은 아이로군요.”
“그렇죠? 챔질 타이밍이 정확했어요.”
“내 말은 그게 아니고…….”
“그럼요……?”
“갑자기 아이의 눈빛이 번뜩이는 거 보셨습니까?”
“아아.”
예전에 나도 보았던 집요한 눈빛을 보신 모양이다.
그때 준서가 환호성이 들려왔다.
“잡았어요! 우럭이에요!”
펄펄 뛰는 모습은 또래의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준서가 거침없이 바늘에서 우럭을 빼 들고 우리에게 달려왔다.
“이거 몇 센티예요?”
“글쎄다. 한번 볼까?”
손가락을 펴서 대충 재어 보니 15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우럭이었다.
“에이. 그럼 놔줘야 되겠다.”
우럭의 포획 금지 체장 기준은 23센티미터.
준서는 다시 쪼르르 달려가 바다에 고기를 놓아주었다.
“기본적인 상식도 갖춘 모양이군요.”
“예습을 많이 하고 온 것 같습니다. 하하하.”
준서는 그다음에도 작은 우럭을 잡았고, 기준 체장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방생을 했다.
잠시 후 구멍치기에 열중하던 준서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또 우리에게 다가왔다.
“삼촌! 저 사람들이 하는 건 뭐예요?”
“으응. 저건 찌낚시야. 찌가 소시지처럼 생겼지?”
“저도 저렇게 해 보면 안 될까요?”
“으음…….”
내림 낚시만 해도 하루가 빠듯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찌낚시 채비는 챙겨 오지도 않았다.
채비를 구할 데가 없을까 궁리하던 그때 낯익은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선장님!”
“왜요. 또 투포환 연습이라도 하려고요? 오늘은 주말이라 안 됩니다.”
“그게 아니라, 소세지 채비 하나 구할 수 있나요?”
“좌대에서도 팔죠. 하나 드릴까요?”
“아이고, 너무 고맙습니다.”
선장은 삼길포항 입구에 작은 낚시 편의점을 따로 운영한다. 서비스 정신이 탁월한 그는 좌대에서도 이런 경우를 위해 간단한 물품들을 팔고 있었다.
선장이 가져다준 채비를 후다닥 매어 준서에게 건네주었다.
“준서야, 너 캐스팅은 해 봤어? 내림 낚시랑은 다르거든.”
“원장 할아버지 옆에서 구경은 해 봤어요.”
“그럼 내가 가르쳐 줄게.”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이기로 했다.
“이렇게 줄을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낚싯대를 뒤로 젖혔다가 탄성을 이용해서…….”
내 손을 떠난 채비가 가까운 곳에 안착했다.
소세지찌가 물 위를 흐르다가 오뚝 서는 모습을 지켜보던 준서가 얼른 낚싯대를 달라고 보챘다.
아이의 작은 손에 낚싯대를 쥐여 주고 나는 의자로 돌아왔다.
휘익! 툭!
준서의 첫 캐스팅은 실패였다. 채비에 달린 구멍 봉돌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자 아이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휘리릭! 퐁!
이번에도 실패. 아이의 손을 떠난 채비는 난간은 넘겼지만 힘없이 코앞에 떨어졌다.
준서의 캐스팅은 계속 이어졌다.
잠시 쉬어 가며 할 법도 한데 그는 성공할 때까지 낚싯대를 놓지 않을 기세였다
그리고 잠시 후.
쉬이익! 촤르륵!
아이의 활시위를 떠난 채비가 제법 멀리 떨어진 수면 위에 갈매기처럼 내려앉았다.
장재준 영감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와서 보니까 내 예상이 맞았습니다. 겨우 열 살의 아이일 뿐인데.”
“저도 같은…….”
고개를 끄덕이다 무심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저 아이를 직접 가르치고 싶습니다. 우럭 님만 괜찮다고 한다면.”
영화에서 어린 아나킨을 제자로 받아들이던 순간, 수많은 감정을 담고 있던 늙은 마스터의 눈동자.
장재준 영감의 눈빛이 그것과 꼭 닮아 있었다.